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70화 (270/306)

270. 인소의 사건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1)

***

그로부터 체육관에서 돌아오고 30분째.

“…….”

현재 나는 침대에 앉아 앞에 놓인 핸드폰과 열심히 눈싸움 중이었다.

‘이걸… 켜, 말아?’

나는 심각하게 눈을 부라리며 핸드폰을 노려봤다. 심기일전으로 책상 서랍에 처박혀 있던 핸드폰을 다시 꺼낸 건 좋았으나 아직 전원을 켜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현재 스스로가 벌린 일에 대한 후폭풍을 받게 될 처지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들이 나 무시하면 어떡하지.’

덜덜덜. 새로운 마음을 먹고 다시 시작해 보는 건 좋았으나, 무책임하게 내던졌던 일들에 대한 뒷수습을 하려니 여간 두려운 게 아니었다.

고찬영이나 반휘혈은 괜찮다 쳐도 다른 애들은? 영문도 모른 채 잠수 탄 친구나 누나가 되어 버렸다. 게다가 시기상으로 체육 대회 이후임을 감안하고 아픈 걸 핑계 대더라도 너무 길었다.

이걸 진짜 어쩌면 좋지.

내던지는 건 쉽… 그리 쉽지도 않았지만, 이걸 다시 수습하려니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일이었다. 끙끙거리며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그때 밖에서 엄마가 나를 불렀다.

“이나야, 그만 나와서 밥 먹어~.”

“헛.”

그제야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얼추 늦은 저녁 식사 시간에 가까웠다.

“…내일 켤까?”

우선 저녁부터 먹는 게 좋지 않을까? 나는 슬쩍 뒤로 미루고픈 마음에 핑계를 대 보았다. 하지만 결심한 이상 이왕에 한시라도 빨리 해치우고 싶은데… 어쩌지.

“먹기 싫다는 인간 차려 줘서 뭐 해. 걍 내버려 둬, 엄마.”

“너는 누나가 밥 안 먹는데 걱정도 안 되니?”

“하나도 안 되거든? 걍 굶어 뒤지라지.”

저 새끼를 그냥…. 서이수는 아침의 앙금이 전혀 풀리지 않았던 모양인지 날카롭게 솟은 가시처럼 말이 뾰족하기 그지없었다. 어휴, 저것도 내 업보지, 업보야. 저 녀석이랑은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며 나는 다시 핸드폰을 보았다.

어차피 핸드폰은 정지되어 있다. 훈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아빠에게 부탁해 놨기 때문이었다. 그런 뒤, 핸드폰은 책상 깊숙한 곳에 방치시켜 놨으나 설마 이렇게 빨리 꺼내게 될 줄은 몰랐다.

‘우선 시간이 늦었으니까 내일 다시 연결하고… 그 뒤에 애들한테 사과하고….’

나는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그런데 만약 사과해도 안 받아 주면 어떡하지? 화 많이 나서 나한테 오만 정이 다 털렸으면 어떡해. 암울한 생각에 점점 내 낯은 울상으로 변해 갔다.

‘아니, 아니야. 정 안 되면 찬영이랑 휘혈이의 힘이라도 빌려야지.’

그 두 사람만은 나를 버리지 않을 것 같으니까. 반휘혈은 오늘 내쫓아서 기분이 별로 안 좋을지도 모르지만, 더 이상 그런 걸로 멀어질 것 같지도 않았다. 아니, 잠깐. 반휘혈의 힘을 빌리는 게 맡긴 하나?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참이니 군소리를 내뱉을 때가 아니겠지.

나는 복잡하게 꼬이는 생각을 휘휘 저어 쫓아냈다. 그래, 그냥 하자. 전원만 켜 보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핸드폰의 전원 버튼을 누르기 전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러곤 두 눈을 질끈 감고 버튼을 꾹 눌렀다.

지이잉-. 띠리링~.

그러자 오랜만에 듣는 듯한 정겹고도 두려운 소리가 연이어 이어졌다. 나는 파들거리는 한 손을 딱딱딱 이로 씹어 대곤 다른 한 손으론 핸드폰을 멀찌감치 떨어트리고 전원이 다 켜지길 기다렸다. 실눈으로 겨우 떠서 보니 핸드폰 액정엔 익숙한 배경 화면이 떠지기 시작했다. 뭐야, 생각보다 쉽네. 이제 남은 숙제는 내일 연락 돌리기만 남았다.

“휴… 우선 켰으니까 밥부터 먹고 생각…,”

지이잉, 지이잉, 지잉, 징, 징, 징…!!!

“워, 씨! 미친!!!”

한시름이 가시는 기분에 도로 침대 위에 핸드폰을 두려던 순간 난데없이 격하게 울리는 알림 소리에 화들짝 놀라 나는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던져 버렸다. 그러나 침대 위에 거칠게 내동댕이쳐진 핸드폰의 진동은 멈출 기미 없이 한동안 계속 울리다가 멈추었다.

“뭐, 뭐야???”

나는 꽤 오랫동안 울리던 핸드폰을 멀거니 보다가 이내 눈을 깜빡이며 조심스레 다시 주웠다. 그리고 보이는 알림 내역을 확인하곤 눈을 크게 떴다.

“어…?”

그것은 아이들의 안부 문자와 부재중 목록이었다. 왜 메시지랑 전화가 이렇게 쌓여 있지?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부재중의 날짜 기록을 확인했다. 하나하나 확인하니 부재중의 기록은 3주 전부터 최근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최근에 가장 가까이 있던 것은…,

“…혜인이.”

이혜인이었다. 오늘 방과 후 시간쯤에 남겨진 통화 목록을 발견하곤 나는 얼떨떨히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홀린 듯 통화를 눌렀다.

뚜르르- 뚜르르-.

연결이 되면 안 될 핸드폰에서 단조로운 통화음이 수차례 이어졌다. 그리고 뚝, 하고 연결음이 끊어지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나야!]

“아-, 어, 응, 여보…세요?”

연결이 되자마자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흠칫 놀라며 말을 더듬었다. 충동적이었던 행동만큼이나 생각이 없었기에 오랜만에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가 당황스러워 눈동자가 이리저리 방황했다.

[이나, 너어…!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내가 얼마나 걱정했다고!!]

“아, 응. 미, 미안. 그… 저기,”

[진짜 내가 하루에도 수십 번 찾아갈까 말까 얼마나 고민했는 줄 알아?!]

“어, 음. 그, 미안.”

[아프면 아프다고 하든지, 아니면 그 외에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 줄 수 있는 거 아냐? 내가 혼자서 얼마나 똥줄 타고 기다렸는지 아냐고!!]

“……미안.”

이혜인의 말이 이어질수록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사과밖에 없었다.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보이지도 않는 상대를 향해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고 있자 이혜인의 분노가 차츰 가라앉기 시작했다.

[…찬영이랑 경희가 지금은 안 된다고 자꾸 말리지를 않나, 그런데 이유는 설명도 안 해 줘!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아?!]

아, 아니었네. 그라데이션처럼 다시 차오른 분노에 나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찬영이랑 경희?’

그러다 문득 걸리는 이름들에 나는 슬며시 다시 고개를 들었다. 고찬영이야 날 매일같이 만나러 왔다 쳐도 안경희라니. 아니, 안경희라면 내 근황 정도는 금방 파악할 수 있으니 그리 이상하진 않은가? …어쩌면 내가 마음을 돌리기 전까지 이혜인과 만나지 않기 위해 그 두 사람이 손을 썼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두 사람에게 고마움이 찾아들었다. 나중에 감사 인사를 해야 할 듯싶었다.

[하여간 매번 자기네들만 알지! 너도 똑같아! 이번만은 나도 쉽게 안 넘어갈 거야!!]

…물론 그 전에 잔뜩 뿔이 난 이혜인의 화부터 가라앉히는 게 급선무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난 한동안 친구의 화를 전부 받아 내며 연신 사과만 해야 했다.

***

그로부터 일주일이 흘렀다.

나는 링 위에서 숨을 깊게 몰아 내쉬며 땀을 훔쳐 냈다. 그런 후 앞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수고했어, 시원아.”

“…수고하셨습니다.”

덥석. 김시원은 누운 채 숨을 몰아쉬다가 내 손을 붙잡아 몸을 일으켰다.

“너 진짜 실력 되게 빨리 는다. 어제보다 더 좋은데?”

오랜만에 김시원과 스파링을 하며 그 실력을 확인하자 몇 달 사이에 눈에 띄게 몸이 유연해져 있었다. 이전엔 굳어 있던 게 흠이다 싶었더니 그걸 보완했었나 보다. 이번 주부터 내 훈련을 도와주기 시작한 그는 내 훈련 도우미 중 한 명이었다. 김시원은 정태이와 스타일이 다르긴 했지만 성장 속도가 발군인 만큼 어디서 어떻게 나올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당연히 레프트일 줄 알았는데 어퍼라니. 오늘도 의외의 공격을 맛보며 난 혀를 내둘렀다. 이러니까 아빠가 자꾸 얘를 탐을 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건 제가 할 소리인 것 같은데요.”

진심 어린 칭찬을 내뱉자 김시원은 뚱한 얼굴로 내 말에 대꾸했다. 저 못마땅해하는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자신이 진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래, 이런 승부욕도 아주 훌륭한 가산점이지. 나는 피식 웃으며 그 앞으로 털썩 주저앉아 앞으로 보완할 점에 대해 서로 피드백을 가지려는데,

“누우우나아아아-!!!!!”

“억…!”

와락!! 나는 갑자기 옆으로 급습한 분홍색 덩어리에 외마디의 비명을 나직하게 질렀다. 앞에서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던 김시원은 눈썹을 살짝 숙이며 내 옆구리에 매달린 녀석을 보았다.

“누나, 유니 와써여~!!”

“…내가 혀 짧은 소리 내지 말랬지.”

나는 내 옆구리에 매단 채 헤실거리는 녀석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으며 그 몸을 떨어트렸다.

“헤헷. 하지만~ 반가운 걸요~. 게다가 누나가 저한테 짠! 하고 도움도 요청했구!”

후훗! 하고 이윤이 의기양양하게 턱을 들어 올렸다. 꽤나 기분이 좋은 모양인지 이윤의 얼굴엔 기쁨의 홍조가 잔뜩 드리워져 있었다.

이혜인과의 통화를 무사히 마치고 아빠가 일부러 핸드폰을 정지해 놓지 않았음을 알게 된 이후로 나는 곧장 다른 아이들에게도 연락을 돌렸다. 매도 미리 맞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시간이 좀 걸릴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대답은 금세 돌아왔다.

[이재현(으)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다행이에요. 누나. 연락 안 돼서 정말 걱정했어요. 몸은 이제 괜찮으세요?]

[김시원(으)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네.]

[좀 의외긴 했는데 뭐...]

[다음엔 좀 더 빨리 대답해줬으면 좋겠네요.]

이재현은 진심으로 안도하며 내 안부를 물었지만 은근히 서운한 티를 감추지 못했고 김시원에게선 덤덤하지만 은은하고도 살벌한 경고를 받았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이윤은 곧장 전화가 와 대성통곡을 하며 걱정했다고 난리를 쳐 나는 저녁 식사도 먹지 않고 아이들에게 계속 사과를 해야만 했다. 의외로 한도훈에게서 잠잠했던 점이었지만 그건 안경희와의 통화에서 풀렸다.

[아, 도훈이는 요즘 굉장히…! 바빠…!!]

듣자 하니 아무래도 일이 복잡하게 꼬인 듯싶었다. 정확한 설명이 이어지진 않았지만 안경희의 말에서 어딘가 머뭇거리는 낌새에 나도 더 깊게 파고들진 않았다. 때가 되면 어련히 얘기해 주겠지, 싶은 심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러저러한 대화를 다 나누고 나도 그간 있었던 일을 아이들에게 솔직히 얘기했다. 그런 후에 나는 아이들에게 협조를 구했다.

‘훈련 좀 도와줘.’

아이들은 흔쾌히 허락했다. 이재현은 자기가 도와도 괜찮겠냐고 잠깐 머뭇거리긴 했으나 그는 듣자 하니 일반적인 싸움꾼보다는 주변의 물건을 활용해서 싸우는 쪽에 가까운 스페셜리스트였기에 나는 적극 도움을 요청했다. 상대의 기술은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상대방의 주특기에 맞춰 장소까지 일일이 바꿔 가며 훈련을 하고 있자니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는 다시금 세상은 넓고 기술은 다양함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근데 이수는 오늘도 안 와?”

“아마.”

물론 개중에 싫다고 하는 놈도 있었지만 말이다. 바로 내 동생인 서이수였다. 지난주에 제대로 삐졌던 건지 무슨 말을 걸어도 삐딱하게 돌아오거나 무시가 일쑤였다. 오늘 아침도 대번에 무시당한 터였기에 나는 쓴웃음을 짓고는 김시원과 이윤의 대화를 흘려들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난 음료수 좀 사 올게.”

“어? 저두 갈래요!”

“아니, 금방 오니까 여기 있어.”

부탁한 입장에서 끌고 다니기도 미안했다. 나는 손을 내저으며 저지를 걸친 채 문으로 향했다.

“이거 참…. 어떻게 풀면 좋으려나.”

머리를 긁적이며 체육관을 나서자 따사로운 햇살이 나를 반겼다. 날씨 한번 기가 막히네.

‘찬영이랑 휘혈이는 저녁 사러 갔으니까 곧 오겠고. 음. 음식으로 꼬셔 볼까?’

서이수의 마음을 풀 계획을 대강 꾸미며 근처의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러다 주머니 속에 있는 핸드폰이 가볍게 울렸다. 나는 편의점을 들어가려다 말고 앞에 서서 핸드폰을 꺼냈다. 확인해 보니 문자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누구지?’

혹시 찬영이인가. 메뉴 문제에서 뭔가 막혔나? 아니면 이번에도 반휘혈 일로 고자질할 일이 있나? 최근 두 사람은 나로 인해 자주 마주치다 보니 마찰이 굉장했다. 특히나 반휘혈의 적대가 심했다. 그런데도 저녁을 같이 사러 간 건 그저 둘이 고집을 부려서였다. 내 취향을 가장 잘 아는 건 자기라나, 뭐라나. 정말 쓸데없는 싸움에 모든 전의를 상실한 나는 둘이 같이 갔다 오라며 등을 밀어냈다.

아무튼 그런 생각으로 나는 안일하게 핸드폰을 열었다. 정말 별거 아닐 거라 생각하며.

그러나,

“어…?”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한 내 눈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부릅떠진 건 한순간이었다.

“어? 어어, 어???”

눈앞에 닥친 충격으로 머리가 한순간에 멍해졌다. 눈을 연신 비비고 보았으나, 보이는 광경은 변치 않았다. 내 핸드폰에 도착한 메시지는 다름 아닌…,

[사진.jpg.]

서이수와 주연희가 두 손과 두 발이 밧줄로 결박된 사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게 뭐야아-?!?!”

갑작스러운 사건의 시작에 나는 길거리에서 때아닌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