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98화 (298/306)

298. 기회를 붙잡는 자 (1)

***

“얘들아, 먼저 가자.”

서이나가 움직이자 반휘혈은 최강혁이 날뛰는 걸 구경하던 것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야, 야!! 반휘혈, 야-!!!!”

“저녁 뭐 먹지?”

“그러게.”

서이나는 문을 벗어나고 있었다. 곧장 뒤쫓기 위해 반휘혈은 뒤에 있는 놈들을 전부 무시하고 몸을 완전히 돌렸다.

“무시하지 마, 새꺄-!!!!”

최강혁의 울화는 더 끓어올랐지만 이미 공기 중으로 흩어져 버렸고, 반휘혈의 발은 이미 출구에 다다른 상태였다.

드릉- 드르릉-.

“?”

그러다 문득 반휘혈은 거슬리는 소리를 포착했다. 정차됐던 차량 중 하나의 배기음이 이상해 저도 모르게 발을 멈추었다.

그랬으면 안 됐는데.

그 시간에 그녀에게 조금만 더, 딱 한 발자국만 더 가까이 다가갔었더라면.

결과는 어떠했을까.

부아아앙-!!!

“?!”

불시에 일어난 형세를 자각하는 데 머리는 거치지 않았다.

“피해-!!!!”

그저 저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며 손을 뻗었고, 본능적으로 그리 외쳤던 것 같다.

하지만 뻗은 손은 닿지 않았다. 그것은 찰나와도 같은 재앙이었기에, 미처 대응할 새는 없었다.

…아니,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서.

쾅-!!!!!!!

눈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모든 순간순간이 망막에 새겨지듯 느리게만 흘러갔다. 오로지 강한 빛만이 붕 떠오른 몸을 조명했다.

철컹. 문득 쇠들이 맞부딪히는 자그마한 환각이 들렸던 것 같았다.

끼이익-!!!

하나 그 소리는 이어진 급정거 소리에 파묻히고 말았다. 아니, 그 어떤 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먹먹한 이명만이, 현실의 공기가 제 모든 걸 차단한 것만 같았다. 가슴이, 목이 압박하듯 강하게 조이었다. 숨이, 안 쉬어졌다.

“읏-!”

“꺄악-!”

촤아악, 돌발적으로 몸이 내던져진 서이수와 주연희는 땅에서 거칠게 굴렀다.

“윽, 크읏.”

서이수는 폐부가 조일 듯한 통증에 일순 눈을 와락 찌푸렸지만 환부를 짚은 채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누, 누나는? 누나는 어디에….

“어…?”

이내 눈앞에 있는 광경에 아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멀지 않은 거리에 제 누나의 몸이, 힘없이 땅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어, 어… 으, 어,”

입이 망연하게 벌어졌다. 말은 목 끝에서 걸리어 소리로 나오질 못했다. 손으로부터 전신으로까지 가는 진동이 잘게 퍼져 갔다. 그의 입은 자꾸만 달싹여졌고 흔들리는 동공은 주체할 수 없이 방황했다.

“아, 긋, 아, 누, 누, 아…!”

그의 시야가 뿌옇게 일그러졌다. 점점 일그러져 가는 그의 낯은 조금씩 상황을 인지하기 시작했고 벌벌 떨리는 손이 허공에 헛손질을 했다. 다리는 충격으로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그러나 그런 게 무슨 대수랴. 그는 어떻게든 발에 힘을 줘 자꾸만 넘어지려는 몸을 붙잡으며 네 발로 기어가듯 처절히 앞으로 나아갔다.

“누, 누나, 이, 일어, 일어나….”

지탱할 기력을 잃은 몸을 어렵게 일으켰다. 어떻게든 그 눈을 뜨게 하기 위해 크게 떨리는 손으로 그 볼을 두드렸다. 하지만 누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제발 일어나 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그러나 누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어….”

그러다 불현듯 그는 제 손을 보았다. 손은 원래의 색을 잃고, 붉디붉은 선혈로 얼룩져 있었다.

아.

그의 눈동자가, 빛을 잃고 크고도 위태로이, 그리고 가냘프게 흔들렸다.

“뭐야, 무슨 일이야?!”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 이들이 하나둘 창고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어?”

그러나 그들은 눈앞에 벌어진 사태를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왜… 트럭, 누나, 어, 이수… 어…?”

인지하고 싶지 않은 현실에 목소리가 분별력을 잃고 당황하여 파르르 떨리었다. 이재현은 창백해진 채로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부르릉-.

그때 트럭이 돌연 뒤로 후진했다. 차츰 거리를 벌리더니 곧 급발진하듯 그 거대한 몸체가 다시 돌진했다.

“안 돼-!!!!”

주연희가 절규하듯 비명을 질렀다.

“피해, 이수야!!!”

“저 차, 차 막아-!!!!”

이재현이 절박하게 외쳤고, 김시원이 급박하게 소리쳤다. 흠칫, 서이수는 그 외침에 고개를 일으켰다. 그리고 저희들에게로 성큼 다가오는 철제의 괴물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움직이질 못했다. 백지와도 같이 새하얘진 머리는 모든 것을 무디게 만들었다.

그저 괴물의 아가리처럼 벌려 오는 환한 불빛이 모든 걸 삼킬 것만 같았기에, 반항할 기력도 잃어버린 이는 짙은 탈력에 온몸을 지배당했다.

“이수야-!!!!!”

찢어질 듯이 간절한 부름이 허공에 울렸다. 그러던 찰나,

쾅-!!!!!

섬뜩한 차체의 울림이 거세게 퍼져 갔다. 하나 그것은 사람이 치여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만-하라고!!!!”

갑자기 나타난 오토바이 한 대가 운적석의 옆문을 박살 냈다. 그 충격에 트럭의 운전대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끼이익-!!!!

콰당탕-!!

요란한 바퀴의 소리와 고철이 부서지는 소리가 동시에 퍼져 갔다.

“크읏…!”

고찬영은 사고에 휘말리지 않게 미리 몸을 오토바이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그러곤 곧장 몸을 일으켜 바닥을 박찼다.

“찬영이 형!”

이재현이 깜짝 놀라 외쳤으나 고찬영은 대꾸하지 않고 트럭의 발판에 올라 깨진 창문 너머로 손을 순식간에 뻗었다. 그러곤 잡히는 머리를 한 손으로 억세게 쥐곤 핸들에 박아 버렸다.

빡-!!!

자비라곤 전혀 느껴지는 서늘한 소리와 함께 운전자가 그 위로 힘없이 늘어졌다. 고찬영은 그 운전자의 뒷덜미를 잡아채곤 밖으로 내던졌다. 그런 후 문이 지나치게 어그러져 열 수 없었기에 창으로 뛰어들어 운전석을 차지한 그는 빠르게 핸들을 꺾으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이익-!!!!

그러자 차체가 단번에 몸체를 크게 꺾었다. 급박하게 밟은 브레이크에 커다란 트럭이 위태롭게 기울였다. 바퀴가 살짝 들리는가 싶더니, 곧 쿵- 하고 묵직한 울림이 땅을 울렸다.

하아, 하아.

고찬영은 빠르게 뛰는 심장의 고동과 벅찬 숨을 살짝 몰아쉬다 고개를 재빨리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주차 브레이크를 올린 후 시동을 끈 백미러를 통해 두 사람의 안전을 확인했다.

“이수야!!! 누나는?!”

금이 간 백미러에서 이재현이 보이며 서이수에게 달려가는 게 보였다. 다행히 사고는 이어지지 않았다. 고찬영은 지척에 이른 차체를 멀거니 보고 있는 서이수를 바라보다 그 아래에 힘없이 늘어진 몸을 보았다.

으득.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눈앞이 순간 검게 물들었다. 그는 이를 아득 깨물며 깨진 창을 통해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그러곤 방금 제가 내던진 이에게 다가갔다. 그 멱을 잡아채 있는 힘껏 주먹을 휘갈겼다. 분노로 잠식된 이성에 여유를 완전히 잃은 남자는 통제할 수 없는 분을 풀듯 그렇게 주먹을 내려쳤다.

“지금, 네가, 무슨, 짓거리를, 했는지, 알아…!!!”

살을 짓이기는 타격음이 연이어 울렸다. 평소 그만의 여유로운 자태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응급, 응급 팀-!!!!!”

그때 겨우 정신을 차린 한도훈이 급박히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그에 같이 상황을 파악한 최강혁의 날 선 눈이 백장미에게 향했다.

“백장미-!”

“나, 나 아니야!! 난 이런 것까지 시킨 적 없단 말이야!!”

백장미는 억울한 듯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네가 아니면 누가 하는데!!”

“진짜야!! 난 죽는 거까진 바라지 않았단 말이야!!”

그녀 또한 지금의 상황이 당혹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급작스럽게 흘러가는 상황을 좀체 따라갈 수가 없었다.

“주, 죽, …해.”

그런데 맥없이 맞기만 하던 녀석이 무언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뭐?”

그에 주먹을 내리치던 손이 일순 멎었다.

“죽여, 죽여, 죽여야, 해.”

“!”

좀 더 분명해진 말에 고찬영의 얼굴이 야차와도 같이 더욱 살벌히 일그러졌다. 남자의 입은 쉬지 않고 중얼거렸다.

“사, 살아 있으면 안 돼. 죽여야 해. 모든 걸 망치고 있어. 죽여야 해.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야만 해. 있으면 안 돼, 죽여야, 죽여야 해….”

미친 건가. 자세히 보니 머리 한쪽에 홈이 파인 듯 거세게 맞은 흔적이 있었다. 고찬영은 정신 줄을 놓아 버린 것 같은 남자의 행태에 눈살을 찌푸리며 인상을 굳혔다. 그런 사이 남자는 눈으로 무언가를 찾듯 굴렸다.

“죽여야, 해. 죽, 죽여야…,”

그러곤 어느 한 지점으로 눈길을 향하곤 나직이 뇌까렸다.

“여자를, 죽여야 해.”

빡-!!!

더 들을 가치도 없었다. 고찬영은 축 늘어진 남자의 몸을 떨구었다. 그러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깊은 회한이 담긴 손으로 얼굴을 깊이 쓸어내린 채 절망적으로 고개를 숙이었다.

“반휘혈, 넌 바보같이 서서 뭐 하는…! 야, 너…”

최강혁은 반휘혈의 어깨를 붙잡았다가 흠칫 몸을 굳혔다. 눈앞에 있는 녀석이 이상했다. 마치 공허한 인형을 보는 듯 넋을 완전히 놓은 것 같은 낯이었다. 하나 그 시선은 한곳에 머물러 떨어질 줄 모르고 있었다.

……칫. 그곳을 바라보곤 시선이 얼핏 흔들렸던 최강혁은 이내 혀를 차며 반휘혈의 어깨에서 손을 놓았다.

“젠장.”

이놈이고, 저놈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건 멍청히 서 있는 반휘혈 자식이 아니었다.

거기 그렇게 누워 있지 말란 말이야. 어울리지 않게.

최강혁은 언짢이 중얼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아니.”

그런 순간, 돌연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곁에 있던 최강혁이 그 작은 소리를 포착하곤 고개를 다시 돌렸다.

“…아니야.”

“뭐?”

영문 모를 소리에 최강혁의 낯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이내 점차 얼굴이 구겨지며 변하기 시작한 반휘혈의 낯을 보곤 입을 도로 다물었다.

“그럴 리, 없어.”

툭, 투둑. 중력에 맡긴 듯 힘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이 있었다. 비는 오지 않았다. 그저 한곳에서 망연히 떨어지는 물이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이건, 아니야.”

털썩. 그리고 그 주인조차 몸을 지탱하기 어려웠던지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어째서… 왜…?”

왜 이렇게 되는 건데?

끼이이-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요란하게 당겨졌다. 마치 그 앞을 나아가지 말란 것처럼 더는 잇지 말라는 것처럼. 하지만 그 중심에 있던 이는 그것을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잘못됐어. 이건, 잘못됐다고.”

쩌적-. 일전에 상흔을 남겼던 쇠사슬의 상처가 점점 벌어졌다.

“나는, 나는 아직-.”

쩌저저적-, 그 상처는 점점 선명하고도 빠르게 퍼져 갔고,

“난-,”

제대로 마음도 못 전했는데.

끼기이이익…!!! 그만하라는 것처럼 쇠사슬은 더 강압적으로 줄을 당기었다. 하나 더는 그의 사고를 막을 순 없었다.

“아.”

나지막한 탄식이 입안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는 불시에 깨달았다.

자신의 모든 건 이미 저 사람의 것임을.

개벽과도 같은 사람, 구원과도 같은 사람, 그리고 자꾸만 정을 바라고 독점하고픈 사람. 제가 가진 그 모든 감정의 의미는 그저 가족으로서의 동경이 아닌-

카창-!!

-사랑이었음을.

완전한 자각과 함께 쇠사슬은 청아한 울림과 함께 완전히 부서졌다.

“-!!”

“-?!”

덥석. 그와 동시에 최강혁과 주연희는 저도 모르게 제 목을 붙잡았다.

방금… 무언가가…?

주연희는 빠르게 고개를 돌려 본능적으로 반휘혈 쪽을 보았다. 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저도 모르게 행한 일이었다.

“너….”

최강혁은 아연히 무릎 꿇은 반휘혈을 보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 입안을 맴돌았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딘가, 어딘가 무언가가 확실히 바뀌었음을 눈치챘다. 그들이 어찌할 수 없었던 무언가가, 평생 제 목을 조이고 심장을 억압하던 것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끝났, 다….”

커다란 눈에서 엷고도 짙은 눈물 한 방울이 그 볼을 타고 내려왔다. 그 눈물은 고통이 아닌 다른 감정이었다. 다만 그것은 자각할 새도 없는, 아주 찰나의 감정이었다.

아수라장이 된 어지러운 현장 속에서 동떨어진 듯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이는 조용히 그 현장을 멀거니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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