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애기명가 븝미천재!
펜타곤 아카데미의 수업은 이론보다는 실전 위주였다.
당연하지만 히어로는 직접 현장에 나가서 뛰며 빌런과 몬스터들을 처리하는 역할을 하니까. 물론 이론이 실전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괴수 필드에 나타나는 마력 반응에 대한 방정식을 정리하는 건 실전에 그리 쓸모 있는 지식이 아니었다.
그건 따로 특수한 학과를 나온 일반인 혹은 능력이 떨어져서 히어로로서 역할하지 못하는 이들이 주로 맡아 처리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므로 지금 ‘마법 이론’이라고 시간표에 표시되어 있는 과목이, 실상 이론보다는 마법 그 자체의 시행에 중점을 두는 수업을 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첫 수업부터 3반에 들어오게 되어 기쁘군요. 다들 뛰어난 생도들이 모인 반이라고 이미 이야기가 많았거든요.”
싱긋,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저 교관을 나는 모른다. 아무래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은 아니겠지. 지나가는 엑스트라 1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내뱉는 말은 명백히 사실이었다. 흔히 선생들이 ‘자랑스러운 xx학교 xx반’ 따위의 수식어를 붙여 가며 띄워 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 반이 제일 뛰어난 반이었다.
애초에 입학 테스트 1위부터 4위까지 전부 몰아넣는 게 말이 되나? 심지어 무슨 일인지, 아직 자신의 힘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사실상 가장 강한 J마저도 이 반에 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쪽을 쳐다봤다. 그녀는 무심하게 책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실, 지금 모두의 앞에 펼쳐져 있는 마법 교본은 그녀에게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일 테니까.
“먀항…….”
그래서, 그냥 첫 시간부터 자 버리는 건가. J는 그대로 책에 머리를 박고 졸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네. 쟨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나름대로 비중 있는 역할임에도, 종잡을 수가 없는 캐릭터인지라.
다만 마법 이론 담당 교관은, J가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당장 눈앞에 근대 최고의 재능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눈앞에 있으니, 중·하위권 학생들에게는 신경 쓸 겨를이 없겠지.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해지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다들 기초 상식적인 부분에서는 이미 숙지가 되어 있을 테고…… 혹시 이 반에 마력 관련 재능을 가지고 있거나 마법사로 진로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
교관의 질문.
반 인원 중 절반 정도가 손을 든다. 아마 대부분 그저 마력 관련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일 것이다. 마력 관련 재능이 있다 하더라도, 마법사를 택하는 이들은 드무니까.
교관 또한 그를 모를 리가 없다.
그에 다시 한 번 질문한다.
“그럼, 여기서 마법사로 진로를 생각하고 있는 생도들만 빼고 다 손 내려 볼까?”
대부분 손이 내려간다. 남아 있는 것은 나를 포함한 5명의 생도.
다들 서로의 면면을 보며 납득하는 분위기였지만, 단 한 사람에 가서는 다들 어리둥절해진다.
교관 또한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그에게 말한다.
“음…… 장선우 생도? 혹시 질문을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니죠?”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흐응…… 장선우 생도는 본 교관이 알기로 이미 검투사(Gladiator) 특성을 얻었다고 알고 있는데. 예전 장병옥 헌터님처럼 말입니다. 그럼에도…… 마법사를 하겠다는 건가요?”
장병옥은 장선우의 조부이다. 동시에 과거에 이름을 날렸던 전설적인 히어로 중 한 명이기도 하고.
그는 그 ‘검투사’라는 특성에 걸맞게 검과 방패를 다루며, 던전과 필드를 가리지 않고 활약을 했다고 한다.
나이 든 다른 영웅의 회상 장면에서 나는 그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어떤 대형 이벤트의 시네마틱 영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높은 퀄리티로 만들어진 영상. 그 영상에선 주변과 차원이 다르게 움직이는 한 인물을 조명한다.
그러니 교관은 지금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의 특성을 그대로 물려받았는데, 그 길을 걷지 않고 마법사의 길을 선택할 생각이냐고.
그런 의문을 품으면서 한편으론 기분 좋은 감정이 스치는 걸 볼 수 있었다.
자신이 걷는 마법사의 길이 한 소년에게 빛나 보인다는 생각에 스치는 감정이겠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마, 저 기쁨은 분노로 바뀔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길도 걸을 겁니다. 그리고 마법의 길도 걷겠습니다.”
“뭐라구요?”
“하나의 길만 걸으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당당하게, 선언하는 장선우.
그래, 이제야 생각났다. 내가 아까 모르겠다고 한 저 교관까지도.
하나의 길만 걷는 것으론 만족할 수 없다는, 오만해 보이면서도 장선우니까 할 수 있는 선언. 그에 분개하는 교관의 모습. 이 장면을 본 기억이 있었다.
“흐흠, 뭐. 장선우 생도는 아직 어리니까 말입니다. 살아가며 어떤 풍파나 실패 따위도 겪어 보지 못했겠죠. 그 이상 말하면 지나친 참견이겠지만, 한마디만 해 두죠. 과욕을 부리면 이룰 수 있는 것도 못 이루게 됩니다.”
“많은 지도 부탁드립니다.”
“……쯧!”
대놓고 언짢다는 듯 혀를 차는 마법 이론 교관.
그의 입장에서는 불쾌하기도 하겠지만, 실제로 장선우는 후에 마법까지도 마스터해 낸다. 그때가 되면 아마 저 교관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겠지.
그의 시선이 다른 사람에게 닿는다. 마법사가 되고 싶다고 한 나머지 네 명. 그중에는 나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맨 뒷자리에다가, 키가 작아서 잘 보이지 않았는지. 마지막에서야 나를 발견한 교관은 활짝 웃으며 한껏 밝아진 톤으로 말했다.
“어머, 그러고 보니 입학시험 수석 다나 생도도 있었군요.”
그와 동시에 얼어붙었던 교실의 분위기가 풀리고, 모든 시선이 내게 집중된다.
나는 갑자기 쏟아지는 시선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내심 아무렇지 않은데, 심장은 두근거리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건 본능적인 육체 반응.
되레 입학시험 때나, 전교생 앞에서 수석 소감을 말할 때는 이런 현상이 덜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헹.”
저 멀리서 나츠키가 콧방귀를 뀌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래도 내 이런 반응이 내숭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쟤도 신하연의 본모습을 알고 있지. 나도 그녀와 비슷한 과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전혀 아닌데…….
“다나…… 생도?”
교관은 내 이런 모습에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그런데 뭐 어떡해. 몸이 이런걸. 진짜 소감 때나 입학시험은 어떻게 했던 거지.
그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혹시, 이거 때문인가.
흐으읍.
나는 심호흡을 한 뒤,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소리쳤다.
“하와와! 네, 븝미쟝 여기 있어여!”
신기하게도 무겁고 움츠러들었던 몸이 당당하게 펴진다.
그리고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난다.
(TIP: 븝미쟝은 힘차게 소리치면 힘이 나는 거시애오!)
그랬던 거였나.
생각해 보니, 세부 특성에도 그런 내용이 있었던 것 같다.
“아하하, 다나 생도는 귀엽고 활기차서 좋군요. 확실히 진로가 마법사인 게 맞죠?”
“그런 거시애오…… 븝미쟝은 애기븝미애오…… 말고는 아모고또 못 해여…….”
교관의 얼굴에 웃음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굉장히 만족한 듯이 박수를 친다.
“역시, 마도에 제대로 된 재능이 있는 사람일수록 그 길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법이죠…… 누구같이…… 흐음.”
대놓고 면박을 주는 행동이었지만, 장선우는 여전히 예의 그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확실히, 쟤 멘탈도 어지간한 수준은 아니지.
그렇게 어색해졌던 분위기가 정상적으로 바뀌고, 수업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법의 기초에 대한 설명과 함께하는 실습.
나는 거기서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자, 아마 마법사로 진로를 택한 생도들 중에서 아직 마나 스폿을 만들지 못하는 생도가 있을 겁니다. 걱정 마세요, 사실 그게 정상이니까. 마력 관련 재능이 있어도, 원래 각성하고 곧바로 연습해도 두 달 이상 걸리는 게 평균이에요.”
마나 스폿을 만드는 것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
나는 그에 조금 당황스러워졌다. 난, 각성하자마자 바로 됐는데? 설명대로 하니까.
혹시 내가 알고 있는 마나 스폿의 개념이 실제와 조금 다른가, 하고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아니었다.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힌 두 명의 마법사 지망생이, 아직 마나 스폿을 만들지 못해 아티펙트로 마법을 구동한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호에에에.”
진짜냐.
나는, 본능적으로 그에 놀라움을 표했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는 조금 곡해된 모양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다나 양은 스폿 만드는 수준은 이미 벗어나 있었죠?”
교관의 말과 함께, 생도들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그 시선에는, 아까와는 달리 일종의 적대감이 포함되어 있었다.
단체로 나츠키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심지어는 일리아조차 조금 떨떠름하게 말했다.
“다나…… 그래도 쟤네들도 있는데.”
일리아가 속삭이며, 가리킨 방향에는 입술을 꾸득꾸득 깨물고 있는 마법사 지망 생도가 보였다.
그 눈에서는 당장에라도 불똥이 떨어질 것 같았다.
“후에에에…… 븝미쟝은…….”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니라고 변명하려던 찰나에 교관이 말을 끊어 먹고 들어온다.
“아! 이러면 되겠군요! 다나 생도가 직접 시범을 한 번 보여 주죠.”
“시범…… 말인가양?”
“아무래도 같은 생도이니 확 와닿기도 할 테고. 이 반, 생도 중에 가장 숙련도가 높으니까요.”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만 뭐, 교관이 하라는데, 별수 없었다.
나는, 얼떨결에 교실 앞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적대감이 섞인 눈동자 26쌍 앞에서 마법 시연을 하게 되었다.
적대적이지 않은 시선은 일리아, 장선우, 신하연뿐이었으니까…… J는 그냥 자고 있고.
“후와와와와…….”
나는 조용히, 마력을 끌어 올렸다. 사실 나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뿐이지 시연해 주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마나 씨, 나와 주는 거애오…… 보여 주새양! 당신의 동글동글한 모습이여…….”
손바닥 위로 푸른색의 예쁜 광구가 떠오른다. 그와 동시에 뒤에서 교관의 박수 소리가 들려온다.
짝짝짝짝!
“완벽하군요! 역시, 다나 생도는 마법사를 하기 위해 태어난 인재가 확실해요.”
“호에엥…… 과찬인 거애오…….”
나는 조용히 뒷자리로 돌아갔다. 생도들의 얼굴에서 적대감이 줄어든다. 아니, 조금 다른 쪽으로 변한 것 같다.
단순한 짜증에서, 시기, 부러움, 질투 등으로.
“저 정도야…… 칫.”
나츠키는 꾸준하게 짜증과 히스테리의 반복이었지만.
내 시범과 교관의 설명에 따라 실습 시간이 이어진다.
대부분은 당연하지만, 해내지 못한다. 그래서 몇몇 이들은 내게 다가와 질문을 건네기도 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그거는여…… 여기서 마력이 오른쪽으로 돌며는 안 되는 거애오. 마나 씨가 잘 움직일 수 있게…….”
나는, 친절히 설명해 줬다. 그러자 내게 질문을 한 이들의 얼굴이 머쓱하게 변한다.
“……싸가지 없을 줄 알았는데. 되게 착하네.”
“그냥 말투만 좀 이상한가 보지, 뭐. 그것보다 귀엽지 않냐?”
자리로 돌아간 생도들의 입에서 내 칭찬이 나온다.
잠시 사이에 왔다 갔다 하는 여론이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뭐 원래 이런 거니까.
“오오.”
얼마간의 시간 끝에 장선우는 마나 스폿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교관은 그것이 영 못마땅한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자기 책무를 다하기 위해 지도해 주는 모습이었다.
다들 수업 내용에 대해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었지만…….
“이익! 이이익! 왜! 안 되는 거야!”
나츠키만은 히스테리를 부리며 몸을 부들부들 떨어 대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런다고 마력이 짜내지진 않는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하는 짓이야 밉상이지만, 워낙에 예쁘다 보니 그 모습조차 그리 불쾌하지 않았다.
그녀는 한참 동안 시도하다가, 수업시간이 다 끝날 때가 되어서 급했는지 내 행동을 따라 하기까지 했다.
“마…… 마나 씨?”
……막바지에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건 아무 상관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