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븝미쟝은 대련이 시러여…… (1)
이곳 펜타곤에서는 매주 바뀌는 순위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
그 이야기는 일찍이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도 크게 체감을 하지 못했다. 당장 게임에선 텍스트나 자잘한 장면 정도로 보여 줬을 뿐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알려 준 적이 없으니까.
[일리아언냐야: 아, 진짜. 이건 아니잖아 ㅠ0ㅠ]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차이를 명백히 느낄 수 있었다.
일리아가 보내 준 사진. 그곳에는 그녀의 방이 찍혀 있었다. 일리아의 등수는 실기와 필기를 합쳐 267등. 필기 점수는 오르지 않았지만, 마력 측정에서 기존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기에 300등 입학을 면한 것이었다.
하지만 명백히 하위권이었고, 그에 따라 일리아가 배정받은 방은 그 몰골이 상당히 좋지 못했다.
[일리아언냐야: 나…… 아까 뭐 기어다니는 것도 봤단 말이야.]
[언냐야, 그거 벌레 아니에여?]
[일리아언냐야: 그러니까 ㅠㅠ 아 진짜 어떻게 여기서 자냐고.]
내가 갓 스물이 됐을 때 살던 보증 300만 원에 월 25만 원짜리 원룸보다도 구린 방이었다.
일리아도 나름 귀하게 자란 몸이다. 아니, 주연들을 제외하면 최상위급이지.
아마 저런 장소는 처음 겪어 보는 것일 터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하와와, 언냐야. 그냥 븝미쟝이랑 같이 자여. 침대는 하나뿐이긴 한데, 같이 잘 수도 있고 아니면 바닥에서 자도 거기보단…….]
[일리아언냐야: 아냐 아냐. 그건 미안하잖아.]
[어차피 혼자서 자기엔 넓어여…… 븝미쟝 아가라서 혼자 자면 악몽 꿔여. 언냐야랑 같이 자면 븝미쟝도 조아여.]
[일리아언냐야: 그럴까, 그럼?]
마지막, 일리아의 답장은 내 답장으로부터 10분이 지난 이후에 돌아왔다. 모르긴 몰라도 상당히 기뻐하고 있겠지.
나는 내 방을 둘러봤다. 이 정도면 내가 원래 살던 집보다 나은 수준이었다. 가구 하나하나가 모두 고급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침대, 벽걸이 시계, 인형 따위에도 죄다 마석이 박혀 있었다.
조금 흠이라면 너무, 여자애 취향으로 꾸며진 방이긴 하지만…… 그건 내가 외향이 이러니 이렇게 맞춰 준 거겠지. 그것도 큰 불만은 아니었다.
“이거…… 굳이 마력 단련실도 필요 없겠는데여…….”
방 안을 살펴보던 나는, 문득 주변에 마력이 충만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거, 그러면 굳이 마력 단련실을 이용할 필요도 없는 거 아닌가? 나는 곧바로 게임에서 배운 호흡법을 사용해 체내 마나를 순환하기 시작했다.
“흐우우우웁…… 흐아아아앙…….”
남들이 들으면 조금 민망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법한 소리를 내며, 나는 호흡에 따라 주변의 마력을 내 몸 안에 받아들였다.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펜타곤의 극심한 차별 대우에 대해서.
“헤으으응…… 븝미 마나 조…….”
히어로들이 마력을 올리는 방법은 마나가 충만한 곳에서 이렇게 호흡법을 사용하는 것 혹은 영약 같은 걸 계속해서 집어 먹는 것이다.
후자는 돈도 더럽게 많이 들고 소화 가능한 양 또한 한정되어 있지만, 전자는 호흡법과 마나가 충만한 장소만 있으면 무한정할 수 있었다. 육체적 한계가 오기 전까지.
문제는 그 장소였다. 마나가 충만한 장소라고 하면 일부 던전이나 필드도 있지만, 거기서 호흡법이나 사용하고 있다가는 머리가 터져 죽기에 알맞았다. 그렇기에 마석을 이용해서 단련실을 만드는데, 그 이용료만 해도 일반인들은 꿈도 꾸기 힘들 정도.
당연히 펜타곤에서도 포인트를 받고 마력 단련실을 이용하게 해 준다. 하지만 지금 내 방은 그 자체로 마력 단련실과 큰 차이가 없었다.
즉, 공짜로 유사 마력 단련실을 무한정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오고곡!
나는 순간 내부 마력이 충만해짐을 느끼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만족감과 쾌감을 느끼고 있는데 메시지가 떠오른다.
마력 스탯이 1 상승했습니다.
겨우, 10분 정도 호흡으로 마력이 상승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내가 처음 호흡법을 사용했기에 그런 것이었다. 혈로가 뚫리며 마나를 담을 그릇이 커졌기 때문에.
하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아마 체력적인 한계가 찾아와서 이거로 끝이겠지만, 이 육체는 마력을 받아들이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으흐읏…….”
비음을 흘리며, 마력을 가라앉히던 나는 침대에 머리를 기대었다.
몸이 나른해지는 감각을 즐기며, 그저 누워 있기를 몇 초.
덜그럭.
그때, 문 앞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지? 나는 순간 긴장하며 제멋대로 흐트러져 있던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혹시 첫날부터 대련하려고 찾아온 건 아니겠지? 물론 조금 시간이 지나면 1위인 내게 포인트를 뜯으려는 하이에나들이 달려들겠지만, 지금은 다들 사태 파악을 못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하지만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은 내게 대련 신청을 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아하하, 그…… 다나, 미안. 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즐거운 시간 보내고 있는 거…… 같아서.”
머쓱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손짓 발짓을 해 가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금발의 여인.
“일리아언냐…… 빨리 왔네여.”
“그, 나는 잠시 내 방에서 짐 챙겨 올 테니까! 아마 한 30분 있다 올 거야! 하던 거…… 마저 해도 돼.”
그녀는, 횡설수설하더니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내 방에서 멀어져 갔다.
나는 잠시간 멍을 때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븝미쟝은…… 아가에여…… 그런 거 아닌데…….”
하지만 일리아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그녀가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지 대강 알 수 있었다.
문밖에서 들은 달뜬 목소리 그리고 흐트러진 옷과 상기된 얼굴.
“하와와…….”
나는 돌아오면 제대로 해명하기로 마음먹었다.
* * *
나는 힘, 민첩, 체력 스탯이 낮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신체 기능이 떨어진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오감에 관련되어서는 마력 스탯이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니까, 나는 기본적으로 먼 거리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처럼 신체 일부분에 마력을 주입한 상태라면 그 차이는 다른 이들과 더욱 차이 난다.
“아니, 나 진짜 충격받았다고. 우리 형이 겁먹으라고 일부러 헛소리하는 줄 알았어. 그런데 방에 들어가니까 무슨 벽지가 펄럭거리면서…….”
“하위권들 그냥 다 죽으라는 소리야? 아니, 애초에 실기 위주인 펜타곤에서 무슨 필기로 등수를 정하고 그러냐고.”
“그러게, 이번에 1위 보니까 완전 실전이랑은 거리 멀어 보이던데. 실전 능력 확인하는 두 번째 시험은 편법으로 통과했다는 말도 있고…….”
“그냥 대련 바로 걸어? 지금 걸면 포인트 거의 공짜로 벌충할 것 같던데.”
저 멀리서 들려오는 이야기, 복도 반대편이라 놈들은 내가 자기들이 오는 방향에 서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혹시나 내가 아는 주·조연이 그 속에 섞여 있나 확인했다. 사실 웬만한 조연급 정도만 되더라도 내가 명백히 열세인 것은 맞았다.
하지만 놈들 중에서는 없었다. 죄다 엑스트라 새끼들이다. 사건이 벌어지면, 누구보다도 먼저 당하거나 혹은 곧바로 도망쳐 버리는 놈들.
그래도, 내가 너네한테 당할 만한 수준은 아니거든.
이야기를 들어 보니, 놈들은 각각 5반과 7반의 생도들인 모양이었다. 자기네 반을 찾아가는 중이었으니, 반대편에 있는 3반에 가려는 내 동선과 겹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그 쥐방울만 한 걸 그냥, 확!”
“야, 야! 닥쳐 봐 미친놈아.”
“왜 그러는…… 앗.”
개중 한 놈이 끝까지 떠들다가 친구에게 주의를 받고 앞을 바라본다.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단발의 탄성을 내질렀다.
최대한, 싸늘하게.
나는 잘되지도 않는 서늘한 표정을, 마력까지 사용하며 연출해 내었다. 자꾸만 올라가려는 안면 근육을 겨우겨우 마력으로 끄집어 내리며.
내가 지금 떠올리는 것은 나츠키의 얼굴. 싸가지 없어 보인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날파리들을 쳐 내는 데에는 이만한 인상이 없었다.
과연 그를 보고 겁을 먹은 모양인지, 그들은 나를 지나치며 단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남자 생도들이 멀어졌을 때 나는 안면 근육에 집어넣었던 마나를 풀고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하우으…… 이건 할 짓이 못 되는 거에여…….”
불평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만족스러워진다.
앞으로 불편한 사람들을 대할 때 이런 식으로 대처하면 될 것 같았다. 내가 이곳에서 해낸 첫 승리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었다.
“야, 아까 봤냐?”
하지만 그렇게 차올랐던 만족감은 지나간 남자들의 말이 들려왔을 때, 무너지고 말았다.
“그 이상한 말투 쓸 때는 몰랐는데, 저러고 있으니까 엄청 귀엽네.”
“아까는 뭐 때려잡는다며?”
“난 안 되겠다. 저런 애를 어떻게 무기를 들고 때려잡냐. 여동생 생각난다고.”
“병신.”
……아무래도 실패인 모양이었다.
그럼 그렇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호에에…….”
드륵.
3반 앞에 도착한 나는 문을 열었다. 안에는 이미 생도들이 대부분 앉아 있었다. 시선이 내게 몰리는 것이 부담스러워, 나는 빠르게 앉을 자리를 탐색했다.
여기, 여기!
그때 먼저 와 있던 일리아가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총총거리며 달려가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창가의 맨 뒷자리.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나는 자리였다. 맨날 여기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자거나 딴짓만 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일리아가 그런 포지션인가.
나는 싱글벙글 웃고 있는 일리아에게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븝미쟝 조금 늦어 버린 거애오……. 언냐야 언제부터 와 있었어여?”
“한 30분 전쯤? 자리 먼저 선점하려고 빨리 왔어, 난.”
역시나, 일부러 이 자리를 택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녀는 이론 쪽에는 영 관심이 없는 캐릭터다. 그렇다고 멍청하다는 소리는 아니고. 지능과 지식은 꼭 비례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앞자리에는 누가 앉았을까.
살펴보니, 역시나 주연들이 다들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츠키, 장선우, 신하연. 개중 신하연은 장선우의 옆에서 히히덕거리고 있었고, 나츠키는 그런 신하연을 꼴 보기 싫다는 듯이 대놓고 째려보고 있었다.
쟤는, 정말 하루 종일 남들 저렇게 쳐다보고 있으려나.
“호엥.”
그렇게 속으로 뒷담 비슷한 생각을 하자, 호랑이도 제 말하면…… 아니 나츠키도 제 생각하면 온다는 듯 이쪽을 쳐다봤다.
그런데, 뭐 어쩌라고.
잠시 움츠러들었던 나는 내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어차피 스토리상 그녀는 당분간 대련을 걸 수 없는 몸이니까.
내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마주 보자, 그녀는 뭔가 내게 험악한 말을 내뱉으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교관이 교실에 들어오며 그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자아, 오늘 첫 수업이군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가운 고시애오!”
인사와 함께, 첫 수업이 시작되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