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내가 눈을 뜬 곳은 한 공동이었다. 정신을 잃었던 동안, 다행스럽게도 뭔가 공격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장소에 떨어졌다는 것만 하더라도 불안감이 생겼다.
“으으…… 이거는 뭐애오.”
나는 본능적으로 일어서려다가, 바닥에 넓게 퍼져 있는 끈적끈적한 타액과 같은 액체를 짚었다.
그때서야 나는 내 몸 전체가 그 액체로 뒤덮여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혹시 이거 독 같은 거 아니야?
히어로판타지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몬스터로부터 나온 수상한 액체를 맞았더니 맹독에 중독된다거나 하는 식의.
하지만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 듯했다.
그냥 기분만 조금 더러울 뿐이었다.
“끄헹.”
나는 단발의 신음을 뱉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닥도 몸도 미끈거려 일어나기 힘들었다.
“그나저나…… 너무 어두운 거에여…….”
공동의 내부는 희미한 불빛 같은 것이 살짝 밝혀 주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가시거리가 확보되지 않았다. 요 주변만 조금 보일 뿐.
이래서야 나아갈 수가 없다. 내가 뭐 광원 마법이라도 배웠으면 모를까.
어쩌면 좋을까.
머리를 굴리던 나는, 간단한 방법을 떠올렸다.
“바보 가튼 짓이에여…….”
간단하고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할 것이었다.
나는 마력을 끌어 올려 마나 스폿을 만들었다.
그러자 주변이 약간 더 밝아졌다.
외부로 사출되는 마력은 기본적으로 이렇게 밝게 빛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물론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었다. 아직도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늘어나여…… 마니, 마니…… 마나 씨! 힘을 내는 거시애오…….”
손에 떠오른 마나 스폿. 그에 조금씩, 체내 마나를 주입한다.
그러자 마치 물을 먹은 스펀지처럼 점점 부풀어 오르는 마나 스폿.
게임에서 마법에 대한 기초를 배울 때 가르치는 항목 중 하나인 ‘증폭’. 물론 나는 그를 배우지 못했으나, 어쩐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우화아! 븝미쟝 천재 아닐까여?”
손 위로 떠오르는 거대한 광구.
괜스레 뿌듯함이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특성발이니 뭐니 하긴 했어도, 나름 나도 소질이 있는 게 아닐까?
나는 한껏 우쭐해진 기분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미끌.
“에우우우?”
그러나 너무 신을 냈던 모양이다.
바닥이 미끄럽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자신 있게 내디딘 한 걸음.
그것이 참사를 불러왔다.
찰푸닥.
그대로 앞으로 엎어져 지면에 얼굴을 박아 버렸다.
그러자 찰박거리는 소리를 내며 점액질이 온 얼굴과 머리카락에 튀겼다.
덩달아 느껴지는 그 묘하고 기분 나쁜 비릿함까지.
시발.
감정이 복받쳐 왔으나, 나는 가까스로 울음을 참을 수 있었다.
* * *
갑자기 생겨난 검은색의 포탈, 그리고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히어로.
그것은 내게 있어 그리 어색한 구도가 아니었다.
히어로판타지에서도 계속 등장해왔던 장면이니까.
히어로들과 완전히 대척점에 놓여 있는 빌런들.
그중에서도 가장 골칫덩이로 손꼽히는 흑사회(黑蛇會).
그들은 필드가 아니더라도 세계 각지 어디서나 개 같은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흑사회가 가장 즐겨 쓰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었다.
인위적으로 만든 포탈. 그러니까 내가 지금 있는 이 공간을 만들어 히어로가 들어오도록 유도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리는 방법.
“나쁜 아조시들 때찌 때찌 해 주는 거야요!”
나는 거기에 걸려든 것이었다. 그러니까 운이 존나게 없었다는 이야기다.
애초에 흑사회는 초반에는 모습도 잘 보이지 않는 집단이다. 히어로 협회의 견제가 강력하고, 그들이 주로 쓰는 비열한 수법들 또한 완전히 개발되기 전이라.
그래서 이런 28등급 필드 같은 곳에 찾아오는 히어로들이나 처치할 수 있는, 조악한 포탈을 설치하는 것이겠지.
아마 이 포탈을 설치한 것도 히어로들의 전력을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히어로 협회의 신경을 분산시키기 위한…… 그런 용도겠지.
협회에서 은폐했을 수도 있지만, 어쨌건 이런 비슷한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을 뉴스 기사 같은 거로 보지는 못했으니 아마 내가 거의 첫 번째 타깃일 것이다.
왜 하필 나지? 따위의 불평은 의미가 없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불특정 다수의 히어로들이기에, 나를 표적으로 삼았을 리가 없으니까.
그냥 운이 안 좋았을 뿐이다. 정말 많이.
그러고 보니 내 특성에 운이 좋다, 뭐 그런 개소리가 쓰여 있지 않았나?
실제로 특성창을 열어 살펴보니 있었다.
‘븝미쟝은 운이 조와여!’ 하는 문구가.
개소리하고 있네.
“하유웅…….”
열을 내던 나는 현실을 직시했다.
뭐, 이렇게 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저 지금 처한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할 뿐이었다.
어쩌면 내가 이곳에 온 것이 다행일 수도 있었다.
흑사회가 만든 이 인공 던전의 파훼법은 꽤나 시간이 지나서야 밝혀지니까.
적어도 나는 이 던전을 어떻게 해야 빠져나갈 수 있는지, 그런 공략 목표는 알고 있었다.
“기다리고 잇서여…….”
포탈 내부에 존재하는 인공 던전.
이것은 스토리 후반이 되어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재해’와는 달랐다.
던전 내의 모든 몬스터를 말살해야 하는 재해와는 달리, 그것을 단지 카피했을 뿐인 이 인공 던전은 내부의 약점을 찾아 그곳을 공격하면 자동적으로 파괴된다.
그리고 그 약점은 던전의 테마에 따라 다르다. 이곳은…… 아무래도 거대 생물의 내부를 본뜬 것 같았다.
그것은 이곳을 떠돌아다니며 알아낸 사실이었다.
어두웠을 땐 단지 거대 공동 내부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꿈틀거리며 생체 반응을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욱…… 우에에에.”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순간, 코끝에 계속해서 풍기던 비린내가 더욱 역하게 느껴진다.
그럼 여기에 있는 미끌미끌한 액체도 그 생물의 체액이라는 이야기였으니까.
“므웱.”
딱히 먹은 게 없는지라, 토사물이 나온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헛구역질로 올라온 위액을 아무렇게나 뱉어 냈다.
어쨌든, 이곳이 거대 생물의 내부라면 공격해야 할 지점은 명확했다.
당연히 몸 내부에 노출되어 있는 장기의 내벽이다.
희미하게 보여 그저 공동의 벽인 줄 알았던 곳에, 광원을 가져다 대자 그 정체가 드러났다.
“븝미쟝 이런 거 못 봐여…… 아가에여…….”
꿈틀거리는 괴물의 내벽. 그곳에는 자글자글한 주름이 잡혀 있었다.
그 모습이 징그러워서, 몸이 저절로 그것을 바라보는 걸 거부했다.
하지만 나는 굳은 의지로 다시 그곳을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행동을 어느 정도까지는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것도 미약한 정도지만.
이곳이 장기 중 어느 곳이냐 하고 묻는다면…… 글쎄.
나도 해부학적인 지식이 있거나 한 사람이 아니라서. 애초에 문과생이었고.
“일단은…… 때찌 해 보는 거애오.”
아무렴 어때.
나는 내벽 중에 가장 약해 보이는 지점을 발견해 내었다.
핑크색으로 말랑말랑해 보이는 내벽. 나는 그곳을 향해 정신을 집중했다. 내벽을 공격하면, 이 거대 몬스터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나도 알 수 없었다.
완벽하게 정신을 잃을 정도로 강력한 타격. 그것을 성공해 내지 못하면 되레 내가 위험했다.
“마나 씨, 크게, 크게 모여 주는 거야요…….”
아까부터 들고 있던 광원의 마나 소모는 엄청났다. 중간중간에 껐다 켰다를 했는데도 내 마나는 3할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조금 마력을 회복한 뒤에 시도할까? 그런 생각도 떠올랐지만, 고개를 저었다. 언제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을 틈은 없었다.
“바보는 븝미쟝이었던 거애오…….”
처음에 필드에 들어올 때 봤던 여자 히어로와 상인.
나는 그중 여자 히어로를 향해 준비성이 없다며 비웃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진짜 바보는 나였다. 이런 하급 필드에서 마력 포션은 필요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체력 포션 몇 개만 준비해 왔다.
물론 그것은 마력 포션의 가격이 최하급이더라도 50만 원을 호가했기 때문이지만…….
“헤으응…….”
몸 안의 마력을 급속도로 끌어 올리자,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세포 하나하나가 민감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모든 마력이 내 손의 일 점에 모여들었다. 그것은 이미 단순히 마탄이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힘의 집합체.
나는 그것을 온 힘을 다해 던져 내었다.
콰아앙!
엄청난 폭발음을 내며 내벽에서 폭발하는 마력탄.
그와 함께 내부가 진동하며, 거대한 소리가 들려왔다.
꾸우우우웅!
그것은 아마 이 거대 생명체가 내는 소리일 것이다.
마치 물범이 내는 울음소리 같은 그 비명을 들으며, 나는 희망적인 생각을 떠올렸다.
성공인가?
하지만 연기가 가시고, 드러난 내벽을 보고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벽은 상당한 피해를 입어 걸레짝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으나, 어디에 천공이 난다든가 하는 상처를 입지는 않은 상태였다.
“후우우, 븝미쟝 화나써여!”
제기랄.
나는 이를 악물고 일어서 가방에서 단검을 꺼내었다.
미약한 육체 능력이라 큰 타격을 입히긴 힘들겠지만, 저 정도 상처라면 이것으로 충분하겠지.
저벅저벅.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겨우겨우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찌르기만 하면…….
“호……에에?”
순간 발목에서 익숙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것은 처음 이 포탈로 끌려 들어올 때 느낀 감각.
나는 본능적으로 ‘씨발개좆’ 됐음을 감지했다.
“헤에에에엥!”
나는 그대로 천장에 거꾸로 매달리게 되었다.
예의 그것들이 하나씩 나와 내 몸을 구속했다.
처음에 나를 끌고 갔던 것도 그렇고, 지금 내 몸을 구속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이제는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괴물의 몸속에 숨겨진 촉수였다.
죽는 건가.
나는 허탈함에 웃음을 흘렸다.
“헤헤……에…….”
이대로 촉수들이 갑자기 구속을 풀기만 해도, 이 나약한 육신은 그대로 몸이 터져 즉사할 터다.
나는 눈을 감았다. 죽는다는 건, 역시나 아프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촉수들은 내게 공격적인 행위를 하지 않았다.
“호엥……?”
무슨 일인가. 하고 눈을 떴을 때 직면하게 된 건 흉악하게 생긴 촉수였다.
“서, 설마…… 븝미쟝이 생각하는 그거는 아니져?”
촉수로 묶여 있는 사지와 다가오는 다른 촉수.
나는 이 구도를 굉장히 많이 봤다. 이 구도에서 소녀는 대부분 촉수에…….
“놔줘여어어어! 븝미쟝은 아가애여!”
나는 온 힘을 다해 발버둥을 쳤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하지만 촉수는 내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았다.
코끝에 느껴지는 비릿한 냄새가 어느새 달콤하게 변하고 있었다. 머리가 몽롱해지며 의식이 멀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잠이 들 것만 같았다.
“흐아아압!”
그렇게 반쯤 정신을 잃은 순간, 귓속으로 파고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 또한 묘하게 익숙했다. 나는, 그것이 처음 필드에서 봤던 여자 히어로의 목소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스르륵.
그리고 그 순간 몸을 구속하고 있던 촉수들이 풀려 갔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할 새도 없이 나는 아래로 추락했다.
다만 상상과 같이 몸이 박살 나는 고통은 없고 누군가 나를 받아 내는 느낌이 들었다.
“괜찮니? 이런 미친…… 이래서 마물들이란.”
잘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겨우 떴다.
흐릿하게 비치는 금발 장신의 여성.
나는 무의식적으로 말했다.
“언냐야…… 잠시…… 자도 될까여…….”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마디 외에는 아무런 사족도 붙이지 않았다.
“그래.”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