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 패왕 VS 조커 (3)
거짓말.
고찬영은 그 말을 듣곤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방금 전 똑똑히 목격했다. 이 여학생을 데려오기 전, 김율이 저를 똑바로 보고 있었음을. 알고서도 그냥 보낸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찬영은 김율과 싸워 본 적은 없을지라도 그는 언제나 경계 대상이었다.
강한 자는 강한 자를 알아본다고 하던가. 고찬영은 원래부터 감이 뛰어난 사내였으나 김율에게선 정태이와는 다른 위험함을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압박감. 저런 부류는 난생처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고찬영은 오랜 시간을 살아오지 않았지만 최대한 좋게 말해도 그가 살아온 환경은 가히 안온했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 또한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피비린내가 나는 현장에서만 살았던 이다. 그 수많은 싸움터에서도 김율은 독보적이었다. ‘나서는 것 없이 정태우만 쫓아다닐 뿐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고찬영도 김율이 직접 움직이는 걸 본 적은 없었다. 제 상대는 언제나 정태이였고, 그 싸움에 김율이 간섭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고찬영도 김율의 저력은 자세히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절대 김율을 얕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저 시선이 마주치는 것만으로 숨통이 막히게 하는, 마치 순식간에 제 목숨이 날아갈 것 같은 이였다.
“뭐?”
그리고 김율의 말을 들은 백장미도 황당한 소리를 들은 것처럼 눈살을 확 찌푸렸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그녀의 매서운 눈이 김율의 시선이 향한 쪽으로 돌아갔다.
“트, 틀린 소린 아니지 않아?!”
“막말로 김율, 네가 대체 하는 게 뭔데? 저기 저 도련님 곁에 붙어 서서 아무것도 안 하는 새끼가!”
“줄 한번 잘 잡아서 승승장구하는 실력 없는 새끼를 대체 뭘 믿고…!”
그러자 백장미의 시선을 받은 이들이 바로 대꾸했다. 아무래도 불만이 꽤나 쌓였던 모양인지 김율을 적대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잠깐,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죠.”
그에 백장미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들을수록 어이가 없어 잠자코 있었더니 별의별 소리가 다 나왔다. 백장미는 사람을 고용할 때 신중한 편이었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모든 인적을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었다. 특히나 이번 일에 있어서 그녀는 아주 엄격히 인선했다. 이전의 실책이 있었던 만큼 더 꼼꼼히 말이다.
그런 만큼 백장미는 김율의 행적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의 행적은 표면에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김율 이자는….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아주 재밌는 걸 들었었지.”
그때 강태석이 히죽 웃으며 끼어들었다.
“김율, 니 새월동 58번지 출신이라며.”
“!”
“……?”
새월동? 58? 백장미는 그 말에 미간을 살풋 찌푸렸다. 본 적은 있다. 확실히 그의 인적 사항 중 특이 사항에 적혀 있었으나,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부분이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었던가. 백장미는 김율을 다시 보았다. 하지만 김율은 아까보다 눈만 살짝 커졌을 뿐 그리 다른 변화는 없었다.
“용케, 아셨군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김율이 덤덤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곤 여전히 무감한 얼굴로 그들을 보았다.
“지차용 이사입니까.”
그자가 그 일을 알려 준 건가. 묻는 그의 목소리는 평이했으나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이 눈동자의 온기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하, 그래, 시발. 내가 니처럼 도련님 뒤에만 붙어 있을 줄 알았냐? 이사님이 친히 불러 주셔서 나한테 말해 주셨다.”
“…….”
역시 그랬나. 김율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여전히 입이 참으로 가벼운 사람이군. 그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차분히 다시 눈을 들어 올렸다.
“새월동? 그 새월동 말입니까, 형님?”
“그래.”
“허, 미친. 대박이네, 시발.”
그런데 새월동이란 단어를 들은 깡패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경악하는 것 같으면서도 단번에 얼굴에 조롱이 피어났다.
“선배, 새월동이 뭐예요…?”
심상찮게 분위기가 돌아가자 주연희는 밧줄로 쓰린 제 팔을 쓸며 슬며시 물었다.
“…….”
하나 고찬영은 그에 대해 답하지 않았다. 헬멧 안으로 보이지 않는 얼굴이 감히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그에게는 고요한 침묵만이 남았다. 주연희도 자연히 입을 다물었으나, 그러한 의문은 오래지 않아 깡패의 말로 인해 풀어졌다.
“뭐야, 너 사창가 출신 주제에 그렇게 나댄 거야?”
그 말에 백장미와 주연희, 그리고 서이수의 눈이 대번에 커졌다. 고찬영은 그 말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새월동. 들어본 적이 있다. 아니, 사실 가 본 적이 있다. 오로지 정태이를 이기고픈 마음에 학생의 신분임에도 깡패 소굴을 드나들었던 그였다. 그러다 보면 깡패들이 자주 찾는 곳을 가는 건 필연이었다. 새월동은 그중 하나였고, 상대한 깡패들은 기억 못 할지언정 그 거리의 풍경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기억 중에서도 가장 불유쾌한 것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었다.
“와, 서열 2위? 이거 시발 믿을 수 있는 거 맞아?”
“야, 니 진짜 니 힘으로 올라온 거 맞냐?”
깡패들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으며 김율을 향해 이죽거렸다. 하지만 김율은 별 다른 타격이 없었는지 그들의 말을 무시하곤 차분히 강태석에게 물었다.
“지차용 이사가 어디까지 얘기했죠. 부디 제 얘기로 끝이었으면 하는군요.”
그들의 영양가 없는 말보단 그것이 더 중요했다. 설마 아가씨에 대한 이야기까지 했을까. 김율은 부디 제 기우로 끝나길 바랐다.
“아, 저거?”
피식, 강태석이 웃었다. 그 안에 담긴 조소에 김율의 낯은 전에 없이 싸늘해졌다.
“말조심하시죠. 도련님은 당신이 그렇게…,”
“도련님? 크하하하하!!!!”
커다란 폭소가 강태석이 터트렸다. 그 소리에 서이나의 발이 움칫, 멈췄다.
“니 눈깔 어데 파나!!!”
빡-!!! 그러자 정태이의 주먹이 서이나의 얼굴을 후려쳤다. 시야가 한순간에 점멸하는 일격에 서이나는 몸을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 이내 재빠르게 고개를 흔들곤 즉각 다가오는 다리를 맞받아쳤다.
땅-!!!!!!
“윽…!”
젠장! 서이나는 짓씹듯 이를 갈더니 빠르게 뒤로 몸을 물렸다.
밀리고 있다. 아주 근소한 차이지만 밀리고 있었다. 경험으로 어떻게든 커버하고 있지만 정태이 또한 평생을 싸움만 하고 살았다는 게 느껴졌다. 어떻게 사람이 저런 식으로 움직이지? 경이로운 신체 능력이었다. 서이나는 이를 빠득 갈며 자세를 다잡았다. 그리고 틈을 노리기 위한 주먹을 날렸다.
그것은 막힐 게 당연한 공격이라고, 서이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분명 그럴진대,
“네가 저 계집 발이나 핥았겠…, 버헉!!!”
빡-!!!!!!!!!!!!!
퍽-!!!!!!
쿠당탕-!!!!
예상치 못한 변수가 일어났다.
“……어?”
서이나는 굳은 채 자신의 주먹과 바닥에 넘어진 정태이를 멀거니 보았다. 이게, 왜 맞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서이나의 눈이 방황했다. 이대로 공격을 속행하면 카운터를 날릴 수 있었다. 그러면 자신의 승리였다. 하지만 어쩐지 굳은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럴 때 정태이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정통으로 맞은 주먹에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아, 젠장.”
주먹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정태이는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일어섰다. 시야가 잔뜩 흔들리는 탓에 몸이 휘청일지라도 그녀는 일어섰다. 그리고 이를 억세게 갈았다.
“시이발, 아까부터 거슬리게 자꾸 앞에서 구시렁구시렁. 구경을 할 거면 입이나 처다물고 하든지.”
서이나는 그 말에 그제야 주위를 둘러봤다. 경악으로 번진 침묵이 창고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것은 눈앞에 광경을 마주한 서이나도 마찬가지였다.
“뭐, 뭐야.”
저 사람, 왜 쓰러져 있지? 서이나는 당혹스러운 눈으로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강태석을 보았다. 그러다 그녀는 좀 더 먼 곳에 잔뜩 찌그러진 쇠 파이프 하나를 발견했다. 마치 무언가에 강하게 부딪힌 듯한 흔적이 보였다.
“설마….”
서이나는 얼굴을 굳히며 정태이를 보았다. 정태이는 몸을 비틀거리고 있었으나 그 눈만은 사납게 번뜩이고 있었다. 서이나는 저와 싸울 때와 다른 살기에 차츰 시선을 움직여 그 곁에 굴러다니는 쇠 파이프 몇 개를 보았다.
“…….”
서이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조용히 발을 뒤로 물리었다.
“김율, 니는 뭐 병신같이 처듣고 앉았냐.”
“도련,”
“그놈의 도련님-!!!!”
피부를 저릿하게 만드는 고함이 창고를 울렸다. 그 사나운 기백에 다수가 몸을 긴장시켰다. 하나 그녀의 분노를 그치지 않았다.
“니는 지금 그 말이 나오냐, 어?!”
“…….”
“하, 그래. 이제 개나 소나 다 아는데 뭔 말이 필요하냐. 이제 그딴 말 치아라.”
정태이는 자꾸만 흔들리는 시야에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였다. 그러고선 숨을 깊게 내쉬어 흔들리는 자세를 바로 했다. 곧 어깨를 곧게 편 정태이는 얼굴에 힘을 주며 외쳤다.
“그래, 여자다!!!”
척, 정태이는 발을 한 걸음 내디뎠다.
“내는 여자고, 이름도 정태우도 아니고 정 태 자 이 자. 정태이다-!!!!”
팍! 거칠게 가슴을 두드리며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거기에 불만 있는 새끼는 당장 튀어나와!!!”
뚜두둑. 그녀는 뼈 소리를 살벌히 울리며 스산히 얼굴을 가라앉혔다.
“그 아가리 다시는 못 짖게 찢어 주마.”
숨 막히는 공기가 창고를 짓눌렀다. 정태이의 기백에 짓눌린 이들은 그녀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하나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제야 보지 못했던 처참한 사투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보인 탓이었다.
망했다. 그들은 제 실수를 그제야 알았다. 서열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에 있는 말단 주제에 상위의 포식자의 성질을 건드렸다. 피투성이에 몸이 비틀거리고 있음에도 감히 쳐다보지 못할 위압이었다.
그게 바로 서열 1위. 패왕 정태우, 아니 정태이였다.
아무도 부정 못 할 최강이 눈앞에 있다. 그에 반박할 이는 없었다.
…그래야 했을 터였다.
짝, 짝, 짝-.
“-!”
난데없는 불청객이 끼어든 건 그 순간이었다. 묵직한 박수 소리에 창고 안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그 중심으로 향했다. 그리고 정태이의 눈은 살벌히 찌푸려졌다.
“니…!”
“이야- 여전히 시원시원하지 않습니까, 아가씨.”
두꺼운 손에 낀 금반지가 빛났다. 그 반지들의 주인은 손만큼이나 두터운 풍채를 자랑하고 있었다.
“지차용, 니… 여는 무슨 일로 왔나.”
갑작스레 난입한 이는 지차용이었다. 그는 흑룡파의 간부이자 이사였으며,
“별건 아닙니다. 아가씨가 아-주 재밌는 소릴 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또한,
“불만이 있는 사람, 여 있지 않습니까.”
정태이를 적대하는 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