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66화 (266/306)

266. 전환점 (1)

***

“아.”

깜빡깜빡. 나는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어라, 언제 잠들었지. 나는 느릿하게 눈을 굴리다가 밝은 창을 확인했다.

“지금 몇…, 허어…억…!!!”

아침을 알리는 밝은 태양의 빛에 반사적으로 시계를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리던 나는 식겁하며 몸을 뒤로 물렸다.

‘바, 바, 바, 반휘혈?!’

다름이 아니라 내 옆에서 반휘혈이 아주 곤히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쿵쾅쿵쾅. 너무 놀라서 심장까지 요란하게 울려 댔다. 나는 소리를 지를 것 같은 걸 두 손으로 틀어막으며 겨우 참아 냈다.

‘아니, 얘가 왜 여기 있어?!’

좀체 갈피가 잡히지 않는 상황에 나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 설마 그대로 잠들었었…?’

그러다 차츰 잠이 깨기 시작하자 대강의 상황이 파악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침대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자마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었나 보다. 운동하고 난 직후고 반휘혈과의 대화로 정신적인 피로도도 높았던 상황이었기에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반휘혈도 잠이 든 건 이상하다만… 아, 최근에 잠을 못 잤다고 했었나? 그 이유도 나 때문이었다고 했으니 정말 할 말이 없었다. 대충 상황을 짐작한 나는 아찔한 자신의 실책에 머리를 짚었다.

‘아무리 피곤했어도 그렇지, 그대로 잠들어 버리면 어떡하냐고.’

아니, 그보다 엄마는 이 꼴을 보고도 왜 안 깨운 거지? 반휘혈이나 내가 방에서 안 나왔으면 한 번쯤 들어왔을 법했다. 자신의 실수를 질책하면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떫게 얼굴을 구기고 있는데 문득 벼락 맞은 것처럼 잊고 있던 일을 떠올렸다.

‘어, 아빠랑 이수…!!!’

설마 아빠랑 서이수가 이 광경을 봤나? 아, 아니야. 만약 봤으면 그 두 사람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아마 모르고 넘어간 듯싶으니 이대로 두 사람이 집을 빠져나갈 때까지 조용히 있으면 된다. 대충 시간을 확인해 보니 기상 시간에 얼추 가까웠다. 이대로 조용히 빠져나가야지. 물론 반휘혈에게 가족들 다 집을 나간 것 같으면 방을 나오라는 메모도 남겨 놔야겠다.

‘문에 붙여 놓으면 보겠지?’

나는 A4 용지에 대문짝만하게 다 나갈 때까지 나오지 말라는 메시지를 남겨 두고 조심조심 방을 나왔다.

“…뭘 그리 조심스럽게 다녀?”

“……!!!!!!!!”

나는 깜짝 놀라다 못해 기절할 것 같은 심정에 문고리와 심장을 부여잡은 채 주르륵 주저앉았다.

“까, 깜짝 놀랐잖아…!”

놀란 가슴을 붙잡은 채 목소리를 잔뜩 죽이며 항의하자 서이수가 어이없단 눈초리로 나를 보았다.

“아니, 왜 살금살금 다니냐고.”

“그, 그건….”

“방에 뭐 숨기는 거라도 있어?”

흠칫. 날카로운 추측에 반사적으로 몸이 튀었으나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아, 아니??? 아무것도 없는데???”

“……수상한데.”

“아, 진짜 아무것도 없어! 그, 그냥 다들 깰까 봐 조심해서 나온 거라고. 그, 아침이잖아! 좀 더 자란 내 배려라고, 어?!”

의심쩍은 눈빛에 당황한 내가 횡설수설하자 서이수의 시선이 강해졌다. 양심이 콕콕 찔리기 시작한 내가 그 눈을 못 마주치고 있자니 휙, 하고 서이수가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꾸우욱…! 내 손 위로 바로 얹어진 손이 문고리를 돌리기 위해 힘을 더하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힘으로 버텨 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소리 없는 씨름을 잠시간 주고받았다.

“아, 진짜…! 뭔데 그래!”

그리고 씨름의 승자는 바로 나였다. 힘 씨름에서 져 버린 서이수가 포기하고 결국 와락 얼굴을 구기며 성질을 냈다.

“말 안 해 주면 엄마, 아빠한테 이른다?!”

다만 문제는 힘에서만 이겨 버린 점이랄까. 말싸움에선 단번에 져 버렸다. 진짜 고자질을 하러 갈 기세에 나는 그의 옷자락을 황급히 붙잡았다.

“…어.”

“어?”

“반휘혈… 있다고…!”

“……응?”

끔뻑끔뻑. 하는 수 없이 사실대로 고하자 서이수가 멍청히 눈을 깜빡였다. 그러길 몇 초.

“ㅁ……으븝?!?!??”

금세 경악하며 소리치려는 서이수의 입을 틀어막았다. 서이수는 지진이 일어난 눈동자로 나와 방문을 연신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다 녀석의 눈이 나를 미친놈 보는 듯한 시선으로 바뀌었다.

누나, 미쳤어?!

말로 내뱉진 않지만 그런 환청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진정하란 것처럼 고개를 저으며 진지하게 속삭였다.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엉뚱한 생각 하지 마. 아빠 깨면 어쩌려고.”

“……아니이…!”

서이수는 입을 가린 손을 팍 치워 내다 이내 그도 일을 키우고 싶진 않았던 모양인지 부모님 방문을 힐끗 보곤 이를 악물며 낮게 중얼거렸다.

“누나, 미쳤어? 왜 반휘혈이 누나 방에 있어. 그것도 이 아침에. 설마 같이 잤…!”

“쓸데없는 생각 말랬지.”

빡. 나는 그의 머리를 서슴없이 내려쳤다. 서이수가 악, 하고 신음을 내뱉으며 머리를 감쌌다.

“넌 조용히 입 다물고 학교나 가.”

“누나…!”

“아, 가라고.”

나는 그의 등을 꾹꾹 밀며 방문에서 쫓아냈다. 서이수는 어처구니없는 시선으로 나를 보다가 이내 얼굴을 확 찌푸리며 짜증을 냈다.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네. 누나 대체 무슨 생각이야?”

“뭐가.”

“다 끊어 낼 것처럼 굴었으면서 지금 하는 꼴이 이해가 안 돼서 그런다, 왜!”

그러게. 나도 내가 이해가 안 간다. 하지만 이걸 곧이곧대로 말하기도 뭐해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한숨을 푹 내쉬곤 그의 몸에서 손을 뗐다.

“…그냥 내버려 둬.”

나도 머리 엄청 복잡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데 서이수마저 나를 괴롭히면 진짜 머리가 터질지 모른다. 그래서 그냥 녀석을 내버려 두고 화장실이나 가려는데, 서이수가 그런 나를 붙잡았다.

“이럴 거면 그냥 다시 학교 나와.”

그리고…. 그가 나직하게 말을 덧붙이더니 어딘가 머뭇거리는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그, 대화도 좀 하고. ”

“…….”

“아, 딱히 나랑 하자는 거 아니다?! 그, 재, 재현이가 누나 보고 싶어 하고, 그, 그, 시원이도 그렇고 이윤 그 자식도 틈만 나 찾아와서 묻고 또… 아 혜인이 누나! 그 누나도 누나 연락 안 된다고 걱정하고 있어서 하는 말이거든?! 괜한 오해하지 마라!”

“어, 어어….”

오해하지 말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오해할 법한 내용인데…? 하지만 얼굴을 잔뜩 붉힌 채 말을 더듬는 게 귀여워서 내버려 뒀다.

“아, 아무튼! 그, 그러니까 학교 나오라고.”

서이수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돌리며 새침하게 말했다. 왠지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나는 꾹 참아 낼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건 안 돼.”

왜냐하면 내가 내뱉을 말은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절을 담으면서 폭소를 흘릴 순 없지 않은가. 나는 미안한 듯 눈썹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왜?”

그러자 서이수가 얼굴을 굳힌 채 나를 보았다.

“정태우한테 져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처럼 그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정태우랑 리매치를 하는 게… 그게 그렇게 중요해? 이제껏 해 왔던 걸 다 던져 버릴 만큼?”

나는 그 말에 조용히 그를 보았다. 그리고 곧 씁쓸한 듯 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는 모른다. 이전의 내 삶을. 그러니 당연히 이런 내 판단을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거다.

“이수야. 넌 무언가를 목표로 삼아서 미치도록 노력해 본 적이 있어?”

내 물음에 서이수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짐작한 반응에 나는 잘게 웃음을 흘렸다. 그래, 당연히 없겠지. 그러니 넌 내게 이런 말을 쉽게 꺼낼 수 있는 거다. 고집이라고 불러도 좋다. 비틀린 아집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겨우 주변 환경 때문에 거의 다다른 목표 앞에서 모든 게 무너진 적은?”

“잠깐. 그게 무슨…?”

연이은 질문에 그가 당황한 듯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나는 그에 명확한 대답을 해 주지 않고 대답을 이어 갔다.

“물론 전부 없겠지. 후자는 어쩔 수 없다 쳐도 전자는… 넌 그럴 애가 아니니까. 그러기엔 넌 너무 이성적이고 냉정하거든.”

무엇보다 그 녀석에게 지고 리매치를 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움직이는 내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너와 나의 결정적인 차이다.

…어쩌면 아빠는 이러한 이수의 무른 점을 일찍이 알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운동은 타고난 피지컬과 감각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재능의 일부에 불과했다. 설령 그러한 재능이 부족할지도 운동인이라면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 진정한 목표를 향한 맹목적인 열정과 시선. 일반 사람들이 누리는 많은 걸 포기해서라도 차지하고 싶은 열망. 모든 세월을 투자해 가며 세계의 정상에 도달하고자 하는 그 순수한 고집과 집착이야말로 진정한 재능이었다. 야속한 판단일지 몰라도 서이수는 그게 명백히 부족한 녀석이었다. 그래서 아빠는 이 녀석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거겠지.

“근데 난 그런 사람이야.”

현재 내겐 시간도, 환경도, 사람도 모든 것이 갖춰졌다. 그렇다면 내가 고를 선택지는 당연히 하나다. 정태이를 넘어서는 그때까지… 난 더는 물러서지 않을 거다. 이번만큼은 절대로, 반드시 이길 테니까.

“…….”

서이수의 얼굴이 당황으로 벙쪄 있었다. 그는 혼란스러운 듯한 눈을 여러 번 깜빡이다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그런 그에게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히 대답했다.

“결국 포기 못 한다는 소리지.”

“…….”

그 대답에 서이수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러곤 못마땅하다는 듯이 잔뜩 입꼬리를 부루퉁하게 내린 채 나와 거리를 벌렸다.

“난… 진짜 누나를 이해할 수 없어.”

“굳이 이해 안 해도 돼.”

어차피 이 길은 남들이 이해하기 힘든 길이니까. 그런 시선은 익숙하고 말이다. 그런 탓에 괜찮다고 얘기해 주자 갑자기 서이수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윽.”

엇. 근데… 어째선지 그는 내 말에 상처를 받은 듯 창백해졌다. 나는 내가 뭘 잘못 말했나 당황스러워서 눈을 깜빡이자 그사이에 성질이 잔뜩 나 버린 서이수가 대뜸 소리쳤다.

“이…잇!! 누나 따위 알 바 아냐, 이젠!! 마음대로 해!!”

쿵, 쾅, 쿵, 쾅. 그의 신경질적인 발걸음 소리가 거실을 울리고 사라졌다. 곧 짜증 난 문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에 놀란 듯 엄마가 나왔다.

“방금 그거 무슨 소리야?”

“어…, 글쎄.”

하지만 얼떨떨하게 굳어 있던 나도 영문을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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