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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13화 (13/172)

#13화.

나는 시험에 대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쪽에서 히어로들한테 내주는 필기시험이란 거기서 거기일 테니까…… 하고.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모, 모르겠는 거에여…… 이런 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데.

나는 시험지를 받아들자마자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들은, 이를테면 몬스터들의 습성과 거주지, 세부 특수 능력이라든가, 등급에 따른 분류 같은 것들이었다.

사실 이런 자세한 설정은 일반 유저들이라면 외우지도 않는 것들.

그렇기에 나는 나름대로 이론시험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수년간 한 게임에만 몰두해 온 폐인의 지식은 무시할 만한 게 아니었으니까.

다음은 13등급 지대에 등장할 수 있는 마력 총합의 최솟값을 구하여라.

이게, 1번 문항.

그리고 그 밑으로 복잡한 수식들이 쫙 깔려 있었다.

아니 시발 얘네 해 봤자 고등학생 나이 아니야?

수능 이후로 수학이라고는 평생 인연이 없던 내게, 고등수학 수준을 가볍게 뛰어넘는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이란 없었다.

혹시 다른 문제는 정상적이지 않을까?

그 희망은 2번 문제를 확인했을 때 곧장 박살 나 버렸다.

다음 실수 전체의 집합에서 정의된 함수 (1)이 최소가 될 때, 그 값이 최소가 되게 하는 x, y의 값을 구하여라

물론, 그 정의된 함수 (1)이란 그저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가 쓰여 있는, 나로서는 알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완전히, 멘탈이 나가 버린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혹시나 다른 이들도 어려워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 예상은 절반 정도 맞는 것이었다.

과연 상당수의 학생들이 쩔쩔매고 있는 모습이었으나, 몇몇 이들은 벌써 3번, 4번 문제를 풀어 나가고 있었다.

또한, 그 쩔쩔매고 있는 학생들 또한 꾸역꾸역 풀이를 해 나가고 있는 듯했다.

나는 혹여 커닝을 의심받을까, 고개를 돌렸지만, 자괴감에 휩싸였다.

커닝을 하고 부정행위로 탈락하건, 그냥 이대로 풀어서 떨어지건 매한가지가 아닌가.

“끄응, 으으윽…….”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일리아였다.

그녀 또한, 거의 손도 대지 못하는 모습이었으니까. 그래도 나보단 낫지만.

문제를 뒤적거려 보니 내가 풀 수 있는 문제들도 있었다.

대체로 앞서 말한 던전에서의 지식과 같은 것들.

하지만 나온 파트가 ‘이계어 분석’ 따위였기에 나는 손을 놔 버렸다.

“10분 남았습니다.”

“호엑?”

자괴감에 멍을 때리고 있던 나는, 정신을 차렸다.

벌써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고?

시계를 보니 정말 시간이 그렇게 되어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찍기라고 해야 했다. 나는 곧바로 펜을 들고, 답을 찍어 내려갔다.

제발, 어떻게든 턱걸이로라도 통과했으면 좋겠다.

탓탓탓탓!

한 줄로 그어 버린다면 떨어질 것이 분명했기에, 하늘에 대고 빈 뒤 무작위로 답을 찍었다.

객관식 답지를 모두 찍어 낸 나는, 곧바로 주관식 답지로 눈을 옮겼다.

이쪽에는 그나마 답을 하나 써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남은 세 개의 항목. 그것은 수리 영역 주관식이었다.

두 자리 숫자 두 개와 세 자리 숫자 하나.

나는 그것을 다나의 나이와 원래 내 나이, 내 차의 번호판 앞자리 세 개를 적어 냈다.

진짜로 천운이 따라 준다면, 어떻게든 맞겠지.

아님…… 말고.

“자, 제출하겠습니다.”

이내, 내 손에서 시험지가 떠났다.

그와 동시에 일리아가 머리를 박았다.

쿵!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세상의 모든 음울한 감정이 담긴 쉰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어떡하지…… 실기 다 잘해 놓고 필기에서 떨어지면 진짜 말도 안 되는 건데.”

그렇게 걱정할 만하겠지.

300명 합격에 300등 턱걸이니까.

그래도, 어쨌든 합격은 합격일 것이다.

지금.

진짜로 당장에 책상에 머리를 박고 싶은 건 난데.

“다나는 잘 쳤어?”

한참 동안 그러고 있더니, 내게 물어 온다.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여, 잘 친 건 아닌 거 같아여…….”

“치, 그렇게 말하던 애들이 꼭 나중에 성적 나오면…….”

기만이니, 뭐니, 이야기하는 일리아를 향해 쓰게 웃었다.

아무래도 같은 아카데미에는 들어가지 못할 것 같았다.

*    *    *

시험을 망쳤다는 사실에, 이렇게까지 기분이 별로였던 적은 없었다.

일단 학생 때의 나는 고2 겨울방학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공부에 임한 적이 없었으니까.

학교 친구들이 성적표를 집에 들고 갈 생각에 바들바들 떨던 모습을 바라보며, 웃으면서도 서글퍼했었다.

나는 시험을 망쳐도 혼내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두 가지 감정을 불러온 것이었다.

그건, 뭐 매한가지이긴 하네.

“하와왕…….”

일리아와 나는 일단은 헤어졌다.

그녀는 꼭 저장해 두라며 전화번호를 알려 줬는데, 힐끔거리면서 내가 자기를 뭐라고 저장하는지 확인하는 모습이 꽤 우스웠다.

유일하게 컨셉에 영향을 받지 않는 텍스트이니 마음대로 적을 수 있었으나, 일단은 평소 이미지에 맞춰 ‘일리아 언냐야’라고 해 놨다. 본인도 꽤나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모르겠네여.”

모르겠다.

어차피 시험은 쳐 버린 거고, 이제 3월 2일 입학 이전까지 시간이 있었다.

필드에는 갈 만큼 간 것 같고, 내가 해야 할 것은 이제 아카데미와 관련되지 않았지만, 메인 에피소드와 연관된 사건들을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의 전력으로는 무리가 있었으니, 정말 자잘한 것들 정도겠지만.

“그러고 보니 옵바야가 오라고 했었져?”

대장장이 김수혁.

얼마 전에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방어구가 완성되었으니 찾으러 오라고.

나는 솔직히 그에 대한 신뢰를 약간은 잃은 상태였다. 그때 건네준 방어구 디자인이 어지간했어야지.

하지만 실력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기에, 어쨌든 찾아가야만 했다.

당장에 전력 증강도 될 만한 장비를 얻고, 앞으로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결심한 나는, 곧바로 스틸하트로 향했다.

“후야야야…….”

얼마 뒤, 스틸하트의 입구에 도착한 나는 심호흡을 했다.

저번에, 꽤나 좋지 않은 추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놈의 호객하는 사람들 때문에 곤혹을 치렀던 걸 생각하면, 다시는 가고 싶지가 않았다.

“어쩌겠어여…… 븝미쟝이 귀여운 탓이애오! 하와와왕…….”

뭐 어떡하겠는가, 어차피 이런 상황들은 처음 나 자신을 자각하고 난 뒤부터 예견했던 일이었다.

정 난리가 나면, 또 울어 버리지, 뭐. 제기랄.

한 차례 숨을 들이마신 뒤,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이었다

터억!

“후와아앗?!”

어깨에, 두꺼운 손이 얹혔다.

안 그래도 잔뜩 긴장하고 있던 통에 그러니, 순간 다리가 풀리며 주저앉아 버렸다.

그와 동시에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어, 어엇! 놀라셨어요? 죄송합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그는 허둥지둥하며 내 손을 잡아 일으켜 주려고 했다.

어느 놈이야, 개 같은 새끼가.

나는 잔뜩 열이 오른 채, 그 손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그 정체를 알아채고는 그만두었다.

“대장장이…… 옵바야?”

“네, 네. 접니다. 김수혁이요.”

이 사람이 왜 여기 있어?

나는 진실로 당황할 수밖에는 없었다.

김수혁은 원작의 서술대로라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외에는 자기 대장간에서 나오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대장간 바깥으로 나가면 자신의 영감이 사라진다나.

사람들은 그걸 개소리처럼 여겼지만, 후일 밝혀진 그의 특성은 작업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실력이 빠르게 증가하는 것이었다.

“옵바야, 혹시 알고 나온 거에여?”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다.

한 달에 한 번쯤 있는 외출, 그것과 내가 찾아온 타이밍이 딱 맞물렸다기엔 너무 공교로운 것이 아닌가?

물론 그러면서도 아니겠지, 하는 생각 또한 동시에 들었다.

뭐 위치추적 장치를 달아 놓은 것도 아니고 어떻게 내가 온 줄 알았겠나.

“맞습니다.”

……맞다고?

내 당황스러움이 얼굴에 그대로 묻어났는지, 김수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사실을 실토했다.

“사실은…… 제가 만든 작품들은 가까이에 오면 그 존재를 느낄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그 장갑…….”

나는 손에 끼고 있는 프릴이 달린 장갑을 바라봤다.

그나마 드레스나, 망사 스타킹 따위와는 다르게 나름 눈에 띄지 않는지라 평상시에도 착용하고 다니던 건데.

이게, 위치 추적 장치 역할을 했다는 건가?

순간, 소름이 돋았다.

“호에에에에…… 가까이 오지 마라여…….”

본능적으로 몸이 김수혁에게서 멀어졌다.

이거 완전 위험한 새끼 아니야?

그런 내 반응을 본 김수혁은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알겠는데, 전혀 아니에요! 애초에 전 여기서 벗어나지도 않고, 오늘 처음 반응을 느꼈단 말입니다!”

그래, 그 사실은 내가 잘 안다.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김수혁은 오로지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던 사람.

아무리 다나 크리스틴, 내 외형이 마음에 들었다고는 해도 그 정도로 강하던 본인의 신념이 꺾일 리가 있겠는가.

그래도 찝찝한 건 찝찝한 거라고.

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옵바야…… 설마 여기 ‘찰칵’ 하고 찍히는 그런 거는…….”

“아니라니까요!”

펄쩍 뛰며 부인하는 김수혁의 모습을 보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본적으로 그는 선인이었다. 그런 짓을 할 리는 없었다.

내가 표정을 어느 정도 풀자, 김수혁은 괜스레 억울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번에 이야기 듣고 안까지 들어오시기 그럴까 봐 일부러 나온 건데. 제 실수였나 봐요.”

아, 그래서 일부러 마중 나온 건가.

나름 선의에서 한 행동이었는데, 괜스레 오해한 것 같았다.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이렇게 조금 어벙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요 몇 년 동안이겠지.

“그런 줄은 몰랐던 거시애오…… 옵바야 오해해서 미안해여…….”

“아닙니다! 당연히 그러실 수 있죠.”

다시금 화기애애해진 분위기.

그는 때맞춰 내게 가방을 내밀었다.

“여기, 약속한 방어구입니다. 시간이 생각보다 좀 오래 걸렸죠?”

“오와, 아니에여! 정말 고마어여, 옵바야!”

사람이 간사하게도, 무언가 받고 나자, 그나마 남아 있던 꺼림칙한 감정까지 싸악 날아갔다.

나는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고는, 그에게 준비해 온 대가를 내밀었다.

“자요, 옵바야.”

“이게…… 뭡니까?”

“일단 받아 바여!”

검은 색상의 작은 함.

김수혁은 그것을 슬쩍 열어 보고는, 손사래를 치며 다시 내게 돌려주려고 했다.

“아니, 아니, 제가 애초에 무료로 드린다고 한 거고…….”

“하와와와…… 븝미쟝이 주는 거는 그냥 받는 거에여! 옵바야 벌점 10점!”

내가 그에게 준 것은 마력석이었다.

그동안 필드에서 번 돈과 있던 돈 일부를 합쳐서 구매했다.

어차피 이것의 가치를 따져 봤자, 김수혁이 만든 장비만 못 했다.

하지만 어쨌든 앞으로 계속 관계를 맺어 나가야 하는 사람이기에, 이런 식으로라도 호감을 만들어 놓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 표정을 보곤 소용없다고 느꼈는지, 함을 받아들었다.

그러고는 순박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븝미쟝이 하고 시픈 말이에여!”

어쨌든 좋은 사람이기는 하구나.

그는 내가 돌아가는 택시를 잡기 전까지 배웅해 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자기가 상관없다는데, 뭘.

내가 택시를 잡았을 때, 김수혁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당부의 말을 전했다.

“아! 혹시 장비에 흠결이 있을 수도 있으니 집에 가서 입어 보시고, 사진 몇 장 보내주세요. 제가 고쳐 드릴 테니까.”

as까지 확실하게 해 주는 건가.

굳이 그렇게까지…….

뭐, 해주면 좋은 거지.

“고마오요!”

택시는 집에 도착했고, 나는 집으로 들어가 가방을 열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흐와와와와와! 아가야는 이런 거 못 입어여!”

그리고, 김수혁이 꼭 사진을 찍어 보내 달라고 하던 이유를.

그때서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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