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애기븝미쟝이 되었다-10화 (10/172)

#10화.

“야, 이거 완전 예능 프로그램 같지 않냐?”

“그거 있잖아. 히어로들 나와서 하는 프로그램. 세트장도 있고, 펜타곤 시험이 특이하다더니 진짜였네.”

주변의 상황을 둘러보니, 이걸 보여 주기식으로 하는 시험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보인다. 되레 긴장하기보다는 재밌게 생각하는 듯한 면면도 있다.

하지만 일견 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 시험은 사실 참가자들의 절반 가까이 탈락시키는 시험이다.

일단 이 많은 인원이 펀칭 기계를 돌아가면서 치는 데에만 수 시간이 걸리는데, 이걸 단지 보여 주기식으로 진행할 리가 없지 않은가.

“자, 1번부터 차례로 나와서, 앞에 있는 이 펀칭 머신을 공격하시면 됩니다. 마력이 담겨 있는 공격이라면, 어떤 형식을 취하건 상관없습니다.”

“사회자, 바뀌었네.”

옆에서 일리아가 조금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정찬성이 저런 멘트를 치는 모습은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으니까.

사회자의 멘트에 따라 1번이 단상 위로 올라간다.

그에 따른 사람들의 호응은…… 없었다.

‘듣보’였으니까.

“첫 번째다. 쟨 처음 보는데.”

“븝미쟝도 그래여…….”

그 자세나, 느껴지는 기운 자체가 평범한 것이 그리 눈여겨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애초에 주·조연급 등장인물이면 내가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나는 그것을 보는 대신 내 번호표를 살펴봤다. 389번. 아무래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파앙!

1번은 아무래도 무투 계열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는지, 각반을 착용하고는 기기를 가격했다.

그와 동시에 ‘삐리릭!’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기계가 점수를 산출하는 소리.

떠오르는 점수는 129점이었다.

“높은 건가? 첫 번째라서 모르겠네.”

“쟤보단 내가 셀 거 같은데. 저게 높은 편이면 좋겠다.”

“큭큭, 꿈 깨 병신아.”

주변에서 웅성거림이 이어진다.

아무래도 다들 감을 잡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낮은 편이네양.”

“어떻게 알아?”

“하와왕…… 븝미쟝은 똑똑해서 이런 것도 잘 아는 거야요.”

“그……래?”

일리아는 아리송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이게 진담인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이었지만, 당연히 내 얼굴에는 티가 나지 않았다.

컨셉에 잡아먹히고 나서 좋은 점 중 하나가 내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니까.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여기서 사람들이 얻는 점수를 대강 안다.

평균이 180점 정도. 주연급 인물들은 대략 250~300점대가 나온다.

개중 제일 높은 것이 펜타곤에 잠입한 위장 히어로이자, 빌런인 ‘J’이고 384점.

일리아는…… 200점대 초반으로 아슬아슬하게 통과한다.

아무래도 성장형이다 보니.

그러니까 방금 1번은 터무니없이 약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갓 각성하고서도 그리 어렵지 않았던 28등급 필드의 몬스터들을, 저 녀석은 굉장히 어려워할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히어로로서 살아가는 것엔 지장이 없을 것이었다. 아카데미가 펜타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히어로는 점점 강해지니까.

뒤이어 2번, 3번, 4번…… 두 자릿수까지 순번이 지나갔을 때쯤 사람들도 감을 잡은 듯했다.

적어도 200점 정도는 떠야 안정권일 것이다. 내 기억으로 커트라인은 204점.

게임 플레이를 할 때는 따로 변별력을 가릴 요소가 없으니, 리듬 게임처럼 박자를 잘 맞춰서 가격해야 통과했었다.

“아마 통과하겠져? 언냐야랑 저랑.”

“그래. 그럴 거야, 걱정하지 마.”

아마 그 정도는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에 하나 안 나온다면…… 어쩔까.

내가 그러면서 걱정스러워하자, 일리아가 나를 꼭 껴안아 준다.

키 차이가 꽤 나는지라 그녀의 가슴팍에 내 얼굴이 있었다.

그저 폭신하다.

개이득.

내가 그렇게 일리아와 노닥거리고 있던 사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 어느새 100번대가 되었다.

대강 자신의 당락에 대한 느낌을 받은 히어로들, 그들은 좌절하거나 혹은 기뻐했다.

여기서 몇 명이나 떨어트릴지 모르는 데다가 아직 진짜 강자들이 나타나지 않아서, 그 기준점은 실제 커트라인인 204점보다 낮은 190점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뭐, 이제 바뀌려나…….

나는 올라오는 사람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아까 말한 아카데미에 잠입한 빌런 J를 제외하면, 히어로 중에서는 최강인 이.

“하와와, 멋진 언냐야가 올라온 거애오.”

“뭐야, 신하연이네?”

일리아는 그녀를 보자마자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으나, 일부러 모른 척 그녀에게 물었다.

“일리아 언냐야는 저 언냐야 알아여? 어떤 사이에양?”

“……조금, 별로 친하진 않지만.”

그러면서 이를 바드득 가는 모습에서 냉기가 뿜어져 나온다.

아까 전 나랑 노닥거릴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지만, 나는 이쪽의 일리아가 익숙했다. 그녀는 원래 타인에 대해 꽤나 배타적인 성격이었으니까.

이렇게 말하면 조금 기분이 묘하긴 한데, 나는 귀여워서…… 잘해 주는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그 이유 하나만으로.

“자, 118번 신하연 참가자. 가격해주세요.”

단상 위에 올라온 그녀를 알아본 많은 사람들과 알아보지는 못했더라도 알게 모르게 풍기는 특별한 분위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몰린다.

신하연은 그를 의식한 듯, 사람들을 향해 미소와 함께 약간의 교태(이때 일리아가 ‘헹!’ 하며 얼굴을 찌푸렸다)를 부리더니, 기기를 가격했다.

그녀의 무기는 가녀린 몸과는 대비되는 워해머.

비교적 얇은 세검을 사용함에도 탄탄한 몸을 지닌 일리아와 대비되는 것이었다.

과연 제대로 들고 휘두를 수나 있을까, 사람들의 의문을 가지던 그때…….

부우우웅!

거짓말처럼, 그것은 가볍게 휘둘러져 기기를 타격했다.

콰아앙!

삐리리리릭!

엄청난 소리와 함께 정산되기 시작하는 점수.

그것은 100점, 200점을 지나 300점에 도달했다.

끝내 전광판에 표시되는 점수는 356점.

그녀는 상큼한 미소와 함께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 보였다.

“와,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저게 말이 되냐?”

“……이번 기수 살벌하다더니, 장난 아니네.”

“쟤만…… 저런 거겠지?”

히어로들 모두 침묵했다가, 저 멀리 일반인들에게서 들려온 환호에 깨어나 웅성거렸다.

그만큼 조금 전의 광경은 비현실적이면서, 압도적이었다.

다들 그녀를 칭찬하고 있는 가운데, 나는 일리아의 기색을 살폈다.

“불여시련…… 불여시련…… 불여시련…….”

……아무래도 지금은 말을 걸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조용히 내 순번을 기다렸다. 내 앞에, 주연급 인물들이 나오게 되면, 그거나 조금 구경하지, 뭐.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내 순번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까보다 훨씬 나아진 상태의 일리아에게 넌지시 물었다.

“언냐야는 몇 번이애오?”

“나는 1091번. 다나는?”

“하와와와…… 언냐야는 한참 뒤네여…… 저어는 곧 나가야 할 것 같은 거야요!”

“그래? 빨리 갔다 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녀는 그러면서 주먹을 쥐어 보이며, ‘화이팅!’ 하고 속삭였다.

나는 웃으며 단상 근처로 달려갔다.

“호에에에, 언냐옵바야들 비켜 주는 거야요.”

“어, 어. 미안해요.”

“아, 지나가.”

사람들이 꽤 많았지만, 별로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호에에에!’ 하며 걸어가자 알아서 사람들이 길을 터 주었다.

일종의 사이렌 같은 건가. 븝미 사이렌…….

아무튼, 얼마 걸리지 않아 단상에 도달한 나는, 내 이전 순번의 히어로가 시험을 치르는 모습을 구경했다.

“호에에엑…… 사람 엄청 많은 거애오…….”

단상 계단에서 바라보는 광경은 아래에서 바라볼 때와 사뭇 달랐다.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란, 정말 많은 숫자구나.

새삼스레 체감되며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내 생애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 본 적이 있었나?

단언컨대 없었다. 해 봤자 수학여행 장기 자랑 정도가 전부였지.

그 떨림은 외부로도 표출되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자동으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후에에에…… 언냐옵바야들 너무 많은 거야요…….”

[븝미쟝, 옵바야들이 자꾸 그렇게 쳐다보면 떨리는 거야요…….]

과거에, 이런 주접을 많이 떨었었기 때문일까.

스틸 하트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몸 자체가 긴장감에 더럽게 약한 것 같다.

하지만 견뎌 내야만 했다.

“389번째 참가자, 다나 크리스틴. 공격해 주세요.”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에…….”

후우.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집중한다.

마력을 한 점에 집중하고, 사출해 내는 과정.

나는 그 과정에 익숙해져 있다.

아마, 실수 없이 될 것이었다.

후우웅.

손 위로 떠오르는 광구.

됐다, 무사히 펼칠 수 있었다.

그럼, 이걸 이제 던지기만 하면…….

메인 스토리 라인에 진입하셨습니다! 첫 번째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호에엥?”

눈앞에 뜬금없이 떠오르는 활자, 나는 당황해서는 마력으로 이루어진 구를 없애 버렸다.

이게, 뭔 뜬금없는 소리야?

퀘스트(반복, 성장).

―‘애기븝미’로서 명성도 1,000 쌓기.

다음 퀘스트(반복, 성장).

―‘애기븝미’로서 명성도 3,000 쌓기.

기간: 30일

보상: 특성의 세부 항목 중 일부 잠금 해제 및 성장.

실패 시: 영원히 애기븝미쟝인 거시애-오!(특성 전 항목의 성장 불가).

현재 ‘애기븝미’의 명성도는 31입니다!

이게 무슨…….

급작스럽게 떠오른 퀘스트는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메인 스토리에 진입? 퀘스트?

아니, 시발! 그게 왜 이제야 뜨는데.

하지만 지금에서는 그 당혹스러움을 온전히 받아들일 시간조차 없었다.

“아아,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아, 아니애오!”

내가 갑자기 시험 도중에 마력 구를 없애자, 뭔가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사회자와 관계자 한 명씩 달려와 내게 물었다.

내가 겪은 일을 말할 수야 없는 노릇이었으니, 일단은 괜찮다고 했지만…….

아직은 얼떨떨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나는 뺨을 짝짝 치며 정신을 다잡았다.

그래, 일단 당장 중요한 일부터 하자.

눈앞에 있는 시험부터 치르고 나중에 제대로 확인해야겠다.

그렇게 결심을 하며 다시금 아까 전의 행동을 반복했다.

애기븝미의 명성을 올릴 기회입니다! 어서 행동하세요!

“상태창 씨 적당히 하는 거야요…….”

하지만 그것도 허용되지 않는 듯 눈앞에 문구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아무래도, 실천하기 전까지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 시발. 한다 해.

애기븝미로서 명성을 올려라, 그것은 히어로판타지를 플레이한 나로서는 너무나 직관적인 것이었다.

대단한 일을 해내거나.

혹은 관종이 되면 되었다.

그리고 상태창이 원하는 것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누가 봐도 후자였다.

나도 이젠 모르겠다.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사회자를 향해 걸어가, 그의 손에 들린 마이크를 빼앗았다.

“엇.”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어벙한 소리를 내며 굳어 버리는 사회자.

나는 그가 이의를 제기하기 이전에 곧바로, 일을 저질렀다.

“언냐옵바야들 모두 븝하! 저어는 언냐옵바야들의 영원한 귀요미 애기븝미쟝이에여!”

단상을 넘어, 그 아래.

저 멀리 있는 일반인들에게까지 울리는 내 목소리.

그와 함께 눈앞에서 시야를 가리던 메시지는 사라졌다.

대신, 새로운 메시지들이 쇄도했다.

대상, 강수민이 당신을 인지합니다. 명성 +2.

대상, 한형수가 당신을 인지합니다. 명성 +1.

프로그램 펜타곤의 시청자들이 당신을 인지합니다. 명성 +328.

…….

그것들은 내겐 이제 내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알림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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