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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12화 (12/172)

#12화.

짜악!

일리아와 내가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때.

순간 박수 소리가 들리더니, 좌중이 조용해진다.

그것은 단순한 박수가 아닌, 마력 파장이 깃들어 있는 소리.

몇몇 이들은 다들 심하게 놀랐는지, 헐떡거리기까지 한다.

“후에…… 후에…….”

아, 시발.

그건 나도 마찬가지구나.

심하게 심약한 몸인지라, 어쩌면 내가 아무 문제가 없는 게 더 이상하겠지.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박수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향한다.

“안녕하세요. 다들 반갑습니다.”

마치 어린이 프로에 나오는 진행자처럼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남자.

인상 또한 서글서글한지라 긴장이 풀어진다.

누구지?

내가 대부분의 인물들을 기억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조연 하나하나 얼굴을 보면 다 떠올릴 정도는 안 된다.

이름이라도 듣는다면 모를까.

“저는 ‘건’이라고 합니다. 아, 참고로 총을 뜻하는 건(gun)이 아니라 굳셀 건(健)이니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장난스럽게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 여기저기서 웃음을 터뜨린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그 이름을 듣고, 곧바로 어떤 인물인지 떠올릴 수 있었으니까.

“이상한 아조시애오…….”

저 ‘건’이라는 남자는 두말할 필요 없이 교관. 그것도 펜타곤의 과목들중 2개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능력도 있고, 평상시에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다니는지라 초반에는 모든 학생이 저 교관을 좋아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한 학기만 지나게 되어도…….

그 생각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스토리상 나쁜 놈은 아니라 다행이긴 하지만, 펜타곤에서의 생활을 힘들게 만들 놈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자, 제가 여기 온 것은 다음 시험과 그 장소를 안내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 있는 인원들은 다들 합격이라는 거 눈치채고 있었죠?”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여기 있는 이들뿐만이 아니라, 점수가 어중간하게 나왔다가 통과한 턱걸이들도 많았지만, 안정권은 모두 여기에 모여 있었다.

“좋습니다. 다들 명석하군요! 그럼 다음 시험도 아마 쉬울 겁니다. 다들 A동 본관 건물 3층으로 가 주시길 바랍니다.”

그 말에 이곳에 있는 인원 전원이 A동을 향해 간다.

사람이 쭉 빠지기 시작할 때쯤, 일리아도 함께 A동으로 가는 듯했으나, 내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의아하다는 듯 다시 돌아왔다.

“안 가? 시험 시간도 정해져 있을 테니까 빨리 가야 할 텐데.”

“잠시만 기다려 봐양, 언냐야. 사람들 다 가면 말해 줄게여.”

일리아는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으나, 내 표정에서 확신을 발견했던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래, 그러지 뭐.”

그렇게 시간이 꽤나 지나고 난 뒤.

늦장을 부리던 이들까지 전부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 와중에 일부 학생들은 끝까지 남아 있는 우리 쪽을 바라보며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뭔가 알아낸 것은 없는듯 다만 밖으로 나갈 뿐이었다.

자, 이제 되었다.

나는 학생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는, 건 교관 쪽을 바라봤다.

그는 매우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어서 가셔야 할 텐데요. 늦으면 자동으로 불합격 처리가 될 수도 있답니다.”

“하와와…… 언냐야랑 저는 그럴 일 없어양! 먼저 나간 옵바언냐야들은 그럴 수도 있는 거시애오.”

“확신이 있군요. 어떻게 알아챈 거죠? 눈치로? 아니면…….”

건 교관은 역시나 나사 빠진 사람답게 내 말투를 듣고도 당황스러워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어떻게, 내가 눈치를 채었는가.

“잠깐만, 지금 이 대화 나만 이해 못 하고 있는 거지?”

일리아는 그런 건 교관과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머리를 싸매었다.

나는 ‘므헹’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대강의 설명을 했다.

“언냐야, 저기 문 앞에 발판 보여양?”

“어, 저게 뭔가 문제라도 있는 거야? 하지만 다들 저기 넘어서도 잘 나가던데…….”

“저거, 지나가면 일정 시간 뒤에 발동하는 함정이에여. 무슨 종류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여. 근데 아무래도 텔레포트가 아닐까양?”

건 교관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예의 그 박수를 호탕하게 쳐 대었다.

아니, 잠깐만…….

그 박수를 쳐 대면…….

“하하! 영 멍청한 놈들밖에 없는 줄 알았더니. 진짜 제대로 된 학생이 이번 기수에 있었군요! 옆에 학생은 친구를 잘 뒀구요.”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가는 건 교관.

나는 그 칭찬에, 웃으며 화답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후에에에…….”

그놈의 박수 때문에 몸이 얼얼하게 울리는지라, 부들거리는 몸을 지탱하는 데 온 정신이 쏠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반응을 그는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였던지, 더욱 만족스럽다는 듯 말했다.

“보통 칭찬을 하면 좋아하기라도 할 텐데, 겉보기와는 다르게 의외로 귀여운 맛이 없군요.”

농담으로 한 말이겠지만, 당장에라도 한 대 치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약해서 그래 봤자 의미도 없겠지.

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와 일리아에게 각각 선물이라며 반지 하나씩을 주고는 떠났다.

교관은 이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주지 않았지만, 나는 그 용도를 알고 있다.

원작에서도, 플레이어 캐릭터는 이걸 잘 써먹었지.

“언냐야, 이제 가요.”

“이제 가도 되는 거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몸 상태를 회복한 나는 일리아를 데리고 A동 방향으로 갔다.

발판에 걸려있는 마법의 유효시간이 끝난 후였다.

*    *    *

“헤헤.”

일리아는 반지를 얻은 것이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연신 그 반지를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렇게나 좋은 걸까. 이 반지의 진짜 효능은 모르고 있을 텐데. 디자인이 그렇게 예쁜 것도 아니고.

“후후. 다나, 네 것도 다시 보여 줘.”

“호에에…… 똑같이 생긴 고애오…….”

한참동안 자기 반지를 쳐다보던 일리아는, 내가 끼고 있는 반지 또한 살폈다.

금색 테두리에 작은 초록색 보석이 박혀 있는 반지.

그 모든 모양이 다나의 것과 일치했다.

“그러네. 정말.”

그렇게 말하는 일리아는 한껏 만족스러움을 표현했다.

오른쪽 새끼손가락만을 치켜올린 채로. 게임 내에서, 그녀는 기쁜 일이 있을 때 항상 그러한 제스처를 취한다.

저렇게까지 기쁠 만한 일인가.

생각하던 나는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호에에…….”

혹시 나는 천재인가?

나는 그녀가 속물적이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그 외적인 이유가 그녀를 기분 좋게 만든 것일 터다.

외적인 이유라면 당장 나와, 건 교관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합리적인 생각대로라면 건 교관 쪽이 맞겠지.

하기야, 그놈 잘생기기는 했다.

겉으로 보기엔 매너도 좋으니, 일리아가 반할 수도 있겠지.

물론 시간이 지나며 콩깍지야 벗겨지겠지만.

“힘내여, 언냐야!”

“어, 어? 뭐가?”

그녀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내 말에 반응했다.

맞구나.

나는 씨익 웃었다.

“그냥여, 언냐야가 누굴 좋아하건 행복했으면 좋겠어여.”

“갑자기? 어…… 그러니까.”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며 시선을 피하는 일리아.

이제는 확신의 영역이었다.

다만 속으로 그 험난한 앞날에 대한 축복을 빌어줄 뿐이었다.

일리아가 책상에 콩콩 머리를 박고 있는 사이, 나는 문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대략 30분 전, 일리아와 나는 무사히 A동 건물의 3층에 있는 시험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람이 많은 만큼 200명은 넉넉히 수용 가능한 공간을 3개나 준비해 놓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바꿔 말하자면, 이곳에 도착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 봤자 600명이라고 예상했다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첫 시험에서 통과하는 인원은 800명가량.

그중에서 200명이 떨어진다.

그 원인은 두말할 것 없이 그 악랄한 텔레포트 때문이었다.

“고생깨나 하는 거시애오.”

그것은 학생들을 전원, 펜타곤에서 마련해 놓은 가상 몬스터 실습장으로 텔레포트시킨다.

물론 한 명 한 명 서로 만날 수 없도록, 최대한 다들 외딴곳으로.

웬만한 히어로가 전속력으로 뛰어도 끝에서 끝까지 족히 20분은 걸릴 만큼 너른 대지였으니, 그것이 가능했다.

아마 800명 모두가 마나로 조형한 그 가짜 몬스터와 피 터지게 싸우고 있을 것이었다.

그 수준이 내가 28등급 필드에서 조우했던 몬스터들보다 높으면 높았지, 결코 낮지는 않을 것이었기에…….

확실히 쉽지 않은 시험이다.

하지만 그 문구가 모두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드르르륵!

내가 문을 주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것은 역시나 펜타곤 아카데미의 일인자가 될 여자, 신하연이었다.

물론 그 일인자라는 칭호는 기간제이긴 하지만…….

그녀는 역시나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뽀송뽀송한 얼굴이었다.

몬스터도 대충 망치 몇 대로 박살 내고 와 버렸겠지.

아마 모르긴 몰라도 현재 펜타곤 입시생들에게 알맞은 난이도의 몬스터는, 그녀에게는 30등급 필드의 슬라임처럼 느껴질 것이다.

“흐응……?”

신하연은 평온한 얼굴이었다가, 그 시선이 나와 일리아에게로 와 닿자 눈에 띄게 당황스러워했다.

아무래도 자기가 1등인 줄 알았겠지.

그런데 앞에 하나도 아니고, 두 명이나 먼저 와 있는 데다가 그중 하나가 일리아다.

그것은 아마 그녀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일 것이었다.

일리아 또한 책상에서 머리를 들어 신하연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당황하는 신하연의 모습을 보더니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너…….”

소리가 꽤나 컸던지라, 신하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간다.

하지만, 딱히 무어라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그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을 뿐.

참고로, 그 자리는 나와 일리아에게서 가장 먼 자리였다.

그녀 뒤로도 많은 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신하연이 뛰어나다고 해도, 펜타곤 지망생들 또한 적어도 수재 이상인 것은 확실했다.

텅텅 비어 있던 공간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찼을 때쯤, 교관이 들어왔다.

물론 건 교관은 아니었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일리아의 표정을 슬쩍 살펴봤다.

의외로, 그녀에게선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건 교관이 안 들어올 거라고 생각한 건가? 실망할 줄 알았는데.

“자, 대충 분위기를 보고 예상했겠지만. 마지막 시험은 필기입니다. 각자 자리에 배부된 펜을 이용하여…….”

하지만, 교관이 말을 꺼내자 일리아의 얼굴 표정이 급변하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부들부들 떨리는 음성으로 내게 말했다.

“다나, 나…… 어떡하지?”

어찌 보면 뜬금없는 말.

하지만 나는 그 뜻을 알고 있었다.

“……힘내여, 언냐.”

과거에 일리아가 신하연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그 열등감을 심화시켰던 요인 중 하나가 바로 공부였다.

일리아는, 공부를 더럽게 못 했다.

다만 나는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원작에서 그녀는 시험에 붙었으니까.

물론 응시한 368명 중 300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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