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95화 (295/306)

295. Final Round (4)

머지않은 훗날, 나는 생각했다.

이날의 일은 두 번 다시 겪지 못할 경험이며, 평생에 있어 잊지 못할 기억이었노라고.

***

우와아아아-!!!!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무언가가 강렬히 부서지는 소리도,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신음도 모두 한군데에 복잡하게 뒤섞였다.

그리고 그 중심엔 압도적인 기량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콰앙-!!!

그것은 수라와도 같았고,

퍼억-!!! 콰직, 쿵-!!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혈투였으며, 모든 걸 부수는 폭풍과도 같은 재해 같았다.

펑-!!!!

그렇기에 짐승의 포효와도 같은 두 존재가 스친 궤적엔 거센 바람이 지나간 것 같은 참상만이 남았다.

공격이 방어가 되고, 방어가 곧 공격이 되었다. 질풍과도 같은 노도의 현장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되게 만들었다.

“짱이다….”

어떤 이는 경외감을 느끼며 의식지 못한 사이 홀린 듯 중얼거렸으며.

“크윽…!”

어떤 이는 그 재해와도 같은 광경에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낯을 굳히며 지차용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주먹이 닿는 대로, 발이 뻗는 대로 모든 것이 파훼되었고, 자신의 부하들은 종이처럼 휘날렸다. 수는 압도적일지 몰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형국에 그의 얼굴은 펴질 줄 몰랐다.

밖에 있던 녀석들은 거의 다 당했다. 어디서 튀어나온지 모를 녀석들이 최강혁과 한도훈을 주축으로 휩쓸렸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안으로 침입한 녀석들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정태이와 정체 모를 계집에 의해 장난감처럼 내던져지고 방패막이가 되며 박살이 났고, 다른 녀석들은 반휘혈과 김율, 그리고 재수 없는 고찬영에 의해 가차 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이젠 정말 시간이 없었다.

이 상태로는 싸움의 행방을 좀체 알 수가 없었다. 상상 이상으로 정체 모를 년이 잘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정태이가 이겨선 안 된다. 그것만은 절대로 안 되었다.

‘그렇다면-,’

그는 초조하게 이를 악물며 품을 뒤적였다. 그러고서 묵직하고도 차가운 철의 감촉을 단단히 잡으며 그것을 빠르게 꺼내 들었다.

“어이.”

“?!”

그러나 그 손은 품속에서 다 빼기도 전에 다른 손에 의해 막히었다.

“개수작 부리지 마.”

“큭…!”

꽈드득. 붙잡힌 지차용의 손이 기이하게 비틀리며 품 안에서 잡았던 것을 놓쳤다. 그러자 물건은 힘없이 바닥에 추락해 바닥을 데구르르 굴렀다.

“어, 총??”

그러자 다가오던 이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 정체를 보곤 입을 벌렸다. 최강혁은 그것을 보며 가볍게 조소를 흘리고는 잡은 손을 더 꺾었다.

“어른이 되어서 이딴 야비한 방법을 쓰면 되나.”

“크으… 아…!!”

대체 언제부터! 지차용은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는 아연히 낯을 굳혔다.

전패.

남아 있는 자신의 부하는 없었다.

“그건 그렇고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총기 소지국이 된 걸까.”

다정한이 떨어진 총을 주워 들며 어이없단 듯 중얼거렸다. 최강혁은 코웃음을 치며 지차용의 다리를 걷어찼다. 퍽! 강한 타격에 커다란 거구가 하릴없이 무너졌다. 최강혁은 그의 팔을 꺾어 뒤로 빼며 그를 완전히 제압하며 그에게 경고했다.

“이런 재밌는 광경, 흔히 있지 않다고. 방해할 생각 마. 아저씨.”

뚜둑.

“-!!!!!!!!!”

뼈가 으스러졌다. 말도 안 되는 악력에 지차용의 입이 고통으로 벌어졌다. 눈앞이 새하얘지는 순간의 고통에 그는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숨을 들이켰다.

“혁이 넌 누가 이길 것 같아?”

다정한이 최강혁에게 다가와 여상히 물었다. 커다란 거구가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것을 하등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최강혁도 바르작거리고 있는 거구를 깔아뭉갠 채 태연히 대답했다.

“하, 그야 뻔하지.”

그의 시선은 단호히 한곳에 시선이 박혔다. 다정한은 그의 시선이 도착한 곳을 따라가곤 의뭉스러운 미소를 깊게 지었다. 그런 다정한의 시선 따위 무시한 채 최강혁은 가벼이 코웃음을 쳤다.

“지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이 땅콩 선배야.”

날 이겼으니 저 녀석이 이기는 게 당연하잖아. 아무도 들리지 않을 작은 속삭임이 그의 입에서 나직하게 흘러나왔다.

***

얼마나 많은 합이 오갔는지 모르겠다.

퍽-! 쾅! 쿵!!

정태이의 공격을 유도하며 적을 유린했고, 또 그녀를 꺾기 위해 공격했다. 수많은 주먹이 오갔고, 다리를 내질렀다.

탕, 팡, 퍼억-!!

이렇게 오래도록 싸워 본 것은 처음이었다.

콰직, 쿠웅-!! 쾅!!!

이렇게 전신이 고양된 것도 처음이었다.

쿵쾅쿵쾅. 미칠 듯이 뛰는 심장이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빡-!!!

나는 습격하는 그녀의 주먹을 피하기 위해 벽을 박차 공중으로 도약했다. 부서진 나무의 파편이 내 볼을 스쳐 지나갔다. 그 모든 순간이 느릿하게 시야에 잡혔다. 나는 가볍게 몸이 공중에서 회전했고, 그대로 다리를 내질러 그녀의 뒤에 있는 깡패의 머리를 거세게 짓밟았다.

퍽-!!

그리고 그 머리를 받침대 삼아 나는 그녀를 향해 뛰어올랐다.

쾅-!!!

내지른 다리가 그녀의 팔에 의해 막히었다.

“크, 읏…!!”

아직까지도 굳센 철심과 같이 단단한 몸에, 나는 이를 악물며 뻗은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정태이의 몸이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읏-!!”

그녀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러고선 이를 악물며 자리를 박차 몸을 물리었다.

“윽!”

갑자기 물러난 몸에 중심을 잃은 나는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하지만 곧 이를 아득 깨물며 눈에 힘을 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아, 하아. 어느샌가 고요해진 창고 내부에 거친 숨소리가 울렸다. 나는 피인지 땀인지 모를 것을 손으로 거칠게 닦아 내며 정태이를 바라보았다.

퉤. 정태이는 입안에 고인 침을 거칠게 뱉어냈다. 그러고선 얼굴을 쓸어 올려 미처 흐르지 못한 피와 땀을 털어 냈다. 대충 올려진 머리가 반쯤 다시 아래로 흐트러지며 내려왔다.

“…만신창이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꼴을 지적했다.

“그건 니겠지.”

그에 정태이도 히죽 웃으며 대꾸했다.

정말 한 치도 물러서지 않네. 나는 눈앞에 있는 미친 천재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진짜 대단하네.

내가 20년이 넘도록 쌓아 온 걸 이렇게까지 따라잡다니. 아니, 이길 수는 있나? 모르겠다. 전에 살았던 세계의 너도 이런 천재였을까. 하하…. 정말이지, 막연한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정태이.”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세계의 정태이다.

그러니,

“이제 끝내자.”

나는 너와 결판을 낼 것이다.

“-그래.”

정태이의 미소가 일순 짙어졌고,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동시에 자리를 박찼다.

빡-!!!

“?!”

그리고 정태이의 얼굴이 굳어졌다. 나는 시야가 번쩍이는 고통에 이를 악물고 참아 내며 그대로 주먹을 날렸다.

퍽-!!!

그리고 내 주먹은 그녀의 턱에 직격했다.

“-노가드?! 누나 미쳤어-?!?!”

누군가가 식겁하며 소리쳤다. 목소리나 말투로 보건대 서이수일 터였다. 하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고 마비된 듯한 고통을 무시하며 연이어 주먹을 날렸다.

펑-!!!

“하!”

팔로 내 주먹을 막은 정태이가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곤 그녀는 맹수와 같이 사나우면서도 유쾌한 미소를 걸치며 소리쳤다.

“그거 좋지!!”

그리고 그녀는 거칠게 팔을 풀어내며 주먹을 총탄처럼 내질렀다.

‘온다.’

나는 이를 거세게 악물며 전신에 힘을 주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 그리고 찰나의 기회였다.

그렇기에 나는 마지막 힘을 쏟아 내야만 했다.

퍽, 퍽, 빡, 퍽, 펑-! 팡-!!!!

쉴 틈 없는 공격이 오갔다. 속사와 같은 주먹이 쇄도하며 서로의 몸을 관통했다. 눈 하나 깜박일 수 없었다. 눈을 감은 순간 치명적인 공격이 쇄도했다. 피가 허공에 산란히 흩어졌으나 그 누구도 그것을 돌아보지 않았다. 공격을 빗맞힐지언정 피하진 않는다. 피할 시간에 한 대라도 더 때린다. 노가드 난타전. 피지컬로만 승부하는 무식하다면 무식한 싸움. 그러나 나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젠 내가 너를 이길 방법은 이것뿐이니까.

빡-!!!

버텨.

퍽-!!

버텨야 해.

퍼엉-!!!

버텨야만 해.

퍽!!

그녀의 주먹이 내 얼굴을 강타했다. 살짝 빗맞은 공격이 지나가며 나는 그대로 그녀의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뻐억-!!!!

정중앙으로 꽂혀 그녀의 숨이 짧게 들이켜졌다. 나는 이가 부러질 듯 거세게 물며 다시 주먹을 날렸다.

“크윽…!!”

“읍-!!”

그러나 그녀의 얼굴이 돌아가는 것과 동시에 내 얼굴도 함께 돌아갔다. 주춤거리며 잠시 뒤로 물러났다. 피로 얼룩진 시야는 이제 거의 보이질 않았다. 뼈가 몇 대나 부러졌는지도 모르겠다. 몸은 너덜너덜했고, 감각은 사라졌다. 서 있는 게 기적인 순간 속에서 살아남은 건 오로지 직감뿐.

뇌가 몸에 명령을 내렸다. 주먹을 쥐라고. 제대로 쥐고 있는지는 모른다. 감각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쥐었다. 그리고 다시 명령을 내렸다. 왼 주먹을 내지르라고.

훙-!!

멍한 감각 속에서 먹먹한 바람 소리가 옆을 가로지르며 뻗어 갔다. 그리고 눈앞에 다가오는 주먹이 보였다.

-아.

걸렸다.

돌연 내 입가에 미소가 돌았을까? 잘 모르겠다.

“-허?”

누군가 나직한 헛웃음을 흘렸다. 그야 당연했다.

그녀의 공격은 내 몸에 닿지 않았으니까.

나는 내지른 척한 주먹을 곧장 회수하며 몸을 꺾어 그녀의 주먹을 피해 냈다, 그리고 그녀의 품을 파고들어 오른 주먹을 억세게 쥐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이것도 실력, 아니겠냐.”

이 중요한 순간, 이따위 꼼수를 부리는 어른이라 미안하다.

“-어린 챔피언 씨.”

빠악-!!!!!!!!!!!!!

오른쪽 주먹이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온 힘을 끌어모았다. 남은 전력을 쏟아 냈다. 굳건히 박힌 나무의 뿌리가 뽑히듯 육중한 타격이 그녀를 꿰뚫었고, 그녀의 몸이 허공에 들리었다.

콰당탕-!!!

“윽-!”

털썩, 나는 저릿하게 퍼지는 마비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온 전력을 쏟아 낸 일격에 정태이는 날아갔다.

‘…결과는.’

나는 당장이라도 탈진할 것 같은 감각이었지만 흐릿한 시야를 억지로 붙들었다.

총력을 다했다. 이걸로 끝이야. 분명 못 일어날 거다. 확실한 카운터였으니까. 정리되지 않은 사고가 이지러지게 흩어졌다. 절대 일어나지 못할 거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

하지만 나는 보이는 것에 심장이 일순 무너져내렸다.

“하, 하하…”

헛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서 있는 건데…”

허망한 광경에 헛웃음만 나왔다. 나는 더 이상 남은 체력이 없는데. 어떻게 서 있을 수가 있어. 망연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위태롭게 서 있는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터벅, 터벅.

휘청이는 몸이었지만 그 발은 올곧게 나를 향하고 있었다.

아- 진짜 끝이다.

나는 체념의 숨을 내쉰 채 고개를 숙여 눈을 감았다.

“…야.”

그런데 정태이가 돌연 나를 불렀다. 왜 때리지 않고? 의아함에 다시 고개를 올리자 피로 흥건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표정은 피로 절여진 앞머리 탓에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그녀는 그 상태로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직업, 소개해 준다 캤나.”

난데없는 소리에 멍한 사고 속에서도 멈칫, 몸을 굳혔다. 그리고 그녀가 주먹을 들었다. 이제 정말 마지막인가 싶었던 순간이었다.

툭-.

“…어?”

그러나 닿아 온 건 이마께로 느껴지는 가벼운 부딪힘뿐이었고,

“마음에 안 들면, 뒤질 줄 알아…,”

…라.

쿵-.

동시에 그녀의 몸이 내 눈앞에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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