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 인소의 사건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3)
“…강태석?”
저 새끼가 왜 여기에… 아니, 왜 주연희를 뒤쫓고 있는 거야? 서이수는 당혹스러운 조우에 얼굴을 굳혔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간다는 것만은 확실해 서이수는 주연희를 잡아당겨 제 몸으로 그녀를 가렸다.
“꼴에 왕자님 노릇이라도 하게? 병신. 카악- 퉤!”
강태석이 침을 뱉으며 이죽거렸다. 더러운 가래가 바닥에 튀자 서이수는 반사적으로 눈살을 찌푸린 채 주연희에게 속삭였다.
“야, 뭔데 저 새끼가 널 쫓아와? 너 빚이라도 졌냐?”
딱 보아하니 강태석은 무슨 조폭이라도 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원래부터 생김새부터나 행실 자체가 깡패 같은 새끼였지만 지금은 정말 영락없는 조폭 새끼였다. 보통 조폭이 약한 여자애를 데려가려는 이유는 대부분 하나 아니던가. 바로 빚 독촉 말이다.
“아, 아냐! 난 그냥 집에 가던 길이었는데 저 사람들이 날 끌고 가려 한 거야…!”
그러나 주연희는 바로 부정했다. 그 말은 한 치의 거짓이 없는 진실이었다. 주연희는 집안 사정으로 야자를 잘 안 하는 편이었고, 그 시간에 삼촌의 가게를 도와주고 있었다. 왕따 사건 이후로 완전히 굳은 일정이었다. 어차피 학교에 있어 봤자 숨만 막혔기에 종례가 끝나자마자 바로 학교를 나온 그녀는 곧장 집에 들러 환복한 후 가게로 향할 참이었다.
학교를 나서고 얼마 안 있어 만난 게 저 이름 모를 깡패들이었다. 처음엔 그냥 조폭이 학교 앞에 진을 치고 있기에 엮이기 싫은 마음에 조용히 지나가려고 했다.
‘어, 야, 잠깐만. 쟤가 걔 아니냐?’
그런데 불길한 소리가 그녀의 귀를 강타했다. 처음엔 우연이라고 넘겼다. 다른 이를 가리킨 것일 수도 있다.
‘아, 맞네, 맞아.’
‘어이, 거기, 거 학생. 잠깐 일로 와 봐.’
하지만 그 거리의 길목에 있는 것은 주연희 혼자뿐이었다. 주연희는 깡패들이 성큼 다가오며 하는 손짓에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꼈다. 삼촌이 저 몰래 빚이라도 진 건가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으나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은 저 사람들에게 붙잡히면 안 된다!
그 순간적인 판단에 주연희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바로 뛰었다. 체육 대회 경기에서 서이나보다 느린 달리기 실력이었지만 그녀 또한 대표로 뽑힐 정도로 빠른 이였다. 도박 같은 심정이었으나 주연희는 골목 여기저기를 돌아 깡패들을 따돌리려 했다.
‘아, 씨발! 존나 잽싸네!!’
‘야, 오른쪽! 오른쪽!!’
하지만 그들은 예상외로 꽤나 끈질겼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사람이 많은 대로변으로 바로 가는 건데! 주연희는 가까이 다가오는 인기척이 두려워 미칠 것만 같았다.
대체 왜 쫓아오는 건데!!
이유 모를 공포에 그녀는 당장이라도 울고 싶었다. 점점 숨이 차 오고 다리가 떨려 왔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주연희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이를 악물며 코너를 돌았다.
퍽-!!
‘억!!’
‘꺄아…!!’
그렇게 그녀는 서이수와 부딪혔고 현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나 진짜 몰라, 진짜 모른단 말이야…!”
주연희는 울먹거리며 서이수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지금 자신을 도와줄 건 그밖에 없었다. 도와줄 사람의 등장은 반가웠지만 서이수 한 명으론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 또한 있었기에 그녀는 서이수의 옷을 잡아당기며 빨리 도망가자고 무언으로 재촉했다.
“…….”
서이수는 그녀의 사인을 알아차렸지만 주연희의 뜻대로 움직일 순 없었다. 왜냐하면 주연희가 제대로 뛸 여유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방금까지는 어떻게 잘 뛴 듯싶었지만 잠시 멈춘 탓인지 몸이 잔뜩 후들거리고 있었다. 이 상태로는 바로 덜미가 잡히기 쉬웠다.
“왜 쫄았냐, 새꺄? 이전처럼 무슨 발악이라도 해 보지? 존나 밟아 죽이고 싶게.”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갈지 그려 보던 서이수는 강태석의 도발에 눈썹을 싸늘히 굳혔다. 저 새끼는 언제 봐도 존나 짜증 난다니까.
‘…에이, 씨발.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당장 벗어날 방도도 없다. 서이수는 숨을 깊게 내쉰 후 고개를 바로 들고 강태석을 향해 당당한 웃음을 그려 주었다.
“아니? 안 본 사이에 더 돼지가 돼서 존나 신기해서 좀 봤다, 돼지 새꺄.”
“뭐?”
“이, 이수야??”
갑작스러운 서이수의 날이 선 대꾸에 주연희가 굳어 버렸다. 그녀의 시선이 불안한 듯 그를 보았다가 강태석을 향했다. 강태석의 얼굴은 종잇장이 구겨진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넌 존나 배알도 없나 봐? 여기가 어디라고 잘도 기어들어오냐. 그렇게 처발려 놓고 쪽-팔리지도 않냐? 병신아.”
서이수는 떠올렸다. 그간 한도훈에게 보았던 그 재수 없던 나날들을. 그 보기만 해도 화병 치미는 한도훈의 표정들을! 그 짜증 났던 나날들을 상기하며 서이수는 강태석을 향해 한껏 빈정거렸다.
“나라면 이쪽으론 고개도 못 들고 다녔다, 돼지 새꺄.”
한쪽 눈썹을 숙이고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올리는 그의 이죽거림에 강태석의 낯이 대번에 구겨지며 붉으락푸르락 색이 변해 갔다.
“이, 이 개새끼가-!!!”
결국 성질을 못 이긴 강태석이 주먹을 갈겼다. 육중한 몸에서 우러나오는 묵직한 힘이 여실히 전해졌다. 그러나 서이수는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돌연 눈을 빛내며 그 품에 파고들었다.
“병-신.”
“?!”
빡-!!!! 한순간에 강태석의 사각에 파고든 서이수는 그대로 주먹을 날렸다. 정확히 주먹이 턱에 꽂혔고 강태석의 몸은 크게 휘청였다. 서이수는 지체치 않고 그대로 그 몸을 발로 차 힘껏 날렸다.
“크윽-!!!”
“혀, 형님-!!”
“저, 저 새끼 뭐야?!”
커다란 몸이 바닥에 우당탕 쓰러지자 강태석의 일행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서이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곧장 주연희의 손목을 잡아챘다.
“튀어-!!”
“어? 어, 어!!”
주연희는 갑작스럽게 훅 당기는 힘에 당황하며 끌려갔으나, 이내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곤 그의 발에 맞춰 급히 뛰기 시작했다.
“으, …뭘 병신같이 서 있어! 저 새끼들 잡아-!!!”
오래지 않아 정신을 차린 강태석이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서이수는 혀를 가볍게 찼다. 역시 쉽게 안 쓰러지네, 저 돼지 새끼. 하여간 맷집은 존나 좋아. 옆에 다른 놈들이면 기절했을 타격이었으나 나이 처먹고 맷집이 더 강해졌는지 금세 정신을 차렸다. 이전이라면 좀 더 시간을 끌었을 텐데. 서이수는 이곳과 경찰서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체육관이 더 빠르겠다.’
이곳에서부터 경찰서와의 거리는 적어도 10분 정도 더 되었다. 자신만 홀로 뛰었다면 해 볼 만도 했지만 경찰서에 도착하기 전에 주연희가 지쳐서 쓰러지든가 저들에게 잡힐 것만 같았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강태석은 위험하다. 특히나 주연희가 딸려 있으면 발목이 잡힐 확률이 더 컸다. 그러니 차라리 안전한 곳을 더 빨리 찾아가는 게 급선무였다.
하여간 꼭 이렇게 급박할 땐 택시도 하나 지나가지 않는다니까.
서이수는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그래도 체육관에는 아빠와 누나가 있을 터였다. 아마 누나의 훈련을 도와준다며 반휘혈도 있을지 모르고 말이다. 오늘 학교에 안 나온 듯싶었으니 거의 확실하겠지.
아직 서이나와 대화할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지만 상황이 좋질 않았다. 우선 이 상황부터 모면해야만 했다. 다름 아닌 그 인간들의 실력만은 확실하니까. 서이수는 그리 생각하며 점차 느려지는 주연희를 힘으로 잡아끌며 발을 놀리게 만들었다.
“야, 조금만 더 뛰면 우리 체육관이니까… 으왓!”
그러나 막 횡단보도를 건너기 직전 차량 하나가 지나가 그의 발을 멈추게 했다. 서이수는 낭패감에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지나가는 차량으로 인해 도망칠 길이 마땅치 않았다. 그는 얼굴을 굳히며 타이밍을 봐서 그냥 횡단보도를 건너려 하는 그때,
“잡았다!!”
“꺄아-!!”
주연희의 어깨가 깡패 한 놈에게 붙잡혔다. 벌써 따라잡았다고? 서이수는 예상보다 빨리 잡혀 당혹스러웠지만 금세 냉정을 되찾곤 주연희를 다시 제 쪽으로 당기려는데,
“이거… 놔-!!!”
퍽!!
“커흑….”
둔탁한 타격음과 동시에 깡패가 쓰러졌다. 서이수는 얼떨떨한 눈으로 쓰러진 깡패를 보았다. 그는 자신의 하체 중심부를 붙잡고 파들거리며 떨고 있었다.
“너…?”
서이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를 보다가 주연희를 보았다. 그러자 주연희는 뿌듯한 것처럼 허리에 양손을 댄 채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후훗. 네가 전에 알려 준 앞차기, 동생 상대로 틈틈이 연습했다고!”
그렇다. 그녀가 남자를 쓰러트린 기술은 일명 낭심 차기로 일전에 서이수가 알려 준 호신술이었다.
‘이렇게 발을 위로 들어 올리는 게 아니라 이렇게 무조건 앞으로 강하게 차 버려야 해, 거기를 터트릴 기세로. 알았지? 자비는 그 순간엔 버려!! 잡히면 네가 죽는다는 생각으로 차. 그리고 들어 올려서 차면 빗나갈 수도 있고 상대가 피하기도 쉬워. 앞으로 차야 기습도 성공적이니까.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연습해.’
아까는 다수여서 써먹을 수 없었지만 주연희는 체육 대회 이후로 날마다 동생을 상대로 연습했다. 그리고 오늘 그것이 빛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훗, 녀석. 서이수는 괜히 뿌듯한 마음에 손가락으로 코를 문질렀다. 누가 키웠는지 몰라도 아주 훌륭한 기습이었다. 서이수는 잘했다는 의미로 주연희의 어깨를 두드려 주곤 한적해진 도로를 가리켰다.
“잘했어, 잘했어. 앞으로 계속 그렇게만 해. 얼른 가자.”
“응!”
깡패 한 놈을 쓰러트린 게 그렇게 신이 났는지 그녀의 낯에 방실방실한 미소가 해사하게 피어났다. 뒤쪽에서 뒤늦게 쫓아오는 느려 터진 두 사람이 보였지만 이 정도 거리라면 충분히 따돌릴 법했다. 서이수는 그 사실에 안도하며 주연희를 돌아본 채 어느 한 골목을 가리켰다.
“거의 다 왔어. 그러니까 조금만 더….”
“…이수야, 앞!!”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위로해 주려던 서이수는 난데없는 주연희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황급히 발을 멈춰 세웠다. 앞? 앞에 뭐가….
“…어?”
그리고 그는 눈앞에 있는 것을 마주하곤 망연한 탄성을 저도 모르게 흘렸다.
“하아, 하아. 하마터면 부딪힐 뻔했잖아. 괜찮으세요?”
그러나 뛰느라 정신이 없던 주연희는 그의 반응을 살피질 못하고 앞으로 다가갔다. 그들의 앞에 선 이는 말없이 묵묵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와.
주연희는 그 얼굴을 마주하곤 조용히 탄성을 내뱉었다. 흔치 않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뿜어내는 미남이었다. 검은 머리였으나 한국인같지 않은 외향이었다.
하지만 그의 외모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였다. 아까부터 말없이 저희를 빤히 보는 것이 의아했다. 혹여 저희가 달려들어 불만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 주연희는 그에게 사과하려 다가갔다.
텁-.
“응?”
하나 주연희는 더 앞으로 가지 못하고 발을 멈춰 세웠다. 갑자기 서이수가 제 팔을 잡은 탓이었다. 왜 자신을 붙잡았는지 모르는 주연희는 의아하게 서이수를 돌아봤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돌아봤던 것과 달리 어딘가 사색이 된 듯한 그를 발견하곤 그녀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어… 왜 그래, 이수야?”
“…….”
말없이 자신을 붙잡는 서이수의 행동에 불안해진 주연희가 그를 불렀다. 그러나 서이수는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눈앞에 있는 이만 직시하고 있었다. 그 반응이 답답해진 주연희가 재차 그의 팔을 당기며 그를 부르려던 찰나였다.
“눈치를 보아 하니 저를 아는가 보군요. 서이수 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