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71화 (271/306)

271. 인소의 사건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2)

***

사건 발생. 약 2시간 전.

“아, 짜증 나-!!”

“하하….”

쾅! 퉁-! 툭, 데구르르-. 강당의 벽에 강하게 부딪힌 공이 튀다 바닥을 굴렀다. 이재현은 애꿎게 화를 당한 공에 한번 눈길을 주곤 쓴웃음을 지었다.

현재 체육 시간이었고, 자유 시간이 주어지긴 했으나 아무래도 서이수의 신경질적인 태도는 이목을 집중시키게 만들었다.

평소라면 남학생들이 같이 모여서 농구라도 하자고 할 판이었지만, 워낙 서이수의 기분이 좋질 않아 말도 못 걸고 있었다. 평소엔 동급생들에게 서글서글한 편이고 활달한 성격인지라 인기가 많은 그였으나 서이수도 결국 관장님의 자식이자 서이나의 동생이었다. 한번 화가 나면 주위가 쉽게 다가올 수 없는 위압적인 기백을 흩뿌리고 있었으나 서이수는 전혀 자각을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가까이서 많이 접했던 이재현은 그리 쉽게 기가 눌릴 인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는 대수롭지 않게 서이수에게 물었다.

“이수야, 아직도 화가 안 풀린 거야?”

“화나긴 누가 화났다고!”

응, 그렇구나. 근데 방금 짜증 난다고 하지 않았니? 이재현은 자신의 말에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것처럼 더욱더 발끈하며 성질을 내는 서이수의 모습에 바로 대꾸하지 않은 채 미소 짓다가 말을 넘겼다.

“그래도 누나가 엄청 미안한 눈치던걸.”

슬슬 대화를 다시 해 보는 게 어떠냐고 말해 보려 했으나 그 전에 서이수가 대번에 얼굴을 찌푸리며 발을 쾅! 하고 굴렸다.

“이익…!! 다들 사람이 좋아도 너무 좋은 거 아니야? 어? 왜 그렇게 쉽게 푸는 건데, 나만 좀생이야?!”

“…….”

이재현은 서이수의 말에 잠시 얼떨떨하게 눈을 떴다.

“자그마치 3주야. 3주나 개무시한 건데 화도 안 나? 난 오히려 너희들이 더 신기할 지경이다!”

서이수는 지난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서이나가 무언가에 단단히 쓰이기라도 한 것처럼 타인을 완전히 배제했던 날들은 서이수에게 알게 모르게 큰 상처로 다가왔다. 일주일 전의 아침에는 상태가 그나마 양호해 보여 용기를 내 겨우 대화를 시도해 보았건만 서이나는 이해 못 할 헛소리만 잔뜩 늘여놨다. 그에 더 부아가 치민 서이수도 결국 머리끝까지 화가 나 버리는 건 당연했다. 근데 그날 저녁에 다른 애들에게 전부 사과했다고 한다. 그것도 자신만 빼고!!

당장 같은 집 안에 있는 자신만 덩그러니 빼 두고 사과하는 게 대체 무슨 경우인가! 보통 가족부터 챙기는 게 맞는 거 아니냐고!!! 서이수는 씩씩거리며 근처에 있던 공을 있는 힘껏 차 버렸다.

쾅-!!!

세찬 울림이 다시 강당의 벽을 흔들었다.

“음….”

이재현은 공의 궤적을 따라가다 눈동자를 굴려 천장을 보았다. 무언가 곰곰이 생각에 빠진 듯한 그는 이내 불현듯 무언가를 떠올린 것처럼 그에게 말했다.

“근데 이수야. 넌 누나가 유명해지길 바란 거 아니었어?”

“뭐?”

서이수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엉뚱한 소리냐는 눈빛이 닿자 이재현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웃어 보였다.

“예전에 네가 그랬잖아. 누나는 그렇게 재능이 있으면서 왜 위를 노리지 않는지. 그건 서열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었지?”

“…….”

“어떻게 보면 이건 네가 그동안 그렇게 원하던 일, 아니야?”

그 물음에 서이수의 입이 꾹 다물렸다. 이재현은 그 얼굴을 잠자코 지켜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건… 그러니까….”

서이수는 입을 달싹였다. 어느새 내리깐 시선은 어딘가 복잡한 색을 띠고 있었다. 이재현은 그런 그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수야. 예전에 네가 그런 적 있지. 누나의 재능은 썩히기 너무 아깝다고. 그렇다면 화가 나더라도 응원해 주는 건 어떨까? 너도 계속 화를 내고 싶진 않을 거 아니야. 왜냐면 넌….”

이재현은 잠시 말을 늘이다가 온화하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누구보다 누나를 좋아하잖아?”

말이 틱틱거리고 거칠어도 서이수는 서이나를 좋아한다. 이렇게 속이 상해 있는 것도 그가 그만큼 서이나를 좋아해서였다. 서이나가 가족인 서이수보다 남을 챙긴 것. 그것은 서이수의 입장에서 확실히 서운할 만했다. 하지만 이재현은 서이나의 입장 또한 이해하고 있었다. 때로는 가족이기 때문에 잠시 뒤로 물릴 때가 있는 법이다. 바로 그 가족이 무슨 일이 있어도 제 편일 거란 믿음과 애정이 있을 때… 사람은 그런 실수를 저지른다. 이번 사과의 일도 서이수를 가장 나중으로 미룬 것도 그 탓일지 모른다. 그보다 일찍 사과를 받은 자신이야 진심 어린 사과를 해 와서 고맙긴 하나 서이수 입장에선 충분히 서운할 법도 했다.

‘휘혈이가 이수를 질투하는 것도 알 것 같단 말이지.’

반휘혈은 그 깊은 신뢰를 탐낸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이성적인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게 서이나와 서이수의 관계는 어떤 타인도 침범하지 못할 깊은 유대가 있었으니까. 반휘혈이 아닌 자신도 간혹 두 사람을 지켜 보고 있으면 부러웠고, 그런 관계가 제 곁에 있다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뭐, 이런 부분 때문에 사과를 더 빨리 받아들였다는 걸 서이수는 알까. 아무리 친해도 어찌 됐든 간에… 자신들은 남이니까. 가족이 아니고선 그런 갈등은 오래 끌어서 좋을 게 없었다.

“너도 화내고 있는 거 힘들잖아.”

그래도 이재현은 화를 낸다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기에 걱정되는 마음이 더 컸다. 또 가족이라 더 힘들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그를 설득하려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만 누나랑 대화를…,”

“…아니야.”

서이수를 타이르던 이재현이 갑자기 툭, 하고 말을 자르는 듯한 음성에 가로막혔다.

“내가 원한 건 그런 게 아니야.”

“응?”

갑작스러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자 서이수는 어딘가 심란한 낯으로 얼굴을 구기며 마른세수를 하였다.

“내가 원했던 건 그런 누나의 모습이 아니라고. 난… 난,”

그는 잠시 입을 달싹였다가 이내 입매를 굳세게 다물며 툭, 하고 복잡한 속내를 꺼내었다.

“난 누나가 좀 더 즐기기를 원했어.”

그런 건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다. 서이수는 무거워진 심장을 견디지 못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게 무슨….”

댕대래 댕댕 댕댕~.

그때 수업의 종료를 알리는 알림음이 스피커를 울렸다. 이재현은 반사적으로 말을 멈추고 눈을 깜빡였다.

“…나 먼저 간다.”

서이수는 숨을 푹 내쉬며 자신은 먼저 가겠다며 등을 돌렸다.

‘즐기기를 원했다고?’

이재현은 떠나는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바로 어제 보았던 서이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자신에게 인사하는 누나의 모습, 자신을 마주 보며 대련을 하던 누나의 모습, 그리고 대련 후에 피드백을 주고받는 시간. 이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아.”

그 모든 순간을 나열하자 이재현은 금세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굉장히 단순한 일이었으며 깊이 관찰하지 않으면 쉬이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누나, 웃었던 적이 있던가?”

어제뿐 아니라 다른 날까지, 그녀는 잠시나마 쓰게 웃은 적은 있어도… 단 한 순간도 그 안에 즐거움을 내보인 적이 없었음을 말이다.

***

“에이, 시발. 기분 더럽게.”

이재현 그 자식은 왜 그딴 걸 물어봐. 서이수는 길가의 돌멩이를 화풀이하듯 거칠게 찼다. 마지막 수업인 체육 시간이 끝나고 청소 시간이 되어 청소를 재빨리 마친 서이수는 심란한 마음에 종례도 하지 않고 학교를 나왔다. 하지만 그 기분은 쉬이 가시질 않아서 서이수는 뚱하니 얼굴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쓸데없는 걸 알아 버렸잖아.”

딱히 알고 싶지는 않았는데. 서이수는 왜 자신이 이렇게까지 더 화가 났는지 알게 되어 더 기분이 저조해졌다. 서이나가 막말한 거? 언제는 막말 안 했던가. 그리고 자신은 찬밥 신세인 거? 하루 이틀도 아니었다. 이런 일에 괜히 스트레스받을 바엔 금방 풀고 우격다짐으로 투닥거리는 게 그도 훨씬 편했다. 하지만 이번만은 그리 쉽게 넘어갈 수가 없었다.

“제대로 하기로 정했으면 그런 재미없는 얼굴이나 하지 말지.”

얼굴이 그게 뭐야? 쳇. 서이수는 혀를 강하게 찬 후에도 풀리지 않는 심기에 양쪽 입꼬리를 쭈욱 내렸다.

서이수는 알게 모르게 서이나의 훈련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당연하다. 그곳은 자신의 일터이기도 했으니까. 아빠에게 체육관 일을 배우게 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3층을 많이 드나들었다. 그러한 일과에 비롯된 일이긴 해도 혈육이 그 자리에서 열심히 훈련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면 자연히 시선이 가게 되어 있지 않은가. 서이수도 그런 이유라며 스스로에게 항변했다.

아무튼 그런 중에 마주한 서이나의 얼굴은 매사 진지했다. 진지한 건 좋은 일이다. 당연히. 하지만 그 얼굴은 자신이 평소 알던 누나가 아니었다.

‘바보같이 굳어 있고.’

융통성 없어 보이는 그 얼굴은 아빠를 꼭 닮아선….

‘왠지 그러면…, 그러면….’

걷고 있던 서이수는 그 자리에 멈춰 서, 고개를 푹 숙였다.

언젠가 그는 서이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누난…! 대체 왜 안 하는 건데! 나한텐 없는 재능을 누나는 가졌잖아!!’

그때는 한창 거칠었으며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발버둥을 치던 때였고, 저와는 다른, 넘어설 수 없는 서이나의 재능에 질투로 미쳐 있을 때였다.

‘…넌 몰라, 서이수.’

그리고 서이나는 그때도 뜻 모를 말을 했었다. 하지만 왜일까.

‘난… 그 길을 가기엔 적합하지 않아.’

그러고 마치 고통스러운 걸 억지로 삼켜 낸 것처럼 슬프게 웃음을 그렸던 것도.

‘그리고 난 내가 어떻게 될지 너무 잘 알거든.’

그 길을 걷는 자신의 미래를 내다본 것처럼 단호하게 선을 긋던 모습도.

‘난 지금이 좋아, …이수야.’

모든 걸 털어 낸 것처럼 후련히 웃던 그 모습의 이유를… 기분 나쁘게도 짐작이 갈 것만 같았다.

“으…, 아, 진짜 짜증 나게!!”

하지만 그에게 있어 그 사실이 더 불쾌한 기분을 자아냈다. 그래서 서이수는 그 짜증 나는 기분을 떨치고자 머리를 거세게 헝클였다. 그 기분은 쉬이 떨쳐낼 수 없었고 그의 얼굴이 다시금 험악해졌다.

“하여간 누나 새끼는 사람 번거롭게 만드는 데 선수야, 선수.”

울컥울컥 치솟는 이유 모를 감정에 서이수는 괜한 불똥을 서이나에게 튀었다. 그는 투덜거리는 입을 멈추지 않고 서이나의 뒷담을 깠다.

“하여간 그 밉상을 또 봐야 하다니. 나도 참 운도 지지리 없지, 그딴 인간을 왜 다들 좋아하는 건데?”

흥이다, 흥. 하고 서이수가 코웃음을 치며 골목의 코너를 막 돌던 참이었다.

퍽-!!

“억!!”

“꺄아…!!”

제 몸에 갑자기 무언가가 강하게 돌진해 왔다. 그것을 채 피하지 못한 서이수는 그대로 부딪혀 몸을 휘청였다.

“뭐, 뭐야. 응?”

“으아, 죄, 죄송…, 근데 제가 바빠서 정말 죄송합니다-!”

부딪힌 소녀는 무언가 급박한 듯 말을 놀렸다. 그런데 그 행색이 불안해 보이는 것이 연신 뒤를 보며 발을 굴리고 있었다. 그러곤 그녀가 성급히 발을 떼려는데,

“야, 주연희. 너 왜 그러냐?”

서이수가 그 어깨를 붙잡아 막았다. 자신을 부르는 그 소리에 고개를 퍼뜩 든 주연희는 자신이 부딪힌 이를 바라보며 눈을 홉떴다.

“어, 이, 이수??”

“어. 무슨 일인데 그렇게 당황해.”

서이수는 의아한 듯 주연희를 보았다. 그러나 주연희는 반가운 것도 잠시 이내 낯을 굳히며 그 팔을 붙잡았다.

“이, 이수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나, 얼른…!”

“아, 저깄다!!!”

주연희는 뒤에서 들려오는 남성의 목소리에 낯을 희게 질렸다. 서이수는 그제야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감을 느끼고 눈살을 찌푸리려는데,

“……?!”

“허, 씨발. 이게 누구야.”

곧이어 나타난 이에 서이수는 낯을 굳히고 말았다.

“이거 그 도방중 따까리 새끼, 그거 아냐?”

다름 아니라 그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건 태산고 일짱이었던 강태석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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