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흔히 인터넷에서 ‘컨셉질’이라고 불리는 행위를 자행하는 이들이 있다.
특정한 인물에 대한 비하의 의미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저 잠시간의 재미! 실제 나 자신이 아닌 가상의 인물으로서 넷상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꽤나 재미있는 일이었다.
컨셉질을 하는 이들의 활동 공간은 여러 곳이 있으나, 나 같은 경우에는 굳이 그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첫 시작은 한 RPG에서였다. 나는 그곳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에게 ‘애기븝미’라는 캐릭터로 컨셉질을 시작했다.
애기븝미쟝: 하와와, 애기븝미쟝 오늘도 온 거시야요.
애기븝미짱: 옵바야들 오늘도 애기븝미쟝과 함께 즐거운 하루 보내는 거시야요!!! >_ㅇ
애기븝미짱: 오늘도 븝미쟝은 옵바야들과 함께 레이드 도랐숴요……. 키샤스 옵바야 극딜 너모 조았서얌…….
불사신선: 거 씨팔 컨셉 더럽게도 잡았네.(@서체 변경 끝)
당시 내가 키우던 캐릭터는 법미라는 별칭이 붙은 마법사. 나는 그 캐릭터에 대한 설정들을 하나씩 달아가며 컨셉질을 했다.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처음에는 대체로 미친놈 취급이었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점차 호응해 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애기븝미짱: 하와와와와!!!]
[업스커트블랙니삭스: 하와와와와와!!!]
[이딴겜누가하냐: 하와와와와와와!!!]
[불사신선: 저, 저…… 미친놈들 당췌…….](@서체 변경 끝)
결국 나중에 가서는 애기븝미쟝이란 존재가 사람들에게 퍼지게 되었고, 그 이후에서는 내 컨셉에 대해서 크게 불쾌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넷카마들처럼 민폐 끼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고 나름 자부할 수 있었다.
본래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았던 이들은 그냥 저거 또 시작이구나, 정도의 반응이 전부. 내가 그 컨셉과 같은 존재라고 믿는 이들이야 당연히 없었고. 본래 내 모습처럼 ‘털북숭이 남자’라는 이야기들이 커뮤니티에 떠돌아다녔다.
“지금은 아닌 거시애오.”
지금은 아니지만.
“하와와…….”
어휴…….
나는 몸을 일으켰다. 언제까지고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당장 사흘 전, 나는 컨셉에 잡아먹혔다. 직관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내가 설정을 짜 놓은 가상의 인물 그 자체가 되었다.
본래의 나, 게임 속에서 없는 인물이다.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지금 몸을 뉘고 있는 이 집 덕분이었다. 이 집은 원래 정수현 시절의 내가 살던 집이었다. 게임 속에서는 ‘다나 크리스틴’이란 낯선 이름의 소녀가 살고 있었고.
그것은 꽤나 섬뜩한 일이었기에 현실에 대한 부정도 해 보았다.
게임 속으로 떨어진 후 사흘 중 이틀은 그러느라 모든 시간을 허비했다.
하지만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앞으로 다나 크리스틴으로 살아야 한다.
“이렇게 가만히만 있을 수는 없는 거시애오.”
결심을 한 이상에야 무언가 앞으로의 삶에 대한 준비를 해 나가야만 했다. 나는 거실로 나갔다.
당연하지만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본래의 나 또한 고아였지만, 내가 만들어 낸 컨셉 다나 크리스틴 또한 각각 세 살 때와 다섯 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애초에 내 삶과 비슷하게 설정을 잡았기에, 다나와 나는 공통점이 꽤 있었다.
“하와와. 하지만 븝미쟝은 특별한 존재애오.”
물론 다른 점이 더 많았지만.
다나의 기억에 따르면, 이곳 세계부터가 내가 알던 지구랑 다른 것 같았다.
17세의 천재 마법사 다나 크리스틴이 존재할 수 있는 세계여야 하니.
덜컥.
나는 외출에 알맞은 차림도 하지 않고,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다나의 기억과 집 안에서 인터넷을 통해.
이곳 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 학습했지만, 실감이 되지 않았다.
눈으로 직접 봐야지만 체감이 될 것이었다.
“호에엥…….”
바깥으로 나간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익히 알던 지구, 한국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다.
* * *
내가 애기븝미쟝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활동하던 게임.
그것은 여타의 RPG에서와는 조금 다른 형태를 띠고 있었다.
판타지 세계관의 모험가 내지는 멸망 위기에 처한 세계를 구하기 위한 영웅.
기존의 RPG는 그런 캐릭터와 세계관을 채택했다.
하지만 〈히어로판타지〉는 현대를 배경으로 했다.
만약, 지구에 몬스터들이 나타나고 그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자들이 나타난다면?
그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세계관을 만든 것이다.
게임은 정말 재밌었다.
수없이 도처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또는 직접 서식지까지 찾아가서 사냥하고. 가끔 리젠되는 강력한 몬스터들은 힘을 합쳐 사냥하고…….
끊임없이 전투를 유도하며 긴장감을 주는 사냥.
너무나 복잡하고 가짓수도 많지만, 그만큼 각각 캐릭터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특성’이라는 특별한 시스템.
그 모두가 유저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그런데 그게 지금에 와서는 도리어 장애였다.
그 게임이 내 현실이 되었으니까.
“안녕하세요, 무슨 용무로 방문하셨나요?”
나는 지금 ‘히어로 협회’에 와 있다.
히어로판타지에서 모든 플레이어들이 퀘스트를 받고, 던전을 입장하기 위해 무조건 들러야만 하는 장소.
이곳이 이렇게 현실이 되어, 게임처럼 마우스 몇 번 클릭하면 모든 사무가 처리되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히어로와 관련된 모든 업무를 처리하는 곳.
그런 곳에 내가 온 이유는 간단했다.
“……저기요?”
잠시 대답을 하지 않자, 1층 홀의 직원이 의아하다는 듯 내 눈치를 살핀다.
나는 잠시 입을 달싹거리다가 말꼬를 텄다.
“븝미쟝, 히어로 등록하러 온 거시애오!”
“아, 얼마 전에 각성하셨군요?”
다소 당황스러운 어투였을 것임에도 당황하지 않고 응대하는 직원.
직업의식이라고 해야 할지, 그 의연함에 감동까지 차오를 정도였다.
아까까지 말을 제대로 꺼내지 못한 이유가 말투 때문이었으니까. 이 말투는 범인이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었다.
“언니야는 븝미쟝 말투가 괜찮아여?”
“히어로분들은 워낙 괴짜가 많으셔서…… 귀여워서 잘 어울리시는데요?”
진심 섞인 직원의 말에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구나. 20대 후반의 시커먼 남자가 내뱉으면 주먹다짐이 일어날 법한 말투지만, 적단발의 귀여운 소녀가 말하면 그냥 어울리는구나.
“신규 히어로 등록은 3층에서 처리하고 있어요. 여기, 서류 드릴 테니까 작성해서 가져가면 절차대로 처리해 주실 거예요.”
스스슥.
촥!
간결한 손놀림 몇 번에 십수 장의 서류들이 모인다.
프로다. 나는 감탄하며 그것들을 받아 들고 걸음을 옮겼다.
도도도도.
한시라도 빨리 특성을 확인하고, 앞으로 내가 살아갈 길을 확정하고 싶은 마음. 그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계단을 오르려 했으나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너무나도 떨어지는 신체 능력 때문에, 총총거리며 계단을 몇 개 올라가고 나니 벌써부터 지치는 기분이었다.
“무지무지 힘드내여…….”
아무리 가녀린 소녀라도 이 정도로 저질 체력일 수는 없으니까, 이건 빌어먹을 내 입방정 때문이다.
에에??? 애기븝미쟝은 몸이 약해여 >_<
아무래도 이런 캐릭터라면 병약 미소녀가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채팅으로 몸이 약하다, 애기븝미는 뛰지 못한다, 따위의 헛소리를 지껄여 대었다.
컨셉이 실제가 된 지금, 아마도 그것 또한 적용된 모양이었다.
“헤으응…… 흐응…….”
묘하게 달뜬 소리를 내뱉으며, 겨우겨우 층계를 올라간 나는 3층에 도달하고 나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맙소사! 겨우 계단 몇 개 오른 것만으로 이런 만족감이라니! 성취감이라는 게 별것 아니구나 싶어 헛웃음을 흘리던 찰나였다.
띵!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나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엘리베이터…….
“븝미쟝…… 멍청이……애오…….”
* * *
히어로판타지에서 플레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특성이라는 시스템이었다. 보통 게임에서는 레벨 업을 하고, 스탯을 올리고, 스킬 포인트를 얻어 스킬을 사용한다.
하지만 히어로판타지에서는 제각기 히어로로서 각성할 때 특성을 얻는다. 그 초기 특성과 더불어 후천적으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특성들. 그것들을 조합하고 상호 보완시켜 가며 강하고 독창적인 나만의 히어로를 키운다.
그것이 히어로판타지의 모토였다.
나 또한 게임의 랭커였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극한의 컨셉러 애기븝미쟝. 그 이름이 유명해진 것은 컨셉을 제외하고서도 상위급의 dps를 뽑아내는 내 레이드 실력 덕분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이 순간이 중요했다.
심장이 마구 두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초기 특성은 게임에서도 어떻게든 가변시킬 수 있던 적이 없었다. 아마 이곳에서도 마찬가지겠지.
아마 내가 싸질렀던 컨셉대로라면 분명 마법에 관련된 특성이 뜰 것이었다. 그렇다면 원하는 특성들이 꽤나 많았다. 마도의 도서관이라든가, 특수 속성 강화 같은 것들…….
“다나 크리스틴 씨?"
“호엥?”
“입장하시면 됩니다. 제3번 각성의 방으로 입장하신 뒤 감독관의 지시를 이행해 주세요.”
“호고곡…… 벌써 그렇게 되었군양.”
나는 총총거리며 3번 방으로 향했다. 뒤에 따라붙는 시선들이 느껴지는지라 최대한 빠르게. 잠시 적응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민망했다.
끼익.
다행히 내가 앉아 있던 곳과 근처였던지라 금방 도달할 수 있었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각성실 안에 들어가자 감회가 새로웠다. 컴퓨터 화면 속에서만 보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는 것이 생경하게만 느껴졌다.
되레 내가 다나 크리스틴이 되었다는 자각을 했을 때보다 더 이곳이 게임 속 세상이구나 하는 자각이 있었다.
“이쪽으로 오면 된다.”
내부 풍경을 둘러보며 어벙하게 서 있자, 보다 못한 감독관이 내 이름을 불렀다. 예, 부르면 부르는 대로 가야죠.
도도도도…….
나는 부러 아무 말 없이 감독관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굳이 비정상적인 놈이라는 인상을 주기가 싫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잘못된 모양이었다. 짧은 다리를 종종거리며 달려가는 내 모습이 웃겼는지, 감독관이 순간 웃음을 쿡, 하고 터뜨린다. 시발.
“크흠! 이쪽에 앉게.”
“고마오요, 감독관 옵바야!”
“푸흡!”
냉수 먹고 속이라도 차리려는 듯 물을 들이켜던 감독관은 물을 뿜어냈다. 그리고 그 물이 내 얼굴에 뿜어졌다.
촤악!
분사된 물이 피부에 닿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찝찝하고 더러운 기분과 함께 무언가 본능적인 반응이 올라온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채었다.
이건 결단코, 내 의지가 아니었다.
“흐윽…… 흐으윽…… 우아아아아아아앙!”
막을 새도 없이 올라오는 그 감정 탓에, 나는 떠나가라, 마구 울었다.
……내가 진정된 것은, 감독관이 장장 10분여에 걸쳐 어르고 달랜 뒤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