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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17화 (17/172)

#17화.

교실 안의 분위기가 영 싸늘했다. 졸지에 펜타곤 최강자들과 같은 반을 하게 된, 나를 포함한 여러 떨거지도 그랬고, 그 당사자들 또한 그러했다.

특히 개중 나츠키는 얼굴에 짜증이 물신 떠올라 있었다.

왜, 내가 이런 반에 들어야 하는가. 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그녀는 자신보다 강하거나 어떤 분야에서 뛰어난 모든 대상에 대해 적개심을 가진다.

그렇다고 딱히 자기보다 약한 대상에 대해서 호의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녀의 이런 특성은 나중에 가서는 변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때,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던 나츠키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녀가 향하는 방향은, 분명히 재스민. 그러니까 J가 앉아 있는 방향이다.

그거 시작이구나.

나는 게임에서 이뤄지는 에피소드를 기억해 냈다.

나츠키는 뜬금없이 수석을 차지하고 건방진 표정을 하고 있는 J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게 되고, 교실 안에서 첫 싸움이 붙게 된다.

필연적으로 자신, 그렇지 않더라도 그녀가 인정한 사람이 수석을 차지하게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에 대한 열등감의 폭발인 것이다.

단지 수석을 했다는 죄로 모든 것을 뒤집어쓰게 되는…….

잠깐만.

수석은…… J가 아닌데.

“야, 너.”

나츠키는, 내 앞에 섰다.

그러고는 대놓고 삿대질을 하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뭘 쳐다봐, 수석이라고 4등 보면 우스워 죽겠냐? 막 저런 것도 사나 싶고 그래? 뭐가 신기하다고 야리긴 왜 야려.”

……그렇게 따지면 이 반 30명 중 27명은 죽어야 하는 거냐.

갑자기 쏟아지는 개소리의 향연에 나는 따끔하게 한마디 해 주려고 했다.

그게 성숙한 어른으로서의 행동이 아니겠는가.

“호에에에…… 븝미쟝 그런 생각 안 한 고애오, 언냐야…….”

하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역시나 어느샌가 몸은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다.

원래 이런 스탠스를 취하면 보통 행동이나 말투가 유해지기 마련인데, 나츠키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아마도, 자기를 놀리나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를 빠득, 하고 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내 어깨를 잡으려 든다.

나는 반사적으로 마력을 끌어 올렸다. 육체 계열 특성을 가진 그녀가, 나를 건드린다면 이 종잇장 같은 몸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탁.

“하?”

하지만 그 행동은 이어지지 않았다. 일리아가 나츠키의 손을 잡아채었기 때문이었다.

평상시에 나와 함께 있을 때와는 달리, 몹시 화가 난 듯 냉랭한 얼굴이었다.

“넌 뭐야? 뭔데 끼어들고 지랄이세요.”

“얘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다짜고짜 와서 헛소리야. 얌전히 자리로 돌아가서 박혀 있어.”

나츠키는 아예 눈을 까뒤집는다. 그러고는 일리아를 향해 온갖 욕설을 쏟아붓기 시작한다. 그 소리에, 교실 전체의 눈이 이쪽을 바라본다.

저거, 미친년이구나.

나는 새삼 그 사실을 상기했다. 스토리 중반부에 이르러 갱생을 한 것이지, 지금의 나츠키는 야생동물이나 다름없었다.

일리아는 그 상황에서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그저 나츠키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리고 나츠키의 입이 잠시 멈췄을 때, 싸늘한 어투로 말했다.

“다 했으면 꺼져. 다음에 이런 일 있으면 피 볼 각오하고.”

“피? 하, 말 잘 꺼냈다. 오늘 피 한번 보자. 이 개년들이 아주…….”

“도대체 무슨 깡으로 나대는 건지 모르겠네. 니 말대로 너 4등 따리잖아, 다나는 수석이고. 진짜 싸우면 누가 피를 보겠어?”

“언냐야…… 피는 븝미쟝이 바여…….”

나는 자그맣게 일리아에게 속삭였다. 그쪽으로는 자극하지 말아 줬으면 하는데. 어떻게 수석을 하긴 했는데, 나는 명백히 나츠키보다 훨씬 약하다. 현재 재학생 300명 중 200등도 하기 힘든 무력이다. 마력을 제외한 모든 스탯이 다 폐급이라.

일리아는 내 말을 들었는지,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면서도 피식 웃었다.

나츠키가 그 웃음에 더욱 인상을 찡그리던 와중, 그녀의 등 뒤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저기, 나츠키. 첫날부터 그러지 말자, 같은 반이 됐으니 친하게 지내야…….”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장선우였다. 이 상황에서 친구들끼리는 사이좋게 지내야지, 하는 자신의 지론을 설파하며 다가오는 녀석은 그밖에 없겠지.

나츠키는 장선우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무언가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 너는 또 왜…… 얘…….”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기가 억울한 부분이 없었는지, 고개를 젓는다.

그러고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개새끼.”

장선우는 그 말에 그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는 나와 일리아에게 사과했다.

“미안, 쟤가 가끔 저럴 때가 있어서. 나도 예전에 당한 적 있고.”

“어지간하네. 신하연 같은 년이 세상에 하나 더 있었구나. 새삼 이 세상이 두려워진다.”

일리아의 말에 신하연의 귀가 쫑긋거리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다만 나츠키처럼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 속에 오래도록 담아 두고 있겠지.

“신하연 같은…… 아! 너, 일리아, 맞지?”

“……알아?”

“당연하지. 예전에 하연이랑 친구였잖아 너. 아는 사람 하나 늘었네.”

“난, 너 기억 안 나는데.”

일리아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어릴 때 신하연의 주도로 왕따 비슷한 경험을 당했던 그녀로서는, 이런 경험 자체가 생경할 터다.

나는 뭔가 기분이 더러워짐을 느꼈다. 이놈, 일리아까지 홀리는 건가. 우리 일리아만큼은 안 된다, 이놈아.

“푸우.”

그런 감정이 자동 보정된 결과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볼을 부풀리는 모습이었다. 그나마 이게 한계다.

장선우는 내 시선을 느끼고 약간 당황한 듯하더니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내게 말했다.

“어…… 안녕?”

“뿌으…….”

아마, 웬만한 여자들은 장선우가 천진한 모습으로 인사를 하면 마음이 풀릴 터다.

하지만 내게는 통하지 않는다. 난 남자니까. 겉모습은 이따위일지언정.

과연 녀석은 당황한 듯이 다음으로 이어질 말을 생각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보여 준 모습만 해도 대화 자체가 어려울 터다.

드르륵.

그때, 교관이 교실에 들어온 것이 내게 행운이었을까, 아니면 장선우에게 행운이었을까.

들어온 교관은 커다란 덩치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험악한 인상의 사람이었다.

갑자기 교실의 분위기가 침중해진 것은 나만 느낀 것일까? 다들 눈앞의 교관에게 압도된듯한 모습이었다.

장선우 또한 긴장했는지 그 즉시 조용히 자리 자리로 돌아갔다. 아까까지 히스테리를 부리던 나츠키도 바짝 얼어붙은 모습이다.

“자…… 여러분…….”

느릿하고 묵직한 목소리. 그것만 들어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 몸도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저건 강자의 기운이다.

이 반에서 함부로 사건 사고를 일으켜서는 안 되겠다. 그 생각을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3반의 담임 교관분이 조금 늦으시는 관계로 제가…….”

“후야야야야.”

이어진 교관의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교실 전체가, 모두 다 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 괴물이 담임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다. 심지어는 그 나츠키 마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아카데미에서 첫날부터, 악몽이 시작될 뻔했다.

이것도 행운이 막아 준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다! 내 특성!

*    *    *

‘조금 늦는다’는 말과 달리 담임 교관은 상당히 늦었다.

담임 교관 대신 왔다는 그 거구의 남성이 나가고 난 뒤, 새로 들어온 교관은 얼굴에 익은 사람이었다. 다만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학창시절, 반과 선생님은 기억나는데 정작 그 선생님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기분이었다.

“반갑습니다. 3반 담임을 맡게 된 김나연이라고 합니다. 모두 잘 부탁해요.”

김나연, 상당히 흔한 이름이다. 그래서 기억이 안 났던 걸까.

사근사근한 말투와 어울리는 수수하지만, 단정한 외모. 정말 아무 학교나 들어가면 한 명쯤 있을 법한 여선생이었다.

실제로도 첫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게임 내에서, 학생들이 말을 안 들어서 힘들다며 다른 교관들한테 푸념하는 신도 있었다.

인사를 마친 그녀는 아카데미 생활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점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대부분 익히 알고 있는 것이라, 주위의 생도들이 지루하다는 듯 하나둘 퍼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의외로 자세한 내용 같은 건 잘 모른다. 작품 내에서 등장하지 않은 세부 설정도, 따로 설정집을 내서 호기심을 충족시켜 준 게임사가 이상하게 이 내용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실했다.

나는 그래서 꽤나 열심히 그 설명을 들었다.

담임 교관은 그것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본 듯, 내게 미소를 지었다.

“다나…… 맞죠? 역시 필기 1등이라 그런가, 듣는 자세가 엄청 좋네요.”

“븝미쟝은 우등생이와요…… 하와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웃음꽃을 피우는 광경에, 나츠키가 저 멀리서 코웃음을 친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앞으로 여러분은 주말을 제외하곤 기숙사에서 지내게 될 거에요. 외부에서 따로 물건을 수령하거나 하는 일도 없을 거고요. 여러 생필품이나 각종 평가에 필요한 물품은 모두 주어진 포인트로 사야 합니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아는 부분이었다.

펜타곤 아카데미에서는 각각 학생들에게 일정한 포인트를 부여한다.

그 포인트로 식사하고 생필품을 사고 무기와 방어구 따위를 사게 된다.

포인트는 매주 학년 석차에 따라 다르게 배분되고, 그 외에 포인트를 추가로 받는 방법은 생도끼리 대련 혹은 양도, 훈련 때 교관의 특별 지급 등이 있다.

아무래도 지금 이 반에 있는 이들은 별생각이 없는 모양이었지만, 당장 몇 주만 지나도 이 포인트를 얻으려고 혈안이 될 터다.

나는, 그래도 사정이 괜찮은 편이었다. 1등한테는 포인트를 꽤나 많이 주니까.

“자, 이제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추가 수업은 없고, 오늘은 자유행동을 해도 되니 외부로 외출을 갔다 올 생도는 외출증을 받아서 제출하세요.”

교관이 교실 밖으로 나간 뒤.

네에, 하는 소리와 함께 밖으로 흩어지는 생도들.

나 또한 밖으로 나왔다. 물론 일리아도 함께였다.

“하아, 이제 진짜 시작이네. 다나 너는 밖에 안 나갔다 올 거야?”

“호에에…… 븝미쟝은 기숙사로 갈래여…….”

“그래? 나도…… 딱히 나갈 이유는 없긴 한데. 마지막으로 밖에 나가서 밥이나 같이 먹으려고 했지…….”

시무룩해지는 일리아의 목소리.

뭐야, 그런 얘기였나. 진작에 말을 하지. 나는 공짜 밥 거르는 성격이 아니다.

“하와와…… 언냐야가 사 주는 거애여?”

“당연하지! 다 사 줄게, 다!”

“븝미쟝 그러며는…… 기숙사에서 옷만 갈아입고 오는 거야요. 기다리고 있어여!”

나는 하와와왕, 하며 기숙사 방향으로 달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체력이 떨어져 강제로 걸을 수밖에 없었지만.

“후에에엥…….”

그나저나 뭔가, 대화가 남자 선배한테 끼 부려서 밥 얻어먹는 여자 후배 같은 것은 내 착각이겠지.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나는 이제 그런 부분은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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