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 반란 (5)
“하하, 놀란 표정이네, 한도훈? 그런데 이걸 어떡해. 내가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리 없잖아?”
지금은 이대로 인질과 함께 후퇴를 하고 다음을 기약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래서 백장미는 한도훈을 견제한 채 조폭을 향해 손짓하며 발을 뒤로 물렸다. ‘이대로 뒷문을 통해 빠져나간다.’ 그 뜻을 헤아린 조폭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이수를 끌고 가려 힘을 주었다.
“…야. 이 손 놓지?”
“!”
그런데 움직이지 않는다. 게다가 목을 겨눈 손까지도 붙잡힌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깡패는 당황했으나 이내 초조히 그 몸을 끌어당겼다.
“잔말 말고 따라와 새…! 어?”
잠깐. 손이… 붙잡혀? 순간적으로 스치는 생각에 아연한 낯이 되었다. 그러나 이미 늦은 뒤였다.
빡-!! 깡패의 손을 거세게 뿌리친 주먹이 그의 얼굴에 강하게 박혔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기습을 당한 깡패는 반응도 못 하고 맥없이 쓰러졌다.
“으아아악… 내 갈비이이이….”
그러고서 서이수는 다시 풀썩 주저앉아 제 갈비뼈를 붙잡고 통증을 호소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이 상황을 선뜻 이해하질 못했다. 그 한가운데에 있던 백장미는 그 광경을 아연히 지켜보다가 뒤늦게 소리쳤다.
“이게 무슨…!”
그녀의 눈이 재빨리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밧줄은 어느새 끊겨셔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날카로운 것에 절단이 된 듯 깔끔히 끊긴 듯해 보였다. 칼? 칼인가? 그녀의 눈이 빠르게 그와 비슷한 것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곧바로 그녀는 금방 원하는 것을 발견했다.
“!!!!!”
어이없는 광경이 눈에 띄자 그녀의 눈이 대차게 일그러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정태이!”
백장미의 시선이 빠르게 정태이에게로 향했다.
“왜, 왜 저 칼이 저 녀석한테 있는 거야!”
저것은 분명 강태석이 떨어트리고 정태이가 바닥에서 주워 서이수를 겨누었던 잭나이프였다. 정태이란 사람이 저런 것을 소홀히 다룰 리가 없었다. 그것도 인질의 옆에, 우연히 떨어트릴 확률이 없었다.
그러니 즉,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했다.
“나를… 배신한 거야?!”
“아.”
배신감에 치를 떨며 그녀를 노려보자 정태이는 능청스럽게 중얼거리렸다. 그러곤 히죽, 웃음을 그리며 백장미를 향해 시선을 들어 보였다.
“들켰네?”
그것은 장난에 성공한 짓궂은 악동의 미소였다.
“대체 왜…! 뭐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건데!!”
“그야-,”
백장미가 어처구니가 없어 화를 냈으나 정태이는 신경 쓰는 기색이 일절 없었다. 그녀는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툭, 대답했다.
“재수 없어서?”
“뭐?”
너무나도 황당한 답변에 그녀의 낯이 벙찌었다. 재수가 없어서?
“…겨우, 그따위 이유로?”
“더 이유가 필요하나? 니 진짜 성가시네-.”
백장미는 헛숨을 내뱉으며 기막히다는 듯 대꾸하자 정태이는 되레 귀찮다는 것처럼 머리를 성의 없이 긁적였다.
“그라믄 뭐,”
결국 정태이는 인심 썼다는 것처럼 코웃음을 치며 말을 덧붙였다.
“조폭의 말 따위를 와 믿나?”
“무슨, …!”
백장미는 무슨 헛소리냐고 반박하려던 찰나,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말에 흠칫, 몸을 굳혔다.
‘조폭이랑 한 약속을 믿었어요?’
“…당신, 설마 방금 전 내가 한 말로, 겨우 그딴 걸로 이러는 거야?”
설마, 정말로? 믿기 힘든 일에 백장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하나 정태이는 그 소리에 눈썹을 살풋 치켜올리더니 피식, 조소를 흘렸다.
“니, 목표가 최강 그룹의 안주인, 뭐 이랬던가.”
“!”
그 소리에 백장미가 움찔 몸을 떨었고, 최강혁의 눈이 불쾌히 일그러졌다.
“목표? 크게 잡는 거 좋지-, 좋은데.”
정태이는 그런 반응 따위 하등 신경 쓰지 않은 듯 대충 머리를 휘적였다.
“사람을 부릴 거면 존중하는 법부터 배워라, 이 가스나야.”
일순 짜증스럽게 낯을 일그러트린 정태이는 차분히 그녀에게 경고했다. 맹수를 조련할 거면서 그 심기부터 거스르면 어쩌자는 건지. 이래서 온실 속 화초들이란. 그녀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백장미는 그런 정태이를 보며 더없이 황망한 낯을 하였다. 그녀에게 있어서 이런 수모는 단연코 처음이었다. 그녀의 아랫사람들은 언제나 그녀에게 복종했다. 어떤 말을 듣든… 어떤 폭언을 듣든 당연히 그녀의 뜻대로 따랐다. 그것은 저 또한 마찬가지였다. 설마 말 한마디 따위로 이런 배신을 당할 거라곤 전혀 생각지를 못했던 그녀는 허가 제대로 찔린 사람처럼 말을 잃고 말았다.
대항한다고? 내게? 왜? 어째서? 부하잖아? 왜?
이해할 수 없는 사태에 그녀의 머리가 어지럽게 꼬여 갔다. 그래서 그녀는 뒤이은 정태이의 행동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뭐- 대충 그러한 이유로…, 율아.”
“네.”
정태이가 몸을 돌이켰다. 그러고선 김율을 불렀다.
“지차용이 잡아라.”
저 새끼는 반드시 제 손으로 죽여 버릴 테니까. 감히 넘보면 안 될 자리를 탐낸 그 만용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이번에야말로 똑똑히 알려 주리라.
“알겠습니다.”
김율은 그와 동시에 빠르게 다른 손에서 단도를 빼 지차용에게 투척했다.
챙-!!!
그러나 그 단도는 그에게서 시선을 단 한시도 떼어 놓지 않던 제이의 낫에 의해 방해됐다. 진로가 막힌 단도는 힘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히히, 히히히. 아, 안 돼. 히히.”
갑작스러운 공격에 반응하지 못했던 지차용은 바닥에 굴러다닌 단도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는 이를 강하게 물며 소리쳤다.
“이익…!! 어이, 저 아가씨 데리고 와! 어서!! 그리고 당장 저년을 밟아-!!!!!”
이젠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대로 잡힐 수도 없는 노릇, 그럴 바엔 정태이의 숨통을 여기서 완전히 끊어야 했다. 하지만 백화 재단의 아가씨까지 다치게 만들 순 없었기에 그녀의 근처에 있던 부하에게 재빨리 명령하며 총공격을 내렸다. 그러자 선뜻 망설이던 이들이 연장을 다잡았다.
“개판이군.”
그에 최강혁이 성가시다는 듯 짧게 내뱉었다.
“와, 기분 나빠. 여기서 너랑 똑같은 생각을 하다니.”
그리고 그 말에 한도훈이 동조했다. 한도훈은 불쾌히 그를 보는 것도 잠시, 곧 눈을 내리깔며 강하게 소리쳤다.
“야, 들었지!!! 저 자식 잡아-!!!!”
“어? 이제 나와도 돼? 오케 오케!!”
그러자 명랑한 목소리와 함께 분홍빛이 그들 사이를 스쳤다.
“-!!”
“안뇽, 아저씨?”
그리고 빠르게 파고든 한 분홍 머리의 소년이 지차용의 앞에 자리 잡았다.
“뭔진 모르겠지만, 실례할게-요!!!”
히죽, 해맑게 웃은 이윤은 이내 차갑게 표정을 일변하며 빠르게 도약했다.
탕-!!!
“크, 윽-!!!”
지차용은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도약과 회전이 동시에 이루어진 각력을 막았다. 작은 체구에서 보기 힘든 힘에 그의 몸이 살짝 밀렸다.
“왜, 나를…!”
그는 빠르게 이윤과 거리를 벌리며 이 갑작스러운 사태의 원흉인 한도훈을 노려봤다. 볼일은 저기 있는 인질에게만 있던 게 아니었나. 하지만 한도훈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당연히 성의지.”
그는 척, 창고의 안쪽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이 난전에서 김율이랑 싸우기 싫거든.”
그러니 이렇게 나오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역시 소문대로의 영민함이십니다. 한도훈 님. 현명한 판단에 감탄을.”
김율은 그에 호응하듯 대꾸했다.
“아가씨라면 거절하실지 몰라도 저는 기꺼이 응해 드리지요.”
그는 척, 몸을 낮추며 제이를 향해 시선을 집중시켰다.
“너의 아가씨는 훌륭한 부하를 뒀어. 대화가 편해서 좋은데?”
그에 한도훈이 히죽 웃었다. 그 대화를 듣던 지차용은 황당한 마음이 앞섰으나 곧 정신을 차리곤 소리쳤다.
“정태이, 정태이를 쓰러트린 녀석에게 포상을 주마! 상금은 10억! 그리고 간부진을 약속한다!!!”
그 소리에 선뜻 나서길 머뭇거리던 이들의 표정이 일변했다. 10억과 간부진. 평생을 걸쳐도 감히 넘보기 힘든 금액과 직위에 망설이던 낌새가 완전히 사라졌다.
“와, 임기응변 쩌네.”
한도훈은 그에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내 그 또한 표정을 굳혔다.
“으아아-!!!”
“비켜, 새꺄-!!!”
의기를 다잡은 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뭐, 좋아. 한번 해 보자고.
한도훈은 피로해진 정신을 다시금 잡으며 자세를 잡았다. 쇠파이프 하나가 저를 향해 쇄도했다. 그는 그것을 피하기 위해 발을 움직이던 찰나, 그 공격은 다른 이에게 돌발적으로 막혔다.
빡-!!!
가볍게 날아가는 깡패의 몸을 한도훈이 부릅뜨고 보자 곧 가볍게 땅에 착지한 이윤이 볼을 부풀리며 소리쳤다.
“도훈이는 안 돼!! 얼마나 고생했다구!”
그러고선 그는 헤죽 웃으며 한도훈을 돌아봤다.
“오늘은 내가 지켜 줄 테니까 안심해!”
해맑은 그 얼굴에 한도훈은 잠시 벙쪘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되찾은 그의 얼굴은 대차게 찌푸려지곤 버럭 소리쳤다.
“필요 없어, 새꺄-!!!!”
챙, 챙, 캉-!!!
그 소음을 뒷전으로 창고 안에선 빠르게 칼과 낫이 부딪혔다. 눈이 따라잡기 힘든 공방이 서로를 향해 쏟아졌다. 김율은 제게 내리꽂히는 낫을 흘려 낸 후 재빠르게 다리를 휘둘러 그 몸을 걷어찼다.
빡-!!!
그에 옆구리를 얻어맞아 날아간 제이는 잠시 몸을 주춤거리다가 금세 바로 섰다. 그러고선 곧장 그에게 공격을 재개했다.
카앙-!!!!
끼기긱, 부딪힌 칼날이 힘을 겨루듯 마찰이 이어졌다. 김율은 그것을 받아 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이. 당신은 어째서 저쪽에 붙은 거죠.”
이 상황이 어떻게 초래되었는지 들었으면서도 어째서는 주인의 발길을 막으려 드는가. 용조, 즉 용의 발톱이라 불린다는 건 흑룡을 상징하는 보스의 수족이라는 의미였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곧 용조들은 후계자를 공격할 의미가 없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지차용이 그들을 키웠다 한들 그들은 쉬이 움직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용조란 녀석들은…,
“아가씨를 따르려 했던 게 아니었던가요.”
정태이를 지지하고 있었다. 일곱 살. 그 어린 소녀가 저를 이겼던 그 순간부터 그들의 뇌리엔 그녀가 강렬히 새겨져 있었다.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압도적인 힘에 굴복했을 터인데 어째서 이런 어리석은 짓을.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김율은 그 연유를 묻고 있었다.
“히, 히히. 마, 맞아. 아가씨, 최, 최고야.”
제이는 히죽 웃으며 그 말에 동조했다. 행동과 다른 그 말에 김율의 눈이 살풋 좁혀졌다.
“그런데 왜…”
“유, 유리가, 먼저 시작, 했어, 히히히.”
치사해, 유리. 히히 하고 웃는 그의 눈이 어지러운 광기로 덮여 있었다. 그 소리에 움칫, 김율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조용히 그를 보자 제이가 입꼬리를 더 끌어 올리며 말했다.
“보, 보스가 아, 안 되면, 히힛. 내, 내 거가, 될 수, 되, 될 수 있다고, 그, 그랬어. 히히히.”
제이는 제 손에 든 낫을 더 강하게 잡았다. 마른 체구에 비해 강한 힘이 짓눌러졌다. 그는 몸을 더 숙이며 광기에 젖은 눈으로 저 너머에 있는 정태이를 향했다.
“내 거, 히히히, 그, 그니까,”
“-거기까지 하죠.”
후우. 김율은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러곤 차분히 눈을 가라앉히며 스산히 중얼거렸다.
“저 XXXX가, 별 XXXXXX 같은 짓거리를 해 놨군.”
“-엇.”
제이는 순간 그 말에 몸을 흠칫 떨었다. 방금, 그건…? 상황을 파악한 그의 안색이 더없이 창백해지던 찰나였다.
“제이.”
흠칫! 제이는 그 부름에 본능적으로 몸을 굳히며 물러서려 했다. 하나 김율은 물러서려는 그의 어깨를 돌연 꽉 붙잡았다. 그는 그 상태로 그에게 서슬 퍼렇게 뇌까렸다.
“그 XX 같은 정신, 다시 한번 잡아 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