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99화 (299/306)

299. 기회를 붙잡는 자 (2)

***

사랑하는 동생이 있다.

‘누나-!’

나만 보면 언제나 활짝 웃으며 반기는 아이였으며, 항상 졸졸 따라다녀 간혹 애를 먹게 한 그런 귀엽고도, 정말로 소중한 동생이었다. 아무것도 할 줄 몰라 방황하기만 하고 무료한 제 인생에 있어 그 아이는 내게 유일한 활력소와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나는 동생에게 모든 걸 양보하며 그 장래를 지지해 주는 멋진 누나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한 바람과는 달리 어느 순간부터 동생이 변하였다.

‘…저리 가.’

‘제발 좀…! 간섭하지 말라고 하는 거야.’

‘네가 뭔데?’

저를 좋아하던 아이는 저를 질려 하며 밀어냈고 혐오의 시선으로 내 가슴에 비수를 꽂아 넣었다.

어째서?

왜 그렇게 보는 거야?

거리를 두는 이유가 대체 뭐야?

도무지 감이 오질 않았다. 전조 없이 찾아온 사춘기인 걸까. 하지만 그 사춘기는 나도 지나고 있는걸. 다가가고 또 다가가도 자꾸만 밀치고 거부하는 몸짓에 나 또한 지치기 시작했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

결국 나는 상처받은 마음을 안고 그 녀석과 같이 벽을 쌓기 시작했다. 나도 너 같은 거 신경 안 쓸 거야, 이제. 나는 속상함과 억울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며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렇게 우리 둘의 사이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고3이 되었다. 한창 입시로 바쁜 때였으나 막연히 꿈도 진로도 없이 살아가는 내겐 공부 열기가 가득한 교실은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분위기를 따라 공부를 하긴 했지만 머리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어서인지 성적은 영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이 크게 놀랍지도 않았기에 나는 이 수험 생활이 끝나면 뭐 하고 살지, 하고 멍하니 진로에 대한 걱정과 고민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내게 날벼락이 떨어진 건 정말 한순간이었다.

‘…어?’

방금, 뭐라고?

나는 믿기지 않은 현실에 잔뜩 가라앉은 얼굴을 하고 있는 엄마에게 되물었다.

‘이수가… 어, 재, 재판을 받는다고?’

그래. 엄마는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확언에 경악하며 입을 벌린 채 숨을 들이켰다.

‘가, 가, 갑자기, 갑자기 왜?!’

도대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아무리 내 동생이 발랑 까졌다지만 재판에 설 정도로 못된 짓을 했을 거라곤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학교 폭력에 연관이 됐대. …그것도 주 가해자로.’

‘!!!’

하지만 그런 내 일말의 희망을 배신하듯 이어지는 말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망연히 굳어 있다가 엄마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 색…, 아니 서이수 그 녀석 어딨어?!’

나는 그대로 곧장 녀석이 구류된 구치소로 향했다. 그리고 수감된 녀석의 꼴을 보곤 할 말을 잃었다. 서이수의 꼴은 난장판이었고 그 뒤로 같이 있는 놈들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아…, 씨발. 귀찮게.’

서이수는 그런 나를 발견하곤 질색 어린 낯을 지어 보였다.

‘이 꼴이 되어서도 허세를 부리고 싶어?’

그에 울컥한 내가 한 소리 하자 녀석은 헛웃음을 흘리며 이죽거렸다.

‘네에, 네. 잘나신 누님 납셨네요. 왜? 이제 와서 누나 노릇 좀 하게?’

‘너 말을 왜 그따위로…!’

‘그럼 뭐 해? 네가 나한테 언제 관심 있었다고.’

움찔, 나는 그 말에 몸을 가볍게 튀었다. 그러곤 울컥 치미는 감정에 나는 미간을 모으며 녀석을 노려봤다.

‘그건… 네가 먼저 그랬잖아.’

‘하, 내가?’

그러자 서이수가 조소를 흘리더니 돌연 날카롭게 쏘아봤다.

‘내가 아니라 너겠지.’

‘뭐?’

서이수는 시건방지게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철창 너머에서 성큼 다가오며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정말 나한테 관심이 있었다면 나한테 그러면 안 됐지. 이 기만자야.’

기만, …뭐? 당혹스러운 단어에 반박도 못 하고 얼굴을 굳혔다.

‘아니라고 할 생각이야? 그럼 입이 있다면 똑바로 말해 봐.’

하지만 서이수의 말을 멈추지 않았다.

‘왜 아빠한테 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한 거야?’

…어? 나는 그 말에 눈을 부릅뜨며 그를 올려다봤다. 그에 서이수가 같잖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더니 이내 낯을 와락 구기며 짓씹듯 말했다.

‘이러니까 네가 싫은 거야.’

그러곤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이를 갈며 말했다.

‘아빠는 내가 아니라 널 원했다는 거, 그걸 네가 모를 리 없어, 안 그래?’

‘!’

그 말에 숨을 짧게 들이켰다. 서이수는 그런 내 반응을 차분히 노려보다가 몸을 돌리곤 차갑게 뇌까렸다.

‘이제 꺼져.’

나는 망연히 그 등을 보았다. 그리고 무슨 정신으로 나왔는지 모르게 경찰서를 나왔다.

‘…….’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거지. 녀석과 헤어지고 나는 멍하니 공원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우중충한 내 마음과 달리 무정할 정도로 화창했다.

‘…나 때문이라고.’

나는 멍하니 녀석이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그것은 몇 년 전의 일이었으며 우리 둘 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기이자 아직은 관계가 양호했을 때의… 그리운 추억이었다.

처음은 아빠의 권유로 시작되었다.

‘너희도 어느 정도 컸으니, 체육관 한번 와 볼래?’

‘좋아요!’

‘갈래요!’

우리는 꺄르르 웃으며 아빠의 초대에 들떠 있었다. 그러곤 신이 난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며 왁자하게 떠들며 아빠의 뒤를 따랐다.

‘자, 이건 미트라고 하는 거야. 한 번씩 쳐 볼까?’

탁, 탁. 아빠는 한 손에 미트라는 것을 끼며 주먹을 쥐곤 그것을 치는 시늉을 해 보였다. 나와 동생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미트를 쳐 보기로 한 것은 동생이었다. 눈이 한껏 반짝이는 게 굉장히 하고 싶단 의지가 확연히 닿아 왔기에 내가 먼저 하라고 양보했다. 동생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채 얼굴을 환히 밝히었고, 아빠의 앞에 섰다. 그러곤 아빠의 말대로 주먹으로 미트를 쳤다.

툭-!

‘아이고, 잘했다, 내 새끼!’

그러자 아빠는 헤벌쭉 웃음을 달며 아주 귀여운 것을 보았다는 것처럼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동생은 배시시 웃으며 더 칭찬해 달라는 것처럼 그의 손에 매달렸다.

‘그래, 그래. 이따 더 봐줄게. 이제 이나도 해 볼까?’

‘네!’

나는 들뜨는 기분을 감추지 못하며 아빠의 앞에 섰다. 나도 잘해서 칭찬받아야지! 나는 호기롭게 주먹을 쥐었다. 그러곤 눈을 굴려 주위를 탐색했다.

그러니까 발을 이렇게… 주먹은 이렇게…?

주위에서 연습하는 삼촌과 이모들을 관찰하곤 엉성히 자세를 잡은 나는 곧 주먹을 뻗었다.

팡-!

날렵한 주먹이 미트를 치자 동생이 쳤던 소리와 다른 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어린 내가 듣기에도 확연히 다른 묵직함이었다.

‘우-와! 누나 짱이다!’

그러자 동생이 눈을 반짝이며 내게 다가왔다. 나 또한 뿌듯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아빠를 보았다.

‘아빠, 이 정도면 잘한 거 맞, …아빠?’

그런데 아빠의 반응이 어딘가 이상했다. 펴질 줄 모르게 굳은 낯이 무서웠다. 눈을 부릅뜬 채 나를 보고 있기에 의기소침해진 내가 뒤로 발을 물리자 돌연 아빠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이나야, 방금 누구 보고 따라 한 거니?’

‘어, 저, 저기 있는 삼촌이랑 이모들….’

힐끗 시선으로 어른들을 가리키자 아빠의 눈에 이채가 띠어졌다. 그러곤 어딘가 떨리는 목소리와 손으로 내 어깨를 꽉 붙잡았다.

‘이나야, 너 내일, 아니 오늘부터 운동 시작할래? 응?’

‘어?’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지? 나는 난데없는 말에 어리벙벙하게 눈을 깜빡였다.

‘조금, 조금 더 확인해 볼 게 있어서 그래. 잠시만 기다려라. 내가 너한테 맞는 글러브를 찾아오마.’

아, 아빠? 나는 후다닥 어딘가로 뛰어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멍청히 바라보았다. 뭐지, 이거? 잘했다는 건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를 돌았다.

‘이수야, 아빠가 왜….’

어?

하지만 나는 말을 계속 잇지 못했다. 돌아본 동생의 얼굴은 어딘가 충격을 받은 듯 굳어 있었으니까.

‘…이수야?’

‘아, 응, 어? 아! 누, 누나 굉장하다! 방금 진짜 굉장했어!’

조심스럽게 그를 부르자 동생을 화들짝 놀랐다. 하나 곧 그는 별일 없었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렇지만 그 안에 보인 감정은 쉬이 무시할 게 못 되었다. 나는 어딘가 어두운 것을 감추려는 듯한 동생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래서일까,

‘이나야, 이거 껴 보…,’

‘아빠, 저 안 할래요.’

나는 아빠의 운동 권유를 단호히 거절했다. 아빠는 내 거절에 심히 당황스러워하며 어떻게든 설득해 보려 했지만 이미 결정을 내린 나는 요지부동이었다.

‘이, 이나야, 그렇지만…!’

‘운동 같은 거 관심 없어요. 저 근데 친구랑 약속 있어서 먼저 가 볼게요. 아, 이수야, 넌 좀 더 있다가 가. 그럼 집에서 보자!’

나는 벙찌듯 바라보는 동생에게 손을 흔들며 홀가분히 체육관을 나섰다. 그런 내 뒷모습을 동생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어쩌면 그때로부터 우리의 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걸… 이제껏 담아 뒀다고.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올렸던 시선을 내리고 고개를 푹 숙이었다. 설마 그날 내 결정이 이렇게 발목을 잡을 줄 몰랐다. 나는 그저 동생을 위해 발을 물렸던 것뿐이다. 그저 아빠의 관심이 동생에게 더 향했으면 해서, 그래서 양보했던 건데. 그것이 동생의 심기를 자극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곤 정말 상상도 못 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래….’

서이수도 그 뒤로 몇 년간 티 내지 않아 나도 완전히 잊고 있던 일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 자식이 저러는 건가. 어쩌면 그날로부터 나를 향한 열등감이 쌓이고 쌓다 결국 어느 시점으로 폭발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깊은 자괴감에 빠져 얼굴을 깊게 쓸어내렸다.

툭, 투둑. 눈에 고인 물이 후두둑 떨어지며 바닥을 적시었다.

이게 뭐야. 별로 내 잘못도 아니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건데.

억울함과 서러움에 나는 허망히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있길 잠시, 곧 나는 눈물을 벅벅 닦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어떻게 된 건지 상황 파악부터 하자.

엄마의 말을 들어 보자면, 아빠는 이미 서이수와 절연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서이수의 죄질이 나빴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직 서이수가 저지른 죄를 정확히 모른다. 엄마에게 물어도 더 가르쳐 줄 의향은 없어 보였다. 그러니까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찾아갔다. 서이수가 다니는 태산 고등학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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