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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6화 (6/172)

#6화. 사냥도 잘(?)하는 븝미쟝!

신념과 실리 사이에서 무엇을 택해야 하는가. 나는 따지자면 현실주의자였다. 물론 이번에는 이해하고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굴복할 수밖에는 없었다.

남성으로서의 내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절대로 그런 복장은 하지 않겠어!

……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좋은 성능이었다.

“하우우…….”

그런고로 나는 그 복장을 하고 필드로 향하고 있다.

혹여 그 근처에 옷을 갈아입을 만한 장소가 있다면 가서 갈아입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 봤지만, 원작을 떠올려 봐도, 이곳에서 얻은 지식을 따져 봐도 그럴 만한 장소는 없었다.

필드 근처는 아무래도 허허벌판이었으니까. 협회 직원들이 있는 검문소라든가, 긴급 상황에 대비하는 공무원들을 제외하면 몬스터들이 난립하는 필드.

그곳은 각 지대에 맞는 레벨을 가진 몬스터들이 자동으로 리스폰되는 장소였다.

게임 특유의 편의주의적인 설정인지, 가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몬스터들은 그 지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또한 각각의 필드는 몬스터들의 수준과 출현하는 몬스터의 종이 달랐다.

저기는 30등급 늑대형 몬스터, 여기는 21등급 용족 몬스터, 옆 동네는 18등급 고블린…….

그 덕에 히어로들은 비교적 안전하게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었다. 자신의 수준에 맞는 필드에 들어가서 얌전하게 사냥을 한다면, 정말 가끔씩 발생하는 돌발 상황을 제외하고는 대처할 여지가 충분했으니까.

“조심해야 하는 거시애오…….”

물론 그 ‘돌발 상황’이라는 변수는 유의해야만 했다.

김수혁에게 방어구를 받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갓 각성한 히어로가 갈 만한 던전은, 최하 등급인 30등급에서 27등급 사이의 필드.

내가 육체 능력이 아무리 쓰레기 같다고는 해도, 마력 스탯이 평균 이상으로 높은 데다 마력 재능까지 있어, 쉽게 클리어할 만한 곳이었다.

물론 실수이긴 했지만, 김수혁의 대장간을 난장판으로 만들면서 검증까지 하지 않았던가. 본격적인 마법도 필요 없었다, 그냥 마나 스폿으로 대충 마력을 모아서 던져 버리면 그것만으로도 웬만한 히어로들보다는 나은 사낭 능력이리라…….

“코수푸래? 고스뿌레? 그거 하는가 봐?”

그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그 누군가란 택시 기사님이었다.

어쨌든 주거지역과는 꽤나 멀리 떨어진 필드인지라, 버스나 여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도 애매하고 무엇보다 이 복장이 부끄러워서 택시를 탔다.

……그런데 택시 기사님도 신경이 쓰이셨나 보다.

구차하게 뭔가 설명하기도 뭐했으니, 나는 그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긍정했다.

“마, 마저여…….”

“하이고, 나는 또 학생이 탈 때 깜짝 놀랐……. 늙어서 그런지 요즘 젊은이들 문화는 못 따라가겠더라고, 허허허.”

아무래도 이 복장이 꽤나 당황스러우셨던 모양인지 그저 사람 좋은 웃음만을 흘리신다.

나도 얼떨결에 따라 웃었다.

사실, 내심 쪽팔려서 웃지라도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흐허허허!”

“호……호……호에애에…….”

그렇게 택시는 웃음을 싣고 달렸다.

*    *    *

〈히어로판타지〉는 여타 RPG와는 다르게, 사냥으로 성장하지 않았다. 물론, 성장을 하긴 했으나, 그것은 전문적인 훈련 시설(이를테면 아카데미나 길드의 마력 훈련실) 같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이었다.

필드에서 얻을 수 있는 희열은 ‘득템’과 ‘랭킹 포인트’.

플레이어들은 각자 목적에 따라 훈련으로 스펙 업을 하고, 랭킹을 올리며 그 재미를 맛보았다.

물론 게임이 현실이 되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곳에서도 히어로들은 득템과 랭킹 포인트를 열망했다.

다만 세세하게 들어간다면 차이는 존재했다.

일단 게임에서는 필드에서 드랍템으로 장비 같은 것이 떨어지지만,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몬스터는 그저 사체만을 남긴다. 그것이 게임과 이곳의 장인 대우가 다른 이유였다. 게임 속 실력 좋은 NPC라고는 김수혁뿐이다.

물론 이곳이 게임 스토리상 후반부에 이르면 몬스터에게 드랍템이 나오고, 장인들의 가치가 바닥을 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랭킹 포인트 또한 게임에서는 단지 성취감 내지는 과시욕으로 올리는 것이었지만, 이곳에서는 그것이 자신의 가치가 된다.

랭킹이 높은 히어로는 사실상 연예인이나 다름이 없다. 아니, 더 인기가 좋다. 랭킹을 올리면 부와 명예는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븝미쟝은 그런 거 필요 업서여…….”

하지만 나는 부와 명예 어느 것도 필요 없었다.

되레 ‘성장’을 위함이었다.

그건 스킬 숙련도라든가 스탯의 성장이 아닌 오롯이 나 자신의 전투 감각을 끌어 올리는 것.

키보드와 마우스로 플레이하는 게임 속 나는 최강자였지만, 이곳에서는 직접 몸을 쓰고, 마력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그를 사용하며 싸움을 해야 했다.

실상 운동이라고는 중학교 때 변변찮은 배드민턴부에서, 동 대회 정도 나가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어쩌면 다나 크리스틴이라는, 이 선천적으로 저질 체력인 몸에 들어온 것이 다행일지도 몰랐다. 나는 그 괴물들과 근접해서 싸우는 것도 무서웠고, 운동감각도 떨어졌으니까.

내가 익혀야 할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최소한의 위치 선정 능력, 안전한 전투 방법 정도. 나는 그것을 숙련하고 싶었다.

“헤으응…….”

흐어억…….

택시에서 내려 대략 5분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입에서 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가만히 있어도 부러질까 싶은 팔과 다리는 조금만 움직여도 부하가 걸렸다.

다행스럽게도 완전히 지치기 전에 필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익숙하면서도 생경한 광경을 둘러봤다.

필드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해 있는 자그마한 건물 하나와 그 라인 밖에 잔뜩 쳐져 있는 임시 천막들.

더 말할 필요도 없이 건물은 협회에서 입장 기록을 관리하기 위해 설치한 검문소였고, 그 옆에 친 천막들은…… 히어로들이 설치해 놓은 것일 터다.

그 목적과 용도는 제각기 다르겠지만, 추려 본다면 필드 내에서 필요한 각종 소모품을 판매하거나, 파티를 구하기 위함이 대부분이겠지.

과연 주변을 돌아다니던 히어로들은, 각각 천막에서 파티를 구하거나 혹은 미처 챙기지 못한 소모품을 샀다.

나는 뭐 챙길 것도 다 챙겼겠다, 딱히 파티 사냥을 하려는 생각도 없었기에 곧바로 검문소로 향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귀를 잡아끄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무슨 싸구려 F급 체력 포션 하나에 8만 원을…….”

“현장에서 8만 원이면 양반인 거 몰라? 아가씨, 불만이면 다른 곳으로 가시라고.”

웬 여자 히어로 한 명이 상인과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였다.

꽤나 큰 소리로 소란을 벌이는 통에 그쪽으로 시선이 하나둘 모여든다.

하지만 그 둘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같은 거로 싸우고 있었다.

왜 저런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본적으로 챙겨야 할 포션도 제대로 챙겨 오지 않은 히어로 쪽이나 시장가의 두 배가 넘는 가격을 부르는 상인이나 똑같아 보였다.

오십보백보, 도긴개긴, 용호상박…… 이건 아닌가.

순간 도와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금세 접었다.

지금 내 주제는 스스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었다.

그건 스틸하트에서 호되게 당하고 이미 깨달은 바였다.

괜한 오지랖 부리지 말자. 그게 모두에게 이로웠다.

나는 신경을 끄고 곧바로 검문소로 향했다.

“네, 무슨 일로 오셨나요?”

필드 진입 신청을 하러 왔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또 하와와, 븝미쟝 어쩌고저쩌고하는 소리가 자동으로 튀어나올 것이 뻔했기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대신 최대한 무표정한 얼굴로 얼마 전에 발급받은 히어로 등록증을 내밀었다. 검문소 직원은 나처럼 행동하는 이들에 꽤나 익숙한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 발급받으셨네요? 필드는 이쪽이 처음이고…… 28등급 필드인데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간단하게 고개를 한 번 끄덕거리는 것으로 답했다.

검문소 직원은 히어로 등록증을 내게 돌려주며, 무언가 작은 기기 하나를 같이 건네었다.

“처음 필드 사냥하시는 거니 주의 사항 안내해 드릴게요. 여기 단말기에 위험 구역 표시된 지역은 가면 안 됩니다. 다른 지역보다 강한 몬스터가 등장할 수 있습니다. 단말기 확인하시면 현재 위치 보실 수 있고요. 단말기 옆에 호출 버튼 누르시면 근처에 있는 히어로들이나 저희 검문소에 배치된 인원이 도와주러 갈 겁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다시 한 번 들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끄덕이고는 단말기를 챙겨 필드에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뒤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말기 대여비 3만 원 선불이에요!”

……나는 돌아가서 돈을 지불하고, 다시 발걸을음 필드로 옮겼다.

*    *    *

마법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 용도에 따라 공격 마법인지, 방어 마법인지, 보조 마법인지, 소환 마법인지.

각각의 카테고리 내에서도 공격 마법이라면 무슨 속성인지, 보조 마법이라면 정신 계열인지 단순 버프 쪽인지, 심지어 소환 마법 같은 경우에도 정령계, 환계, 신계, 마계 중 어디에 위치한 이들을 소환하는지 등등.

이 수많은 카테고리 때문에 안 그래도 어려운 게임이라는 소리를 듣던 히어로판타지에서 마법사 유저는 상당히 적은 비율을 차지했다.

특성을 개발하고 발전하는 것도 모자라 주력 마법을 정하고, 그 안에서 학파를 정하고, 그 학파에서 갈라진 분파를 또 정하고…….

매력적이며 재밌지만, 더럽게 어려운 직업. 그게 사람들이 말하는 마법사 캐릭터였다.

하지만 나는 그리 어렵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지엽적인 것이고, 제때 필요한 마법을 사용하는 센스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 지론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와와와와…… 마나 씨 나오는 거애오…….”

나는 처음 마나 스폿을 만들었을 때의 감각을 잊지 있었다. 시도할 때마다 조금씩 개선해 나가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개선되고 있었다.

퓽!

내 손에서 빠르게 튀어 나간 마탄은, 고블린의 머리를 꿰뚫었다. 예의 그 ‘케륵!’ 하는 비명조차 없이, 즉사를 한 것이다.

물론 초반에는 이렇게 안정적인 방법으로 사냥을 하지 못했다. 조준한다는 것이 그만 빗나가서, 분노한 고블린을 피해 무거운 몸을 버둥대며 도망치기도 했다.

하지만 거듭해 낸 결과 나는 꽤나 수준급의 마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F급 공격 마법보단 낫지 않을까. 스스로 그렇게 자부심도 생길 정도였다.

물론 이런 성과는 내가 천재여서, 따위의 이유가 아닐 것이다. 내 특성이 S급씩이나 되고, 그 세부 사항에 마법 숙련을 연상시키는 것이 있으니…… 웬만한 곰손 멍청이가 아닌 이상에야 이 정도는 해야겠지.

나는 단말기를 꺼내어 고블린의 사체를 찍고, 협회에 좌표를 송신했다. 이렇게 해 놓으면 나중에 히어로 협회 소속 직원들이 싹 수거해서 사체 수익금을 내게 정산해 준다.

벌써 아홉 마리째인가. 28등급 고블린이면 사체 가격이 8만 원 남짓이었으니, 뭐 이것저것 떼면 마리당 6만 원. 대충 54만 원인가…….

3시간가량의 노동치고는 너무나 많은 돈이어서 금전 감각이 희미해지려고 한다. 이제 갓 시작한 병아리 히어로가 이 정도 수익이라니. 황당할 정도였다. 목숨을 거는 전투를 벌인 것도 아니고.

“좋은 게 좋은 거야요…….”

뭐 어때.

나는 슬슬 돌아가기 위한 채비를 했다. 마력이라든가 챙겨 온 포션 같은 소모품들은 아직 멀쩡했지만, 내 체력이 너무 부족했다. 가방을 메고 3시간 움직이고 나니,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하와와와.”

아쉽긴 하지만 더 욕심부릴 이유도 없었다. 어차피 사냥은 계속할 것이고, 돈도 계속 벌릴 테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나는 그렇게 결심하고 필드 바깥을 향해 방향을 틀고 걸음을 옮겼다.

아니 움직이려고 했다.

빼액빼액빼액빼액.

“호에에엥?”

순간 단말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당황하며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단말기를 꺼내려 했으나, 그보다 더 직관적으로 현재 상황을 알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우우웅.

촤르르륵!

“후에에에? 이건 뭐야요?”

순간 눈앞에 나타나는 검은색 천공.

그곳에서 이상한 줄 같은 것이 나와 내 발목을 휘감아 갔다.

잠깐만,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나는 당황하며 곧바로 호출 버튼을 눌렀으나, 그보다 먼저 검은색 천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호에에에에에!”

나는 외마디 비명을 남긴 채, 단말기를 떨어트리고 다른 곳으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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