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아가야는 헬창 아니애오……
“되는 게 없는 거애오…… 븝미쟝 아가인 게 싫어질라고 하는 거애오…….”
정말로, 작성하고 싶은 특성마다 전부 제한이 걸려 버렸다. 사실 내가 원하는 특성들이 모두 작성이 가능하다면, 그건 또 말도 안 되는 것이겠지만…….
아무튼, 내가 작성 가능한 특성들은 굉장히 합리적인 것이었다.
그중에서 좀 더 나은 특성들을 추리고 추리니 대략 3개 정도가 나왔다.
첫 번째는 기감이 기존보다 조금 더 좋아지는 특성. 게임이라면 몬스터를 더 빨리 발견하고, 함정을 빨리 알아채며, 기습이나 매복에 당하지 않게 해 주는 능력이었다.
지금은 이미 내가 다른 생도들보다 기감이 좋은지라, 이 특성에 대한 효용성을 이미 체감하고 있었다.
다만, 굳이 이미 괜찮은 수준인 기감을 특성으로 끌어 올릴 필요가 있을까? 그것에 대해서는 약간 의문이 들긴 했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은 충분했지만, 다른 특성들도 있으니.
두 번째는 ‘무작위’라는 단어가 포함된 아이템이나 특성, 여타 조건에 대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확률이 배정되는 특성이었다.
그냥 쉽게 설명하자면, 주사위의 눈이 높아야 이기는 게임에서 주사위를 던질 때 6, 5, 4와 같은 높은 숫자가 뜰 확률이 높아지게 만드는 특성이었다.
이건, 분명히 좋은 특성이다. 내 기존 특성인 운이 좋다는 문구와도 상당히 어울리기도 했다. 실제로, 내가 지금까지 운이 좋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 번째는 영약을 흡수했을 때 그 흡수량은 늘어나고 흡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비약적으로 줄어드는 특성이었다.
이것도 상당히 마음에 든다. 당장 근처의 나츠키만 보더라도 그놈의 흡수 시간 때문에 일정 기간마다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부작용을 겪고 있지 않은가.
물론 영약 자체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라, 굉장한 부자 부모를 두고 있는 몇몇 생도가 아니라면 당장에 필요는 없겠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여러 가지 루트로 영약을 구할 방법이 있다. 당장 이번 주 주말에 외출할 수 있게 되면, 일리아의 길드와 던전 견학을 갔다가 들를 곳도 있었다. 영약을 구하기 위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좋은 영약들을 공짜로 얻을 기회가 많아진다. 길게 본다면 이 특성이 제일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거, 고민된다.
당장에 내 전력을 끌어 올릴 특성과 미래를 위한 특성.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까.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븝미쟝은 아가에여…… 아가는 아껴 줘야 해여…….”
어차피 당분간 나는 이 아카데미 내에서만 활동하게 될 것이었고, 아직 스토리 초반부인지라 위험한 사건들도 별로 없다.
아예 없다는 건 아니지만, 충분히 피해갈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장 전력을 생각하기보다 훗날을 위한 선택을 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그렇게 판단을 마친 후, 나는 곧바로 특성을 선택했다.
특성: ‘약발이 잘 받아!’를 선택하시겠습니까?
나는 이내, 하단에 떠 있는 ‘예’ 항목을 선택했다.
그리고…….
새로운 특성을 획득했습니다!
기존 특성, ‘애기븝미애오!’에 의해 특성이 변경됩니다.
특성 ‘약발이 잘 받아!’가 ‘븝미쟝은 뭐든지 잘 먹고 잘 커요!’로 변경됩니다.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특성 변경이라니?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특성의 세부 항목을 살펴봤지만,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되레 더 좋아졌을 뿐이었다.
영약에 대한 흡수율이 증가하고, 그에 걸리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이로운 효과가 있는 포션 혹은 식품의 효과가 상승합니다! (추가됨).
기존에 흡수 불가능한 물품에 대해 흡수가 가능해집니다! (추가됨).
두 번째 항목은 특히 이 특성을 선택하기 잘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세 번째는…… 뭘 뜻하는지 잘 몰라서 판단을 못 하겠고.
아무튼, 나츠키와의 대련 한 번으로 이런 성과를 얻은 것이었다. 거기에, 이번 일로 나츠키 또한 제대로 풀이 죽었으니. 앞으로 대련을 신청해 온다든가 하는 불편한 일도 없겠지.
일이 잘 풀려 가는 듯한 기분에, 나는 싱글벙글하며 다시 대련 상황을 살펴봤다. 그리고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아악! 아악! 그만해 미친년아!”
“그럼 항복이라고 말하면 되겠네요.”
“절대 못 해!”
일리아가 신하연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있는 장면이었다.
아무래도 자존심 때문에 항복 선언을 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인데…….
“하유우…… 언냐야…….”
나는 이마를 짚었다. 내려오면, 꽤나 오래 달래 줘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예상은 실제가 되었고, 나는 교관의 제지에 강제로 끝난 대련에 불만을 가진 일리아의 투덜거림을 한동안 들어 줘야 했다.
“아야야야…… 다나, 살살해 살살…….”
밤탱이처럼 퉁퉁 부어오른 얼굴에 연고를 발라 주면서.
* * *
펜타곤 생도들이 이상하다.
나는 그것을 펜타곤 생활 사흘 차에 접어들어 슬슬 느끼고 있었다.
내 예상대로라면, 오늘인 목요일 내지는 금요일쯤에 누군가 대련을 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도 내게 대련 신청을 하지 않는다.
사실 최상위권 생도에게 대련 신청을 하지 않는 건, 어찌 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일단 대련에서 패배한 쪽은 모아온 포인트의 절반과 이번 주에 받은 포인트 전부를 상대방에게 줘야 하니까.
만약에 모아온 포인트도 없고, 이번 주에 받은 포인트도 다 썼다?
그렇다면 다음 주에 포인트를 받았을 때 그만큼 가져간다.
그런 만큼 아무리 하위권이라고 해도 대련이라는 것이 리스크가 크다 보니 잘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대련은 한 사람당 일주일에 한 번밖에 기회가 없고, 같은 상대에게 대련 신청을 하려면 3개월 뒤에 해야 한다.
심지어 50위권 생도부터는 대련 거절권까지 있으니, 괜히 먼저 신청했다가 거절권에 막혀 버리면 그대로 기회가 날아가는 것이다.
참고로 나는 거절권이 세 장이다. 2위부터 5위까지는 두 장.
그러니 이 상황이 이상한 건 아니다, 아닌데…… 문제는 느낌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이다.
“야, 진짜 포인트 인간적으로 너무 적은 거 아니냐? 사실상 150위 아래쪽은 생활 자체가 힘들어. 식비나 여가비야 그렇다 치더라도 마력 단련실이나 도서관 같은 곳은 좀 무료로 해 주던가.”
앞에서, 생도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괜히 마음 한구석이 찔려서 몸을 숨기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마력 단련실은 야간에 50퍼센트 할인해 주잖아…… 뭐, 도서관이야 보고 가면 무료고. 막상 대출비도 얼마 안 해. 그러니까 돼지불백 말고 라면이나 먹으라니까…….”
“야, 고기를 먹어야 근육이 성장하는 거야. 하기야 마법싸개 새끼가 뭘 알겠느냐마는…….”
“잘났다, 뇌까지 근육이 차서. 어차피 너쯤 되면 트레이닝 해도 스탯도 잘 안 늘잖아?”
“몸 만드는 거라고, 이거 보면 여자들이 뻑이 가겠냐, 안 가겠냐.”
해당 생도는 팔뚝을 드러내며 으쓱거렸다, 막상 여자이기도 한 마법사 생도는 징그럽다는 듯이 그를 쳐다봤다.
“됐고. 아, 트레이닝 하니까 생각난 건데, 걔는 진짜 트레이닝 필요하겠더라.”
“누구?”
“누구긴 누구야. 랭킹 1위 걔지. 하와와거리는 애.”
이젠, ‘하와와 거리는 애’로 불리는 건가.
남자는 무릎을 탁 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맞지, 걔는 필요하지. 트레이닝.”
“소문 다 퍼졌잖아. 힘, 민, 체 총합 13이라고. 숨 쉴 근육도 없는 거 아냐?”
나는 여생도의 말에 움찔했다. 사실, 가끔 가만히 앉아 있는 데도 힘들 때가 있긴 하다. 이러다 숨 쉴 근육이 없어서 죽는 거 아닌가 생각도 했었다.
“그러고 보니까 걔면…… 솔직히 마법 그거 어떻게 한 번 피해 내면 나도 이길 수 있는 거 아니야? 몇 대 치면 픽 하고 쓰러질 것 같은데.”
“마법사라고 무시하냐? 그래도 너 정도는 이기겠지.”
“아니, 마법사라고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렇잖아, 걘.”
“그래서, 대련 걸 거야?”
여자 생도의 물음에, 남자 쪽이 고민한다. 솔직히 느껴지는 기도로 봤을 때, 저 정도만 되더라도 간당간당할 것 같긴 하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남자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니, 좀 그러네. 솔직히 너같이 무지막지한 녀석이면 몰라도.”
나는, 그것을 듣고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짜증이 났다.
대체로 남자 생도들의 반응이 이런 것이다. 저번에도 그랬고.
아니, 저번에야 내가 사람들을 도와주고 하며 이미지 메이킹을 해서 그랬다고 생각이라도 했지, 이번에는 그냥 아예 약해 보인다는 이유로 꺼리니…….
솔직히 자존심도 좀 상했다. 하지만 실제로 대련하면 이길 자신도 없다는 점에서 더 화났다.
“하와와…… 븝미쟝 너무 슬퍼여…….”
히어로들은, 아니 적어도 생도들은 기본적으로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게 있다. 엄밀히 따졌을 때 내가 약자 축에 속하지는 않지만, 그놈의 4, 5, 4 소문이 퍼진 이후에 동정 여론이라는 게 생겨 버린 것이다.
내가, 더러워서 어떻게든 기초 스탯 키우고 만다.
나는 곧바로 층계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체력 단련장으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언냐야랑 가치 가고 시펐는 거애오…….”
원래, 어제부터 체력 단련장에 일리아와 함께 가기로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어제부터 일리아가 할 일이 있다면서 나랑 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따로 움직이는 걸 넘어 아예 교내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업시간도 자주 빠졌고.
무슨 일인가 싶어 물어보려고 했지만, 일리아의 성격상 알려 줄 리가 없었다.
그녀는 가깝고 의지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지 않는다. 그 습관은 그녀의 트라우마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아무튼, 그런 바람에 어제는 무서워서 못 갔다. 정확히는 이 몸이 무서워서.
땀내 풀풀 풍기는 근육 떡대들이 모여 있을 게 확실한 체력 단련장에서, 이 심약한 몸이 버텨 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으니까.
펜타곤의 생도들은 대부분 미남미녀였으나, 신기하게도 근육 떡대들은 대부분 험상궂게 생기기도 했다.
“아가야는 좋은 것만 보고 자라야 한댔는데여…….”
아무래도 오늘은 좋은 것만 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쉬며 체력 단련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내 직감이 맞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호에에에……에…….”
그 안에서는, 집단 광기의 현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현대의 보디빌더들처럼 몸에 약을 주사하지 않더라도, 자연적으로 스테로이드 그 이상의 효과를 내는 마력을 몸에 잔뜩 지니고 있는 히어로들.
그들은 내 몸통만 한 원판이 잔뜩 달려 있는 바벨을 마구 들었다 놨다 하며 근육을 자극하고 있었다.
마치, 사파리에서 거대 코끼리무리를 마주친 새끼 가젤이 된 것 같았다.
나는 본능적인 공포에,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그때였다.
“어, 너…… 아기븝…… 아니, 다나 맞지?”
누군가가 내 어깨를 잡았다. 갑자기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길래 누군가 했더니 장선우였다.
“애, 애기…… 잘못 본 거애오…… 다른 애기애오…….”
“……애기가 아니고 사람이겠지.”
장선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러고는 눈을 반짝이며 내게 물었다.
“혹시, 체력 단련하러 온 거야? 아니면 누구 만나러?”
나는 그 눈빛을 보며 몸을 떨었다. 그러고 보니 이 새끼도 헬창이다. 게임 내에서도 장선우를 자주 마주치 게 되는 장소가 이 체력 단련실이었다.
이대로 끌려가면 무한 운동 지옥에서 이 연약한 육체가 파괴되고 말 것이었다. 도망쳐야만 했다. 그러려면, 누굴 만나러 왔다고 해야…….
주변을 다급하게 살피던 나는, 저 멀리서 스트레칭을 하며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한 여자를 발견했다.
“하연…… 하연 언냐야 보러 와써요!”
“신하연? 뭐야, 언제 친해졌대.”
장선우는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거짓말이 들통나기 전에 신하연에게 무작정 달려갔다.
“하연 언냐야아아아아!”
“뭐, 뭐야?”
예의 그 가식적인 표정을 지으며 스트레칭을 하던 그녀는, 달려온 나를 보고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친한 척 달라붙었다.
“언냐야…… 살려 주는 거애오…….”
제발, 저 미친 헬창으로부터 나를 살려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