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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26화 (26/172)

#26화. 언냐야들 싸우지 마라여……

“언냐야,”

“……제발 저리 가 주면 안 될까?”

신하연은 곤란하다는 듯 내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장선우가 이곳에서 나갈 때까지 그녀에게서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지금도 장선우는 이쪽을 의아하다는 듯이 살펴보고 있었다. 확실히 신하연과 오래간 알고 지내 온 그라면, 신하연과 내 성격이 불과 물처럼 서로 어울릴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애초에 신하연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은 발랄함 그 자체니까.

“신하연이랑 둘이 친한가 보네.”

“상위권들끼리는 뭐 다 친하게 지내겠지…….”

“가서 말이라도 걸어 볼까? 진짜 저기만 존나 화사하네…… 그러다 이쪽 보면 완전 지옥이고.”

헬스장 근돼들의 시선이 모두 이쪽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신하연은 그런 시선 자체를 즐기는 편이었지만, 그 일부가 나에게 분산된다는 게 불만인 모양이었다.

“저리 가 봐. 뭐 때문에 나한테 자꾸 달라붙는 거야?”

신하연은 슬슬 짜증이 올라오는 듯, 히스테릭한 어투를 쓰며 나를 슬쩍 밀쳐냈다.

하지만 그녀의 살짝이, 내게도 살짝일 리가 없었다. 나는 붕 뜬 채로 몇 미터를 날아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콩! 후에에…….”

엉덩이에서 고통이 찌르르하게 올라왔다. 내가 신음성을 흘리자, 헬스장 안에 정적이 찾아온다.

신하연은 자기도 당황한 듯, 남들의 눈치를 황급히 살피며 내게 다가와선 식은땀을 흘리며 나를 달래려고 했다.

“그…… 이러려던 게 아니고 잠시만…… 울지 말고…….”

아무래도 눈에 눈물이 한껏 고여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간과한 사실이 있다. 애들은, 과장되게 달래려고 하면 더 잘 운다.

“후윽, 헤우윽! 흐에에에엥……!”

“미안! 미안하다니까!”

신하연은 다급히 나를 어르고 달래려고 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복받쳐 버린 감정은, 이미 내 통제를 벗어난 것이었다.

“후와아아아아앙!”

헬스장이 떠나가라 울기 시작하는 나. 그 때문에 밖에 있던 생도들까지 헬스장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신하연은 이젠 나를 달래는 것을 포기하고는 내게서 슬금슬금 멀어졌다. 마치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항변이라도 하듯.

턱!

하지만 그녀의 뒤에 누군가가 서 있던 바람에, 신하연은 목적을 이룰 수 없었고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이건 또 누구……?”

“니가, 울렸냐?”

서늘한 목소리로 신하연을 향해 이를 갈고있는 생도.

금발 머리에 파란색 눈,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내게는 항상 친절하게 대해 주던 그녀.

“이젠 다나까지 건드려? 너는…… 안 되겠다. 좀 맞자.”

일리아 메이슨.

그녀는 곧바로 신하연에게 대련을 신청했다.

*    *    *

오늘따라 요상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신하연은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오늘 수업만 하더라도 그랬다. 이론에서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는 그녀였다. 각성하기 이전 일반인들과 섞여 중학교에 다닐 때. 상위 1퍼센트만 모인다는 사립 중학교에서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것은 히어로 조기교육을 받으면서 이뤄 낸 성과였다.

입학시험 때는 여러 가지 변수가 겹쳐, 이론 시험에서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바람에 2등으로 입학했지만, 만약에 다시 시험을 본다면 현 1등인 다나 크리스틴처럼 전 문항을 맞힐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사실상 1위다.

입학시험은 저 여자애한테 너무 유리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순위에 대해 자위하고 있었는데.

“저게…… 말이 돼?”

신하연은, 하나의 벽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오늘 처음 수업하는 ‘몬스터학 개론 1’의 담당 교관은, 시작부터 생도들에게 문제지를 돌렸다.

여러분의 전체적인 수준을 알고 싶어요.

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

몬스터학 개론은 대부분의 생도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론 과목. 아예 1학년 때부터 절반 이상의 생도가 이 과목을 포기했다. 펜타곤 내에서 ‘몬포자’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신하연은 자신이 있었다. 예전부터 해 온 과목이기 때문에. 실상 국내 최고 수준의 길드장을 아버지로 두고 있는 만큼, 신하연은 펜타곤 과목에 대한 예습을 한참 전부터 해 온 터다.

제한시간은 40분.

문제들을 보니 30분 정도면 풀 것 같다.

그러면 빨리 풀고, 10분 동안 여유롭게 문제들을 검수하면 되겠지.

그렇게 계획을 짜고, 문제를 풀기가 대략 10분 정도.

“하와와왕…….”

자신의 바로 앞자리, 예의 빨간색 단발머리를 가지고 있는 재수 없는(어디까지나 개인 의견으로) 소녀.

이번에 수석으로 입학한 다나 크리스틴이, 엎드려서는 잠을 청하고 있었다.

10분 만에? 신하연은 그때부터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10분? 어째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 때문에 째깍거리는 교실 안에 배치된 시계 소리가 귓가에 계속해서 울려왔다.

마치 시계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쟤는 10분 만에 풀었는데, 넌 아직이야? 아직 반도 못 풀었어?

신하연은 보기와 달리 멘탈이 굉장히 약했다. 입학시험에서도 그 때문에 자기 컨디션을 내지 못했다.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여서, 30분 만에 풀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 문제들을, 40분이라는 제한시간에 맞춰 겨우겨우 풀어내었다.

“하아…….”

시험 시간이 끝나고, 답안지를 제출하는 시간.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답을 제대로 체크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초조했다. 설마 이번에도 2등인 건 아니겠지? 매번 1등만을 하고 살아온 그녀에게 있어서, 2등을 한다는 것은 뼈아픈 경험이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 자신과 반대로, 눈앞의 소녀는 너무나 태평해 보였다.

아니, 태평하다 못해 시험 시간이 끝났는데도 딥슬립을 하고 있었다.

신하연은 괜히 심술이 돋아 들고 있던 펜으로 다나의 등판을 쿡 찔렀다.

“므웨엥…… 모애오…….”

아예 침까지 흘리며 잤는지, 입가가 반질반질했다.

신하연은 한숨을 쉬며 그녀에게 말해 주었다. 착한 우등생 컨셉은 계속 지켜 나가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저기, 제출할 시간이거든?”

“아항…… 고마오요 이쁜 언냐야!”

배시시, 웃는 그 얼굴이 짜증 났다. 뭐가 좋다고 저렇게 웃는 거지.

시험이 끝난 후, 수업은 그대로 이어졌다. 결과는 다음 주에 알려 주겠다면서.

신하연은 자꾸만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직감대로라면, 저 시험의 1등은 입학시험의 1등과 같은 것이었다. 2등 또한 그러할 것 같았고.

“모르겠다, 진짜.”

신하연은 복잡한 머리를 비우려 체력 단련실로 향했다. 운동을 하다 보면 머리가 비워지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다.

실제로 체력 단련실에 들어가, 스트레칭을 할 때만 해도 그랬다.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자신에게 몰리는 이 순간이 즐거웠다. 심지어 장선우마저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예쁜 건 알아 가지고. 그렇게 미소를 지으며 생도들의 시선을 즐기고 있던 와중, 갑자기 어디론가 그 시선이 옮겨가기 시작했다.

신하연은 그 정체를 파악하고,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그건 다름 아닌 다나 크리스틴이었다.

아니, 쟤가 왜 여긴 또 왜 와?

“언냐야.”

그리고, 왜 나한테 달라붙는데?

“……저리 가.”

신하연은 짜증이 났다. 단발적이 아니라, 자꾸 자신에게 붙어 귀찮게 하는 다나 때문에.

원래는 이런 상황이라도 사람에게 손을 쓰지 않는 그녀였지만, 워낙 짜증이 올라와서 슬쩍 밀쳐 내었다. 말 그대로 슬쩍.

하지만 다나는 무슨 장법이라도 맞은 것처럼 붕 떠서는 저 멀리 날아갔다.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를, 신하연은 황망히 쳐다봤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기 시작하는 것이 두려웠다.

다들, 날 그렇게 쳐다보지 마.

그녀는 본능적으로 다나한테 멀어지려 뒷걸음질 쳤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니가, 울렸냐?”

신하연은 얼굴을 굳혔다. 과거, 자신의 친구였던 여자. 하지만 그녀 스스로의 잘못으로 자신에게 멀어진 사람.

적어도 신하연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생도.

“이젠 다나까지 건드려? 너는…… 안 되겠다. 좀 맞자.”

서늘한 어투로 그렇게 말하는 일리아에게 신하연은 맞대응했다.

지금까지 쓰고 있던 가면이 벗겨지고.

“쌍으로 지랄이야. 그래, 푸닥거리 한 판 하자. 누가 처맞는지 보자고.”

그녀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    *    *

뜬금없이 이번 기수 펜타곤 최초의 빅매치가 열렸다는 이야기가 전교에 다 퍼진 모양이었다.

일반 대련을 위해 준비된 넓은 대련장, 그 주위의 관객석에 생도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제각기 영화관에서나 먹을 법한 음식을 들고 와 먹으면서 대련을 관람하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착잡한 마음으로 보고 있었다. 이 대련이 성사된 게 나 때문이었으니까.

“하와와와와…… 일리아언냐야…… 괜찮을까여.”

무엇보다 걱정되는 건 일리아였다. 알게 모르게 신하연에게 패배한 이후로 침울해져서는, 얼마간 모습도 잘 보이지 않던 그녀.

공교롭게도 딱 오해하기 좋을 만한 상황에 등장해서는 신하연과 이렇게 대련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이번 일은 신하연의 탓이라기보다는 이 몸의 탓이 컸다. 내가 억지로 급격한 감정 변화를 조절하려 노력했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별것 아닌 일인데도 몸이 알아서 감정에 반응해 버리고 말았다.

결국엔 이 빌어먹을 육체가 문제였다.

나는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이이이익!”

그렇게 동네 바보처럼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고 있자, 누군가 나타나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의아함에 옆자리를 쳐다봤다. 그건 은발 머리의 미소녀, 나츠키였다.

“뭐, 어쩌라고. 뭘 봐? 눈깔 파 버리기 전에 돌려라.”

“호에에…… 그런 말 하면 못쓰는 거애오…….”

살벌한 어투,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을 말이었지만, 나츠키가 말하니까 아무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미 한 번 이긴 경험이 있어서인가? 아니, 그렇다기엔 처음부터 별로 안 무섭긴 했다.

“……쯧.”

나츠키는 그런 내 모습이 영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왜 굳이 내 옆에 앉은 거지…… 생각하기에는 다른 자리가 다들 꽉 차 있었다. 그냥 우연히 내 옆자리가 비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우연이라고는 해도 그 멘탈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존심이 높은 녀석이 이렇게 금방 회복할 수 있다니. 어떻게 보면 이 아카데미 내에서 나츠키가 제일 독한 년이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10분 뒤, 대련이 시작됩니다.

전광판에 대련이 시작된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나는 긴장했다. 그것은 누가 이길까 하는 생각에서 기인한 긴장감이 아닌, 일리아가 조금 덜 맞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는 없었다. 얼마 전에 일리아는 신하연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았으니까.

실제로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의외로, 한 사람을 제외하고.

“재밌겠네.”

옆에서 들려오는 혼잣말 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나츠키, 그녀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건 순수한 흥미였다. 그녀는 아무래도 이 승부의 향방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어째서?

그 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일단, 대련이 시작되면 알게 될 것이었다.

“호에에에에! 일리아 언냐야 화이팅!”

지금은 그저 응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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