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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18화 (18/172)

#18화. 외출 다녀 왔서여……

사람은 살면서 여러 가지 우연이라는 것을 겪게 된다.

그것은 마치 원인이 없는 것처럼 보이나 다시 들여다보면 결코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또한 그러한 종류겠지.

“더 가져와, 아니. 다 가져와!”

쾅!

일리아와 함께 오게 된 음식점, 우리는 그곳에서 깽판을 부리고 있는 한 남성을 목격하게 되었다.

“……뭐야, 저 미친놈.”

일리아는 기본적으로 정의감이 넘치는 성격이다. 웬만한 일에 쉽게 휘둘리거나 감정을 표현하지 않지만, 빌런이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는 이들에 대해서는 굉장히 단호해서 잘 나선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기질을 좀 죽여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언냐, 언냐야, 잠깐만여…….”

“왜? 다나, 저런 놈들은 당장에…….”

제발 참아 줬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일리아는 내 손을 떼어 놓고는 앞으로 나섰다. 그녀와 내 완력의 차이는 갓난아기와 성인 남성만큼이나 컸으니까.

이건 진짜 아닌데.

나는 저기서 깽판을 부리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알고 있다. 흑사회만큼 거물 집단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나름 악명을 떨치는 빌런들이 모여 있는 유성파의 중간 간부.

아직 생도에 불과한 일리아와 저놈이 시비가 붙는다면 그 결과는 굳이 두고 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냥 박살이 날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저기 끼어서 뭘 하겠다는 말인가. 실상 나는 일리아보다도 약하다.

“당신,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곤란해하고 있는 식당 직원들 사이로, 일리아가 나선다. 마치 구원자라도 보는 듯 쳐다보는 주변 사람들. 개중에 몇몇은 펜타곤 생도복을 알아본 듯 안도의 한숨을 짓는다.

그만큼 펜타곤 생도라는 타이틀은 어딜 가도 알아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나쁘다.

“뭔, 개잡년이…… 내가 뭘 하던 무슨 상관이야?”

생도 타이틀에 움츠러들 만큼 작은 집단이 아니라는 것일까, 거한은 일리아을 향해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으며 맞섰다.

“무슨 상관이냐니…… 당신 잡혀가고 싶어요?”

“잡혀가? 내가? 하하! 잡아가 보던가 쥐방울만 한 년아.”

참고로, 일리아는 전혀 쥐방울만 하지 않다. 171cm의 큰 키에 탄탄한 몸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비대한 덩치에 키만 2미터가 넘어가는 거한에 비한다면 맞는 표현일 수도 있겠지.

아무튼, 일리아도 이쯤 되면 정중하게 나가기란 불가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전투태세를 취했다. 히어로 등록증을 가진 이들은, 범법 행위나 과도한 소란을 벌이는 이들을 무력으로 제압할 권리가 있다.

뽑히는 서슬 퍼런 칼날에, 거한이 씨익 웃음을 짓는다. 이제 그에게도 어느 정도 명분이 생겨 버린 것이었다.

놈은 자신의 거대한 손에 걸맞은 너클더스터를 꺼냈다. 그 형태는 딱 보기에도 악질적이었다.

무투가였나? 그런 것까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래도 저 꼴을 보아하니 그런 모양이었다.

“하와와와…….”

제기랄.

별로 나서고 싶지는 않았는데.

나는 거한의 신경이 일리아에게 쏠린 틈을 타서, 마력을 끌어 올렸다. 그 과정은 상당히 은밀히 진행되어서 주변에 구경하던 사람들조차 내가 그러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마력의 형태를 가공하고, 또 가공해 낸다. 매직 미사일이나 매직 애로우 따위의 단순한 형태의 마탄으로서는 이 상황에 무언가 도움을 주기가 힘들다.

길게, 최대한 길게 마력을 뽑아낸다. 그 과정에서 꽤나 많은 편인 내 마나가, 점점 바닥까지 떨어져 간다.

눈앞이 흐려지고 머리가 흔들거리지만, 참아내고 오직 대상에만 집중한다.

이내, 유성파 빌런의 주먹이 휘둘러질 때, 나는 놈의 다리에 마력으로 이루어진 밧줄을 던졌다. 그것은 내 마지막 마력과 의지에 따라 날아가 놈의 행동을 제약했다.

“밧줄 씨! 꽁꽁 묶어 버리는 거애여!”

그러자…….

“어어?”

얼빠진 소리가 귓전에 들려온다. 놈은 예상치 못한 듯 그대로 중심을 잃으며, 일리아에게 공격을 허용했다.

그것은 손속을 봐주지 않는 일격. 아무리 스펙에서 압도한다고 하더라도, 무방비로 그런 공격을 맞은 시점에서 이미 결과는 뻔했다.

“끄아아악!”

비명과 함께 쓰러지는 거한을 바라보며, 나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이내, 일리아가 나를 쳐다봤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무슨 이상한 것이라도 본 양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가 내게 달려왔다.

“응하악……?”

나는 그제야, 내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턱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빨간 액체. 그것의 진원지는 내 코였다. 아마, 마력 역류 현상 때문일 것이었다. 과하게 마력을 사용한 대가로 출혈이 나는 것이겠지.

뭐, 어쩌랴 생각했지만, 머리가 핑 도는 것이 느껴진다.

충분히 버틸 만했는데, 어째서?

내 의문은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 풀렸다.

다나 크리스틴의 정신력 한계치를 뛰어넘었습니다! 아가야는 피 같은 거 못 보는 거애오…….

염병을 하고 앉았네.

나는 그대로 휘깍, 넘어가 버렸다.

*    *    *

“하우우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겨우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아직도 주변이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한 것을 봤을 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기는…… 아까 거기내여…….”

나는 주변에 있는 한 커다란 가로수 아래 그늘에 눕혀 있었다. 아무래도 별로 증상이 심하지 않아서 대강 쉬도록 한 거겠지.

사실 심할 리가 없었다. 외상도 없었고, 마나 역류가 진행되기는 했지만 경증이었으니. 단지 피를 봤기 때문인지 정신력이 바닥나서 기절한 것이었다.

정신력.

이건 따로 게임 내에서 수치를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각각 플레이어, NPC 캐릭터마다 태생 수치가 정해져 있다. 행운 같은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래도 애기븝미, 다나 크리스틴은 이 정신력 수치가 더럽게 낮은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툭하면 기절하고 울어 대는 거겠지.

“끙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역시나 몸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들 모여 있는 곳을 쳐다보니, 그곳에서는 빌런 인수인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당당하게 거한을 경찰들에게 넘겨주는 일리아.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뭐, 결과적으로는 일이 잘 풀렸으니 됐나.

“어? 다나아아아!”

일리아는 시선을 느낀 것인지, 내가 깨어난 것을 확인하고는 금세 쪼르르 달려왔다. 그러고는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괜찮아? 아까 막 쓰러지길래. 그런데, 딱히 문제는 없는 것 같아서…….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 볼래?”

‘병원’ 나는 그 두 글자를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몸서리를 쳤다.

참고로, 이쪽 세계에서의 병원은 웬만한 중상이 아니라면 가지 않는 곳이다. 일반적인 병증이나 가벼운 부상 정도는 힐이나 포션 따위로 다 해결이 되니까.

“벼, 병원은 안 대는 거애오…… 무서운 거야요…… 거기 가면 흰색 옷 입은 아조시들이 막 만지고 이상한 짓 하는 거애오…….”

“……그거 되게 곡해해서 말하는 거 같은데.”

내가 경기를 일으키는 모습이 이해가 안 되는 듯했다. 어차피 펜타곤 생도 신분이면 병원에 가도 우선 진료에 비용도 면제이니, 부담 없이 가는 편이었으니.

다만 나는 왜 이런 반응이 나오는지 알 수 있었다. 이것도 내가 기존에 저질러 놓은 방정 때문이었다.

[불사신선: 본인 간수치 700나왔다. 질문받는다 ㅅㅂ]

[라면가이더: 어케하면 간수치가 700이 나옴? 걍 닉네임 알콜신선으로 바꾸셈]

[애기븝미짱: 옵바야들 모두 븝하! 오늘도 븝미쟝과 함께 하와와한 하루 되는거애오!]

[래더: 븝하!]

[업스커트블랙니삭스: 븝미쟝은 병원 안 가? 컨셉질 끝나고 방구석에서 깡소주 맨날 조질것 같은데]

[애기븝미짱: 븝미쟝은 병원같은거 못 가여…… 대신에 옵바야들의 아픈 마음을 치료하는 애기간호븝미사가 될 수 있는거애오!]

[불사신선: 안 그래도 착잡한데 지@랄을 해라 씨이발]

내가, 뿌려 놓은 업보들이 그대로 내게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헛소리 빈도 좀 줄일걸.

후회해 봤자, 과거는 변하지 않았다.

삐익, 삐익.

현대의 경찰차들과는 다른, 꽤 불쾌한 사이렌 소리를 내는 경찰차가 저 멀리 가는 것이 보였다.

그 안에는 유성파의 중간 간부 놈이 타고 있겠지. 얼떨결에 에피소드에 개입하는 빌런 하나를 잡아 버렸다.

일리아 또한 그 사실을 아까 안 모양인지, 내게 상기된 목소리로 말해 왔다.

“아! 참, 알고 보니까 저거 무슨 유성파인가? 빌런 단체 간부라고 하던데. 다나는 알고 있었어?”

“호에에에…… 븝미쟝은 아무것도 몰라여…… 나쁜 아조시였네여.”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라는 질문에 해명하기가 뭐해서 그냥 몰랐다고 답했다. 일리아 또한 그에 대해 별 의심은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쩐지, 좀 강하더라고. 그래도 이제 25등급 필드까지는 솔로 플레이가 무난한데…… 다나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하와와와, 언냐야가 잘한 거애오. 븝미쟝은 아무것도 안 했어여…….”

“아냐아냐, 저번에 던전 때도 그렇고. 펜타곤 수석이 왜 이러실까.”

일리아가 나를 막 띄워 주기 시작하니,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주연급 등장인물에 공치사를 듣는 일은 꽤나 기분이 좋은 것이었다.

한참이나 내 칭찬을 하던 일리아는, 이윽고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집안 길드에서 저번에 하급 던전 하나 발견했다고 했는데. 다음 주 주말에 견학하러 오라고 했거든, 친구 한 명 데리고 와도 된다고 했고. 혹시 시간 되면 같이 갈래?”

하급 던전이라…… 이런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만 큰 사건은 아닌지 에피소드 내에서 등장했던 적은 없던 것 같고,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로.

견학이라…… 나쁠 건 없을 것 같다.

“알았어여, 언냐야! 같이 가여!”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수락했다.

뭐, 견학 정도야 나쁘지 않겠지. 일리아네 집안 길드도 중소 길드 수준은 넘어가고. 비록 신가(申家)길드의 하청이기는 했지만.

다만 갑자기 떠오르는 한 가지 생각이 마음에 걸렸다.

혹시, 이번에도 이상한 일이 생길까.

나는 갑자기 떠오르는 불안감을 고개를 저어 떨쳐냈다.

“후에에…… 설마, 그럴 일은 없겟져…….”

운 좋다며.

이번에 한 번 재수 없는 일을 겪었으니, 다음에도 재수 없으리라고 설마.

나는 무슨 연유인지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진정시켰다.

분명 그건 추위 때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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