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애기븝미쟝이 되었다-11화 (11/172)

#11화.

내 음성이 마이크를 통해 전역에 울려 퍼진 이후, 돌아오는 것은 환호도 함성도 아니었다.

단지, 침묵.

몇몇 정신나간 사람들을 제외하면(그들은 내게 함성을 보내주었다) 그저 방금 일어난 일이 뭔지 모르겠다는 듯, 그저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 또한 자괴감의 파도가 몰려왔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이미 내가 퀘스트를 하기로 한 시점에서 이런 상황은 예견된 것이었다.

나는 과거에, 히어로판타지 내에서 활동했던 애기븝미쟝을 내면에서 끌어 올렸다. 자동으로 나오는 말투와 행동? 그런 건 필요 없었다.

이건, 내가 만들어 낸 캐릭터니까.

“하와와? 옵바언냐야들 왜 그렇게 얼어붙어 있는 거시애오? 안 되겠어여! 븝미쟝의 마법으로 옵바언냐야들의 마음을 녹여 볼게여!”

대상, 성교진이 당신을 인지합니다. 명성 +1

대상, 박주지가 당신을 인지합니다. 명성 +2

“아아, 지금부터 따라 하는 거야요! 하나, 둘, 하와와와와!”

원래의 정적.

그 사이로 몇 명의 사람들이 함께 소리친다.

그중에는 일리아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희미하게 보이는 그녀를 향해, 나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직은 명백히 극소수의 사람들.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외쳤다.

“하와와와와와와!”

‘하와와’ 하는 소리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때, 눈앞에 이전과는 다른 활자가 떠올랐다.

당신에게 동조하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내게 용기를 주었다.

“호에에에에에에엥!”

호에에에에에에엥!

뚜렷하게 들릴 정도로 늘어난 사람들.

그것이 진짜로 내게 동조한 것이건, 아니면 그냥 재밌어 보여서 따라 하는 것이건 상관없었다.

거듭 늘어가는 사람들.

그것은 집단 최면 내지는 광기의 현장이었다.

“저, 이제…… 진행을 해야…….”

뒤에서, 사회자가 곤란하다는 듯이 이야기를 해 온다.

원래라면 이렇게 할 게 아니라, 당장에 나를 단상 아래로 내리고 마이크를 뺏어야 옳은 일이겠지만, 펜타곤 관계자들도 그저 황당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럴 거에여.”

나도, 이쯤에서 어그로는 그만둘 생각이었다.

“븝미쟝, 감동인 거에여! 옵바언냐야들의 힘을 받았서여! 븝미파워 충전 완료!”

나는 오른손에 광구를 띄웠다.

거기까지는 이전과 같은 것이었다.

이제 그것을 증폭, 가속하여 던져 내는 것이 내 마력 탄의 기본.

하지만 뭔가 느낌이 왔다. 나도 모르게 앞서 헛소리를 하며 신이 났던 터일까. 기존에는 하지 않았던 한 가지를 추가했다.

[마법의 기본 요소 3가지는 증폭, 가속, 변환이다. 이중 증폭과 가속은 비교적 쉬운 편이지만, 변환은 그 방법이 까다롭지.]

게임 속에서, 보았던 대사들이 떠오른다.

내 증폭과 가속 또한 그들의 대사에 기인해서 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변환, 그건 마나의 흐름을 읽고. 구조를 파악하여 형태와 속성을 바꾸는 것이다. 그 형태가 복잡할수록 변환은 어려워지지만, 너희 같은 둔재들도 두 달 정도 연습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겠지.]

펜타곤에 입학할 만한 수재들이 배워도 두 달은 족히 걸린다는 변환.

나는, 그것을 지금 하려고 한다. 앞서는 다 실패했지만…… 어째선지 지금은 가능할 것 같다.

단순한 모양의 조형.

내가 지금까지 떠올린 것은 화살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내가 지금까지 보여온 컨셉, 그것과 맞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그려 낸 것은 하트 모양이었다.

“애기븝미쟝 가는 거야요, 하와와와와! 븝미빠워!”

마력이 광구를 감싸 조형하고, 증폭한다.

커다랗게 떠오른 푸른색 하트 모양의 마력은, 그 흐름이 빨라지더니 순식간에 기계를 향해 날아갔다.

쾅!

소리와 함께 폭발하는 하트.

그것은 이전 참가자들, 심지어는 신하연보다도 더 강한 파괴력이었다.

그저 재미있다고 웃던 이들도, 과한 컨셉질 때문에 정색하던 이들도 입을 다물었다.

연기가 걷히고, 기계에 드러난 것은 도표가 벗겨져 마법이 닿은 그대로 하얗게 남은 하트 모양의 자국.

그 위에는 ‘374’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나는 마이크를 들어 외쳤다.

“옵바언냐야들과 븝미쟝의 사랑의 표식이야요!”

이내, 명성이 올랐다는 메시지와 함께.

퀘스트(반복, 성장).

―‘애기븝미’로서 명성도 1,000 쌓기.

성공.

보상이 지급됩니다!

새로운 퀘스트가 추가되었습니다!

퀘스트(반복, 성장).

―‘애기븝미’로서 명성도 3,000 쌓기.

기간: 120일.

보상: 특성의 세부 항목 중 일부 잠금 해제 및 성장.

실패 시: 영원히 애기븝미쟝인 거시애오!(특성 전 항목의 성장 불가).

현재 ‘애기븝미’의 명성도는 1866입니다!

퀘스트가 갱신되었다.

*    *    *

신하연…… 신하연…… 신하연…….

일리아는 자꾸만 그 이름을 되뇌었다.

그러고는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꽉 깨물었다.

“개 같은 년.”

다나와 함께 있을 때는 부러 욕설하지 않았던 터다. 하지만 다나가 사라지고 나니 거칠 것이 없었다.

감정의 폭풍은 거기서부터 시작이었고, 그녀는 신하연을 향해 온갖 저주 섞인 말들을 마구 퍼부어 대었다. 이래 봤자 닿지도, 들리지도 않을 것이겠지만.

한동안 그렇게 감정을 소비하던 일리아는 침울해져 고개를 숙였다.

“후우…… 이게 뭐 하는 건지 모르겠네.”

본래 그녀는 이런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다. 정말 좋아하는 대상이나, 극도로 혐오하는 대상을 제외하고는. 전자는 한눈에 그 귀여움 때문에 홀려버린 다나였고, 후자는 말할 필요도 없이 신하연이었다.

일리아와 신하연은 과거부터 많은 일들로 엮여 왔고, 그녀는 그때마다 항상 신하연에게 뒤통수 아닌 뒤통수를 맞아 왔다.

표현이 애매한 것은 그녀가 직접 벌인 일이 아니기 때문이지만, 일리아는 알고 있었다.

알고도 모른 척, 상황이 만들어지게 유도한 것은 그녀라고.

그년은 그런 년이었다.

하지만 일리아는 단 한 번도 거스를 수 없었다.

각성하기 이전에도 신하연은 배경으로나, 여러 부분으로서 그녀보다 뛰어났으니까.

부모님끼리의 관계도 완벽히 상사와 부하 직원, 상하 관계가 명확했다.

“다, 가지는구나.”

조금 전, 신하연이 보여 준 모습은 압도적인 것이었다. 그 점수를 굳이 보지 않더라도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약에 겨뤄 본다면 어떨까. 상상을 해 봐도 자신이 이기는 수가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그저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그것을 자각하고 난 뒤, 찾아오는 것은 그저 탈력감이었다.

“하와와와와!”

그때, 그녀의 정신을 깨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이크를 통해 울리는 여린 목소리. 그것은 조금 전까지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의 것이었다.

쟤가, 왜 마이크를 쥐고 있지?

앞선 상황을 보지 못한 일리아는 그저 당황스러워할 뿐이었다.

“언냐옵바야들 모두 븝하! 저어는 언냐옵바야들의 영원한 귀요미 애기븝미쟝이에여!”

당당하게 소리치는 다나의 모습을, 일리아는 멍하니 바라봤다.

이내, 웃음이 피식하고 터져 나왔다.

말투나 행동으로부터, 익히 특이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볼수록 재밌는 녀석인 것 같았다.

“아아, 지금부터 따라 하는 거야요! 하나, 둘, 하와와와와!”

호응을 끌어 올리기 위해 외친 말.

주변의 아무도 그에 호응하지 않는다.

일리아는, 자신이라도 호응해 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외쳤다.

“하와와와와!”

그 소리와 함께 주변의 시선이 잔뜩 몰려든다. 시선을 받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순간 부끄러움이 몰려왔으나,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다나를 발견했다.

“아.”

일리아는 미소를 만면에 띄우고 마주 손을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내 긴장감을 풀어 주려고 일부러 그러는 건가?

생각해보면 신하연이 나온 이후로 침울해져서는 그저 입을 다물고 있던 자신을, 다나는 계속 걱정하는 듯한 눈길로 쳐다봤었다.

‘저 애한테도 느껴질 정도로…….’

일리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렇게까지 해 주는 데 잘할 수밖에 없다.

마음을 다잡고, 챙겨 온 검을 바라봤다.

부모님이 둘 다 히어로인지라, 비교적 부유한 가정인데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고급인 이 검. 부모님들은 이걸 주며 그렇게 말했다.

누구에게도 지지 마라.

그것은 단순한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지 않아.”

일리아는, 자신이 배워 왔던 검술에 대한 모든 것들을 재차 복기했다.

거의 끝 순번인 그녀의 차례가 되었고, 점수가 떠올랐을 때 단상 아래의 많은 이들이 좌절했다.

236점.

명백히, 합격 라인이라고 생각되는 점수였다.

*    *    *

시험이 끝난 이후, 나는 일리아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관계자들은 다른 좌석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곳에는 이미 시험을 치른 이들이 모여 있었는데, 대체로 높은 점수가 나온 이들이었다.

아무래도 확실하게 합격선이라고 생각되는 점수가 나온 이들을 미리 모아 놓은 모양이었다.

신하연, 그녀도 여기에 있었다.

그녀를 포함한 몇몇 이들은 이미 자신들만의 무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높은 등급의 히어로의 자제들은, 반드시는 아니어도 좋은 자질을 지닌 히어로가 될 확률이 꽤나 높았다.

미리 부모님들의 커넥션을 통해 친해져 있는 것이겠지.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것도 오래가지 못할 텐데.

신하연은 학기 중에 저렇게 친하게 지내던 이들에게 뒤통수를 세게 맞는다.

그것은 순전히 저 무리에 있는 이들의 잘못이라기엔 뭐한 것이었으나, 어쨌든 배신은 배신.

그렇게 위기의 순간에 플레이어 일행이 그녀를 구해 준다.

그곳에는 일리아 또한 포함되어 있었고, 그 사건 이후로 일리아와 신하연은 화해 아닌 화해를 하고, 원수 사이에서 그냥 약간 서먹서먹한 남 정도의 사이로 변하게 된다.

“야, 쟤 아까…….”

“조기 입학이야? 17살로는 안 보이는데.”

“당연히…… 그래도 우리 또래가 그렇게 뻔뻔하게…….”

그녀 쪽에 집중하는 사이, 나는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에 얼굴을 찡그렸다.

제기랄, 그렇게까지 말하는 건 너무하잖아.

물론 어느 정도 호의 섞인 말들도 있었으나, 막상 잘 들리는 것은 날 선 소리들이었다.

아마 이렇게까지 날카로운 말들이 오가는 것은 내 점수가 잘 나왔기 때문이겠지.

숨겨진 시기와 견제의 기운이 내게 와닿는다.

그와 반대로 내게로 접근하려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나는 껄끄러워, 일부러 피했다.

아무래도 나와 가까워져 손해보다는 이익이 많겠다는 심산인 것 같았는데. 그 의도는 둘째 치고 다시금 애기븝미 컨셉질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피곤했다.

명성이나 올려주는 기회면 모를까, 가급적 쓸데없는 정신력의 소모는 피하고 싶었다.

꽤나 긴 시간이 지나고, 슬슬 마무리가 되어 갈 때쯤.

일리아가 시험장에 올라왔다.

뭐, 성공하겠지. 아무렇지 않게 그 시험을 바라보던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야.”

떠오른 점수는 기존 원작의 일리아의 점수보다 훨씬 높았다.

도대체 왜? 잠시 생각하던 나는 그것이 나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두고 와서 너무 미안했어. 내가 더 강했더라면…… 그래서 그 뒤로 좀 더 열심히 사냥하고 마력실도 다녔거든.’

나와의 만남 이후로 이상한 죄책감 내지는 무력감을 느꼈다는 일리아.

그녀는 분명 그 계기 이후로 자신의 성장에 더 신경을 썼다고 했다.

그럼, 내가 그녀를 바꾼 것일까.

왠지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일리아 또한 합격점은 충분한 점수였기에, 내가 있는 방향의 좌석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곤, 마치 몇 달 만에 보는 사람처럼 반가워했다.

“다나!”

“언냐아!”

물론 나도 그에 호응하여 달려갔다.

나는 그저 손이나 맞잡을 생각이었는데, 그녀는 나를 꽉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무언가, 알지 못할 소리를 했다.

“응원 고마웠어. 그 덕에 힘이 났거든.”

“호에?”

응원이라면 나를 객석에서 호응해준 그녀가 한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건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헤에…….”

면면에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은은하고 달콤한 냄새가 풍겨 왔다.

아마, 향수 냄새겠지.

“헤으흥…….”

행복했다.

요 며칠 새에 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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