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 Final Round (6)
…어.
나는 멀거니 눈을 깜빡였다. 방금, 좀 웃었나? 일순 다정해 보였던 미소가 얼핏 어렸던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신기루와도 같았던 그 미소는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
신기한 걸 목격한 기분에 멍하니 눈을 껌뻑이고 있는데 돌연 날카로운 소리가 내 귀를 강타했다.
“누우나아~!!”
그리고 그와 상반된 명랑한 소리도 함께. 삐걱거리는 고개를 겨우 돌려 확인하자 창고 안쪽에 있던 문에서 한도훈이 백장미의 두 팔을 붙잡고서 경쾌한 발걸음으로 오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안 보이던 주연희와 이윤, 그리고 김시원이랑 서강이도 같이 있었다.
저 조합은 대체…?
상상하기 힘든 기묘한 모임에 뭔 상황인가 싶어 눈만 끔뻑이고 있는데 고찬영이 막 생각났다는 듯이 설명해 주었다.
“아, 맞아. 위험하니까 연희 후배님이랑 저 장미라는 애는 창고 안에 넣어 뒀었어. 혹시 몰라 말하지만 동생님 두고 간 건 동생님 의지다? 오해하지 마? 그리고 또- 전력으로 가장 쓸모없는 한도훈 저 자식이랑 안전책으로 시원이도 같이 붙여 놨고. 근데 저 덩치 큰 애랑 꼬맹이는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고찬영도 다른 두 사람은 아리송했는지 의아하게 눈을 떴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들은 김시원이 대답해 줬다.
“얜 거의 처음부터 같이 있었어요. 그리고 윤이 저 녀석은 방금 도훈이 걱정된다고 뛰어왔는데….”
“네, 다음 쓸데없는 참견~.”
한도훈은 하하, 웃으며 이윤을 대차게 무시했다. 그러곤 이쪽에 있는 백설을 보더니 표정을 확 변모하며 못마땅히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쪽도 함께 있었으면서 왜 모른 척하지?”
“그야 너희들이 시끄러우니까아- 피란 온 거지이-”
…시끄러워? 도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근데 강이야, 너 진짜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거야?”
다정한이 어느샌가 저쪽에 합류해 있던 서강이의 모습에 황당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음.”
그 질문에 서강이가 김시원을 물끄러미 보았다. 김시원은 그에 불쾌히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나 발견하자마자 온 거야. 그리고 지금까지 잤어.”
그 말에 한순간 침묵이 찾아들었다. 그래… 그랬구나. 이 난장판 속에서 잤구나. 김시원이 있다고 쫄래쫄래 따라가서…, 어… 아기 오리인가? 아기치곤 덩치가 굉장히 큰 것 같지만, 아무튼.
“음… 고생했다.”
나는 쓰게 웃으며 안쪽에서 벌어졌을 그의 고생을 치하했다. 김시원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기신 거 축하드립니다. 안쪽에서 봤어요. 멋있었습니다.”
그는 내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 그 인사에 문득 잊고 있던 사실을 다시금 떠올렸다. 아, 그래, 나 정태이 이겼었지.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자꾸 까먹었다. 나는 멍청히 눈을 깜빡이다가 뒤늦게 대꾸했다.
“어, 고, 고마워.”
김시원은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눈을 살며시 가늘게 뜨며 조금 머뭇거리듯 물었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건가요.”
“응?”
뭐가? 라는 시선을 보내자 김시원은 그답지 않게 잠시 난처한 듯 눈을 굴리며 망설이는데, 돌연 서이수가 소리쳤다.
“아, 진짜-!!! 둘이 적당히 붙어 있어!!!”
그리고 서이수에게 몸이 훅, 잡아끌렸다.
끄아아아-!!!!
난데없이 자세가 틀어지자 나는 소리 없는 비명을 삼켰다. 하지만 내가 고통으로 괴로워하든 말든 서이수는 반휘혈을 노려보았다.
“사귀는 사이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거리가 가까운데?! 좀 적당히 붙어!!”
“…….”
반휘혈은 빼앗긴 내 몸을 어리벙벙하게 보다가 이내 서서히 그 낯이 점점 가라앉았다. 마치 무언가 강력한 한 방이 올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던 나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야 내-,”
“그래, 사귀지도 않는데 가깝긴 했어. 나도 언제 말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말해 주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고찬영이 그사이를 하하하, 하고 웃으며 유쾌하게 끼어들었다. 그러곤 서이수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내가 친구님 부축할게. 줘.”
“…뭐?”
그 말에 반휘혈의 분위기가 험악히 가라앉으며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갈길 것처럼 변했다. 그러곤 그는 이를 아득 깨물더니 휙, 나를 보았다.
“골라. 나야 이 자식이야.”
“……?”
예? 뭐라고요? 나는 오해를 심하게 방불케 하는 말에 순간 아픈 것도 잊고 아연해졌다.
“하하, 휘혈이 너도 참. 당연히 최고의 친구이자 절친 중의 절친인 나겠지. 얼마나 믿음직해? 당연히 나지? 친구님?”
“겨우 3개월 남짓한 세월로 절친을 운운하는 꼴이 우습군. 신의를 말한다면 당연히 내 쪽이 더 깊겠지.”
“우정은 기간이 전부가 아니란다, 후배님? 그리고 신의 운운하는 거 치곤 친구님은 내게 더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아?”
“웃기는 소리. 그런 사람을 집에 들이고 재워 주고 가족까지 소개해 주진 않…,”
“그만해, 이 미친 것들아-!!!”
결국 듣다 못한 나로 인해 두 사람의 웃기지도 않은 설전이 종료됐다. 이것들이 가만히 듣고 있으니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저렇게 뻔뻔히 해?! 누가 들으면 아주 치열한 삼각관계인 줄 알겠다. 그래, 삼각관계이긴 하다! 우정과 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름다운 애정의 삼각관계!
“풋.”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얼굴까지 빨개지는데 돌연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맹렬히 돌리자 이쪽을 보며 웃겨 죽으려는 최강혁이 있었다.
저 새끼를 언젠가 죽이고 말리.
나는 눈을 날카롭게 세우며 최강혁을 노려봤다.
“…그래도 역시 믿음직한 친구인 내가 낫지 않아?”
“아니, 약혼자인 내가 낫지.”
아오, 저거 아직 안 끝났어?! 게다가 반휘혈 저 자식은 또 뭐라는 거야!!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픈 몸도 잊고 한 소리 하려던 순간이었다.
“다 꺼져! 부축은 친동생인 내가 할 거니까!!”
두 사람의 실랑이를 멈춘 건 동생인 서이수였다. 서이수는 두 사람을 날카롭게 노려보더니 내 팔을 제 어깨에 둘렀다.
“어, 이수야. 너도 몸이….”
“됐어. 이 정도쯤은.”
서이수는 이재현의 만류에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곧장 몸을 일으키려 몸에 힘을 줬다.
“윽…!”
“이수야!”
하지만 부상자인 것은 서이수도 마찬가지인지라 그의 낯이 일순 일그러졌다. 이재현의 얼굴이 걱정으로 물들여지며 다가왔으나, 서이수는 그를 무시하곤 얼굴에 힘을 주며 몸을 일으켰다.
“야, 사, 살살…!!”
나는 일으켜진 몸에 다시금 비명이 튀어나오려 하는 걸 참아야만 했다. 게다가 이 불안정한 위치는 무엇인가. 키가 거의 30cm 차이가 나서인지 굉장히 불편하고 아팠다. 아무래도 이 상태론 김시원에게 업히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서이수에게 말하기 위해 고개를 올리자,
…크흥.
눈시울과 코가 살짝 붉어진 낯을 발견하고 말았다. 나는 그 얼굴에 벌어졌던 입을 조용히 다물었다. 그래…, 마음고생 가장 심했을 텐데, 이 정도는 그냥 참아 주자. 차량이랑 그리 멀진 않겠지…. 그래야만 했다.
“놀고 자빠졌군.”
그러한 때 잔뜩 비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이렇게 잔뜩 속이 꼬였나 보자 백장미가 한껏 빈정 어린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네, 패배자는 말이 없습니다.”
퍽-! 그런 백장미의 머리를 한도훈이 가볍게 후려쳤다.
“꺄…! 뭐 하는 짓이야!!”
“당신이야말로 입 다물어!”
백장미가 제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자신을 붙잡은 한도훈을 표독스럽게 노려보자 주연희가 얼굴을 사납게 굳히며 소리쳤다.
“차여서 찌질하게 생판 관계없는 남한테 화풀이를 이따위로… 이따위로 했으면서! 지금 피해 준 사람만 몇인 줄 알아?!”
아이고, 잘한다. 우리 연희. 나는 그녀에게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내며 응원했다.
“하, 내가 그딴 걸 왜 세?”
“뭐?”
주연희가 울컥했는지 인상이 구겨졌다.
“저 두 사람, 아까부터 계속 안에서 싸웠어요.”
그런 두 사람의 설전에 김시원이 내게 속삭였다. 아, 시끄러웠다는 게 저 두 사람 때문…,
“한도훈은 옆에서 부채질했고요.”
…세 사람이었군. 나는 쓰게 웃으며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백장미, 적당히 해.”
점점 격앙되는 상황 중, 어느새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진 최강혁이 끼어들었다.
“아니면 이 일은 이젠 조용히 넘어갈 수 없단 거, 알아서 그렇게 배짱을 부리는 건가?”
“읏…!”
잔뜩 가라앉은 경고를 내뱉자 백장미의 낯이 일그러졌다.
“무슨 소리야?”
이윤이 그 말에 어리둥절하니 다정한에게 물었다.
“흑룡파 조직 후계 싸움과… 뭐 잡다하게 연관이 되어서 그런 겁니다. 뭐… 다른 분들껜 그리 중요한 내용은 아니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대답은 다정한이 아닌 김율에게서 나왔다.
“엥? 그게 저 선배랑 무슨 상관…,”
“아, 시끄러! 너랑 상관없다잖아! 조용히 입 다물고 짜져 있어!!”
호기심 대왕인 이윤의 질문이 끊어지지 않자 한도훈이 성가신다는 것처럼 대꾸했다. 그에 이윤이 울상이 되었고, 다정한이 한도훈에게 말이 심한 거 아니냐고 한 소리 했다. 하지만 역시나 한도훈은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날 끌어들이지 마. 백장미.”
그런 중에 최강혁은 백장미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고저 없이 선을 그었다. 그러곤 찬바람이 날리듯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나려 했다.
“크읏…! 내가, 내가 언제…!”
그에 백장미가 떠나려는 그 등을 향해 외쳤다.
“내가 언제 너한테 사랑을 달랬어-!!! 그냥, 그냥 인정만 해 주면 됐던 거였어, 그런데, 그런데 그게 그렇게 힘들어?!”
최강혁을 향해 소리치는 그녀의 얼굴은 절망적이었다. 절박함까지 내포된 그녀의 얼굴은 이제껏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완전히 포커페이스가 무너진 그녀의 낯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러다 그녀의 지척으로 다가가는 한 인물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인물은 손을 들었고,
짝-!!!
백장미의 뺨을 후려쳤다.
“-허?”
난데없이 뺨을 맞은 백장미가 황당히 눈을 크게 뜨며 자신을 친 범인을 보았다. 그 앞에 선 주연희는 백장미를 조용히, 경멸의 시선을 담아 노려보며 한 자 한 자 또박히 말을 내뱉었다.
“너 진짜- 꼴불견이다.”
“뭐…!”
짝-!!!
백장미가 정색하고 다시 소리치려 하자 그녀의 얼굴이 다시 돌아갔다.
“입 닥쳐, 좀.”
주연희의 입에서 험한 말이 낮게 짓씹듯 나왔다. 백장미는 이를 아득 깨물며 그녀를 표독스럽게 노려보았다.
“너 따위가 감히 나한테 손을 대? 기필코 가만 안 둘 거야.”
백장미는 주연희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주연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인상을 살풋 찌푸리더니 돌연 주먹을 꽉 쥐었다.
퍽-!!!
그리고 이번엔 손바닥이 아니라 주먹이 백장미의 얼굴을 가격했다.
우당탕-!!
때리는 것과 동시에 한도훈이 타이밍 좋게 잡던 팔을 놓았다. 정말 얄미운 타이밍이어서 나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는데 백장미가 맞은 볼을 붙잡고 주연희를 죽일 듯 노려봤다.
“너, 언니가 약한 여자애 안 때려서 다행인 줄 알아.”
주연희는 그런 백장미의 시선에 지지 않고 대꾸하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내 쪽으로 다가와 방치된 내 팔 한쪽을 들었다.
“부축, 도와 드릴게요. 언니.”
“어, 난 괜…,”
오히려 너무 치우친 균형에 의해 더 불편해질까 싶어 거절하려던 순간, 나는 느꼈다. 내 팔을 잡은 그녀의 손이 가녀리게 떨고 있다는 것을.
“…찮지 않으니까 부탁 좀 할게.”
어른인 내가 참아야지. 응. 나는 내 몸뚱어리에게 조금만 더 버티라고 암시했다.
“흥.”
최강혁은 그런 우리를 힐끗 보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인사도 하지 않고 떠나려는 듯 발을 떼는데 그것을 발견한 이윤이 소리쳤다.
“어, 혁아! 인사하구 가자~!”
“됐거든.”
…저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 나는 그 말을 똑똑히 듣곤 혀를 끌끌 찼다. 언제나 재수 없었지만 그래도 오늘은 도와주러 왔으니 봐준다, 정말.
“왜애~. 너 아까 나한테 잘못 찾아왔다고 엄청 화까지 냈으면서! 인사는 하고 가도 되잖아~.”
음…? 잠깐만, 이거 무슨 소리야.
“그건 그래. 혁이가 그렇게 화내는 거 정말 오랜만이었지.”
“응.”
게다가 이윤의 말을 뒷받침해 주는 다정한과 서강이까지 거들었다.
“무슨 개소리야?!”
최강혁은 순식간에 까발려진 자신의 행적에 황급히 몸을 돌이켜 버럭 소리쳤다.
“오호-.”
“흐음-?”
“오- 싸가지-?”
하지만 이미 모든 걸 들어 버린 나와 고찬영, 그리고 한도훈은 히죽 웃으며 그를 보았다. 아주 재밌는 소리를 들었다. 그-으렇게 우리를 도와주려 애썼다, 이 말이지?
“너… 생각보다 괜찮은 녀석이구나?”
그리고 주연희까지 순수한 감탄으로 화룡점정을 찍어 주자 그의 낯이 순식간에 수치일지 분노일지 모를 것으로 달아올랐다.
“흥.”
그런 최강혁을 향해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범인은 반휘혈이었다. 그 사실에 최강혁의 얼굴이 일순 싹 가라앉았다.
“하-.”
그는 가볍게 헛웃음을 날리더니,
“너 이번엔 진짜 뒤졌어, 반휘혈-!!!!”
와락, 얼굴을 험악히 구기며 달려들었다.
“워워, 진정해.”
“그래, 혁아. 밤이 늦었어.”
하지만 최강혁의 몸은 다정한과 이윤, 그리고 서강이에 의해 막히었다. 반휘혈은 그 앞에서 그를 조롱하듯 비웃음을 연이어 날렸고, 덕분에 최강혁의 악다구니는 더 강해졌다.
“허허, 젊다, 젊어.”
나는 그런 이들을 보며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애들아, 먼저 가자.”
저 애들은 내버려 두고 우선 나부터 쉬어야겠다. 이젠 정말 서 있기도 버거웠다.
“아, 누나, 앞에 차 대기해 놨어요!”
“그럼 난 오토바이 좀 가져올게. 먼저 가. 보자, 헬멧이-.”
“찾는 거 도와 드릴게요. 시원아, 너도 같이 찾자.”
“응.”
“나도 도울게에-.”
그에 아이들이 왁자하게 제 말을 내뱉으며 흩어졌다. 그 활기찬 모습을 잠시간 바라보던 나는 피식, 웃었다. 이제 정말 끝난 기분이었다.
‘납치 사건도 끝났으니- 그럼 이제 정말 끝이겠지?’
제발 그랬으면 좋겠는데. 딱히 주연희와 최강혁의 진전은 보이지 않았지만, 대충 운명 스토리는 끝난 게 아닐까? 인소에서 납치 사건은 보통 종반부에 있으니까 말이다.
“아, 근데 누나. 우리 엄마랑 아빠한테 뭐라고 해?”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나는 서이수의 말에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게.”
이거 어떻게 수습하지. 아찔한 감각에 그냥 기절하고 싶어졌다. 나는 현실을 외면하고픈 느낌을 받으며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오늘은, 외박할까….”
“그럴까….”
숙연해지는 우리들의 분위기에 주연희가 안절부절못하다 불현듯 떠올리듯 입을 열었다.
“아, 그, 그럼 저희 집 오실래요?”
“어?”
“응?”
우리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하자 주연희가 배시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두 사람한테 감사의 인사도 할 겸…! 악, 그리고 저 안 그래도 언니한테 제 동생을…,”
…아아앙-.
그 순간이었다. 이질적인 소리가 내 귀를 강타한 건.
“그러니까-.”
“연희야, 잠깐.”
나는 그녀의 말을 멈추게 했고, 곧장 고개를 돌렸다.
“…어?”
그리고 나는 보았다.
지척에 이른 커다란-,
부아아앙-!!!
-철제의 무언가를.
아.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또 어떤 힘이 남아 있던 건지도 모르겠다.
“---!!!!”
자각이 끝난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다.
나는 터질 듯이 밝은 빛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 끝까지 방심할 수 없는 세계구나.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