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븝미쟝이 시험을 봐요!
“으헤으…….”
나는 온몸이 쑤셔 오는 듯한 통증에 겨우 눈을 떴다.
체력 한계까지 마력을 운용한 부작용일 터다.
“탈출한 거시애오…….”
영문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탈출한 모양이었다.
눈을 뜬 곳은 포탈 속 인공 던전이 아니었다.
주변은 필드의 풍경이었고, 내가 누워 있는 곳은 간이 침낭 속이었다.
그 옆에는 몬스터들의 접근을 임시적으로 막아 줄 수 있는 소음 발생기까지 있었다.
뭐지,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어리둥절하던 나는, 기억을 잃기 전 마지막 광경을 떠올려 보았다.
“그 언냐야가 도와준 건가여…….”
어떻게 포탈 속으로 따라 들어온 것인지는 몰라도, 그 여자 히어로가 나를 구해 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이 침낭이라든가 여타 장비 같은 경우에도 그녀가 설치해 주고 간 것 같았다.
보통 모르는 사람한테 이렇게까지 하나? 고마운 마음과 동시에 의문도 생겼다.
내가 그녀를 봤을 땐 상인과 겨우 최하급 포션의 가격 흥정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장비들은 꽤나 고급이다. 28등급 필드에서 사냥하는 히어로들의 수입으로는 구매하기가 힘들 정도의 가격일 것이다.
정말 이렇게 조치를 취해 주고 바로 가 버린 건가?
나는 침낭에서 빠져나와 주변을 살폈다.
“저건 머에양.”
나는 덩그러니 놓여 있는 가방 하나를 발견해 내었다. 내가 챙겨 온 가방과는 다르게 생긴 것이었다.
그 겉면에는 종이쪽지가 하나 붙어 있었고, 나는 그것을 읽었다.
[너무 오랫동안 안 일어나서 먼저 갑니다. 필드 끝자락 위험지역에 걸쳐 있어서 업고 나가거나 하는 것보다, 이게 나을 것 같네요. 장비는 안 돌려주셔도 되니 걱정 마세요…….]
내 예상대로 그녀가 나를 구해 준 게 맞는 모양이었다.
그와 동시에 미안한 감정이 솟았다.
처음에 봤을 때 은근히 씹었는데, 많이 착한 사람이었구나.
나중에 어떻게든 보게 된다면 꼭 사례해야겠다. 그렇게 다짐하며 마지막 문장을 보는 순간,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옷은 점액질로 너무 더러워서 봉투에 담아 뒀어요. 점액에 기력을 빼앗는 성분이 있어서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옷을…… 벗겼다.
나는 내 몸을 내려다봤다.
괜스레 내 몸인데도 민망해서 거의 보지 않았던, 뽀얀 피부가 훤하게 드러났다.
“호에에에에…….”
민망함에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물론 여자끼리(?)인 데다가 엄밀히 따지면 내 몸도 아니니까, 괜찮다고 여길 수도 있었지만…….
“흐우우우…….”
나는 한동안, 얼굴을 들지 못했다.
* * *
내가 깨달은 교훈 하나.
어쩌고저쩌고해도 나는 결국에 이 세계에 들어온 이상, ‘스토리’에 참여해야만 했다.
이번에는 내가 운이 더럽게 안 좋았다 치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게 된나면 여러 헌터가 이런 일을 겪게 될 거다.
그냥 적당히 주연 일행들이 해결해 주겠지 하고 멍청하게 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엑스트라 1로서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었다.
스토리 후반부로 갈수록 희생당하는 건 주연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이상으로 엑스트라들이 많이 죽어 나간다.
지금부터라도 모든 일에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흑사회처럼 개 같은 집단의 표적이 되지 않을 정도로 멀리. 하지만 주연 등장인물들의 비호는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스토리상 벌어지는 일에 조금씩 개입해야 함이 옳을 것이었다.
“강해져야 해오.”
일단 가장 시급한 일은 바로 ‘펜타곤’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2월 중순에 열리게 되는 각 아카데미의 입학시험. 나는 거기서 통과해야만 했다.
그 입학시험은 당장 몬스터 대처 능력 항목이 높은 점수를 차지하기에, 특성이 좋다거나 기본 스탯이 높다고 해서 탱자탱자 논다면 낙제를 받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애초에 펜타곤에 들어가는 히어로들은 대부분 이미 유명한 기성 히어로들의 자제들이었고, 각성하지 않은 어린 나이 때부터 교육을 받아 온 일명 엘리트였다.
내가 그들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꽤나 큰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물론 제로베이스에서 따라가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특성이 S급이었고, 마력 스탯이 더럽게 높았으니까.
일단은 금수저란 소리였다.
금수저라, 현생의 나는 꿈도 꾸지 못했던 단어였다. 이것저것 안 해 본 일 없이 온갖 고생을 다 하고 다녔었으니까.
꽤나 새삼스러웠다. 일단 출발선이 남들보다 앞서 있다는 사실이.
나는 결심을 한 이후로부터 다시 필드에 뻔질나게 출입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조금 임하는 자세가 진지해지고, 동시에 조금은 조심스러워졌을 뿐이지 내가 잡아 놓은 계획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 결과 약 4주간 상승한 스탯은 마력 2, 체력 1, 민첩 1이었다.
와! 엄청난 성장!
……이라고 감탄할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만족스러웠다.
스펙적인 부분에서의 성장은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것이었으니까.
그리 급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나는 스탯을 불릴 만한 방법을 상당히 많이 알고 있다.
게임의 플레이어가 세계관 먼치킨이 되어 가는 퀘스트 라인.
그것을 따라가면 나도 꽤나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었다.
필드에 다니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전투 경험이었다.
보이지 않는 위치, 혹은 반격당할 일이 없는 위치에서 공격하는 방식.
전형적인 마법사들의 전투 방법이었다.
그를 계속해서 반복한 결과 ‘은신(D)’ 특성도 얻을 수 있었다.
후천 획득 특성이 D랭크 스타트라면 상당히 고무적인 것이었다.
“점점 수량도 많아지시네요, 조만간 이쪽 필드는 졸업하시겠어요.”
드디어 아카데미 입학시험을 보기 전 마지막 사냥 날.
나는 몬스터 사체의 좌표를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업체 관계자에게 넘겼다.
처음에는 사체를 협회를 통해 팔았으나, 사설 업체의 정산율이 더 높다는 걸 알고서 하나를 골라잡았다.
당연하지만 그곳은 장래가 탄탄한 곳.
게임 스토리상에서 언급도 되는 업체였다.
“하와와, 븝미쟝 강해진 거시애오.”
나는 감탄하는 업체 직원에게 자랑하듯 말했다.
다른 사람들 앞 같았으면 조금 부끄러울 법한 행동이었지만, 꽤나 익숙해진 사람인지라 스스럼없이 할 수 있었다.
점점 적응해가는 나 자신이 두렵기도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애기븝미짱, 다나 크리스틴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래도 살아간다.
“후후, 귀여우시네요.”
“븝미쟝은 언제나 그래여!”
그녀는 푸흐흐, 웃음을 터뜨리더니 인사를 하고 필드 안으로 들어갔다.
웃는 모습이 꽤나 예쁜 사람이었다. 내가 이런 몸만 아니었어도……!
가슴이 아려온다, 잠시간 망상을 하던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내일 있을 아카데미 입학시험을 준비해야만 했으니까.
“코오…….”
물론 그 준비란 완연한 휴식을 말하는 것이었다.
* * *
원래 지구에서 펜타곤은 미 국방부 본청 청사의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군의 상징으로서,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국가의 본청이라는 점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것은 히어로 아카데미 ‘펜타곤’ 또한 마찬가지였다.
원래 세계의 최강국이 미국이었다면, 이곳에서는 한국이었다.
그리고 그 한국의 최고 유망주들이 모여드는 펜타곤은 그 단일 세력으로서도 엄청나게 강한 힘을 자랑했다.
오죽하면 타국에서도 진상을 부리기로 악명이 높은 중국의 히어로들도 펜타곤 아카데미의 학생들만큼은 초대형 길드의 길드원처럼 어려워할 정도였다.
게임 스토리에서 등장하는 주연들 또한 모두 이 펜타곤 출신이다.
학연, 지연, 혈연이 여전히 남아 있는 가상의 한국에서, 펜타곤 출신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얻을 수 있는 이점도 상당한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 시험을 통과해야만 했다.
문제는, 그것을 나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여!”
나는 경악성을 질렀다.
이곳저곳을 둘러봐도 온통 사람, 사람, 사람들이었다.
이들 모두가 펜타곤에 입학하기 위해 시험을 보러 온 사람들이라니, 정신이 아찔했다.
이곳에 어중이떠중이는 없었다. 애초에 그런 사람들은 다들 서류 심사부터 떨어진다.
얼핏 봐도 수천 명은 되어 보이는 이들. 이들 중에 입학할 수 있는 인원은 단 300명이었다.
과연 내가 입학할 수 있을까……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어? 너는…….”
사람이 많아지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몸 때문에 구석에 박혀 있던 내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그것은 꽤나 친근한 말투였기에, 나는 의아하게 그쪽을 바라봤다.
나를 이렇게 부를 만한 사람이 없을 텐데?
“호엥?”
“맞는구나, 여기서 다 보네!”
나는 그쪽을 바라봤고, 그녀도 나도 서로 놀라워했다.
물론 나로서는 그녀가 놀란 이유도, 나를 친근하게 부르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놀란 이유는 명확했다.
“일리아?”
“뭐야, 내 이름 알고 있었어?”
환한 금발에 파란색 눈을 가진 전형적인 미소녀.
그녀는 히어로판타지의 주연 중 하나인 일리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