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 패왕 VS 조커 (2)
“니, 앞에 있는 게 누구라 생각하나.”
“……!”
팟, 손이 강하게 치워지는 것과 동시에 정태이는 준비 자세도 없이 다리를 앞으로 걷어찼다. 서이나는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그것을 막았다. 공격의 반동을 이용해서 몸을 뒤로 물리자 정태이는 성큼 다가가 주먹을 내질렀다.
탕-!
“아까 그 기세는 어데 갔나.”
타, 탕-!!
“물어뜯으려면 지금 아이가.”
펑-!!! 정태이의 무릎이 서이나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하나 그 무릎은 서이나가 다리를 들면서 막혔다.
오?
정태이의 입에서 나지막한 감탄이 슬며시 나오는데 텁, 돌연 그녀의 어깨가 붙잡혔다.
“야.”
그리고 서이나의 얼굴이 훅-, 다가왔다.
“너 아까부터 너무 말이 많아.”
“-!!”
팡-!!! 공기를 찢어 가르며 주먹이 정태이의 얼굴을 강타했다. 강하게 붙들린 어깨에 반사적으로 들어 올린 정태이의 팔이 그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막아 냈다. 묵직한 공격이 두터운 팔 근육에서 전해졌다. 하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퍼, 퍼, 펑-!!! 연사와 같은 주먹이 같은 자리에 그대로 꽂혔다. 연이은 타격에 정태이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정태이는 다시 주먹이 내질러지던 찰나 서이나의 팔의 관절을 가볍게 치곤 잠시 힘이 빠질 사이에, 그대로 팔을 바깥으로 빼 그녀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
서이나의 한쪽 어깨와 목을 두르듯 껴안은 자세 그대로 그녀의 몸이 들려지고 뒤로 넘어갔다. 정태이는 그 몸을 바닥을 내려찍었다.
쾅-!!
“크, 윽…!”
둔통이 후두부와 등에서 느껴졌다. 잠시 숨이 폐를 조일 듯 멈추었다.
콱.
하지만 서이나는 뚜둑, 하고 고통으로 마비된 손가락의 관절을 한순간에 풀어내 정태이의 얼굴을 잡아챘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처박았다.
빡-!!!
“읏…!”
이마께로 뇌가 흔들리는 것 같은 통증이 전해졌다. 정태이는 반사적으로 팔에 힘을 줬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머리를 내리누르는 손에 힘이 더 강하게 들어갔다.
“내가… 냉정하다고?”
머리통을 내리누르는 손등과 팔엔 힘줄이 잔뜩 불거졌다.
“이게 그렇게 보여?”
오싹. 시선이 마주치지 않았음에도 살기가 전해졌다. 정태이는 그 순간 눈치챘다. 그녀는 지금 터지지 않은 게 아니라 이미 터진 상태임을.
“큭…!”
크흐, 크흐흐, 크하하하…!!
소름이 끼쳤다. 그래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래 나와야지.”
그 눈깔은 내한테만 향하면 되는 기다. 정태이는 비소를 가볍게 날렸다. 그리고-.
텁,
“!”
훙-!!! 그녀의 팔을 한 손으로 붙잡아 몸째로 날려 버렸다. 가벼운 울림이 바닥을 구르며 서이나는 넘어진 몸을 바로 일으켰다. 정태이는 툭툭 몸을 일으키며 뚜둑, 뚜둑 목을 꺾었다. 이마에서 피가 비쳤으나 일말의 타격도 없어 보이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괴물 같은 맷집에 서이나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정태이는 가볍게 풀어낸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장난은 여까지다.”
그녀의 입가에 맹수와 같은 미소가 짙게 드리워졌다.
탁-.
“!”
정태이의 몸이 빠르게 도약했다. 그리고 사선으로 휘두른 채찍 같은 다리가 서이나에게 꽂혔다. 서이나는 그것을 옆으로 피하였으나, 피한 쪽으로 정태이의 반대쪽 다리가 곧이어 세차게 날아왔다.
빡!!
“!”
공중에서 궤도를 연속으로 바꾸며 공격을 하는 것임에도 그 위력은 가히 위협적이었다. 가볍게 생각하고 막았다가는 그대로 승기가 내어질 것만 같았다. 서이나는 반동으로 살짝 휘청이는 몸을 다리에 힘을 주며 버티고 있자 공격을 날리며 착지한 정태이는 그대로 몸을 한 바퀴 회전시켰고, 바로 다리를 내질렀다.
텅-
“억-”
묵직한, 아니, 뼈를 관통하는 것 같은 공격이었다. 두 팔로 교차시켜 막았음에도 몸을 꿰뚫는 것만 같았다. 채 반격하지 못한 몸이 붕 떠올랐다.
“누나-!!”
날아가는 서이나의 몸에 서이수가 기함하며 소리쳤다. 앞으로 반사적으로 몸을 뻗자 그 앞으로 김율이 막아섰다. 서이수는 그를 노려다 보다 이내 고개를 숙이며 이를 악물며 짓씹듯 말했다.
“난… 도무지 너희들의 생각을…!”
“입.”
김율이 그의 말을 자르며 단조롭게 말했다.
“다물고 있으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서이수는 그 말에 복잡한 감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하나 김율은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전방을 주시했다.
오.
김율은 나지막하게 감탄했다. 그의 눈동자 안엔 제 아가씨의 공격을 정통으로 맞았음에도 오롯이 일어나는 이가 있었다. 주인의 공격은 매섭다. 배를 맞았는데 등이 뚫릴 것 같은 날카로움이 있었다. 그런 공격은 막는다고 해도 쉽게 일어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단단히 섰고 그 상태로 자리를 박차 단숨에 제 주인에게 공격을 쇄도했다.
이전에 당했던 것을 갚아 주려는 듯 빠르고 위협적인 움직임이었다. 다리가 공기를 찢어 가르듯 내질러지고 주먹이 탄환처럼 빠르게 오갔다. 주인은 그 모든 공격을 피하고 막으며, 때로는 의도적으로 빗맞혔고 그 힘을 역이용해 공격하기도 했다. 하나 주인의 상대 또한 만만치는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격이 무뎌지기는커녕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스치기만 해도 피부를 찢어발길 것 같은 첨예함에 보는 이의 손끝이 저리게 만들었다.
훌륭하군.
김율은 주인의 상대를 주시하며 그렇게 평가했다. 역시 아가씨께서 눈여겨볼 만한 이라 이건가. 김율은 점점 흥미를 더해 가는 제 주인의 얼굴을 보았다. 웃음이 더 짙어질수록 그녀의 즐거움이 보이고 있었다.
‘저런 표정은 오랜만이군.’
보통 이쯤, 아니 이전에 싸움이 끝나는 게 태반이었다. 저런 표정은 일전에 고찬영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저 작은 몸에서 나오는 기백은 무얼까. 겨우 한 달 사이에 이전과 다른 분위기였다. 이전엔 잘 훈련받은 짐승이었다면, 현재는…,
‘산전수전을 전부 다 겪은 맹수.’
아니, 원래 그녀를 옥죄던 목줄이 풀린 건가. 저런 건 타고나는 것이다. 제 주인이 그러했듯 저이도 그러할 터다.
뭐, 그것도 그러하지만.
김율은 슬며시 시선을 틀었다.
“……!”
“…….”
그의 시선과 마주한 이는 살짝 몸을 움찔거렸다.
‘들켰나.’
아직까지도 오토바이의 엔진을 끄지 않으며 핸들을 움켜쥔 고찬영은 헬멧 안에서 쓰게 웃었다. 저 녀석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타이밍을 봐서 서이수와 친구를 구해 보려 하는데 저 멀대 같은 놈 때문에 쉽지가 않았다. 한 명이라면 금방 낚아채 올 수 있었으나 두 명을 한 번에 구하는 건 어떠려나.
고찬영은 힐끗 창고의 중심에서 화려하게 주먹다짐을 나누는 두 사람을 보았다. 양상은 점점 치열해져 갔고 이젠 막는 것보다 때리는 게 중심이 되어 피가 튀기고 있었다.
…대단한걸.
고찬영은 잡고 있는 핸들에 힘을 주었다. 보기만 해도 손이 근질거리는 싸움이었다. 고찬영은 살기 어린 미소를 짓고 있는 정태이를 보았다. 보기만 해도 등골에 전율이 일게 만드는 야생적인 모습. …자신에게도 저런 얼굴을 한 적이 있던가. 고찬영은 핸들을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금세 힘을 풀었다. 그러고서 두 눈을 질끈 감고서 호흡을 다잡더니 호기로운 미소를 띠며 자세를 바로 했다.
밑지고 봐야 본전이다.
서이수는 김율과 너무 가까이 있었다. 그렇다면…!
부아아앙-!!!
고찬영은 한순간에 오토바이의 속도를 가했다. 꺼지지 않았던 시동 덕에 오토바이는 빠른 속력으로 순식간에 목적지로 다가갔다.
“뭐…!”
“꺄악-!!”
백장미가 덮쳐 오는 소음에 황급히 뒤를 돌자 덥석, 커다란 손이 주연희의 몸을 번쩍 들어 올렸다. 가벼이 한 팔로 들어 올리는 것과 동시에 간격을 벌리던 찰나, 일순 고찬영의 눈매가 좁혀졌다.
끼이익-!
“어, 어…?”
곧 오토바이가 무리와 거리를 벌리고 바로 섰다. 주연희는 얼떨떨히 눈을 깜빡이며 덜렁 들린 제 몸을 멍하니 내려다봤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녀의 고개가 찬찬히 돌아가자 고찬영은 주연희의 허리를 둘렀던 팔을 풀어내며 제 뒤로 보내었다. 그러고선 오토바이에 수납된 맥가이버 칼로 그녀를 묶은 밧줄을 잘라 내며 상태를 확인했다.
“아가씨, 괜찮아?”
“어?”
이, 목소리는…? 낯익은 목소리였다. 아니, 이렇게 낮고 감미로운 미성은 그녀가 알기로 한 명뿐이었다.
“찬영이 선배…!!”
그 정체를 파악한 주연희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듬직한 아군이 저를 구해 준 것에 대한 안도일까, 안심 어린 눈가엔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이게 무슨…!”
갑작스럽게 인질을 하나 빼앗긴 백장미가 얼굴을 확 구겼다. 백장미는 멍청히 서 있는 김율을 향해 다가가 표독스럽게 쏘아붙였다.
“김율! 당신, 어째서 가만히 있던 거죠?! 당신이라면 저 정도의 기습을 충분히 막을 텐데요!”
당신 사대천왕 아니었냐며 노려보고 있자 김율은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여상히 대답했다.
“설마요.”
그러곤 그는 안타깝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저라고 해서 오토바이가 달려드는데 막을 수 있을 리 없잖습니까.”
“으읏…!! 그럼 저건 뭔데!!!”
백장미는 척, 하고 창고의 중앙을 가리켰다. 거기엔 누구도 쉬이 끼어들기 힘든 혈전의 장이 치열하게 치러지고 있었다.
“저렇게 바닥이고 물건이고 다 깨부수는데 오토바이를 못 막아?! 당신 서열 2위라며!!!”
무엇보다 서이나와 정태이가 지나가는 곳마다 멀쩡한 곳이 없었다. 쾅-!! 하고 내려찍는 발길에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이 으깨졌고 주먹이 지나가는 곳은 움푹 파이며 저게 진정 사람의 싸움인가 의심을 방불케 했다. 그러니 백장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같은 사대천왕, 서열 1위인 정태이의 직속 부하이자 교내 서열도 아닌 전국 서열 1위 바로 그 아래가 김율이었다. 멀쩡한 차체를 한 손으로 구기는 것도 모자라 콘크리트를 부수며 날고 기는 이들 사이에서 그 정도의 막강한 힘이 없을 리가 없었다.
“저와 도련님을 비교하면 곤란합니다.”
하지만 그런 반박에도 김율은 태연했다.
“도련님의 힘은 예전부터 논외였으니까요. 저도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고요. 또…,”
김율은 천연한 태도를 보이며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멍청한 얼굴로 저를 보고 있는 깡패들이었다.
“저는 나서는 것 없이 도련님의 뒤만 쫓아다닐 뿐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나요? 김율은 그들에게 태연자약히 동조를 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