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2)
***
서이수는 교정 한편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평소의 활기를 잃고 어딘가 영혼이 빠진 것처럼 공허해 보이는 그 모습에 지나가던 아이들이 의문의 시선을 보냈으나 그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수야.”
그런 그의 곁으로 다가와 풀썩 앉은 이가 있었다. 흘깃, 보자 이재현이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저를 보고 있었다.
“오늘도 누나 병문안 안 갈 거야?”
“…….”
“누나가 너 기다리고 있을 텐데.”
…퍽이나. 서이수는 그의 말에 한쪽 무릎을 세워 얼굴을 묻었다. 서이수는 그의 누나가 수술을 받은 뒤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병원에 가질 못하고 있었다. 그의 상처는 거의 다 나아 가고 있었으나 마음의 상처는 나을 기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손안에서 누나의 숨이 점점 옅어져 가고, 체온이 식어가는 걸 느꼈다. 자신의 것이 아닌 누나의 피가 제 손을 물들였다. 그날의 일은 그에게 있어 다시 없을 트라우마였기에 그는 당시의 일을 온전히 기억하질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잔상으로 남은 상처는 깊었기에 그는 누워 있을 누나를 볼 자신이 없었다.
“…나 때문일까.”
“…….”
누나가 그렇게 된 거, 나 때문일까. 서이수의 눈이 슬프게 가라앉혀지며 그는 2주간 자신을 계속 괴롭혔던 생각을 저도 모르게 툭, 내뱉었다.
“내가 누나 말 안 듣고, 이런 짓만 안 했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 아냐.”
괜히 제가 일진을 한답시고 나서서 이렇게 된 게 아닌가. 누나는 원래부터 싸움에 말려드는 걸 좋아하질 않았다. 그런 그녀를 조커라는 네임을 가지게 만든 최초의 원인은 결국 저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이 모든 일의 원흉이 제가 된 것만 같아 그는 괴로워졌다.
“재현아, 나 어떡하지.”
누나를 볼 자신이 없어. 그는 우울하게 중얼거리며 나머지 무릎도 세워 얼굴을 그곳에 완전히 파묻었다.
“…이수야.”
이재현이 안타까운 마음에 그의 어깨를 짚었다. 하지만 한껏 울적해진 그의 심정을 달랠 수는 없었다.
“…누나 말, 들을걸.”
서이수는 자신의 경솔했던 행동들을 후회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누나도 나 같은 거 별로 보고 싶지 않을지도 몰라.”
“그건 아닐 거야.”
그의 자괴감 어린 독설에 이재현은 단호히 부정했다. 힘이 들어간 그 반박에 서이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이나 누나는 널 정말 좋아하는걸. 그건 보고 있으면 알아.”
늘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이었지만 그 안에 넘실거리는 애정은 한눈에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친구의 자기혐오적인 말을 정색하며 부정한 이재현은 곧 부드럽게 웃으며 친구를 다독였다.
“그리고 어머님이 말씀하셨잖아. 이나 누나는 강한 사람이라고. 그러니 괜찮을 거라고.”
누나가 수술실에 들어가 사경을 헤매고 있던 사이,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 가는 서이수를 향해 그의 어머니가 했던 말이었다.
‘네 누나는 강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괜찮아, 이수야.’
아들과 같이 괴로워하고 있을 법도 한데 그녀는 무너지지 않고 의연히 서서 다른 이들을 지탱했다. 그 강인한 모습이 마치 제가 그동안 봐 왔던 누나와의 모습과 흡사해, 같이 흔들리고 있던 이재현도 안정을 찾아갔다. 그것은 분명 저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곧 일어날 거야. 분명히.”
이재현은 믿었다. 제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강한 그 사람은 기필코 일어날 것임을.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저희를 반겨 줄 것임을.
“…….”
서이수는 그 말에 멍하니 그를 보았다. 확언하는 그의 태도에 서이수의 가슴이 크게 술렁였고, 이내 눈가에 물이 차올랐다.
“재현,”
지이잉-.
그때였다. 그의 핸드폰이 제 존재를 과시하며 진동을 울리기 시작했다. 감동에 차올랐던 서이수는 몸을 멈칫하며 곁에 두었던 핸드폰을 확인했다.
[엄마]
“…….”
서이수는 익숙한 이름에 반사적으로 얼굴을 굳혔다. 누나의 사고가 제 탓인 것만 같아 죄책감으로 인해 가족과의 대화도 단절된 지 오래였다. 이따금 엄마에게서 누나 얼굴 보고 가라는 연락이 오긴 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다. 그로 인해 더 어색해지고 서먹해졌던 만큼 그는 이 연락이 달갑지 않았다.
“이수야, 안 받아?”
이재현이 그런 그의 머뭇거림을 보고 고개를 빼내며 물었다.
“…아니, 받아야지.”
크흥, 서이수는 매운 코를 살짝 훌쩍이며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저를 위로해 준 친구가 옆에 있어서인지 차마 못 받겠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결국 한참을 망설인 끝에 그는 용기를 내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
[이수야!!]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이름이 크게 불렸다. 혼이 나는 건가 싶어 반사적으로 움찔 몸을 떨었으나 이어지는 말은 그런 게 아니었다.
[------!!]
“?!”
벌떡. 서이수의 몸이 황급히 일으켜졌다. 그러곤 생각할 틈도 없이 곧장 달리기 시작했다.
“이수야?!”
뒤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서이수는 대답도 못 하고 뛰었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뛰고 또 뛰었다.
“앗-!”
“죄송합니다!”
“조심…!”
“죄송합니다-!”
“병원에서 뛰시면 안 됩니다!”
“죄송합니다!!”
허둥지둥 달리는 도중 여러 번 부딪힐 뻔한 그는 연신 입에 사과를 달면서도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뒤로 욕도 들려온 것 같았지만 그저 공기 중으로 흩어질 뿐이었다. 그런 말은 지금 중요치 않았다.
허억, 허억.
겨우 도착한 목적지에 서이수는 가파른 숨을 몰아쉬었다. 떨리는 눈이 병실의 문을 보았다.
꿀꺽.
달려서 그런지 아니면 긴장해서인지 모르게 마른침이 크게 삼켜졌다. 서이수는 살짝 떨려 오는 손을 들었다. 그리고 이내 손잡이를 잡고 그 문을 열었다.
-아.
그리고 그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멍하니 입을 벌렸다.
창가에, 누군가가 긴 머리를 푼 채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음?”
밖을 구경하던 이가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제 얼굴을 본 그녀는, 쓰게 웃으며 어딘가 짓궂은 낯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뭐야, 너 표정이 왜 그래?”
그곳엔 기억 속에서처럼 언제나와 같이 누나가 건강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왈칵.
그리고 그는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였다. 한순간에 자리를 박찼고-.
“누나-!!”
그는 그리웠던 제 누나를 불렀다.
***
내가 깨어난 소식이 모두에게 전해진 건 정말 순식간이었다.
제게 매달리며 한참을 울던 동생을 달래고 나자 언제 이렇게 빨리 퍼졌는지 아이들은 바람같이 들이닥쳤다. 아이들은 내 멀쩡한 모습에 잠시 벙찐 듯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안도를 했고, 개중엔 뒤늦게 감정이 올라왔는지 서이수처럼 오열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의외였던 건 고찬영이었다. 나를 보며 굳어 있던 그는 내가 여러 번 불러서야 정신을 차리는가 싶더니 곧 왈칵, 하고 눈물을 쏟아 냈다. 완전히 아이처럼 울며 내 어깨를 붙잡고 우는 녀석의 모습에 꽤나 당황했다. 아이처럼 장난기가 많긴 해도 늘 어른스러워 보였기에 이렇게까지 울 줄은 몰랐다. 그런 모습에 같이 왔던 다른 애들, 특히나 나를 보며 울었던 이혜인과 안경희도 놀라서 눈물이 멎을 정도였다.
“…어머나.”
그런 고찬영의 모습에 엄마가 놀란 듯 감탄사를 터트렸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엄마가 말하길, 그는 올 때마다 내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웃음을 잃지 않았던 밝은 청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애처럼 울 때 꽤나 놀랐다고 한다.
“몸은 어때요? 괜찮아요?”
한창 애들을 달래고 나자 주연희가 코를 훌쩍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연희는 내가 자꾸 자신 때문에 다친다 생각했는지 굉장히 울적해 있어 그녀를 달래는 데 꽤나 애먹었다. 다행히 지금은 좀 괜찮아진 듯싶었으나 들려온 질문에 나는 난감히 눈을 굴렸다.
“어…, 이틀.”
“네?”
“이틀 후에 퇴원해도 된대.”
“……이틀, 이요?”
내 대답에 그녀를 포함한 다른 아이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올랍게도 내 몸은 완치 상태였다. 자잘한 상처는 있었으나 뼈고 장기고 손상된 곳 없이 말끔해져 있었다. 수술한 흔적까지 거의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으니 말 다 한 것 아닌가. 어쩐지 깨어난 뒤 굉장히 멀쩡하다 싶더니만…. 검진 후 나타난 결과에 30년 의사 경력 중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의사가 충격을 먹을 정도였다.
‘대신 다른 보상을 주도록 하지. 일어나면 자연히 알게 될 거야.’
시프……. 나는 덕분에 시프가 선물한 보상이 무엇인지 그의 말대로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아프지 않아서 좋긴 하다만, 참 당혹스럽기 그지없긴 했다. 이 기적과도 같고 괴물 같은 회복력에 의사의 눈이 강렬하게 빛났지만 나는 모른 척했다.
원래는 당장 오늘, 아니 내일 퇴원해도 될 일이었지만 2주간 의식 불명이었고 몸을 움직이지 않은 데다가 제대로 된 식사도 못 해 후유증이 나타날 수 있는 노릇이니 이틀간 더 지켜보자고 하였다.
물론 2주간 병상에 누워 있던 것치곤 관절이 뻣뻣하지도 않았고, 근 손실도 못 느꼈다. 게다가 미음이 아닌 아무거나 잘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도 허락지 않아 나는 눈물을 삼키며 맛없는 미음을 삼켜 내야만 했다.
그러고서 잠시 후, 내 병문안을 찾아온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윽.”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얼굴을 구기며 나타난 건 다름 아닌 최강혁이었다.
“왜 보자마자 시비냐, 넌.”
“그래, 네가 여길 왜 와?”
나는 그 버르장머리 없는 태도에 욱하며 한 소리 하니 한도훈이 내 말을 거들었다. 아니, 그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떨떠름히 한도훈을 보고 있으려니 최강혁이 짜증스럽게 얼굴을 구겼다.
“내가 오고 싶어서 온 거 아니거든?”
“누나-!!!”
최강혁의 말과 동시에 그의 뒤로 빼꼼, 하고 분홍 머리가 등장하며 명랑하게 인사를 해 왔다.
“으엑.”
이윤의 등장에 이번엔 한도훈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