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일리아는 내가 자신의 이름을 안다는 것에 놀란 모양이었지만, 나로서는 모를 수가 없었다.
히어로판타지의 주연들 중 하나로, 후일 ‘검의 여제(女帝)’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였으니까.
외모도 상당히 예쁘고, 매력적이기도 한 캐릭터여서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한 ‘여캐’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고.
그녀가 이렇게 살아 움직이며 내게 친근하게 대하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그때 이름을 알려 줬었나? 아니, 애초에 의식도 없었는데…….”
일리아는 저 혼자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라니?
그녀와 내가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었나?
나는 기억을 되짚어 보았으나, 고개를 저었다.
결단코 그런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무엇을 착각하는 것일까?
“언냐야…… 우리 본 적 있어양? 븝미쟝은 기억이 잘 안 나는 거애오…….”
“맞지? 기억 안 나지? 그런데 어떻게 이름은 아는 거래.”
뭔가 서로 대화가 엇나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기억 안 나지’라는 말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 건 서로 본 적이 있지만, 나는 기억하지 못할 만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는 것.
그런 일이 있었나?
“설마…… 언냐야, 우리 한 달 전에 봤던 거에여?”
“그래, 한 달 전에. 이제 눈치챘구나?”
빙긋 미소를 지어 보이는 일리아.
나는 그제야 지금까지 대화가 어긋났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상한 던전에서여! 그때 구해 준 언냐야가…….”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에 처음으로 필드에 진입했을 때.
갑자기 나타난 포탈에 끌려가서 웬 19금 만화 같은 전개를 당할 뻔한 위기에 처했던 그때.
나를 구해 주고, 여러모로 조치까지 해 준 사람이 바로 일리아였던 것이다.
도대체 왜 몰라본 거지?
물론 던전 안에서야 의식이 반쯤 날아간 상태였으니까, 못 알아볼 만했다.
처음에 그녀가 포션을 파는 노점 상인과 실랑이를 하고 있을 때.
그때는 왜 못 알아본 것일까. 지금은 단박에 알아봤는데.
“다행이다, 그때 무사히 돌아갔구나. 혼자 필드에 놔두고 가서 마음이 진짜 불편했거든. 그런데 어쩔 수가 없었어. 내가 누구 지키면서 필드를 클리어할 만한 역량은 없었거든, 그땐.”
“아, 아니에여! 언냐야 덕분에 겨우 살았는데여! 그…… 고마워써양…….”
사람이 진짜 선하다는 게 팍팍 느껴진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주고, 보따리까지 건져 주다 못해 자기 보따리까지 내놓는.
게임 캐릭터라 그런가, 정말 비현실적인 성격이었다.
그녀는 빙글빙글 웃으며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별것도 아닌데, 뭘. 귀여워라.”
“헤으응…….”
나는 그런 그녀의 행동을 보며, 왜 이렇게까지 내게 호의적인가에 대한 의문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게임 내에서 일리아에 대한 설정. 그녀는 귀여운 것이라면 사족을 쓰지 못한다.
그 대상이 사람이건, 동물이건, 심지어 몬스터건.
그래서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많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빌런과 관련된 단체에서 그녀를 꼬이기 위해 귀여운 사역마를 미끼로 사용한다든가 하는.
그러니까 다나 크리스틴은 객관적으로 상당히 귀여운 외모에 속한다.
‘애기븝미쟝은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거시애오.’ 따위의 내 헛소리가 반영된 것인지는 몰라도.
일리아가 내게 호감을 느낄 수밖에 없겠지.
그건 내 이곳에서의 삶에 있어서 상당히 이점이 되는 것이었다.
벌써 김수혁에다가 일리아까지…… 메인 등장인물을 둘씩이나 내 편으로 만들었다.
물론 김수혁의 경우에는 특성도 작용했겠지만, 나는 그 특성은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거를 남발했다가는 큰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은 것 같으니까.
“그나저나, 이름이 다나였나?”
“호에? 븝미쟝 이름은 어떻게 안 거시애오?”
“그때 협회에다가 조난 신고를 할 때 확인했지. 히어로증이랑 단말기로.”
아, 그렇겠구나.
이름만인가, 맨살도 다 봤을 터다.
괜스레 그때 생각이 나서 부끄러워진다.
일리아 또한 그런 기색을 눈치챈 것인지, 푸흐흐 웃음을 터뜨리다 말했다.
“나는 네가 내 이름을 아는 게 더 신기한데? 아니, 애초에 그때 기억도 없으면서 얼굴도 알아봤고.”
그녀는 별생각 없이 한 말로 보였지만, 나는 순간 바짝 얼어붙었다.
내가 일리아를 알아보는 것은 분명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아닐 터다.
지금으로써는 그녀가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이전.
하지만 일리아가 포텐을 터뜨리는 것은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난 후였다.
본래 200등대로 입학한 그녀는 첫 학기에 두 자릿수 등수에 들게 되고, 다음 연도가 되면 괴물들이 득시글거리는 이번 기수에서 5등 안에 드는 쾌거를 보인다.
그러니까 지금의 그녀는 별로 유명하지 않다.
일반인들은 얼굴만 보고 알아볼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대답하지, 머리를 굴리던 나는 이윽고 시선을 돌리고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 저기 시작하는 거 같아양!”
“뭐가? 아!”
때마침 시험장 중앙의 단상에 누군가 등장했기에.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그 사실에 정신이 팔려 내게 던진 질문을 잊은 모양이었다.
나는 속을 쓸어내리며 함께 단상을 바라봤다.
그곳에 올라온 남자는 포마드 스타일에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시원시원하게 생긴 외모와 상당히 잘 어울리는 복장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는 그 복장이 상당히 거북하다는 듯 옷소매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좌중을 들러보던 그는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오늘 입학시험 총감독을 맡은 정찬성입니다.”
우와아아아!
그의 짧은 인사가 끝나자, 곳곳에서 박수갈채와 함께 환호가 터져 나온다.
그가 총감독이라서 미리 아부를 하는 것일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냥, 순수히 인기가 있는 것이었다.
정찬성, 그는 게임 후반부까지 살아남는 조연 중 하나였다. 조연이라고는 하지만 그 무력은 주연 등장인물급. 아마 지금쯤이라면 한국 70위쯤에 위치해 있는 인물일 것이었다.
애걔, ‘겨우 70위?’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실상 70위면 한국 최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미 은퇴하거나 노쇠화로 인해 약해진 히어로들의 예우로, 순위를 상위권에 올려놓는 경우가 꽤나 많았으니까.
“다들 조용히 해, 여기 놀러 왔어?”
다만 그 본인은 그 인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했다.
그의 일갈과 함께 모든 사람들이 입을 닥쳤다.
한창 터져 나오던 박수 소리도 종적을 감췄다.
주변이 고요해지자, 만족한 듯 인상을 편 정찬성은 안내를 시작했다.
“자, 일단 처음으로. 본 감독관이 지시할 시에는 깝치지 말고 따르도록 합니다. 두 번째, 훈련 중 사고가 일어나면 니들 알아서 하세요…….”
그의 안내는 ‘개망나니’라는 주위 히어로들의 평가가 딱 맞는 것이었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반짝거리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에휴, 한숨을 쉬며 옆을 돌아보니 일리아 또한 나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이런대, 벌써부터 고생길이 훤하다.”
“그러게여…… 걱정이네여.”
나와 일리아는 몰래 소곤거리며 정찬성의 뒷담, 아니 앞담을 했다.
원래 사람이 친해지려면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기보다는 싫어하는 것을 공유하는 것이 더 빠른 법이니까.
하지만 우리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면, 한국 70위 히어로의 청력은 진짜 더럽게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거기! 시험 시작 전부터 실격당하기 싫으면 조용히 해!”
“네, 네!”
“후에에에!”
놀란 마음에 터뜨린 소리에, 모든 시선이 이쪽으로 쏠린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파묻었다.
그저 민망했다.
* * *
전체 인구 대비 히어로의 비율은 높지 않지만, 그것을 단순 숫자로 따지면 상당히 많았다.
그만큼 한국에는 꽤나 많은 숫자의 아카데미가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 명문으로 인정받고, 이후에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나서도 졸업생들 대부분이 이름을 날리는 아카데미는 몇 없다.
그중 제일이 지금 내가 시험을 보러 온 이곳 펜타곤이다.
그런 만큼 시험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사실상 펜타곤의 시험은 일종의 쇼와도 비슷했다.
이번 기수에는 어떤 능력을 가진 유망주들이 있을까, 어떤 히어로가 뛰어날까.
그것에 대해 국민들은 항시 궁금해했다.
그 때문에 각종 방송사와 길드 관계자들 또한 이 시험을 주시하고 또 중계했다.
물론, 그렇다고 보여 주기 식 시험으로 평가하는 건 아니었다.
간간이 시험에 대해 논란이 발생하긴 해도 나름 객관적인 평가 지표도 가지고 있고, 심사를 맡는 감독관들이 권위와 신뢰도도 높은 인물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묻혔다.
“이번에는 무슨 시험일까?”
주위에 있던 수험생 중 한 무리가 그 시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도 전부터 친했던 이들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대부분 1세대 히어로들의 자녀들이겠지. 일반 가정에서 태어난 이들이 친구로 지내다가 다 같이 각성할 확률은 너무나 드무니까.
“몰라, 작년에는 그래도 점잖았던 편이라고 하는데. 점잖다는 게 드라이어드 열매 털기, 15등급 필드 몬스터랑 맞먹는 목각인형 레이드하기, 그런 거였잖아.”
“시발, 진짜 더럽게 빡세네.”
“펜타곤이잖냐.”
그들은 작년 시험 내용에 관해 이야기하며 불평했다.
호오, 그런 것들을 했었나?
게임 내에서도, 설정집에서도 따로 언급이 없던 내용이라 몰랐다.
펜타곤의 시험 내용은 계속해서 바뀐다. 큰 줄기야 비슷하지만, 시험을 분석하여 공략법을 만들어 내는 막기 위해, 조금이라도 계속해서 뒤튼다.
그렇기에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시험 내용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물론, 그것을 아무렇게나 떠들 생각은 없었다. 좋은 정보는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이…….
“이번 시험 주제는 뭘까? 다나, 넌 알 것 같아?”
일리아가 천진한 얼굴로 물어 온다.
나는,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그래, 얘는 예외로 해도 되겠지.
절대 내 ‘최애캐’ 중 하나라서가 아니라, 이렇게 호감을 사 두면 나중에 내게도 좋으니까.
“아까 보니까 뒤에서 밧는데…… 막 옵바야들이 ‘뚜쉬뚜쉬!’ 하면서 때리는 그거랑 비슷했어양!”
“뚜쉬, 뚜쉬? 아, 펀칭 기계?”
잠시간 내 어설픈 펀치를 따라 하던 박수를 ‘짝!’ 하고 쳤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네.
이번 시험의 첫 테마는 마력 측정이었다.
일반적인 오락실 펀칭 기계의 대략 스무 배 정도 큰 거대한 기기를 전력으로 타격하는 것으로 마력을 측정하는 것이다.
무슨 원리인지는 몰라도 기계는 그 사람의 마력을 정확하게 측정한다고 한다.
나는 걱정이 없었다. 다른 스탯이야 쓰레기지만, 마력 하나는 뛰어났으니까.
단지 여유로울 뿐이었다.
“이거는 진짜…… 진짜…… 나빴어여…….”
하지만, 막상 시험을 보러 올라갔을 때. 내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며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