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76화 (276/306)

276. 폭풍전야 (3)

“!”

백여우. 그 별명은 분명….

“백여우가 누구야?”

“글쎄요?”

고찬영이 누군지 몰라 다른 이들에게 물어보자 이재현도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윤도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나는 한도훈이 이전에 그 별명을 부르며 욕을 하던 이를 기억했다.

“네 말뜻은즉, 백장미 소행이란 거지?”

나는 한도훈에게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묻자 반응은 다른 곳에서 튀어나왔다.

“어?! 장미 누나??”

“백장미는 또 누구야?”

“어, 그 청려 고등학교에서 유명한 여학생이라고 해야 될까…. 백화 재단의….”

모르는 게 많은 고찬영은 이번에도 불쑥 물었고 이재현이 바로 설명해 줬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을 모른 척하며 한도훈의 말을 재촉하려는데 이윤이 당황한 얼굴로 재차 끼어들었다.

“장미 누나가 여기서 왜 나와?? 응???”

하나 한도훈은 그런 그의 얼굴을 멀찌감치 한 손으로 밀어 버리곤 말끔히 무시한 채 내 쪽을 보며 말을 이어 갔다.

“아무튼 그래서…,”

“도훈아~!! 말 좀 해 줘!!”

“그러니까…,”

“장미 누나가 왜~, 무슨 일인데!!”

“…….”

나는 보았다. 한도훈의 시선이 제 노트북으로 향하는 것을. 더불어 그것을 잡고 있는 한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 것을. 마치 그걸로 당장이라도 쥐어패고 싶단 것 같은 강한 살의에 나는 조용히 잘게 떨려 오는 노트북을 한 손으로 붙잡은 채 이윤에게 말했다.

“윤아, 그건 나중에 사건 해결하고 묻자. 거기 둘도 지방방송 끄고.”

“흐잉…. 궁금한데에….”

“네~.”

“네.”

이윤은 입을 삐죽인 채 울상을 지었고, 고찬영과 이재현은 내 경고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곧장 입을 다물었다. 덕분에 한도훈의 이마에 선 핏대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하자 그는 숨을 깊게 내쉰 후 다시 이야기를 진행했다.

“…아무튼, 그래서 백여우라면 지금 이동하고 있을 리 없다는 거죠.”

“왜?”

“누나 메시지로 ‘늦으면 늦을수록 네 동생은 어떻게 될까.’라고 했었죠?”

“응.”

고개를 끄덕이자 한도훈은 그 부분이라고 말하면서 시큰둥하게 덧붙였다.

“수모를 당하게 하려면 움직인 채론 힘드니까요. 또 혹시 모르니 저희 인력도 이 차량들을 따라가게 만들었으니까 너무 걱정 마시고요.”

……수모. 나는 불현듯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정태이가 주범이라고 들었을 때랑은 차원이 다른 불길함이었다.

‘아니, 그리고 또 문제는….’

“잠깐. 그러면 그 백장미라는 사람이랑 정태우가 한편을 먹었다는 건가?”

그때 불쑥 고찬영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끼어들었고, 그것은 마침 내가 생각했던 내용과 같았다.

“김율이 데려갔으니 그러겠지.”

한도훈은 그 질문에 시큰둥히 대답했다. 그러곤 인상을 살풋 찡그리더니 신경질적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씨이발, 지차용이 아니라 정태우라니. 잔머리 존나 잘 굴러간다니까? 하하.”

감히 날 가지고 놀아? 라는 분위기가 팍팍 느껴졌다. …그런데 지차용은 또 누굴까. 어쩐지 이 한 달 사이, 내가 모르는 한도훈과 백장미의 보이지 않는 싸움을 엿본 기분이었다.

[P.S. 너의 유능한 조력자가 얼마나 빨리 찾을지 기대되네.]

……역시 그건 한도훈을 겨냥한 거였나.

나는 눈을 흐리며 실성한 듯 웃고 있는 한도훈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눈 밑이 퀭한 게 잠을 꽤 못 잔 듯싶었다.

“…너 요즘 몇 시간 잤냐.”

“흐후흐…, 잠이요?”

문득 걱정이 된 나머지 나도 모르게 툭, 묻자 한도훈이 내 질문에 잠시 웃는 걸 멈췄다. 그러곤 그는 몇 시간을 잤는지 가늠하는 것처럼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다섯 시간?”

오, 그래도 많이 잤…,

“이번 주는 아마 그 정도?”

“……??”

뭐?

“이번 주에… 겨우 총 다섯…????”

“뭐,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고요.”

야이…!! 그게 왜 중요한 게 아닌데! 어쩐지 평소보다 많이 예민하더라. 얜 대체 한 달 동안 뭘 한 거야?! 경악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지 반휘혈을 제외한 모두가 홉뜬 눈이 되어 있었다.

“도, 도훈이 진짜 짱이당….”

그리고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이윤이 얼굴을 상기시키며 눈을 반짝였다. 멋지다고? 저게? 대체 무슨 이유로??

“누나를 위해서 그 정도까지 하는 거야? 너 너무 대단하다…! 난 9시만 되면 잠 오는데!”

…이윤은 아기였나? 갑자기 유독 그의 분홍색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나도 일찍 잠이 드는 편이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쟤는 한도훈한테 모진 말만 듣는데 참 반죽이 좋았다. 욕을 그렇게 대놓고 하는 것도 모자라 싫어하는 걸 넘어 혐오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다가오는 걸 보면 한도훈을 꽤나 좋아하는 듯싶은데…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걸까. …어쩌면 이윤은 자기 긍정과 멘탈이 엄청 강한 걸지도 모른다.

“하, 나는 원래 대단했어.”

이윤의 칭찬에 이번만은 한도훈도 무시하지 않았다. 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굉장한 놈. 그쪽 방면으론 이윤 못지않게 저 자식도 참 굉장한 놈이었다. 나는 두 사람을 보며 속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어쨌든 이번엔 좀 변수가 있었지만 괜찮아요. 설마 정태우에게 접선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지만 움직이는 인원은 어차피 거기서 거기니까요. 거기에 정태우랑 김율만…! 움직였을 뿐이에요.”

그런데 괜찮다고 하는 놈 얼굴치곤 꽤나 험악했다. 굉장히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처럼 보이는 건 대체 왤까. 하나 난 굳이 건드는 눈치 없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그 지차용이란 사람이랑 정태이는 대체 무슨 관계일까. 문득 궁금증이 올라왔지만 우선은 서이수의 행방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자세한 상황은 나중으로 미루고 한도훈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수는 이 세 곳 중에서 어디에 있는데?”

“아, 그거 말이죠.”

그러자 한도훈은 툭, 하고 대답을 내놓았다.

“몰라요. 그래서 세 곳 다 가 봐야 해요.”

“…뭐?”

금방 찾을 줄 알았는데?!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입을 벌리고 있자 한도훈이 그런 내 얼굴을 보곤 항변하듯 말을 이었다.

“거기에도 미리 인력 배치해서 빠르게 확인은 했는데… 급하다 보니 소수만 보내서요. 전부 다 깡패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도 모자라 상황을 살펴볼 만한 CCTV도 주변에 없어서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구요. …제가 이렇게 나올 줄 미리 눈치 깐 거겠죠.”

하여간 재수 없다고 중얼거리는 한도훈의 얼굴은 굉장히 짜증스럽고 혐오스러워 보였다. 저런 걸 보고 동족 혐오라고 하는 건가. 나는 이번에도 속내를 꾹꾹 누르며 그에게 말했다.

“그럼 각각 흩어져서 찾아야 한다는 뜻이네.”

“네, 근데 저희 쪽 사설 경비가 움직이면 백여우가 알아차려서 선뜻 움직이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아마 소수 정예로만 움직여야 될 텐데… 어떻게 하실래요.”

한도훈은 두 가지의 선택지를 내놓았다.

1. 다 같이 움직여서 한 곳씩 찾는다. 단,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됨. 백장미가 가장 바라는 일.

2. 소수라도 각각 흩어져서 찾는다. 단, 전력이 밀릴 수도 있음. 위험한 상황 초래 가능. 이 또한 백장미가 바라는 일.

총체적 난국이군. 이 선택지를 본 이재현의 얼굴이 불안한 듯 가라앉으며 내 눈치를 살폈다. 점점 창백해지는 그 낯을 물끄러미 보다 나는 입을 열었다.

“윤아, 방금 다른 애들도 도와준댔지?”

“네? 넹. 애들도 도와준댔어요!”

“도와준다고?”

그 와중에 이 소식을 듣지 못했던 한도훈과 이재현이 의아한 듯 보자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그럼 쟤네 팀이 한 곳 맡고 우리끼리 흩어지자.”

마침 인원도 3명씩 흩어지기에 딱 좋았다. 소수지만 두 명씩 보내는 것보단 나았다. …이재현이 함께한 건 마음에 걸리지만 영특한 아이니 잘 처신하겠지. 그리고 모범생처럼만 보여도 그 싸움 방식은…. 나는 지난날 내 연습 상대가 되어 주었던 이재현을 떠올리며 슬쩍 흐린 눈을 한 채 말을 이었다.

“안쪽 상황 최대한 빨리 확인하고 정답인 곳으로 다들 모이는 거야. 알았지?”

이제 정말 서둘러야 했다. 나는 노트북을 한도훈에게 쥐여 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참고로 내가 고를 장소와 팀원은 이미 정해 놨다.

“찬영아, 골라.”

난 너의 운만 믿을게. 고찬영이 다른 팀이라는 전제는 없다. 같은 학년이자 친구의 의리로 너는 나와 같이 가야 한다. 체육 대회 때를 통해 고찬영을 따라가면 절반은 간다는 걸 배웠다. 물론 그 운의 작용이 그에게만 한정되어 있긴 하지만, 오늘의 경우엔 좀 다르겠지. 그렇게 믿으며 아주 당연하단 듯 말하자 고찬영은 잠시 벙찌더니 이내 웃음을 유쾌하게 터트렸다.

“으하하핰!!! 아, 친구님, 대박. 진짜~ 어쩜 좋아, 이렇게 훅 들어오면 난 너무 좋지만~?”

고찬영이 실실 웃는 낯으로 시선을 슬쩍 비끼며 자꾸만 히죽거렸다. 마치 대놓고 놀리는 듯 개구진 그의 얼굴을 보곤 불현듯 나는 잠시 잊고 있던 놈을 떠올렸다.

어라, 어쩐지 내 뒤통수가 뜨거운데?

뒤늦게 아차, 싶어지는 순간 고찬영은 여전히 실실 웃는 낯으로 노트북 화면의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그럼 여기로 할게. 아까부터 굉장히 거슬렸거든. 왠지 가면 후회할 것 같은 기분이 막 든다고 할까.”

무당… 아니, 박수세요? 진짜 신내림이라도 받았나 의심이 들려고 하는데 뒤통수가 유독 따가웠다.

“……휘혈이도 같이 가자.”

“흠.”

결국 시선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나는 슬쩍 인원을 한 명 더 배정하자 그제야 반휘혈에게서 새침하지만 어느 정도 긍정적인 반응이 들려왔다. 이러한 내 선택에 다른 이들 또한 토를 달지 않았고, 그렇게 대강 팀을 나눈 우리는 곧장 출발했다.

“아, 잠깐. 먼저 가. 난 따로 갈게.”

그런데 고찬영이 체육관을 나가다가 멈추더니 그렇게 말하곤 휘릭, 사라졌다.

“엥???”

말릴 새도 없이 떠나 버린 그를 보며 벙쪄 있는데 그런 내게 한도훈이 불쑥 말을 걸었다.

“누나, 잠깐만요.”

“어?”

넌 또 무슨 일이냐는 시선을 담아 보자 한도훈이 어딘가 진지한 기색으로 날 보고 있었다.

“혹시나 싶긴 하지만…, 그곳에 도착해서 뭘 목격해도 너무 놀라진 마세요.”

“…무슨 소리야, 그거.”

불길한 말이었다. 얼굴을 굳히며 되묻자 그는 잠시 말이 없더니 불쑥 입을 열었다.

“누나, 사람이 가장 망가질 때가 언제인지 알아요?”

“뭐?”

갑작스러운 질문에 눈살을 찌푸렸으나 한도훈은 그런 내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자신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툭, 짚었다.

“바로 마음이 무너질 때예요.”

“…….”

“그 녀석은 그걸 가장 잘하거든요.”

미리 알아 두시라고요.

한도훈은 그리 담담한 말을 남기며 다른 차량에 탑승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멀거니 보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누나.”

“어, 아, 응. 탈게.”

나는 황급히 열린 문을 통해 앉았다. 반휘혈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바로 차 문을 닫고 저지 주머니 안에 있는 핸드폰을 꾹 쥐었다.

‘…이수야. 조금만 기다려.’

누나가 갈 테니까.

자꾸만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나는 얼굴을 심각히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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