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83화 (283/306)

283. 내 동생 건드리면 죽음뿐. (3)

“찬영이, 너…!!”

그의 화려한 등장에 내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갑자기 웬 오토바이?! 놀란 마음에 삿대질까지 하자 그가 하하, 하고 너털웃음을 흘리며 어디선가 물통 하나를 꺼냈다.

“자자, 진정하고 우선 한 모금 마셔. 땀 흘린 것 봐~.”

“어, 응.”

얼굴로 향하는 자연스러운 손짓에 나도 모르게 그것을 받아들었다. 게다가 물이란 말을 들으니 갑자기 갈증이 솟구친 기분에 뚜껑을 따 시원하게 들이켰다. 마시고 보니 그냥 물이 아니라 스포츠 음료였다. 그 청량한 맛이 입안과 목구멍에 퍼지자 살 것만 같았다.

“저거 고찬영, 고찬영 맞지?”

“그 미친 들개가 왜 여기에…?”

고찬영의 등장에 나만 놀란 게 아닌 모양인지 깡패들이 웅성거렸다. 그들은 어딘가 질린 낯으로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반휘혈의 모습에도 그리 기죽지 않아 했는데. 단 한 명의 등장으로 기가 죽은 모습에 나는 힐끗 그를 보았다. …이 녀석, 대체 무슨 인생을 보내 온 걸까.

“…아니, 근데 웬 오토바이야? 그거 가지러 간 거였어?”

반휘혈보다 더한 악명을 날렸단 게 꽤 신경 쓰였지만 뭐, 그건 차후에 알아보기로 하며 나는 반휘혈에게도 마시라고 물통을 건네주면서 질문을 던졌다. 물론 입학식 때 오토바이를 끌고 나타난 전적이 있다 보니 그리 낯설진 않다만, 그 이후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서 아직도 얼떨떨했다. 내 물음에 고찬영은 시원스럽게 웃으며 대답해 줬다.

“작정하고 다구리 치는데 사람이 적을 리 없을 것 같아서 말이지~. 이야~ 그건 그렇고 많긴 많더라~. 여기저기 쫙 깔렸는데 한 백…, 음?”

고찬영이 무언가를 발견한 것처럼 잠시 말을 멈췄다. 돌연 그가 고개를 쭉 빼더니 내 뒤를 보곤 멀뚱히 눈을 깜빡였다.

“뭐야, 공주님도 있었어?”

“…공주?”

방금 전 깡패들에게서 나온 호칭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게다가 정체를 아는 듯한 말투. 설마 고찬영, 너도 저 녀석의 팬…? 새로운 사실에 기겁하려던 그때 그의 말이 이어졌다.

“백설 공주. 너 거기서 뭐 해?”

아, 그래. 백설 공…, 백설?!

나는 익숙한 이름에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자 무릎을 모은 채 쭈그러져 있던 남자가 나를 멀뚱멀뚱 올려다봤다. 곱슬거리면서도 푹 덮인 앞머리, 그리고 축 처진 어깨! 그 초라한 모습에서 언젠가 봤었던 모습이 나란히 매치되었다.

“이렇게 다르다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람이 달라질 수가! 어쩐지 묘하게 행동이나 말투가 낯익다 싶더니 백설 너였냐…!! 이러면 정말 정태이가 바로 옆을 지나가는데도 못 알아볼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너무 차이가 극명해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렇게까지 다른가?”

“달라!”

고찬영이 내가 너무 놀라워하자 오히려 신기하단 것처럼 중얼거렸다. 아니, 그보다 넌 대체 어떻게 한 번에 알아본 거야?! 체육 대회 때 그 후줄근한 차림새의 백설을 단 한 번에 알아봤던 고찬영의 예리한 눈썰미에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얘 앞에선 변장도 뭣도 다 소용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 정도라 혀가 저절로 내둘러졌다.

“그런가? 뭐-, 그건 그렇고.”

고찬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앞을 보았다.

“슬슬 앞을 보는 게 어때?”

나는 그 말에 잠시 동안 잊고 있던 현 상황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아, 젠장.”

사람이 늘었다. 나는 작게 욕설을 내뱉으며 혀를 찼다. 얼추 봐도 수십 명은 되어 보였다. 아무래도 우리들이 이곳에 모였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들었나 보다.

어쩌지. 이 상태론 난전을 피할 수가 없었다. 돌파할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였다.

“…….”

힐끗, 고찬영의 오토바이를 보았다. 이것을 타고 돌진하면 빠르게 돌파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남는 사람은…,

“누나.”

그때 타이밍 좋게 반휘혈이 나를 불렀다. 시선을 굴려 그를 보자 반휘혈이 시큰둥히 말을 이었다.

“타.”

“…뭐?”

멈칫, 나는 몸을 바로 펴며 그를 보았다. 반휘혈은 그런 날 보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어서 가라고.”

휘혈이, 너…? 나는 예상치 못한 말에 눈을 크게 뜨며 그를 멀거니 보았다.

“…의외인데?”

“시끄러.”

그의 말에 놀란 건 나뿐이 아니었는지 고찬영이 히죽 웃으며 중얼거리자 반휘혈은 칼같이 대꾸했다. 그러곤 어딘가 굉장히 못마땅해 보였지만 하는 수 없단 것처럼 툭, 내뱉었다.

“…어차피 상대도 안 되는데 오기 부려 봤자 소용없으니까.”

“그건… 무슨 소리야?”

나는 이해 못 할 소리에 끔뻑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러자 반휘혈은 짜증스럽게 입을 다물더니 내 쪽은 무시하듯 고찬영을 보며 말했다.

“북서쪽 방향으로 차로는 1분 거리. 문이 유달리 다른 창고가 하나. 쉽게 열릴 문이 아니야. 그러니까 그 옆에 창고 2층으로 가.”

“…오케이.”

고찬영은 그 말에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들고 있던 헬멧을 바로 쓰곤 예비용 헬멧을 꺼내 내게 주었다.

“빨리 타, 친구님.”

“하지만….”

나는 인상을 굳히며 반휘혈을 보았다. 반휘혈은 내 등을 꾹 밀었다.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가.”

그러곤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처럼 입매를 뒤틀며 작게 중얼거렸다.

“…소중한 동생이잖아.”

“!”

나는 그 말에 눈을 부릅떴다. 설마 반휘혈에게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그렇다면 방금 했던 그 말은… 이수를 가리켜서 했던 말일까. 나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크게 팽창하듯 부푸는 기분을 억누르며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그러곤 바로 몸을 돌려 고찬영의 등 뒤에 자리를 잡았다.

“휘익-. 많이 컸는데?”

고찬영이 내가 자리를 잡자 작게 휘파람을 불며 속삭였다. 헬멧 때문에 보이진 않지만 그가 그 안에서 히죽거리고 있을 게 훤히 보일 정도로 웃음기가 담긴 소리였다. 나는 그의 말에 동조하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시선을 돌려 백설을 보았다.

“백설, 나랑 거래하자.”

“어?”

“얘랑 같이 싸워 줘.”

“…어?”

백설이 싫다는 것처럼 대번에 얼굴이 떫게 구겨졌다. 나는 그에 침착하게 지난날 그를 만났던 당시의 일을 떠올렸다.

“네 동생, 내 팬이었지?”

“응? 응.”

그 긍정에 나는 심각히 얼굴을 굳히며 검지손가락 하나를 척 들어 올렸다.

“도와주면 나랑 네 동생이랑 밥 한 끼, 어때?”

“어… 어?!”

백설이 화들짝 몸이 튀며 일어났다. 생각보다 큰 반응에 조금 놀랐지만 티 내진 않았다. 오히려 그 긍정적인 반응을 확인한 나는 그치지 않고 하나의 제안을 더 얹었다.

“거기에 얘가 털끝 하나 안 다치면 네 동생이랑 1일 데이트, 어때.”

백설은 그 말에 얼굴을 심각히 굳혔다. 그러곤 이제껏 본 얼굴 중 가장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강하게 말했다.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지킬게.”

텁-! 그 말과 동시에 우리는 손을 맞잡았다. 계약 성립이었다.

“우리 친구님은 수완도 좋아라~. 하하.”

거래의 현장을 지켜본 고찬영이 재밌었는지 웃음을 흘렸다. 나는 조용히 하라고 등을 가볍게 치며 헬멧을 쓰려는데 반휘혈이 돌연 내 팔을 붙잡았다. 무슨 할 말이 더 남았나 싶어 의아하게 보자 그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다치지 마.”

나는 그 말에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이어 살포시 미소만 짓고서 그대로 헬멧을 썼다. 고개를 돌리자 손이 서서히 떨어졌고, 그것을 확인한 듯 오토바이의 엔진이 더 크게 울리더니 그대로 출발했다.

빠르게 돌진해 문을 통과하자 깡패들이 기다렸단 것처럼 안쪽으로 몰려들었다. 이쪽을 쫓아오려는 듯한 이들도 보였으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반휘혈을 처치한 후 이쪽을 처리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고찬영에게 겁을 먹은 거려나. 나는 안쪽의 상황이 조금 걱정됐지만 반휘혈과 백설 두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해결할 거라 믿으며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겨우 돌렸다.

“괜찮겠어?!”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고찬영이 소리쳤다. 바람을 찢으며 달리는 오토바이의 소음에 가려지지 않게 나 또한 그에 괜찮다고 바로 응답했다.

“둘 다 강하니까-!!!!”

둘 다 강하니까, 괜찮다. 또 이 중 가장 위험한 건…

“그보단 내가 더 위험하지-!!!!”

정태이를 상대할 나였다.

“하하하!!! 그 말이 맞아-!!!!!”

고찬영은 그 대답에 시원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잠시 멈칫하더니 내게 소리쳤다.

“친구님!!! 꽉 잡아야 돼-!!!”

“어?!”

갑작스러운 경고에 나는 반사적으로 잡고 있는 그의 허리를 더 강하게 붙들었다. 도대체 뭔데, 하고 의아하던 찰나 돌연 핸들의 방향이 꺾였고, 어느 건물 안으로 재빠르게 들어갔다.

“?! 왜 여기로?!”

여긴 아무도 없는 건물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이쪽으로 들어왔는가. 이해가 되질 않아 외쳤으나 고찬영은 묵묵히 바이크를 몰아 계단을 빠르게 올랐다. 그리고 어느 활짝 열린 창문으로 돌진했다.

“어?!?!”

야, 저긴 밖…!!!! 하고 기함하려던 순간, 나는 혀를 깨물지 않기 위해 바로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

야 이 미친놈아-!!!!! 라고 외치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오토바이는 허공을 가르고 있었고, 내 몸은 오토바이와 떨어지지 않기 위해 붕 떠 있었으니까.

한순간, 한순간이 슬로 모션같이 지나갔다. 나는 이 계획을 짜 낸 반휘혈을 원망했고, 그것을 실행한 고찬영을 저주했다.

온갖 번뇌가 스치는 순간이 지나자, 곧 강한 파열음이 울리며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보았다.

“-!!!!!”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고 있는 서이수의 얼굴을.

쾅-!!! 끼이이이익--!!!!!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오토바이가 튕기듯 섰다. 아슬아슬하게 넘어지지 않는 곡예를 펼친 오토바이는 이내 속도를 줄이며 바로 섰다. 그리고 나는 곧장 발을 바닥에 딛고 몸을 일으켜 헬멧을 벗었다.

“이수야-!!!”

그러자 서이수가 내 말에 반응하듯 소리쳤다.

“누나-!!!!”

서둘러 그에게 가기 위해 오토바이를 벗어나려는 순간 나는 몸을 흠칫, 떨었다.

어. 잠깐.

…울고 있어? 당황스러움에 얼굴이 저절로 굳어졌다. 잔뜩 물에 잠긴 듯한 목소리, 그리고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 반가움에 살피지 못했던 피로 뒤덮인 그의 얼굴을 마주한 건 그 이후였다.

“이수, 너 피…가….”

그러나 나는 입을 열다가 다시 도로 닫았다. 그제야 보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위협하듯 칼날을 번쩍이며 바닥에 나뒹구는 잭나이프. 그리고 깡패의 손에 들린 카메라. 마지막으로 부상이 심한 듯한 내 동생.

아.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읏…!”

내가 굳어 버린 것처럼 말이 사라지자 백장미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것처럼 몸을 흠칫, 튀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그랬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잠시 못마땅히 미간을 찌푸렸다.

“크흠.”

하나 그것은 아주 찰나였다. 백장미는 자신의 포커페이스를 되찾으려는 것처럼 침을 한번 삼킨 후 도도한 웃음을 입에 걸어 보였다. 그리고 이쪽을 향해 한 발자국을 떼었다.

“용ㅋ…,”

훙-!!!!!!!

그 순간 그녀의 옆얼굴로 세찬 소리와 함께 묵직한 무언가가 지나갔다. 곧 콱, 하고 둔탁하고도 거센 소리가 벽에서 울렸다.

“…….”

백장미는 자신의 뺨을 슬며시 어루만졌다. 마치 얼얼한 부위를 만지듯 조심스러운 손길이 떨어졌고 동시에 입꼬리가 서서히 내려갔다.

“야.”

나는 뻗었던 팔을 내리며 잠깐 숙어졌던 상체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내 입에선 고저 없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닥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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