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93화 (293/306)

293. Final Round (2)

‘친구님, 공격에 너무 요령이 없어. 그럼 안 돼.’

‘선수 스타일이네요.’

‘음… 누나가 정말 강한 건 잘 알지만, 너무 성실한 느낌이 없잖아 있는 거 같아요.’

‘누나 짱 세다! 진짜 교과서 같아요!!’

‘너무 정직해.’

아이들은 내게 말했다. 딱 정석과도 같은 선수 스타일이라고. 20년 넘도록 고착화된 스타일은 쉬이 바뀌는 게 아니었다. 경기의 룰은 내 몸을 지배했다. 그렇기에 정말 위협적인 공격은 본능적으로 자제했고, 반칙이라 생각되는 행위는 무의식적으로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런 걸 염려하고 있을 정도로 만만한 상대가 안 되었다. 그러니까 완전히는 불가능할지라도…

“…그에 맞게 응대를 해 주는 게 맞지-!!!”

후욱-!!!

나는 신속히 주먹을 내질렀다.

타앙-!!

“!”

정태이가 빠르게 팔을 들어 막았다. 하나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옆구리를 걷어찼다.

“크읏…!”

탄환처럼 뻗은 다리에 정태이의 몸이 옆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나도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정태이 같은 살수는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내게도 나만의 방법이 있다.

조잡한 수는 방금 그것으로 끝이다. 그럼 내게 남은 것은 단 하나. 종합 격투기 룰에서 위반되는 반칙 기술을 나도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아빠, 미안.’

이 순간 나는 무도인의 지존심이고 뭐고 내던졌다. 나는 정태이가 잠시 주춤거리는 틈을 타 팔을 치켜든 채 도약했다. 그리고 그대로 팔꿈치를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

그러나 정태이는 가까스로 고개를 뒤로 빼며 공격을 피해 냈다.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설 듯 싶자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다리를 걷어찼다.

“읏…!”

중심이 완전히 흔들렸다. 제대로 몸을 지탱하기 전 나는 다시 몸을 도약했다. 그리고 무릎을 세워 그녀를 향해 내리찍었다.

쾅-!!

“칫…!”

하지만 그 공격은 빗나갔다. 무릎은 그녀의 몸이 아닌 바닥으로 직행했고, 추돌에 의한 파훼된 흔적만이 움푹 남게 되었다. 나는 그녀가 반격할 성싶어 혀를 차며 곧장 몸을 일으킨 후 거리를 벌렸다.

“-하.”

그런데 정태이가 돌연 웃음을 가벼이 터트렸다. 그러곤 그녀는 안광을 번뜩이며 짙은 웃음을 그렸다.

“멋지군.”

광기가 얼핏 어린 듯 싶자 그녀의 몸이 일순 사라졌다.

“!”

나는 바로 몸을 꺾었다. 그러자 그녀의 다리가 내 턱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다리는 곧장 수직으로 낙하했다. 하지만 그 공격은 닿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몸을 틀어 피했고 그 반동을 축으로 삼아 돈 후 안쪽에 파고들어 주먹과 팔꿈치를 퍼붓고 다리를 차올렸다.

훅, 후욱, 후웅-!!

하나 그 공격들은 간발의 차로 맞지 않았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모조리 피하는 꼴에 이가 저절로 갈렸다.

“제법인데-!”

게다가 그와 별개로 정태이의 사기를 고양시켰다. 그녀의 표정은 야생적이었으며 전에 없이 들떴으며 기쁨으로 흘러넘치고 있었다.

당신은 진짜…!

“어떻게 그렇게 즐기는 거야!!”

나는 바닥을 강하게 박찬 후 그대로 몸을 회전시켜 회전력과 중력을 이용해 다리를 내리찍었다.

빡-!!!!

공기를 저릿하게 울리는 파열음이 창고를 한순간에 뒤덮었다.

“칫…!!”

촤아악-! 나를 혀를 차며 바로 뒤로 훌쩍 넘어갔다. 한순간에 다리를 제 두 팔로 교차시켜 막아 낸 정태이는 그 팔을 그대로 고정하며 잠시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 빈틈에 바로 그녀를 향해 뛰쳐나갔다. 이대로 끝낸다!

나는 바닥을 박차며 다리 하나에 온 힘을 실었다. 그리고 내지르려던 순간,

덥석.

“-!!!!”

다리가, 잡혔다.

그리고 동시에 다리를 잡고 있는 손에 억센 힘이 들어갔고 그대로 내 몸이 허공에 가뿐히 들려 바닥에 내려 찍혔다.

“크…윽…!!!”

콰앙-!!! 단단한 바닥에 거세게 부딪힌 전 반사적으로 머리를 감쌌다. 하지만 전신을 뒤덮는 고통은 막질 못해 한순간 숨이 막혀 왔다. 눈앞에 섬광이 하얗게 번쩍이며 일순 의식마저 날아갔다.

이건, 위험…하다.

나는 온 근육이 경직되는 것 같은 강한 격통에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내 몸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진 순간,

“누나-!!!!”

나는 숨을 들이켰다.

쾅-!!!

“……허.”

정태이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니는 이걸 또 피하나. 진짜 끈질기네.”

“…그런 말 하는 것치곤 엄청 즐거워 보이는데.”

아슬아슬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진짜 뒤질 뻔했다. 내 말에 정태이는 즐거운 낯을 더 깊게 그리듯 히죽 웃었다. 나는 그 얼굴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가쁜 숨을 몰아쉰 채 욱신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힐끗 방금 전 목소리의 진원지를 확인했다.

‘방금 전은, 이수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서이수는 내가 무사한 걸 확인하곤 안도의 색을 띠고 있었다. 나 또한 동생의 안전을 다시금 확인했다. 고찬영이 옆에 있으니 괜찮겠… 거니 했는데, 얘 어디 간 거야?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와장창-!!

“창문-!!”

고찬영이 황급히 외쳤다. 타고 있던 오토바이의 시동을 재차 걸며 움직이려던 순간,

“어.”

그리고 나는 보았다. 어둠 속에서 잠깐 일렁이던 인영을.

잠깐. 저거 뭐야.

눈을 부릅뜨고 보는 순간, 오토바이의 헤드라이트가 정확히 서이수의 쪽을 비추었다.

누군가, 배후에. 서이수의 등 뒤에 각목을 들고 서 있었다.

“-이수야, 뒤-!!!!”

나는 사색이 되어 대번에 소리쳤다. 그에 다가오던 정태이가 멈칫하며 그녀 또한 그쪽을 보았다.

“뭐….”

서이수는 내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드리워진 그림자에 눈을 크게 떴다. 그 각목이 그에게 닿던 찰나,

뻥-!!!!

내 눈이 크게 떠졌다. 그리고 서이수의 눈도 천천히 깜빡여졌다.

쿵-.

그 옆에 장정 한 명이 바닥에 쓰러졌다.

“어….”

나는 그 광경을 똑똑히 지켜보며 아연히 중얼거렸다.

“이수야, 괜찮아?!”

그리고 챙그랑, 소리와 함께 쇠 파이프 하나가 바닥을 뒹굴며 익숙한 얼굴이 서이수 앞에 무릎 꿇었다. 서이수는 눈앞에 있는 이를 보며 얼떨떨한 낯으로 입을 열었다.

“재현이? 어…?”

“괜찮아, 이수야?”

그 정체는 이재현이었다. 정말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타난 원군이었다. 그런데… 방금 이재현 저 녀석, 쇠 파이프로 후려친 거, 맞지? 보고도 믿기지 않아 나도 서이수도 벙쪄 있는데 이재현은 서이수의 얼굴 곳곳을 확인했다. 그러곤 만신창이가 된 그의 모습을 보곤 제가 아픈 듯 낯을 강하게 찌푸리더니 이를 아득 깨물었다.

“감히 내 친구를…,”

이재현은 바닥에 내팽개쳐진 쇠 파이프를 다시 들었다. 그러곤 점차 들이닥쳐 오는 깡패들을 향해 뻗으며 그들을 죽일 듯 노려봤다.

“절대 용서 못 해.”

“…….”

아니, 저기 재현아. 그건 그쪽이 아니라 이쪽…. 나는 슬며시 정태이를 눈짓했으나 그녀는 난데없는 또 다른 인물의 등장에 눈썹을 휘며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그러곤 곧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점마도 인기 참 좋네, 좋아.”

그녀는 서이수를 흘끔 본 후 그 앞에 호위처럼 듬직하게 선 이재현의 자태를 훑었다. 고고하도록 위험한 기운을 흘러넘치고 있는 그의 기세는 나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가까이 다가서기만 해도 피부가 저릴 듯한 살기를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정태이는 ‘꽤 쓸 만해 보이는데?’ 하고 흥미롭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얼굴을 굳히며 단호히 대답했다.

“눈독 들이지 마. 쟨 이런 곳에 어울리는 애가 아니야.”

재능은 아쉽지만 그는 이런 피가 튀기는 장소엔 어울리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물불 가릴 새 없이 화가 난 것 같긴 하지만. 앞으로 재현이는 화나게 만들면 안 되겠다고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흠, 그래? 그라믄 아쉽구마이.”

아니나 다를까 싸워 보고 싶었던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바람 빠진 소리를 흘렸다.

“너… 진짜 싸우는 거 좋아하는구나.”

“? 니, 아까부터 그 소리를 하는데 대체 뭔 개소리고.”

나는 그 말에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정태이는 내 말의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떨떠름히 눈썹을 찌푸린 채 말했다.

“재미고 뭐고 필요하니 그냥 하는 거지. 그리고 이왕 하는 거 즐기면 그만 아이가.”

그러고선 그녀는 하잘것없는 것을 생각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툭, 내뱉었다.

“니는 재미도 없는 걸 그냥 하나.”

“!”

나는 어딘가 머리가 둔탁한 무언가에 맞은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무언가… 결정적으로 달랐다.

“어이.”

잠깐 정신이 멍해지자 그걸 간파한 정태이가 못마땅히 나를 불렀다. 그에 나는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선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아니. 나도 운동은 좋아해.”

운동은 좋아한다. 땀을 흘리며 느끼는 고양감. 그리고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늘어나는 향상에 대한 성취감. 그 모든 건 좋아한다. 하지만 어딘가 달랐다. 그녀와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었다.

잡힐 듯 말 듯 한 무언가가 아른거렸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펴며 몇 번이고 이 감정에 대해 곱씹었다.

무엇이 다를까, 무엇이 다른 건가.

‘재미고 뭐고 필요하니 그냥 하는 거지. 그리고 이왕 하는 거 즐기면 그만 아이가.’

…아. 그리고 나는 불현듯 그 차이를 깨달았다.

나는….

‘나는, 그냥 즐기고 싶었던 거구나.’

순전히, 그대로. 이름도 명예도 얽매이지 않은 채 단순히 즐기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나는 너를 부러워했던 것이다. 억압된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즐거움을 찾은 네가. 그토록 부러웠고 그렇기에 동경한 것이다.

하. 나는 허탈한 깨달음에 스스로를 향해 가벼운 조소를 날렸다.

“…진짜 한심하네.”

나는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손끝에 피가 굳어 생긴 가루가 바스락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가벼이 털어 냈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들어 눈앞에 있는 이를 똑바로 보았다.

“정태이.”

“음?”

내 부름에 그녀가 눈을 샐쭉 뜨며 반응했다. 친절히 기다려 주는 그 모습은 역시 그녀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질문 하나를 툭 내던졌다.

“1위의 자리는 어때.”

“흐음?”

정태이는 뜬금없는 질문에 고개를 기울였다. 잠시간 내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듯 물끄러미 보던 그녀는 곧 코웃음을 잘게 흘리며 툭, 내뱉었다.

“글쎄. 내한텐 너무 당연한 자리라서.”

그렇겠지. 나는 그 당연한 말에 부정조차 들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말과 행동은 거칠지만 그 배포가 너무나도 컸다. 정말로 이런 사람이 그 흑룡파라는 조직을 맡으면 어떻게 될까.

“그렇겠지. …근데 미안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오늘로서 그 자리는 끝날 거 같다.”

왜냐하면,

“정말로- 널 이기고 싶어졌거든.”

너의 위치에서 선 나는 여전히 똑같은지 확인해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후계는 포기해. 정태이.”

나는 그녀를 똑바로 보며 다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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