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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14화 (14/172)

#14화. 븝미쟝은 운이 좋와요!

히어로판타지의 에피소드에는 정말 수많은, 수많은 빌런들이 등장한다.

다만 개중에서는 빌런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악인은 아닌 인물들 또한 있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일반인들을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히어로’가 싫어서 빌런이라고 불릴 뿐.

실상 그냥 범죄 집단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자유롭게 필드와 던전, 탑을 오가는 이능력자들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도 히어로보다는 그쪽이었다.

아무리 히어로들도 뒤로는 이것저것 다 한다지만, 그래도 사회적인 시선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

다만 지금으로서는 불가한 일이겠지.

일단 적어도 펜타곤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까진 그러할 것이었다.

“하와와…….”

일단 이 내용은 빌런들에 대한 옹호.

그 이후, 빌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죄다 욕밖에는 없었다.

진짜 범죄 집단의 빌런들은 현실의 마피아, 조직, 갱 따위를 생각하면 되었다.

그것보다 훨씬 심하면 심했지, 덜할 리가 없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개개인의 무력 자체가 총기 따위를 들고 설치는 마피아 따위와는 차원이 달랐으니, 그 깽판의 정도 또한 차원이 달랐다.

당장 나도 얼마 전에 당하지 않았던가. 그 흑사회 놈들이 만든 인공던전에.

그때, 우연히 같은 곳에서 사냥하던 일리아가 함께 던전에 빨려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내가 그대로 그 던전에 방치되어 있었더라면.

“으에…… 븝미쟝은 생각하지 않을래여…….”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런 일들을, 일상적으로 펼치는 것이 그 빌런 족속들이었다.

“저런 아조시들이에여.”

그래, 예를 들자면…… 저런 놈들이겠지.

나는 한 커피숍에서 두 남자가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고 있는 광경을 주시하고 있었다.

한쪽은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목함을 내밀었고, 다른 한쪽은 그것을 받아들고는 자그마한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그 두 개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저 목함은 인도의 6등급 필드에서 발견된 팔찌이고, 봉투는 수억 원짜리 어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실상 문제가 없어 보이는 거래였지만,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

저 팔찌는 장물이다. 그리고 저 장물을 판매하는 놈은 빌런이고.

이 신은 히어로판타지의 초반부에 빌런의 존재를 알려 주기 위해 등장하는 부분인데, 당연하지만 딱 이 장면만 나오고 그대로 끝난다.

빌런은 ‘크흐흐흐, 순조롭게 계획이 이뤄지고 있군’ 따위의 대사를 날리며 사라지고.

후일에 저 빌런의 취급을 생각하면, 웃기지도 않는 대사지만…….

아무튼, 나는 이 장면의 구도를 살짝, 아주 살짝 바꿔 보려고 한다.

그때, 거래하던 이들이 자리를 뜨는 모습이 보인다.

아무래도 이런 장물 거래는 오래 끌면 좋지 않을 테니, 각자 빠르게 헤어지는 모습이었다.

나는 옆에 있는 히어로에게 말했다.

“호에에에…… 바로 나가네양. 따라가야겠져?”

“……진짜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여자. 그녀는 현재 랭킹 20,000등대의 히어로였다. 그러니까 이렇다 할 실적도 없고, 또 그 능력도 그리 강하지 않은 히어로.

나는 그녀를 이 일에 끌어들였다. 그를 위해서 잠시간 꺼 두었던, 강자에게 발생하는 매혹 효과도 사용하면서.

물론 김수혁 때만큼 강한 효과는 나지 않았다.

그게 원래 김수혁이 변태에다가 다나 크리스틴 같은 타입이 취향이어서였는지, 아니면 김수혁이 이 여자보다 강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에 불만은 없었다. 적당히 설득하는 데에 그 정도면 충분했으니까.

“하와와…… 븝미쟝은 거짓말 가튼 거 할 줄 모르는 거시애오!”

뻐기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그녀는 입꼬리를 파들거렸다.

당장에 웃음을 터뜨리고 싶은데 실례가 될까 봐 가까스로 참아 내는 모양이었다.

조금은 슬픈 광경이었지만, 이제는 이 정도로는 멘탈에 타격도 오지 않았다.

웃어라, 맘껏 웃어라. 제기랄.

대상, 아크 길드원 성희주가 당신에 대해 완벽히 인지합니다! 명성+5.

떠오르는 메시지가 내 마음을 또한 달래 주었다.

저번에 명성 1,000짜리 퀘스트를 완료해서인지, 이렇게 내용도 더 상세해졌다.

“빨리 쫓아 가여, 언냐야! 안 그러면 놓친다구여!”

“어, 어! 그러게요. 빨리 나가야겠다.”

신경이 내 쪽으로 쏠려 있었는지, 성희주는 깜빡했다는 듯이 부산스럽게 뛰쳐나가 빌런이 향한 방향으로 달려갔다.

당장에 실적을 올릴 기회이니 급할 수밖에 없겠지.

과연 성희주가 이길 수 있을까?

저 빌런, 내 기억으로는 꽤나 약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20,000등대 히어로 정도면 그래도 무시할 만한 전력은 아니니, 알아서 하겠지.

“븝미쟝은 아무것도 몰라여, 아가에여.”

난 모르겠고.

내가 노리는 것은 저쪽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성희주와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그곳은 장물 거래자가 가던 방향.

성희주야 당장 빌런을 잡아내는 것이 목표이니 그쪽을 추격했겠지만, 내 목표는 다르다.

빌런 그거 잡아 봤자 뭐 하나. 좋은 점이라고 해 봐야 명성도가 오르는 정도인데, 어차피 내 명성도는 이미 다음 목표인 3,000에 거의 가까워진 상태였다.

당장에 내가 관심 있는 것은 팔찌!

후일에 아마 그 팔찌가 경매에서 10억이 넘는 가격으로 판매된 걸로 기억한다. 플레이어 일행이 경매장에 가는 에피소드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제작진 측에서 넣은 ‘이스터에그’라며 사람들이 찾아냈었다.

물론 그 정확한 옵션은 모른다, 하지만…….

그 효능이 다른 장비에 비해 떨어지는 액세서리가 그 정도 가격이라면…… 충분히 구미가 당기는 것이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목함을 들고 가는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혹시, 약간 지능이 떨어지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 생각 없던 사람도 그를 본다면 뭔가 수상하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일단 저 사람은 히어로나 빌런, 그 어느 쪽도 아니다.

멀리서도 확인했지만, 그에게는 마력이 없었다. 마력이 없거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적은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육체 강화 계열.

그런 사람들은 저렇게 어설픈 걸음걸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콕콕.

나는 남자의 등판을 슬쩍 찔러 보았다, 그러자 남자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목함을 떨어트렸다.

달그락.

그 반동으로 탁, 튀어 오른 목함의 뚜껑.

안에 있던 팔찌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그는 그것을 한 차례 빤히 바라보더니, 내 쪽을 바라봤다.

나는 말 없이, 히어로 등록증과 함께 손 위에 마력을 띄워 올렸다.

“하……하하하.”

남자는 순간 동공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눈을 뒤룩뒤룩 굴리더니, 전속력으로 도망쳤다.

……그런데, 그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나는 그가 신고 있는 신발에서 푸른색 마력이 감도는 것을 확인했다.

미친, 일반인 주제에 마나 슈즈를 신고 있어?

“이상한 아조시에오…….”

뭐, 상관없겠지.

애초에 이런 아이템류 장물 같은 경우에 구매자는 그리 큰 처벌을 받지도 않는다.

당장 시장에 나와 있는 아이템들 중 20퍼센트 가까이가 장물이나 혹은 암흑가와 연관이 있는 물품일 텐데, 구매자까지 처벌을 해 버리면 빌런들 잡으러 다니는 히어로도 감방에 들어가야만 했다.

당장, 이렇게 팔찌를 손쉽게 얻은 것만 해도 큰 수확이었다.

나는 목함을 챙겨 든 뒤, 팔찌를 손에 찼다.

서늘한 금속의 감촉이 느껴지며, 마력이 느껴졌다.

좋아, 과연 무슨 효과일까.

나는 메시지가 떠오르길 기다렸다.

…….

“메시지 씨…… 왜 안 나와 주는 거야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메시지는 뜨지 않았다.

미확인 물품이라도 보통은 이름이라도 확인 가능한데?

아, 설마…….

그때 내 머릿속을 지나가는 설정 하나.

[빌런들에게 장물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그 물건이 가짜일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그러며는…… 저는…… 뭐를 한 건가여…….”

어렴풋이,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카페 근처에서.

거의 사흘간 죽치고 있던 내 노력은 뭐가 되는 걸까.

개씨발.

빌런 놈들 언젠간 내가 다 쳐 죽인다.

*    *    *

나는 그 빌런 때문에 엿을 먹었지만, 어쨌든 ‘아크 길드’의 신입 길드원, 성희주는 계를 탄 셈이었다.

수억 원짜리 장물 사기 거래를 하던 빌런을 검거한 공으로, 국가와 길드에서 각각 포상금도 나왔고, 또한, 조만간에 그 실적이 반영되어 히어로 랭킹까지 올라갈 예정이란다.

성희주: 정말 감사했어요. 아카데미 예비 학생 신분이라고 했었죠? 나중에 학교 이름 알려 주면 꼭 아크 견학할 수 있게 해 줄게요. 아니면 따로 학교에라도 찾아가서…….

나는 그녀가 보낸 장문의 메시지를 보며 그나마 정신승리를 했다.

그래, 애초에 이 일은 팔찌도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어디건 접점을 만들어 두려는 생각이 아니었던가.

그러니까…….

“후에…….”

아.

그렇게 생각을 해 봐도 열이 받는다.

나는 냉수를 들이켰다.

“으그븝! 콜록콜록!”

하지만 그마저도 내가 평소에 마시던 대로, 물을 들이켜니 금방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한참을 쿨럭대던 나는 기도 씨! 정신 차리는 거애오, 따위의 말을 중얼거리며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후에에…….”

어째 계획했던 첫 번째 일부터가 꼬여 버리니 의욕이 팍 죽는 느낌이다.

나는 여전히 내 오른쪽 손목에 있는 팔찌를 바라봤다. 그냥 버리려고 했는데, 그러기도 억울해서 억지로 차고 있는 중이었다. 어쨌건 단지 액세서리라면, 그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니까.

특성, 발전했다며.

나는 분명 내 특성 세부 사항에서 ‘븝미쟝은 운이 좋아여’ 따위의 항목이 있던 것을 기억한다.

도대체 어떤 면에서?

나는 그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당장 스틸하트에서도 괜히 이상한 또라이한테 걸려서, 수 시간 동안 시달렸었고.

처음으로 찾아간 필드에서도 또한 흑사회의 농간에 걸렸었고.

어제 있었던 그 계획 또한 팔찌가 가짜인 바람에, 내가 얻는 이득은 투자한 시간에 비해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하와와…… 븝미쟝은 운이 안 조와요…….”

그러고 보니 펜타곤 시험에서도 필기 때문에 떨어지려나.

이래저래,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뭐가 운이 좋긴 좋아.

한숨을 쉬며 인생무상을 느끼고 있던 도중, 핸드폰의 알림이 울렸다.

또 성희주가 보낸 문자인가?

시큰둥하게 확인해 보니,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일리아 언냐야: 너 합격 공지 뜬 거 봤어? 난 아슬아슬하게 붙었더라고. 진짜 다행인 거 있지? 하마터면 같은 아카데미 못 갈 뻔했잖아.

일리아의 메시지였다.

나는 그것을 보며 쓰게 웃었다.

다른 이유로, 같은 아카데미를 못 가게 되겠지.

“하유후…….”

나는 한숨을 쉬며 펜타곤 메인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과연, 그곳에는 합격자 공지가 떠 있었다.

개인 정보를 입력하자 석차와 함께 나타나는 합격 여부.

어차피 불합격이겠지.

무덤덤하게 결과를 확인하던 나는, 합격 여부에 표시된 동그라미를 보곤, 눈을 비볐다.

“호엥?”

뭐, 합격이라고?

믿을 수 없어 다시 보자, 이번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석차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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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히, 적혀 있는 석차.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넘모…… 너모…… 조와여…… 븝미쟝…… 운이…… 조와여…….”

나는 내 특성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믿고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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