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 내 동생 건드리면 죽음뿐. (2)
“당신…!!”
내가 벗어나기 위해 힘을 줬지만 그 또한 나 못지않게 팔과 다리를 억눌렀다. 그에 내 인상이 저절로 험악해졌다.
“당장 놔. 안 그럼 진짜 죽일 거야.”
“미안. 보내 줄 수 없어.”
남자는 그런 내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난처한 듯 미간을 모으며 거절했다. 그에 내가 배신감에 이를 박박 갈며 팔에 힘을 더 주려던 찰나, 그가 말을 덧붙였다.
“미덥지는 못하지만- 우선 나도 그 녀석의 오빠라서.”
우뚝. 그 말에 나는 힘을 주던 것을 일순 멈췄다. 그러곤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을 보며 잔뜩 가라앉은 어조로 물었다.
“당신, 백장미한테 무슨 협박을 받은 거야.”
그러자 그가 눈을 천천히 깜빡이더니 씁쓸한 미소를 살며시 지었다.
“내 동생이 다니는 학교가 백화 재단이 세운 곳이야.”
백화 재단. 그곳은 분명 백장미의 집안이었다.
“내 동생은 거기 추천 입학 된 거고. …뭐, 물론 동생의 자의는 아니긴 했지만. 다니는 동안엔 별일이 안 생기게 만들고 싶어.”
그는 숨을 가볍게 내쉬며 중얼거렸다. 나는 그 말을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론은 나왔다. 즉, 동생의 학교생활이 저당 잡혔다, 이런 뜻이었다.
허, 그것을 깨닫자 돌연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그에 눈앞에 있는 남자가 의아한 듯 미간이 찌푸려졌다. 내가 왜 웃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 듯한 표정에 나는 한 번 더 하하, 하고 웃어 줬다.
“아, 그러니까… 동생의 학교생활?”
꾸드득-. 억세게 쥔 주먹에서 기이한 소리가 울렸다.
“어…?”
전신의 온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그 상태로 팔을 들어 올리려 하자 남자가 반사적으로 힘을 줬으나 내 몸은 꿈쩍도 하질 않았다.
동생 학교생활이 저당 잡혔다. 그건 다시 말해서,
“지금 당장은 안 위험하단 뜻, 이잖아…?”
“어, 어…?”
그가 당황한 듯 눈을 깜빡이며 멍청히 대답했다. 하나 내 얼굴은 어느새 걷잡을 수 없이 처참히 찌푸려지고 눈매가 험악히 바짝 세워졌다. 전신의 근육이 팽배히 서며 서서히 몸이 일으켜졌다. 잔뜩 힘을 준 턱에선 빠득, 하고 부러질 것 같은 잇소리가 울렸다.
“지금 내 동생으으으은…!”
내가 짓씹듯 이를 악물자 이마와 목에 핏대가 선명히 돋아났다.
“어, 자, 잠깐,”
어느새 내 얼굴이 남자의 코앞으로 다가갔고 이젠 남자가 거의 뒤로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그의 낯은 내 얼굴이 가까워지면서 점점 창백해졌다.
“지금 납치돼서 무슨 험한 꼴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치솟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그의 면전에 버럭 고함을 쳤다. 그러자 남자가 ‘히이이익…!’ 하면서 어깨를 움츠러들며 질겁했다. 자신도 모르게 붙잡고 있던 팔을 놓친 남자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던 그 순간,
빡-!!!!
“억-!!!”
쿠당탕탕-!!!!
강한 타격음이 그를 강타했고, 그는 단말마를 외치며 요란하게 바닥을 굴렀다.
어. 나는 갑자기 날아간 남자의 모습에 멍하니 눈을 깜짝였다. 방금, 뭐지. 나는 눈앞에 보이는 장대 같은 다리에 멍청히 굳어 있다가 서서히 시선을 올렸다. 그리고 그곳엔 얼굴을 스산히 가라앉힌 반휘혈이 있었다.
…언제 도착한 거지?
방금 헤어진 것 같은데 대체 언제 도착한 걸까. 설마 여기서 보낸 시간이 그렇게 오래됐나 걱정이 들려는데 반휘혈은 잔뜩 굳힌 낯을 풀 기미 없이 날아간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어어, 휘혈아?”
나는 어딘가 매우 위험해 보이는 녀석의 모습에 반사적으로 그를 불렀으나 반휘혈은 멈추지 않았다. 반휘혈은 옆구리를 기습당해 끙끙거리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그 몸 위로 발을 턱, 올렸다.
“너 뭐야.”
“으, 윽…?!”
“저기, 휘혈아-?”
반휘혈의 발에 힘이 들어갔는지 남자가 당황한 것처럼 신음을 흘렸다. 눌리는 것이 심상치가 않아 말리고자 그를 불렀으나 반휘혈은 멈추지 않고 더 스산히 가라앉히며 압박을 가했다.
“네가 뭔데 누나랑 붙어 있어.”
“아, 잠깐, 자, 잠깐…!”
“휘혈아…?!”
저러다가 사람 죽이겠네! 점점 심상찮은 분위기에 나는 벌떡 일어서 그의 허리를 덥석 끌어안았다.
“!”
“휘혈아, 진정…! 어…?”
지, 진정했네…? 황급히 말리기 위해 뒤로 끌어당기려는데 너무 쉽게 쑤욱 끌려와서 이번엔 내가 되레 당황해 버렸다. 떨떠름히 물러나자 이번엔 반휘혈의 뚱한 표정이 따라왔다.
왜, 뭐, 왜, 뭔데.
급한 상황이다 보니 저 예민한 사춘기 청소년은 우선 내버려 두기로 하며 나는 ‘아이고- 삭신아아-.’ 하며 곡소리를 내고 있는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봐.”
싸늘히 부르자 남자가 지레 찔린 것이 있는 것처럼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더니 그는 조심스레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며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으음- 저기 있잖아아- 내가 나쁜 의도로 그런 건 아니구우….”
“그딴 건 됐고,”
나는 그를 서늘하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 동생 어딨는지나 말해.”
말하지 않으면 진짜 죽여 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손을 뚜둑, 소리를 내며 가벼이 풀었다. 그 소리를 들은 남자는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동공을 세차게 떨었다. 긴장한 듯 입매를 꾹 다물던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모, 모르는데….”
“…뭐?”
“모른다구우….”
“…….”
무언가가 뚝 끊기는 소리가 들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훗, 하고 낮게 웃음을 흘리며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이 새끼가 진짜!!!!”
퍽, 퍽, 퍽!! 나는 기어코 터진 화를 참지 못하고 그에게 발길질을 날렸다.
“안 그래도 동생 납치돼서 심란한데 몰라?! 모올라아?! 지금 너 때문에 뺏긴 시간이 얼만데!!! 그럼 뭔가 아는 척이라도 하지 말든가!! 내가 올 건 대체 어떻게 안 건데!!”
“흐이이잉.”
맞아 죽지 않을 정도로만 신경질적으로 발을 날리자 남자는 머리를 감싼 채 우는소리를 내뱉었다.
“난 아는 척 안 했구우… 나 혼자 조용히 숨어 있었는데 찾아온 건 너였구우….”
우뚝, 그 소리에 내리 차던 발이 순간 멈췄다.
“뭐?”
딱 봐도 잠복해 있던 모습이었다. 그렇지 않고선 그렇게 타이밍 좋게 나타날 리가 없었다. 이상함에 눈살을 찌푸리자 옆에 있던 반휘혈이 그의 머리에 발을 얹었다.
“아는 거 전부 불어.”
“흐이이익….”
당장이라고 목을 꺾어 버릴 기세에 남자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번엔 반휘혈을 말리지 않았고 남자는 서러운 건지 두려운 건지 모르게 훌쩍이며 이실직고했다.
“흑, 난 원래 괜한 간섭 싫어하구우… 그래서 대충 잠복하겠다 핑계 대고 여기에 짱박혀 있던 거구우… 크흥. 조용히 넘어가구 싶었구우우… 그런 와중에 네가 왔는데 모르는 척하기도 힘들구우우우…”
“왜 모른 척하기 힘들었지?”
꽉-. 반휘혈이 그의 머리통을 더 강하게 밟으며 꼬투리를 잡았다.
“그야 백장미는 그런 여자니까아… 히끅, 어디든 눈이 달려 있는 것 같단 말이야아…. 그리고 난 그 정체가 너인지도 몰랐단 말이야아…. 나는 그냥 침입자만 막아 달란 소리만 들었을 뿐이라구우-. 흐잉.”
“……?”
잠깐. 방금 무슨 이상한 소리 하지 않았나? 나는 어딘가 석연찮은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나 그러든 말든 남자는 자신의 말을 이어 갔다.
“너인 걸 아는데 어떻게 보내에…. 쿨쩍, 그래서 난 일이 어느 정도 일단락될 때까지만 붙잡고 있을 생각이었단 말이야아-. 어차피 가 봤자 위험하기만 하구우…. 히끅, 그럼 내 동생은 다른 의미로 또 감당하기 힘들어지구우… 요새 네 소식 잠잠해서 안 그래도 신경 예민하구우….”
크흥, 그가 코를 마시며 서글프게 철퍽, 하고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흐이잉. 네가 다치면 분명 슬퍼할 거란 말이야아…. 그래서 널 보낼 수가 없었다구우….”
“…….”
“하지만 네 동생이 납치된 건 정말 몰랐구우….”
히이이잉. 그는 꽤나 속상했는지 서글프게 흐느끼며 말을 덧붙였다. 가련하게 떠는 그 모습에 나는 조용히 반휘혈에게 발을 치우라 손짓으로 지시했다. 반휘혈은 발을 곧장 떼어 냈고 나는 그 앞으로 다가갔다.
“이봐, 당신… 나 알아?”
아까부터 뭔가 이상하다. 왠지 나를 아는 듯한 말투가 석연치 않았다. 내 질문에 남자는 흐느끼던 것을 잠시 멈추곤 서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들어 올린 그의 얼굴은 눈물에 젖어 만신창이였으나 그 미모가 바래진 않았다. 오히려 처연함이 가중돼 미모에 빛을 발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깔끔히 올라갔던 머리가 반휘혈에게 밟혀서인지 반쯤 헝클어져 그의 이마를 덮고 있었다. 그러한 그 모습에서 어딘가 아른아른한 것이 덧씌워질 듯 말 듯 하게 떠올랐다.
뭐지, 이 묘하게 익숙한 얼굴은. 왠지 모르게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에 나도 모르게 심각해지는데 그가 물이 젖은 눈썹을 팔락이듯 깜빡이곤 찬찬히 입을 열었다.
“응? 그야…,”
“찾았다-!!!”
“반휘혈, 저 새끼, 감히 우리를 가지고 놀아?!”
“야, 여자애도 있… 헉, 공주님?!”
…방금, 뭐라고?
나는 갑작스럽게 쳐들어온 깡패들에 반사적으로 몸을 굳히다가 그들이 뒤이어 소리치는 말에 다른 의미로 사고를 정지했다.
“이, 씨발 새끼들. 우리 공주님한테 무슨 짓을?!”
“공주님, 기다리십쇼!! 이 쇤네가 다 죽여 버리겠습니다!!!”
아니, 진짜 뭔데, 이거.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동공이 흔들렸다. 지금 이 남자를 보고… 공주님이라고 불렀…? 아, 아니, 물론 공주님처럼 예쁘긴 한데…. 난 순간 따라가기 힘든 상황에 굳어 있는데 그들 중 몇몇의 얼굴, 특히나 공주님을 외치던 이들의 낯이 흉흉해지며 연장을 다잡았다.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지금은 싸울 시간이 없었다. 이 남자를 상대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이상할 정도로 묘하게 정신을 빨아들이는 인간 덕에 나는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곤 고개를 돌렸다.
“휘혈아, 방금 간 곳에 이수 있었어?”
“아니, 다만…,”
다만? 나는 거슬리는 말에 반휘혈을 보았다.
“눈에 띄는 창고는 봤어.”
“!”
눈에 띈다고? 나는 그 말에 얼굴을 굳혔다.
“여기서 가까워?”
“뛰어서 5분 정도.”
젠장. 멀군. 나는 짜증스럽게 이를 갈았다. 말이 5분이지 눈앞에 있는 이들을 포함해 다른 놈들을 상대하면 훨씬 더 걸릴 시간이었다. 1분 1초가 급한 상황 속에 나는 초조하게 눈을 굴렸다.
“망할, 여긴 창문도 없네.”
하지만 이 창고는 열거나 부숴서 도망갈 창문도 없었다. 다른 통로를 찾는 것도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힘을 많이 빼서도 안 됐다. 공주라고 불린 남자의 말대로 내 상대는 위험하니까.
‘…그건 그렇고, 진짜 있단 말이지.’
정태이. 나는 서서히 가라앉는 심장에 인상을 굳혔다. 반휘혈이 그런 날 흘끗 보더니 내 앞으로 한 발 나아가 앞을 막았다.
“여기서 힘 빼지 마. 여긴 내가…,”
그때였다.
부아아아앙-!!
돌연 공기를 가르는 엔진 소리가 귀를 찌르듯 울려왔다.
“뭐, 뭐야!!!”
“야, 비켜, 비켜!!!”
“우와아악-!!!”
나는 혼비백산하며 흩어지는 깡패들의 모습에 눈을 부릅떴다. 갑작스러운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굳어 있길 잠시,
부아아아아앙-!!!
오토바이 한 대가 창고의 문을 지나 깡패들 사이를 뚫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 오토바이는 빠르게 내 쪽으로 다가왔다.
“!”
“뭣…!”
위협스레 돌진하는 오토바이에 반휘혈이 내 어깨를 감싸듯 안았다. 나 또한 같이 피하기 위해 그의 허리에 손을 두르던 순간,
끼이익-!!
그것은 몸체를 돌려 매끄럽게 정지했다. 정확히 나와 반휘혈 앞에 정차해서 얼떨떨히 경직되어 있던 사이 오토바이의 운전자가 자신의 헬멧을 매만지곤 가볍게 들어 올렸다.
“어…?!”
그러자 사락, 하고 까만 머리칼이 흩날려지며 제자리에 안착했다. 고개를 가벼이 털어내며 머리를 정돈시키던 이는 이내 경악하고 있는 내 눈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가 씩 웃었다.
“나 너무 늦진 않았지, 친구님?”
그 정체는 방금 전, 볼일이 있다고 사라졌던 내 친구 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