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정말, 정말…… 정말로 나쁜 사람이었던 거시애오.”
진짜 별 미친놈을 다 보겠네.
나는 툴툴거리며 다시 길을 나섰다. 쓸데없는 데 시간을 너무 허비했으니, 서둘러야만 했다.
스틸하트에 들어오자마자 첫 번째에 위치해 있던 대장간. 나는 그곳에서 호객하던 조수에게 붙잡혀 장장 2시간 동안 예쁜 쓰레기들을 구경해야만 했다.
그 대장간에서 만든 무기는 스펙은 구린데 외형은 그에 걸맞지 않게 아름다웠다. 아무래도 대장장이의 특성 중에 ‘세공’ 따위의 숙련도와 등급이 특별나게 높은 모양이다.
사실 육체 계열이 아닌, 힐러나 마법사 들은 성능보다는 외형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긴 하다. 게임 내 설정상으로도 그렇고, 실제 플레이어들도 그러했다. 실상 그들에게는 일부 장비를 제외하고는 착용의 의미가 거의 없었으니까.
그는 나 또한 그런 이들처럼 무기와 방어구의 미형을 따질 것으로 생각한 모양인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게 미학적 감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사실 장비가 성능만 좋으면 되었지, 외형이 예뻐 뭐 하겠는가.
나는 이딴 애기븝미 같은 컨셉질을 하면서도, 소위 룩딸 한 번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선지 나랑 레이드 돌던 아재들이 캐릭터 외형에 대해 한마디씩 했었지.
“하와와와…….”
하아…….
과거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더 우중충해졌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말 한마디, 저항 한 번 못하는 몸으로 이곳에 환생했는가.
왜 씨벌 막상 끌려가고 나서는, 이 몸의 특성인지 바짝 얼어붙어서는 오들오들 떨고만 있어야만 했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의문에, 한숨을 흘리고 있을 때.
한 대장간 앞에서 호객을 하고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저건 걸리면 안 된다.
그를 보자마자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다시 시간을 그렇게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최대한 눈이 마주치지 않게 빙 돌아서 피해 가려 했다.
하지만 내 몸에서 풀풀 피어오르는 초식동물의 냄새 때문이었을까. 그는 수많은 행인들 중 나를 콕 집었다.
“거기 아가씨, 장비 사러 오신 거면 저희 대장간으로 오시죠!”
“븝미쟝…… 괜찮아오…….”
“에이, 그러지 말고 저희 쪽으로 오시면 싸게 해 드릴 테니까…….”
그는 처음의 남자처럼 막무가내로 끌고 가지는 않았으나, 은근슬쩍 나를 살살 자기네 대장간 방향으로 유도했다.
나는 저항하려고 했으나 저항할 수가 없었다.
내재된 공포심 때문인지 몸이 바짝 얼어붙었고, 동시에 힘이 쭉 빠져나갔으니까.
이대로 가면 처음과 똑같은 상황에 처할 것 같았다.
왜,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하는가.
억울함이 북받치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런 개 같은 세상에 떨어진 것도, 그 때문에 본래 세계에서 맺었던 인연들도 강제로 끊어지게 생긴 상황도 모두 억울해 죽겠는데 왜 사람들마저……!
“흐윽…… 흐에에…….”
숨이 가빠지며 눈물이 고였다.
한창 신나게 나를 끌고 가던 남자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태도를 바꿔 내게 사근사근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 그렇게 싫으시면 여기 잠시 계셔 보세요. 제가 대장간에서 카탈로그라도 들고 와서 소개시켜 드릴 테니까…….”
어떻게든 나를 달래 보려는 듯한 모습이었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대신 가슴속에서 차오르는 울분과 슬픔만이 가속화될 뿐이었다.
이건, 나도 막을 수가 없다.
“후에에에에에에에에에엥!”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들 이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시선에 당황한 듯 남자는 우물쭈물하다가 내게 다가왔다.
“저, 제발…….”
조수가 기껏 떠올렸다는 방법이란 게 입을 틀어막는 것이었나 보다.
남자는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물론, 그 선택은 최악의 선택이 되었다.
“으브우…… 후에에에에에에에에엥!”
나는 더 격해진 소리로 동네가 떠나가라 울기 시작했고, 그 소동이 끝나기 전까지 일대의 대장간들이 영업을 하지 못했다.
결국 그 조수를 데리고 있던 대장장이가 직접 나와서 사과하고 나에게 무료로 장비를 줄 때까지 그 상황은 이어졌다.
* * *
“하와와와와…….”
나는 웅성거리는 인파를 빠져나왔다.
어떻게 일이 잘 풀리기는 했으나, 또 내 의지와 관계없이 이런 일이 일어나 버렸다.
이건 꽤나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짜 놓은 설정 때문인지, 이 몸은 감정 변화에 너무나도 약했다. 작은 변화 하나하나에도 호르몬이 마구 치솟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래서는 안 되었다.
하루바삐 이를 해결할 만한 방도를 알아내야만 했다.
물론 당장에야 힘들고, 차차 자리를 잡은 후에나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러면 그때까지는 계속 이런 상황을 겪어야 한다는 뜻인가?
나는 침울해졌다. 대장간에서 무료로 받은 장비도 내 우울함을 위로해 주지는 못했다.
……아주 조금 도움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은 거시애오.”
물론 아무것도 받지 못한 것보단 나았다. 그쪽 입장에서도 강매를 하려 한 정황이 드러나면,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으니 입막음으로 준 것이겠지.
나는 받은 액세서리를 꺼내었다. 마치 터키석 반지처럼 생긴 것이었는데, 나는 이 반지의 재료를 알고 있었다.
던전에서 나오는 것 중에 가장 범용성이 있는 품목인 마나석. 그중에서도 탁기나 마력의 양으로 봤을 때 최하급의 마나석이었다.
최하급이라고 해서 우습게 볼 수도 있었지만, 이만한 반지를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마나석 원석의 가격만 하더라도 10만 원, 이렇게 가공한 반지는 최소 50부터 시작이었다.
그렇게 따지자면 조금 쪽팔리고 50만 원 번 셈이니 이득인가,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나. 이건 내 존엄성과 관계된 문제였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리라…….
그런 다짐을 하는 사이, 나는 겨우 목적했던 곳에 다다랐다.
“드디어…… 도착한 거시애오.”
중간중간에 호객하던 이들은 나를 굳이 붙잡거나 하지 않았다. 방금 울고 와서 분위기가 바뀌었기 때문일까, 아무튼 내게는 다행인 일이었다. 그 덕분에 빨리 다다를 수 있었으니.
나는 시계를 봤다.
4시 30분.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다행스럽게도 늦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기는 5시 전까지 와야만 했다.
똑똑똑.
나는 굳게 닫힌 철문을 두드렸다. 이 대장간은 겉으로는 영업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실제로 이 시기라면 영업하지 않겠지만.
이 대장간은 게임 스토리 내에서 중간쯤에 등장한다. 주인공, 그러니까 플레이어의 동료로 등장하는 인물 하나가 거듭된 우연을 거쳐 발견하게 된다.
스틸하트의 외곽, 사람들의 발걸음도 거의 닿지 않는 곳. 그곳에서 홀로 망치질을 하며 자기 실력을 끌어 올리고 있던 대장장이, 김수혁.
이곳은 그의 대장간이었다.
쾅쾅쾅쾅!
나는 철문을 마구 두드렸다. 언뜻 무례한 행위가 아닐 수 없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에서 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었다. 이곳 대장간에는 김수혁과 친한 마법사가 방음 마법을 걸어 놓았다. 방음 마법은 내부의 소음을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게도 하지만, 그 반대도 가능했다.
계속 두들기면 소리가 들리지 않더라도, 진동은 느껴질 것이다. 대장장이들은 그런 것에 민감한 편이었으니, 바깥에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겠지……라고 생각했다.
“호에에에…… 븝미쟝 손 아파오…….”
조그만 손으로 철문을 한참 두드려 댔음에도 김수혁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손이 빨갛게 탱탱 부어올랐다.
좋다, 이쯤 되면 나도 오기가 생긴다.
나는 마력을 손에 응집시켰다.
사실 처음 하는 거라 잘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특성이 S급짜리니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하우우…….”
그리고 그 기대는 들어맞았다.
내 모든 힘이 손안에 모인다는 의지의 발현. 그에 따라 파란색의 광구가 내 손바닥 위로 떠올랐다.
이것은 ‘마나 스폿’이라고 불리는 마력 사용의 근간.
나는 그것에 의지를 한 번 더 불어넣었다. 그 의지는 파괴. 저 철문을 파괴한다…… 파괴한다…….
슈우욱.
그 의지를 불어넣음과 동시에, 마나 스폿이 더욱 커지더니 철문을 향해 빠르게 쇄도했다.
마치 야구 선수가 던진 공처럼 쭉 뻗어 나간 광구는, 철문에 부딪쳤다.
좋아, 이쯤 되면…….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며 마나 구를 보던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마나 씨! 그만두는 거애오!
광구는 철문에 부딪치는 것에 끝나지 않고, 철문을 우그러뜨리다가 끝내 통째로 뜯어 버리고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다.
번쩍!
순간 빛나는 대장간의 내부.
그와 동시에 무언가 폭음과 한 남성의 분노에 찬 고함이 들렸다.
“으아아아아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먼지구름.
나는 입과 코를 막고 그를 슬금슬금 피하면서 생각했다.
이거, 그냥 도망가는 게 낫지 않을까?
작금의 상황대로라면 장비를 부탁하기는커녕 당장에 고소를 당해도 쌌다. 죄목은 민간 지역에서의 마력사용과 테러…… 같은 거로.
하지만 내가 그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기도 전에 대장간에서 사람이 나왔다. 아마, 그가 김수혁일 것이었다.
“켈룩! 켈룩! 어떤 호로 잡놈의 새끼가…… 그냥 씨바 잡아다가 얼굴 가죽을…….”
그는 폭발에 피해를 입은 듯 절뚝거리며 대장간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 분노에 찬 목소리를 듣자니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예의 그 공포감이었다. 이거 진짜로 잡혔다가는 인생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 같은 기분인데.
이제는, 도망갈 수도 없었다. 발이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먼지구름이 조금 가시고, 나는 김수혁의 면면을 볼 수 있었다.
대장장이답지 않게 꽤나 긴 머리를 묶어 올린 근육질의 미남자.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맞았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그는 내가 게임 화면상으로 본 것보다 훨씬 젊어 보였는데,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게임 스토리상으로 등장하는 건 6년 뒤…….’
그가 게임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지금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김수혁의 데뷔를 6년 앞당긴 것이었다.
……그게 여아 폭행범으로서의 데뷔일지, 대장장이로서의 데뷔일지.
지금은 미지수인 부분이지만.
“……뭐야?”
김수혁도 나를 본 모양이었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을 건네었다.
“반가오요, 옵바야! 븝하! 애기븝미쟝이라고 해오.”
안녕하세요. 저는 다나 크리스틴이라고 합니다. 김수혁 씨.
나는 분명 이렇게 말하려고 했다. 최대한 정중하게. 하지만 이 빌어먹을 입에서는 이딴 말밖에는 나가지 않았다.
시발, 어떡하지.
완전히 망했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과연 김수혁은 이 충격적인 상황에 말을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젠장, 그렇겠지. 나라도 이런 개 같은 상황에서는 말을 잃어버릴…….
“귀여워.”
뭐?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분명히…….
“호에엥?”
시발, 왜 볼에 홍조를 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