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 내 동생 건드리면 죽음뿐. (1)
***
나는 달렸다. 우선 달렸다.
“씨발, 거기 서-!!!”
“야, 저리로 갔다!!”
“아, 존나 빨라!!!”
왜냐하면 쫓기고 있으니까-!!
‘아니, 이런 미췬…!! 건물 근처에서부터 미리 잠복하고 있는 게 뭔데-!!!’
덕분에 나는 때아닌 러닝을 하며 워밍업을 하는 중이었다.
“으아아, 젠장!!! 휘혈이, 넌 저 건물! 난 이 건물-!!”
반휘혈은 내 말에 알겠다는 것처럼 방향을 꺾었다. 현 작전은 이렇다. 우선 닥치는 대로 건물 뒤지기! 괜한 싸움에 말려들어 봤자 시간 낭비였다. 그럴 바엔 체력이 좀 더 빨리 닳을지라도 건물부터 살피는 게 나았다. 왠지 어그로가 제대로 끌려서 우르르 끌고 다니는 꼴이 되었지만, 하핫! 키는 작아도 달리기 하나는 자신 있다는 이 말씀!!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왜 나만 쫓아와-!!!”
사람 차별하냐, 이 새끼들아!! 아무리 내가 키가 작고 여자라서 만만해 보여도 그렇지, 왜 저렇게 많이 몰려와?! 일부러 양쪽으로 갈라섰는데도 보람이 없어도 너무 없네! 저 양심 없는 새끼들!!
‘시간만 있었으면 저따위 양아치놈들 전부 한주먹감인데!!’
나는 짜증스럽게 이를 악물며 재빨리 문이 헐겁게 열린 창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잽싸게 문을 닫은 후, 옆에 있던 무거운 서랍 같은 걸 옮겨 문을 막았다.
쾅-!!
그러자 곧장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나는 쿵쿵거리며 욕지거리를 내뱉는 소리에 코웃음을 치며 안쪽을 살폈다.
“흠. 여기도 아닌가.”
나는 설레설레 둘러보며 혀를 차다가 안쪽에 문이 하나 더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음? 저기에 문이 있네.”
자연스럽게 나는 빠르게 그쪽으로 다가갔다. 쾅쾅, 문이 위태롭게 열리기 시작했다. 하긴 그만한 인원이 모인 데다가 문 자체도 그리 튼튼하지 않았던 걸로 보아 열리는 건 순식간일 듯싶었다. 나는 저곳만 서둘러 확인한 후에 창문을 통해 나갈 것을 꾀하며 그리로 다가갔다.
그리고 나는 문을 열기 전, 침을 꿀꺽 삼켰다.
“으….”
음산한 폐창고라 그런지 솔직히 좀 많이 무서웠다. 꼭 이런 문을 열면 이상한 게 튀어나오질 않던가.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라 나는 두려웠지만 그래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동생을 생각해서 입술을 꽉 물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안 무서워, 안 무서워, 안 무서워…!!”
혹여 기습이라도 당할까 싶어 감고 싶은 눈을 부릅뜨고 힘차게 열었다.
“어, 없네.”
문 안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 훤해서 숨을 곳조차 안 보일 정도로 말이다. 뭐, 있다면 벽면에 붙은 거울 하나이려나.
휴-. 아, 아니지. 지금 안도할 상황이 아니지. 나는 바로 정신을 차리며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후 곧장 이곳에서 나가려 한 걸음을 떼던 순간이었다.
덥석. 무언가가 손목을 붙잡았다.
“-!!!!!!!!!!”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잡힌 팔에 나는 경악하며 입을 벌렸다. 그리고 다른 손이 나타나 내 입을 턱, 막았다. 끄아아아아아!!!! 너무 놀라 혼절할 것처럼 굳어 버린 나는 반항도 못 하고 안쪽으로 서서히 끌려갔다.
그리고 동시에,
쾅-!!!
“에이, 씨발!! 야, 샅샅이 뒤져-!!”
“허억, 허억. 야, 여기 없어!”
“저기 문 하나 있잖아, 새꺄-!!”
퍽, 하며 내가 원래 있었던 문 바깥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투덜거리며 문을 향해 다가와 열었다.
“야, 여기도 없어-!!!”
“와, 씨. 존나 쥐새끼 같네. 확인했으면 빨리 나와!”
그렇게 날 쫓던 이들은 떠나갔다.
“……,”
끔뻑, 끔뻑. 나는 멀뚱히 눈을 깜빡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잠깐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러니까 여긴… 거울 뒤?’
방금 전,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었다. 거울 뒤는 수납공간처럼 사용됐던 건지 나름 여유로운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 나는 그 안에 있었다.
근데 나는 왜 여기 있지?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마치 나를 구해 준 것 같은 손에 얼떨떨히 표정을 굳혔다.
“음- 간 거 갔네에-.”
흠칫, 그런 도중 위에서 나긋한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그에 정신을 차린 나는 황급히 그 손을 떨쳐 냈다. 그러자 이곳으로 끌고 온 듯한 범인은 나를 순순히 풀어 주었고, 나는 다시 거울 문을 열어 경계하듯 그 사람을 돌아봤다.
“-!!!”
그리고 나는 보이는 얼굴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부릅떴다.
“안녀엉-.”
그가 내게 싱긋 웃으며 인사했다. 하나 나는 그럴 상황이 못 되었다.
“넌….”
곱슬거리는 머리를 깔끔히 넘긴 머리와 훤히 드러난 이마 아래로 보이는 풍성한 속눈썹. 그리고 어딘가 교태로워 보이는 나른한 눈매와 눈동자. 그리고 왼쪽 눈 밑에 가지런히 찍혀 있는 두 개의 점. 마지막으로 시선을 끌어당기는 도톰한 입술.
“누구…?”
생판 처음 보는 곱상한 미인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초절정으로 예쁘게 생긴 미인이 말이다.
이 범상치 않은 놈은 대체 뭐지? 자꾸만 시선을 끌어당기는 마성의 미모였다. 이런 미친 미인은 또 처음이었다. 왠지 백장미보댜 더 예쁜 것 같은데 목소리로 보아 확실하게 남자인 것은 틀림없었다. 또 묘하게 저 나른한 눈동자를 마주하면 마주할수록 빨아 당기는 기분마저 들 정도…, 핫. 나는 정신이 멍해진 걸 다잡기 위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러고서 생각했다.
저놈은 위험한 놈이다!
내 경험과 본능이 외치고 있다. 눈앞에 있는 놈의 정체가 범상치 않음을. 필시 적으로 돌아서면 굉장히 위험한 인물임을! 나는 알 수밖에 없었다. 그가 눈을 깜빡, 하고 그 풍성하고 기다란 눈썹을 팔락이며 물었다.
“음? 나 몰라?”
“…모르는데요.”
괜히 소식에 둔감하다는 사실이 찔려 슬쩍 외면하며 답하자 그는 몇 번 더 눈을 깜빡이더니 아, 하고 탄성을 가볍게 내뱉었다.
“아- 맞아. 그럴 수도 있겠네에-,”
그는 어딘가 납득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알아준 건 고마운데….
‘뭐지, 이 위화감은.’
어딘가… 뭔가…? 저 말투가 묘하게 익숙…,
“저기 말이야아-.”
“예?”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빠지려던 찰나, 그가 나른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허리를 살짝 숙이며 물었다.
“넌 여기 무슨 일로 온 거야-?”
느릿느릿 나긋한 말투와 웃는 모습이 고양이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질문 덕에 아주 잠시 동안 잊고 있던 일을 상기해 냈다.
“아, 이수-!!!”
퍼뜩 정신이 든 나는 그의 팔을 덥석 붙잡아 물었다.
“혹시 이곳으로 남자애 한 명이랑 여자애 한 명 끌려오는 모습 못 봤어요? 제가 동생이 인질로 잡혀서 협박을 받았는데, 도와 달라고까진 안 할게요. 장소만, 장소만 알려 주세요!!”
급한 마음에 와다다 쏟아 내듯 묻자 그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러곤 입매를 고양이처럼 끌어 올리며 해사한 웃음을 달고 대답했다.
“와아- 나도 협박 당했는데에- 똑같네에-.”
“아, 그렇…. 협박?!”
예상치 못한 말에 기겁하며 되묻자 그는 반가운 동지를 만난 것처럼 끄덕였다.
“응~ 협박당했어~. 나도 똑같이 동생을 빌미로오-.”
…동생? 동생?!?!
“잠깐,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나는 그의 팔을 붙잡고 황급히 문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그가 응? 하고 의아하다는 듯 반응했다.
“동생이 납치당한 거잖아요! 연희 찾으러 가야죠!!”
세상에, 마상에. 이런 엄청난 미인을 오빠로 두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아니, 근데 납득은 간다. 보통 여주에게 엄청 미인인 오빠가 있기도 하지 않던가. 그런데 왜 백장미는 그녀의 오빠까지 협박한 거지?
‘설마 그 가족까지 해코지하려고…?’
멈칫, 나는 그것을 생각하곤 순간적으로 발을 멈췄다.
“저기이…,”
“와, 진짜 쓰레기네-!!!!!”
그리고 나는 바로 분노를 터트렸다. 아무리 못돼 처먹어도 그렇지, 어떻게 관련도 없는 가족까지 끌어들이냐?! 나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인상을 잔뜩 일그러트린 채 그를 홱 돌아봤다.
“어서 찾죠! 동생!!”
흠칫, 그가 내 얼굴을 보곤 잠시 몸을 떨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반응에도 개의치 않고 입고 있던 저지의 팔까지 걷어붙이며 의욕을 한껏 보였다. 이 새끼가 진짜 해도 해도 정도를 자꾸 넘네? 안 그래도 조져 버릴 생각이었지만 내 분노는 점차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아니, 저기이-,”
“아, 빨리 발 움직여요! 여기 나가는 순간 무조건 뛰어야 해요. 알았죠? 제가 어디 어디 둘러보았냐 하면….”
꽉-. 나는 둘러봤던 창고를 말하려고 입을 열려던 순간, 강한 힘에 반사적으로 발을 멈췄다. 돌아보니 주연희의 오빠가 발에 힘을 주며 버티고 있었다.
“뭐 해요? 지금 이럴 때가 아닌…”
“나 걔 오빠 아니야아-.”
“예?”
“나 그 연희라는 애 오빠 아니라구우.”
‘난 납치는 아니거드은~.’ 하고 말을 덧붙이는 그의 말이 있었지만 나는 멍청한 얼굴을 거두질 못했다.
“…아니라고요? 그럼 왜…?”
왜 여기에 있어요? 라는 의미로 눈으로 묻자 그가 헤죽 웃으며 말했다.
“말했잖아-. 나두 협박당했다구우-.”
“그러니까…,”
“그 조건이~,”
덥석, 돌연 그의 손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내 눈이 그쪽으로 향하는 순간 무릎 뒤로 가벼운 타격이 울렸다.
“-?!”
방심하던 사이 기습적인 공격에 내 몸이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차이지 않은 다리 한쪽으로 버티려 했으나 강하게 억눌린 체중에 뒤로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윽-!”
콰당, 바닥을 가볍게 구르는 소리가 울렸다. 넘어지는 순간 어떻게든 충격을 덜어 냈지만 당혹스러운 상황이란 건 변하지 않았다. 나는 바로 얼굴을 굳히며 벗어나려 했지만 어느샌가 팔과 다리가 그에 의해 잡혀 있었다.
“널 붙잡고 있는 거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