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 폭풍전야 (2)
***
안경희에게 서이수의 행방을 부탁한 지 10분이나 흘렀을까, 곧 그녀에게서 동생을 납치한 이에 대한 정보를 알아냈다.
‘뭐? 누구라고?’
그리고 난 그 정보를 듣자마자 귀를 의심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으응. 김율. 김율이 이수를 데려간 거 같아.]
‘…김율이라면, 내가 아는 그 김율?’
[응.]
믿을 수 없어 재차 확인하자 단호한 확답만이 돌아왔다.
[검은 머리긴 했지만 얼굴 확대하고 대조해 보니까 김율이 확실했어.]
“…….”
이후 장소가 정확히 특정이 될 때까지 모여서 잠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고찬영의 의견에 나는 체육관 한쪽에 앉아 나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김율, 김율이란 말이지. 난 심란한 마음에 얼굴을 굳혔다.
‘…범인은 정태이였던 건가.’
내 예측이 빗나갔던 걸까. 하지만 그녀가 왜 내 동생과 주연희를 납치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에겐 그럴 만한 마땅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 문자는 내가 봤던 그 정태이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설마 날 자극하기 위해서?’
…만약 그렇다면 조금, 아니 많이 실망스러운데. 이런 방식은 정태이보다는 그… 백장미와 어울리지 않던가.
‘……음?’
어, 잠깐. 내가 뭐 하나 놓친 기분이 드는데. 뭐였지.
“누나~, 저 애들한테 연락 다 돌렸어요! 애들이 다 도와주러 오겠대요!”
“어, 아, 응. …응?”
나는 잡힐 듯 말 듯 한 무언가에 이맛살을 구기다가 이윤의 말에 고개를 퍼뜩 들었다. …전부 다?
“그럼 최강혁도?”
“네!”
그 지독한 마이웨이 자식이 웬일이지? 무슨 연유로 협조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로써 이게 진짜 메인 하이라이트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근데 왜 정태이가….”
그 와중에 역시 이해 안 되는 사실 하나. 왜 정태이는 이런 쓸데없는 현장에 끼어든 걸까. 그리고 왜 타깃이 나인 걸까. 아니, 다음을 기약했으니 말이 아주 안 되는 것도 아니긴 하다만… 하지만, 정태이는…. 생각할수록 뇌가 꼬이는 기분에 나는 머리를 붙잡고 신음을 흘렸다.
“으, 진짜 뭐가 뭔지 모르겠네.”
난 당연히 일진 아무개들이나 백장미의 소행일 거라고만 생각했지, 정태이가 연관되었을 거라곤 생각을 전혀 못 했다. 진짜 복잡하다.
“근데 왜 깡패들이 이수랑 연희라는 애 납치한 거예요?”
“나도 몰…, 응? 깡패?”
“아, 그러고 보니 정태이랑 김율이 조폭이었지? 이름이 흑룡파라고 했던가.”
조용히 내 곁을 지키고 있던 고찬영이 이윤의 말을 듣고 막 생각난 것처럼 대꾸했다.
‘……흑룡파, 흑룡파.’
조폭, 조직, 깡패… 깡패…?
“어!”
번뜩, 그 단어에 나는 그간 잊고 있던 일을 떠올렸다.
“음? 친구님, 뭐 생각난 거 있어?”
“어어. 잠깐만.”
고찬영의 물음에 나는 손을 내저으며 대답을 미뤘다. 그러곤 심각히 얼굴을 굳히며 생각했다. 분명 백장미와 조폭이랑 연관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주연희 왕따 사건과 관계가 있었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백장미에 대한 조사를 하던 한도훈이 납치 소식을 내게서 듣곤 어딘가 석연찮은 반응을 했던 게 떠올랐다.
‘…납치했다고요? 김율이?’
그런 후 잠시 침묵. 할 말을 잃은 듯했던 그는 돌연 짜증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 젠장. 어쩐지 이상하더니.’
한도훈은 그 말을 내뱉고는 잠시만 기다리라고 해 놓고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러곤 지금껏 연락이 없었다.
“휘혈아, 도훈이 이 자식은 왜 자기만 아는 걸까.”
“몰라.”
내 옆에 붙어 앉아 있던 또 다른 녀석, 반휘혈은 곧장 대답했다. 대답이 빠른 건 좋았지만 내용은 쓸모없었기에 나는 떨떠름히 얼굴을 구겼다.
“넌 대체 도훈이랑 무슨 세월을 보낸 거니.”
“몰라.”
“…….”
진짜 한도훈이 불쌍하다. 이렇게 무심한 놈을 뭐가 좋다고 따라다닌 걸까. 그 자존심 센 놈이 용케 떨어지지 않고 붙어 다녔다.
‘……남 말할 처지는 아닌가.’
나 또한 이 자식과 질긴 인연을 유지하고 있던 걸 생각하면 한도훈을 탓할 일도 못 되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할 때 계단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울렸다.
벌컥-!
“하아, 하아, 누나, 이, 이수, 하아, 납치됐다고요??”
이재현이었다. 그는 굉장히 놀란 모양인지 사색이 된 채였다. 아무래도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달려온 듯한 모양새였다. …근데 쟤는 내가 부르지 않았는데?
“…재현이 부른 거 누구냐.”
“응? 나.”
왜 불러, 이 새꺄!! 나는 당당히 손을 드는 고찬영의 모습에 이재현 몰래 옆구리를 강하게 꼬집었다.
“-!!!!”
가까이 있던 터라 기습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고찬영은 허리를 숙인 채 제 옆구리를 붙잡고 잠시간 떨고 있어야만 했다.
“음, 재현아. 별일은 아니고 그냥 이상한 놈들이 해코지하는 거야. 얘네들… 아니,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서 공부해.”
시기상으로 기말고사가 코앞인 만큼 이재현은 이런 상황에 휩쓸리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연희도 납치됐다고… 그럼 심각한 거 아니에요?”
너 이 새끼. 나는 고찬영을 다시 노려봤다. 어느샌가 고찬영은 슬쩍 내게서 거리를 벌린 채였다. 젠장, 이러면 몰래 꼬집지도 못하는데. 나는 두고 보자는 다짐을 새기며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에이, 괜찮아, 괜찮아. 그리고 얘네들도 도와준다는데 큰일이야 나겠어.”
내가 반휘혈과 고찬영, 김시원, 이윤을 순서대로 짚으며 강조했다. 이재현도 인선이 인선인 만큼 점점 안도가 되기 시작했던 모양인지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행…,”
“다행은 개뿔. 뭐가 다행이야?”
…이 목소리는?
타이밍 좋게 초를 치며 나타나는 익숙한 음성에 나는 억지로 끌어 올렸던 미소가 쩌적, 하고 굳어졌다.
“어, 도훈아!”
“비켜. 문 가로막지 말고.”
이재현이 뒤를 돌아보곤 반색하며 외쳤다. 그러자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한도훈은 시큰둥하게 이재현을 손으로 치우며 안으로 들어섰다.
“아, 미안. 근데 너 너무 오랜만인 것 같은데. 잘 지냈어?”
“이 꼴이 잘 지낸 걸로 보여?”
툭툭, 내뱉는 말 하나하나가 신경질적이었다. 그의 말대로 그는 그간 잘 지내진 못했던 모양인지 굉장히 예민해 보였다. 어쩐지 살도 좀 빠진 것 같아 보였다.
“아무튼… 누, 그엑.”
“도훈이, 안녕-!!!”
“아, 씨발.”
한도훈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이윤을 발견하곤 얼굴을 와락 구겼다. 그에 반해 이윤은 굉장히 반가운 기색이었으나 한도훈은 혐오로 얼룩진 낯을 지우지 못하고 험악하게 말했다.
“꺼져, 이윤.”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인간을 마주하면 저런 표정이 될까, 싶을 정도로 인상이 험악했다. 아무래도 진짜 컨디션이 별로인가 보다. 덕분에 평소엔 나름 표정 관리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흐엥. 그렇게까지 볼 필요는 없잖아. 나 상처받았어어….”
이윤을 상처 입히는 데 성공한 한도훈은 일말의 유감없이 그를 무시하고 척척 내게로 다가왔다.
“누우~나~! 저 요즘 너무 바쁘고 졸리고 힘들었어요~! 히잉….”
그러곤 내 앞으로 털썩 주저앉고는 내 다리를 붙잡은 채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어, 그래….”
“이제 좀 살맛 나는 거 같아요. 흑흑, 그동안 휘혈이랑 누나 얼굴도 못 보고 이게 뭐람.”
“어….”
그런데 그 보고 싶다던 반휘혈의 시선이 굉장히 매서워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니. 도훈아. 심각해야 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도훈의 차별적인 언사와 행동에 나는 어찌 반응해야 될지 몰라 떨떠름해졌다.
“가관이군.”
“하하, 진짜 웃긴 놈이네”
그런 한도훈을 김시원과 고찬영이 차갑게 평했다. 하지만 한도훈은 그쪽으론 일절 보지 않고 히잉, 해 대며 되도 않는 어리광을 이어 갔다.
“잠도 제대로 못 자서 얼굴 푸석해진 것 좀 보세요. 제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아세요? 네?”
“그래, 수고 많았다….”
너, 내 동생 납치된 거 알고 있지? 네 친구기도 하다…? 분위기의 심각성이 한순간에 이 녀석으로 인해 와해됐다. 굉장히 기분이 묘했지만 정말 고생은 한 것 같아 보여 나는 성의는 없을지라도 머리를 대충 쓰다듬어 줬다. 그러자 한도훈이 헤실 웃어 보이더니 더 칭찬해 달란 것처럼 눈을 반짝였다.
“어, 그래. 장하고 고생 많았다.”
“근데 도훈아, 방금 그거 무슨 소리야?”
설렁설렁 칭찬하고 있자 불쑥 이재현이 끼어들며 물었다.
“다행은 개뿔이라고 했잖아. 상황이 안 좋은 거야?”
“아.”
나는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멈췄다. 그러곤 뒤늦게 이 녀석이 여기까지 온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잠시 기다리라더니 직접 말하려고 했던 건가. 어, 잠깐. 재현이가 있는 곳에서 하는 건 좀…!
“아, 그렇지.”
“야, 잠깐…!”
한도훈 이 자식은 이럴 땐 내 반응을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 주섬주섬 들고 있던 노트북을 내 무릎 위로 올리더니 전원을 켜곤 무언가를 보여 줬다.
“여기 초록 파랑 빨강 루트 보이시죠? 이게 걔네들이 납치된 유력 후보 차량들 이동 경로예요.”
“…차량?”
생각지 못한 단어에 이재현이 흠칫 굳었다. 나는 낭패감에 한도훈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야! 왜 때려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한도훈은 맞은 게 억울했던지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쳤다.
“입을 잘못 놀린 죄.”
이재현을 잘 구슬려서 다시 안전히 보내려 했던 계획이 틀어졌다. 이재현이 인상을 굳히며 나를 뚫어져라 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슬며시 그 눈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아니, 위험하니까… 휘말리면 걱정이라….”
“? 저는요?”
“넌 알아서 잘 살아남잖아.”
“왜 쟤만 차별하는 건데요?!”
대놓고 하는 차별에 한도훈이 씩씩거리며 항의했다. 뭐, 왜, 뭐. 우리 재현이는 위험한 덴 안 어울리는 걸 어떡해! 라고 바로 대꾸해 주고 싶었으나 정보를 쥐고 있는 놈이 이 자식이라 기분 상해서 가 버리면 큰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알겠다고 미안하다고 즉각 사과하며 정보를 더 요구했다.
“우우, 진짜 너무하다니까. …아무튼, 차량은 총 세 대. 사진상으로 두 사람이 같이 있었으니까 아마 차량 한 대로 이동했을 거예요. 두 사람을 태운 영상은 발견 못 했어요. 아마 CCTV가 없는 곳을 노려서 태운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 여기 도로에서 각 차량이 흩어졌고, 멈춘 곳은 여기, 여기, 여기.”
한도훈은 손가락으로 툭, 툭, 툭 장소를 지목했다. 하지만 차량의 루트를 표시한 선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 있었다.
“차량들은 약 10분간 이곳에 정차되어 있었어요. 사진을 찍은 후 누나한테 보낸 타이밍도 그쯤이고요. 그 후 차량들은 이동 중이고… 아, 여기 움직이는 거 보이시죠?”
“어, 응. …응?”
이거… 실황이었어?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그를 보자 한도훈은 당연하단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경희 누나랑 저희 정보 팀이 열심히 추적하고 있으니까요.”
아, 그래. 나는 더 깊이 파고들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건 별로 필요 없고요. 중요한 건 방금 제가 알려 준 곳들이에요.”
그러고 한도훈은 다시 방금 제가 짚은 곳을 다시 강조했다.
“아마 걔넨 이 셋 중 하나에 있겠죠.”
“이유는?”
잠자코 듣던 고찬영이 이유를 물었다. 한도훈의 시선이 불쾌한 듯 살짝 가늘어졌지만 나 또한 그 대답을 재촉했다. 그러자 한도훈은 고찬영을 투명인간 취급하듯 시선을 돌리곤 나를 똑바로 보며 대답했다.
“그야 백여우잖아요? 그 녀석이라면 이렇게 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