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신하연, 나츠키, 장선우.
이들은 히어로판타지의 메인 등장인물들이다.
제각기 후일 스토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일임하는 일명 주연 등장인물들.
그들은, 원래 이 장면에 등장하는 이들이다. 전교생들의 시기와 동경을 한 몸에 받는 상위 4인에 포함되는 것으로.
“먼저 4위, 나츠키!”
“네.”
은발에 차분한 눈을 가진 미소녀, 나츠키.
그녀가 가장 먼저 호명되었다.
아까 전에 날 보고 왜 저러냐며, 경멸의 눈빛을 보내던 이.
사실 그것에는 단순히 내 행동에 대한 비호감의 뜻도 있겠지만, 무엇 보다 자신보다 석차가 앞선다는 것에 대한 질투가 동반되었을 것이다.
나츠키는, 그런 캐릭터니까.
외모로만 봤을 때는 과묵해 보일 것 같은 인상이지만, 실제로는 여기 이곳에 서 있는 누구보다도 그 감정에 솔직하다.
원래대로라면 그녀의 적의가 내게 향하지 않았겠지.
상을 받고 원래 자리에 돌아오며,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다.
나름, 나츠키 또한 좋아했던 캐릭터인지라 괜스레 마음이 불편했다. 나도, 내가 여기 왜 있는지 모르겠단 말야.
“3위, 장선우!”
“네!”
그다음으로 나서는 것은 전체 석차 3위.
노력하는 천재, 엄친아라는 말로서 그 캐릭터 성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존재. 장선우였다.
어찌 보면 뭐, 미소녀 천지인 RPG에서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히어로판타지의 주 이용자는 모두 남성들이었다.
당연히 캐릭터 중에 인기 있는 이들은 대부분 여자. 하지만 장선우는 김수혁과 함께 당당히 인기투표 10위 안에 들어갈 정도로 멋진 놈이었다.
작품 내에서 실제로 많은 여성 캐릭터들이 장선우를 좋아한다는 묘사를 보이기도 하고.
부러운 새끼.
씨발, 빙의될 거면 저런 놈으로나 빙의되지 이 무슨…….
옆을 쳐다보자 신하연과 나츠키 모두 장선우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왠지 기분이 더러워져, 일리아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녀는 오직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자그마한 감동을 느꼈다. 역시, 일리아 너밖에 없다.
장선우는 내려오며 내게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보낸다. 녀석 또한 부모가 상위권 히어로인 만큼, 웬만한 이들은 다 알고 있었다. 신하연이나 나츠키도 기존에 면식이 있다.
하지만 나는 본 적이 없을 것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시선 또한 원래 내 것이 아니었을 터다.
“2위, 신하연!”
“네.”
그다음, 불려 나가는 이는 신하연. 그녀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말은 위선자.
실제로 외견도 그렇고, 보이는 행동들 또한 모두 굉장히 쾌활하고 솔직해 보이는 캐릭터였지만, 실상 속은 제일 썩어 있었다.
만들어진 이미지, 만들어진 행동. 그것들은 결국엔 자기 자신을 좀먹는 것이었으니까.
다만 그것이 모두 본인이 원해서 하는 것이었기에, 나는 일말의 동정의 여지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싫어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으흣.”
괜스레 교태를 부리는 신하연의 모습에 남자 생도들 전원이 ‘오오’ 하는 소리를 내었다.
만약에 이 몸이 아니었다면 나도 그랬을 것 같아.
예쁘면 원래 다 용서된다.
내려오면서, 신하연은 내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하지만 그 내면은 어떨지 모르는 일이었다. 어쩌면, 벌써부터 흉계를 꾸미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 미소 또한 원래는 내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수석, 다나!”
“하와와!”
이내, 내 이름이 불린다.
나는 ‘네’라고 평범하게 말하려 했으나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다.
뭐, 이제는 딱히 상관없는 일인가.
나는 체념하며 위로 올라갔다.
“호호, 귀여운 아이네요.”
올라가자, 이곳 아카데미의 교장인 김혜미가 상장을 들고 나를 맞이했다.
외견 또한 그러했고, 실제 나이도 72세인 고령의 노인.
언뜻 만만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나, 여전히 100위권 이내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최상위 히어로 중 한 명이었다.
“하와와와…… 감사한 고시애오…….”
“말투가 참 재밌군요, 앞서 이야기는 다 했으니. 마지막으로 수석이 소감을 말하고 끝내도록 하죠.”
홀홀 웃으며 내게 마이크를 넘겨주는 교장.
나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호에…….”
그들은 앞선 이들보다 내게, 더 강한 관심을 보내오고 있었다.
사실 신하연이나 나츠키, 장선우가 이렇게 성적 우수로 입학하는 광경은 다들 예상한 것일 터다. 그들은 워낙 유명했으니까. 그 부모들부터가.
하지만 다른 생도들 입장에서 나는 그냥 굴러온 돌일 뿐이었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큰 돌. 그 때문에 비치는 감정들 또한 호의보다는 적의였다.
이런 거, 진짜 별로인데.
원래, 이 감정들은 내가 받아야 할 게 아니었다.
빌런의 신분으로 이곳 아카데미에 숨어들어온 ‘J’. 그녀가 수석을 차지하며 받았어야 하는 시선인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무슨 일인지 실력을 숨기고 시험을 제대로 치지 않았다.
저깄네.
나는 한쪽 구석에서 나를 주시하고 있는 J를 발견했다. 쟤는, 왜 저러고 있는 걸까.
“왜 이렇게 시간을 끈대. 좀 빨리 끝내지.”
내가 잠시 주변을 살펴보고 있자, 어디선가 날 선 불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쪽을 쳐다보자 내 기억에 없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엑스트라라기엔 예쁜 얼굴이긴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쓸모없는 정보다.
“하와와와.”
흠, 흠.
나는 한 차례 목을 가다듬었다.
아니꼽긴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굳이 길게 끌 필요는 없겠지.
그냥, 이번에도 짧고 굵게 한 번 가자.
“옵바언냐야들 븝하! 또 보는 거시애오! 븝미쟝…… 너무 기뻐여! 이렇게 다시 볼 수 있게 되어서 말이에여!”
내가 여기서마저 이럴 줄 몰랐던지, 사람들의 분위기가 사뭇 엄숙해진다.
그렇지 않은 것은 홀홀 웃음을 흘리고 있는 교장과 해맑은 표정의 일리아뿐이었다.
반면 나츠키는 대놓고 내게 적의를 표하고 있다. 주먹을 부르르 떠는 게, 가까이 갔다간 한 대 칠 기세였다.
……일리아 옆에 꼭 붙어 있어야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준비해 온 말을 내뱉었다.
이렇게, 좋은 날에 학우분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이번엔 운이 좋게도 제가 수석을 차지했기에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제가 이곳에 서도 되는 걸까, 걱정도 됩니다.
“이렇게 좋은 날에 옵바언냐야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뻐여! 이번엔 븝미쟝이 운이 조왓서여…… 그래서 1등을 한 거야요!”
현재 저희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렇기에 이번의 제 결과는 운이 많이 따라 준 것이죠. 다만 저는 그에 매몰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태해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븝미쟝은 아무것도 몰라여…… 운이 조왔던 거애요…… 그러니 더 열심히 하겠어여!”
학우분들과 앞으로 좋은 관계를 다져 나가고 싶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실은 븝미쟝…… 옵바언냐야들한테 마법을 건 거애오…… 그건 바로 븝미쟝을 사랑하게 되는 마법! 옵바언냐야들 모두 사랑해여어어어! 호에에에에!”
내심과 다른 말들이 입에서 나가게 된 이후, 입학식은 종료되었다.
이후 이 영상이 한 생도에 의해 외부로 퍼져 나가면서 팬들의 숫자가 3할 이상 늘었다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일 터다.
* * *
퀘스트(반복, 성장).
‘애기븝미’로서의 명성도 3,000 쌓기
성공.
보상이 지급됩니다!
새로운 퀘스트가 추가되었습니다!
퀘스트(반복, 성장).
‘애기븝미’로서의 명성도 5,000 쌓기
기간: 150일
보상: 특성의 세부 항목 중 일부 잠금 해제 및 성장.
실패 시: 영원히 애기븝미쟝인 거시애오!(특성 전 항목의 성장 불가).
현재 ‘애기븝미’의 명성도는 3,139입니다!
어째, 금방금방 퀘스트가 깨지는 기분이긴 했다.
이번에도 기간을 한참은 남은 상태에서 클리어했으니.
이제는 이 자괴감에도 슬슬 면역이 되어 가는 모양인지.
“다나, 멋졌어!”
그리고 그 면역에는 이 팔불출도 한몫을 했을 것이었다.
‘꺄악!’ 하는 소리를 내며 달려와선 나를 와락 안아 버리는 일리아.
마냥 귀엽다고, 좋다고 해 주니 이제는 진짜 내 본래의 상식선에서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후에에, 븝미쟝은 원래 멋쟁이야요!”
“그래, 특히 그 신하연 개잡…… 생도가 표정이 별로 안 좋은 걸 보니까 기분이 좋다고 해야 하나.”
아, 그 이유도 섞여 있었구나.
아무튼, 내 소감이 그녀에게는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제외하고는 나는 대부분의 이들에게 너무 나대는 것 아니냐는 듯한 눈길을 받았다.
그나마 호의적인 이들은 대부분 남자들.
그것을 확인한 나는 다시 한 번 마이너스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도대체 왜 장선우로 환생하지 않은 걸까. 왜 그래서 그 김수혁 같은 변태 새끼들만 주변에 꼬이고…….
“흐에에…….”
김수혁을 머리에 떠올리자,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정신 나간 방어구를 집에 들고 들어간 그 날, 나는 그 착용 사진을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보내 줘야만 했다.
그러면, 무기 또한 공짜로 만들어 주겠다는 장장 두 시간에 걸친 놈의 설득에 현혹되어 버린 터다.
말할 수 없는 수치감.
하지만 기본 수억은 가뿐히 넘어갈 방어구 풀 세트를 받고 나니, 그보다 더 비싼 무기를 공짜로 준다는 말에 눈이 돌아가고 말았다.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돈이었다.
“다나, 왜 그래?”
“그냥…… 부끄러운 일이 생각났서여…… 븝미쟝은 아가가 아니게 되어 버린 거 같아여…… 아가지만 아가가 아닌 거야요…….”
“그게 무슨 소리래. 그러고 보니까 다나, 몇 살이었지?”
자괴감에 빠져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던 내게, 일리아가 뜬금없이 이상한 질문을 해온다.
몇 살이냐니? 설마, 지금까지…….
“호에에, 언냐야 몰랐던 거애오?”
“어…… 안 말해 줬으니까?”
“당연히 열일곱 살이에여!”
“에에에엑?”
그녀는 진심으로 놀라워했다. 뭐야, 진짜 몰랐던 거야? 애초에 히어로는 17살에 각성하는 게 일반이니, 그냥 그렇게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븝미쟝은 히어로애오. 히어로는 원래 열일곱 살인 거야요!”
“어…… 그런데 언냐야라고 하고…… 그랬으니까.”
“븝미쟝은 아가라서 일리아언냐야는 언냐야애오…….”
“그거, 되게…… 미묘하네.”
일리아는 진짜로 꽤나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븝미는…… 다나는…… 아가가 아니야…….”
……헛소리까지 할 정도로.
하지만, 아카데미 내로 들어갔을 때 그 충격을 순식간에 씻어 내 버렸다.
“와! 다냐! 우리 같은 반이구나?”
1부터 10반까지 나눠진 반 편성표를 보고 난 뒤에.
일리아는 눈에 띄게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사실, 나 또한 그녀와 같은 반이 되었다는 게 안심이 되는 일이었다. 이게 행운의 힘인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명단에 적힌 이름을 모두 보고 난 뒤에는.
이거, 누가 짜 놓은 거야?
3반: 김상수, 방국현, 응우엔 티…… 재스민 라벤더, 타나카 나츠키, 신하연…… 다나 크리스틴, 일리아 메이슨, 장선우.
참고로, 재스민 라벤더는 빌런 J의 가명이었다.
주연 등장인물들이 몽땅 모여 있는, 어이없는 사태.
그리고 그것보다 황당한 것은 따로 있었다.
특성이 발동되었습니다!
엄청난 행운이 찾아온 것이애오! 하와와!
이게, 행운이라고?
장난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