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븝미쟝은 대련이 시러여…… (3)
나츠키는 자신의 몸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나조차도 한동안 적응하지 못했으니까.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과거 게임 폐인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도, 나름 몸 관리를 꾸준히 했었다. 그렇기에 관리가 된 성인 남성의 몸과 이 쓰레기 같은 몸 사이의 간극에 대해 얼마간 적응하지 못했다.
그 기간이 대략 사흘 정도.
하지만 나츠키는 그것보다 더 심할 것이다.
“으으으…….”
검을 몇 번 휘두르지 않았는데도, 이미 팔을 덜덜 떨며 체력의 한계를 보이고 있는 나츠키, 아마 내가 알기로 현재 그녀의 힘, 민첩, 체력의 평균은 대략 20 중반에서 30 초반 정도일 것이다.
내 현대에서의 몸을 스탯으로 따진다면 13? 14? 아무튼, 그 절반 수준인 것이다.
당장 1 스탯 2 스탯만 늘어나도 몸의 변화가 체감되는 세계에서, 당장 그녀와 내 원래 몸의 차이도 현격한데, 무슨 어린애만도 못한 체력을 가진 몸이 된다?
당연히, 적응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호에엥!”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매섭게 검을 휘둘렀다.
물론, 그것은 내 기준에서 이야기였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리 매섭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었다. 나름 연검의 탄성을 살려 공격하려 노력했지만, 그만한 힘이 나오지 않았다.
나츠키는 내 검을 쉽게도 피해 냈다. 운동 능력이 떨어져 있다고는 해도, 기술적인 면에서 그녀가 나보다 앞서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츠키와 나 둘 다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못하고 있었다.
“끄으으으!”
그때, 나츠키가 용을 쓰며 다시 검을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발악이겠거니 생각했지만,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후우, 후우.”
숨을 가쁘게 내쉬는 나츠키의 팔은, 이전과 달리 더 이상 심하게 떨리지 않았다. 누적된 피로가 있는지 아예 멀쩡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검은 무리 없이 들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다.
“마나 씨가…… 팔에…… 들어간 건가양……?”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아니, 시발 어떻게 한 건데.
마력을 체내에 부여하여, 신체 능력을 강화하는 방법. 그것은 1학년 1학기가 거의 지날 때쯤 되어서야 익히는 게 일반이었다.
물론 나츠키는 우등생이니, 남들보다 일찍 익히지만, 그것이 지금은 아니었다.
분노 때문에 각성이라도 한 걸까?
나는 나츠키한테 슬쩍 멀어졌다.
“내가 죽인다고 했지.”
광기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나츠키의 모습은 공포였다. 물론 그녀가 마력 부여를 했다고 해도, 스탯으로 따지자면 대략 2~3 정도 올랐다고 생각하는 게 옳을 것이다.
거기에 나츠키는 지금 절대 안정이 필요한 시기였으니,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마력을 끌어다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대충 1분 정도만 버티면 이길 수 있겠지.
문제는, 그 1분도 버티기 힘들다는 것이다.
부우웅!
나는 날아오는 카타나를 검으로 막아 내었다. 하지만 카타나 자체의 중량과 힘의 차이까지 덧붙여지며 검을 놓쳐 버렸다.
저 멀리 날아간 검.
나츠키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재차 내게 검을 휘둘렀다. 나는 황급히 피하다가 돌부리에 걸려 엎어지고는, 바닥을 굴렀다.
“느헤에에엥!”
쐐액!
그때, 나츠키의 카타나가 내가 있던 자리를 횡으로 베고 지나갔다. 이거, 돌부리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끝났을 것 같다.
그녀는 안타깝다는 듯이 멍하니 서 있더니,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번엔 정말 끝인가. 나는 저 멀리 떨어진 검을 바라봤다. 저게 지금 내 손안에 있기만 해도 결과가 다를 텐데. 저항 수단이 아무것도 없는 지금으로선 끝난 게…….
“아니에여!”
아니다, 나는 머릿속에서 생각 하나가 떠올렸다. 나는, 저기 있는 검을 내 손에 들어오게 만들 방법이 있었다. 애초에, 내 손에 들어오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다.
“하와와와와와!”
나는 젖먹던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피로감이 일시적으로 사라지며, 순간 힘이 났다. 나는 그 힘으로 곧바로 나츠키의 정강이를 밀어 차 버렸다.
“어어?”
여유를 부리고 있던 나츠키는, 내 예상치 못한 반격에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원래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지만, 지금은 이런 일이 가능하다.
“마나 씨! 검을 가져와 주는 거애여!”
나는 순간 마력을 조형해 마력의 줄을 만들었다. 그것은 이전에 빌런을 묶어 낼 때 사용한 것보다는 훨씬 약한 강도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저 검을 집어 오는 정도는 괜찮겠지.
과연 줄은 검 손잡이를 감쌌고, 내게 검을 전달해 주었다.
탁!
검이 손에 잡히자, 마음이 든든했다. 실상 지금까지 나츠키에게 유효한 타격을 한 번도 입히지 못했지만, 이제부터는 상황이 다르리라.
과연 나츠키의 안색이 흙빛이 된다. 이제 마력을 사용하지 못 하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체력이 바닥난 저쪽과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이쪽. 어디가 유리한 것인지는 뻔한 것이다.
나는 검을 들고 나츠키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진다. 아마 패배를 직감한 것이겠지.
자, 이제 끝낼 시간이다.
검은 높이 치켜들려졌고, 나츠키는 망연하게 바라봤다.
“대련 끝.”
그때, 내 뒤로 누군가가 다가와 그림자를 만들었다. 장신의 남성, 그는 당연히 교관 이한울이었다.
뭐지? 내 승리를 선언하기 위해 온 건가?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이한울에게 검을 뺏겼다.
“호에? 후와왕…….”
나는 순간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고, 그는 한심하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너, 실격패.”
“호에에에? 무슨 소리인 거에양?”
“지금이 무슨 시간이라고 생각하나? 무기술 대련이라고 했잖아! 제한 없이 마법도 쓸 거면 자유 대련을 해!”
아, 나는 그때야 내가 뭘 잘못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마법을 썼다면, 신체 능력이 약해진 나츠키 따위 금방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무기술 대련이라 쓰지 않았는데…… 마지막에 그걸 망각했다.
“븝미쟝, 대뇌 씨가 아야한 거애오…….”
병신 븝갈통.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띠링!
퀘스트 실패!
아무래도, 시스템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 * *
나츠키는, 결과적으로 대련에서 이겼다. 하지만 그 과정을 보자면 상상 이하의 엄청난 졸전에다가, 내가 마법을 사용하긴 했지만, 어쨌든 지기 직전까지 갔다.
그건 아무래도 꽤나 프라이드에 상처가 가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곧바로 한쪽 구석에 처박히더니, 냉랭한 기운을 뿜으며 사람들이 주변에 다가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장선우는 그런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려 했으나, 된통 당하고 말았다.
“그만 내버려 두라고! 진짜! 그만! 그마아아안!”
아예 발악하던 나츠키는 장선우의 어깨를 팍, 하고 밀쳤으나 깜빡하고 아케멜의 반지를 빼지 않은 상태였던지 전혀 밀려나지 않았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반지를 바닥에 내던지더니, 무릎에 얼굴을 박았다.
장선우는 그저 머쓱한 얼굴을 한 채로 반지를 주워 교관에게 반납했다.
저 상태의 나츠키는 장선우는 물론이거니와 그 부모님이 찾아와도 말리지 못한다.
“저거 봐, 완전 미친년이라니까?”
“솔직히 대련부터가 정신 나간 짓이긴 했지. 큭큭, 그런데 스탯 똑같아지니까 못 이기던 거 봤어? 사실 쟤도 완전 스탯빨…….”
생도들 사이에서는 나츠키를 비웃는 듯한 여론이 만들어진 모양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물론 미친년이란 말에야 백번 동감하긴 하지만, 그때를 틈타서 거품이니 뭐니 얘기를 하는 건 저열한 질투심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나는 순간 불쾌해져 생도들이 없는 곳으로 갔다. 일리아 또한 그에 동감한 모양이었다.
“뭐래, 다나가 잘한 거지. 그지? 다나 오늘 너무 최고였어! 최고로 귀여웠어!”
……아니, 이쪽은 그냥 팔불출인가.
나는 그런 일리아를 향해 희미하게 웃음 지었다.
“언냐야, 진짜 그 언냐야랑 대련하는 거애오?”
“신하연? 어, 당연하지! 제대로 이겨 주고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일리아는 짐짓 과장되게 몸을 풀며 내게 말했다. 아무래도 꽤나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나는 그 미래를 대강 예상할 수 있었다.
그저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진 않길 바랄 뿐이었다.
“이기고 올게에에.”
순번이 지나고, 자신의 대련 차례가 된 일리아가 빠르게 달려나갔다. 나는 호에에에, 하고 소리를 질러 답해 주었다가 금세 고개를 저었다.
아직 신하연과 일리아의 차이는 현격하다. 사실 지금 아카데미 내에서 최강자를 꼽자면 단연 신하연이 1위일 것이었다. 나중에 졸업할 때야 신하연과 일리아가 비슷해지고, 장선우가 그보다 강하고, 플레이어가 1등으로 졸업하지만…….
이쪽에서는 플레이어가 없으니, 장선우가 1등인가.
참고로 나츠키는 신하연과 일리아의 바로 아래가 된다. 지금은 신하연과 6 대 4 정도의 승률을 보일 테고, 일리아는 이기겠지만…… 나중에는 둘 모두에게 8 대 2 정도까지 밀린다.
그 덕에, 플레이어들에겐 ‘외모 원 툴’이라는 평가를 받는 나츠키였다. 은발 미소녀가 아니었다면 인기 순위 10위는커녕 지나가던 엑스트라에도 밀릴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
띠링!
퀘스트 보상이 지급됩니다.
뒷담 아닌 뒷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때, 귓가에 알림음이 울렸다.
퀘스트 보상이 지급된다는 문구. 나는 그에 탄식을 흘렸다.
“호오…….”
이번에 나타난 퀘스트의 보상, 그건 내가 나츠키와의 대련을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보자마자 바로 수락을 한 것이고.
그것은 특정 특성 강화, 추가 특성 1개 작성이라는 보상.
아무래도 전자는 명성도 보상의 열화판이겠으나, 후자는 꽤나 기대가 되는 것이었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게임 속 꿀 특성만 하더라도 수백 가지가 넘는다. 물론 제한 없이 뭐든 해 주리란 기대까진 없었으나, 그래도 적당한 거라면…….
특성을 1개 추가할 수 있습니다! 아래 카탈로그에서 원하는 특성을 선택해 주세요!
“하와와와와.”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해 주는 건가.
원했던 대로 특성 추가권이 떴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눈앞에 떠오른 여러 가지 카탈로그를 살펴봤다. 그런데, 그게 많아도 너무 많았다.
“호에에에…… 일, 십, 백, 천…… 븝미쟝은 아가야라 이런 거 다 못 봐여…….”
그 개수만 47만 개가 넘었다.
거기다가 개별 세부 설명까지 있었으니, 이걸 다 보고 고르자면 한세월이 걸릴 터다.
결국에 나는 내가 알고 있는 특성을 고르기로 했다. 솔직히 제한 없이 아무거나 배울 수 있을 것 같진 않고.
일단, 최대한 좋은 거로 해 볼까.
나는 카탈로그의 검색창에 [차원 이동자]를 검색했다.
해당 특성이 떠올랐고, 나는 그것을 선택했다.
애기는 차원 이동을 못 하는 거애오.
그러자 눈앞에 문자가 떠올랐다.
납득이 가는 결과이기는 했으나, 말투가 이러니까 괜히 반발심이 든다. 애기가 무슨 상관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