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일리아 언냐야
“후우우우…….”
일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내가 잘해 낼 수 있을까? 그런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당장 며칠 전만 해도 신하연에게 처참하게 패했던 기억이 생생했다.
얼핏 귓가에 들려온 이야기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진짜 복날 개 맞듯이 맞았던 것이다.
아직 그때의 감각이 가시지 않은바, 지금의 대련 또한 두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한 반이었지만, 이번에는 한 학년 위의 상급생들까지 포함해 수백 명 앞에서 싸우는 것이다.
만약에 지기라도 한다? 그러면 교내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기가 힘들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한다면, 그건 신하연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일리아는 전의를 불태웠다. 까마득한 과거, 신하연과 자신이 친하던 시절. 그때부터 그녀는 자기 체면이 상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결국에는 그때 그 일도, 그놈의 체면 때문에 일어난 거겠지.
그걸, 오늘 완전히 구겨지게 해 주겠다.
그렇게 다짐했다.
대련장에 올라서자 신하연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키만 한 워해머를 들고 있는 모습. 사실 그 반절 정도 되는 사이즈가 그녀에게는 더 어울릴 터였다. 그런데 왜 저런 거대한 망치를 들고 있느냐…….
그 이유는 일리아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예전이랑 똑같구나, 넌.”
일리아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3년전 그 때 이후로 저년은 변한 게 없었다. 나는 정말 많이도 변했는데.
신하연은 그 말을 들은 것인지, 서늘한 표정을 지으며 망치를 들었다.
“넌, 많이 변했네.”
그건, 일종의 도발과 같은 것. 일리아는 그저 가소롭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자기가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저 얼굴, 저게 엉망으로 일그러졌을 때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리아는 호흡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발검(拔劍)했다.
카아아앙!
마치 쏘아지듯 날아간 일리아의 신형. 그녀가 휘두른 검을 막아 낸 신하연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부르르 떨리는 망치의 모습이 그 충격을 대변해 줬다.
일리아는 신하연에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 족치려고 사흘 밤을 꼬박 새웠다, 개년아.”
신하연은, 침을 한 차례 삼켰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 같았기에.
* * *
카앙!
그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관객석의 모두가 조용해졌다.
쾌속의 일검. 그것은 무예(武藝)에 있어서는 문외한인 내가 보더라도 대단하다, 정도는 판별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실제로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태도를 내게 팍팍 풍기던 나츠키도, 그 발검술에 잠시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가장 당황한 것은 신하연일 터다. 그녀는 그 검을 막아 내긴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검을 휘둘러 오는 일리아에게 당황한 듯, 도무지 공격권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의아함을 느꼈다.
왜, 저렇게까지 밀리지? 아무리 기세에서 밀리고, 일리아가 예상보단 강하다고는 해도…… 그녀는 J를 제외하고서 이 아카데미에서 최강의 위치인데.
“신하연 저 멍청이가 아직도 저런 무기를 쓰는 게 이해가 안 돼. 리치가 길어지는 건 맞지만 저렇게 파고들면…….”
“역시 연구해 왔네. 하여간 일리아였나? 저거 첫날에 나한테 그럴 때부터 알아봐야 했는데. 어지간히 독한…….”
나츠키는 마치 해설이라도 하듯 중얼거렸다. 그게 꼭 나보고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아서, 나는 그녀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아흐응…… 아! 뭐야!”
“언냐야, 그러지 말고 일루 와여.”
뭔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가 보기에 나츠키는 지금 나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는 중이었다. 저런 식으로 해설 비슷한 걸 하는 것도 제 딴에는 내게 직접 얘기하기가 민망하니, 나름 호의를 베푼다고 하는 행동인 것이다.
내가 옆자리를 탁탁, 치자 그녀는 잠시 갈등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입을 다물고 다시 경기장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이었다.
참, 다시 봐도 알기 쉬운 녀석이었다.
나는 큭큭, 하고 웃음을 흘리며 경기장을 바라봤다.
나츠키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시 경기를 관전하니, 신하연은 정말로 그 무기의 장점을 발휘할 만한 거리를 벌리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떨어지려고 하면, 따라오고. 그렇다고 그대로 근접전을 펼치자니 자신의 힘의 반절도 발휘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작중에서 신하연은 초반엔 저렇게 커다란 망치를 들다가 시간을 소모해 그 사이즈를 줄여 나갔다. 종래에는 저 크기의 절반도 되지 않는 무기를 들었던 것 같다.
그에 관한 이야기도 갑자기 생각났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개인적으로 찾아간 심리 상담사와의 대화에서 나오는 고백.
남들한테 무시당하는 게 두려워요. 사실 난 히어로가 되지 않았다면 별것 아닌 사람이 아닐까. 그것 때문에 크고 화려한 무기들만 찾은 거기도 하고…….
아마 그 증상이 가장 중증이라는 증거가, 저 무식하게 크기만 한 워해머가 아닐까 싶었다.
아무튼 그 덕분에 일리아는 신나게 신하연을 몰아붙이고 있는 중이었다. 마치 신하연의 다음 동작을 예상하기라도 하듯.
어쨌건 신하연의 무기에서 나오는 불리함은 부차적인 문제.
지금의 대련의 의외성은 모두 일리아의 급격한 성장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츠키가 그거에 대해서도 말했었나? 나는 그녀의 옆자리로 다가갔다. 니가 안 오면 내가 가면 그만이지.
스윽
머리를 들이밀자, 나츠키가 이건 뭐냐는 듯이 쳐다본다. 그 눈동자에 언뜻 섞여 드는 감정은 경멸. 조금 상처받을 것 같다.
“언냐야. 아까 언냐야 얘기 들었는 거애얌…… 혹시 일리아 언냐야 그동안 머 한 건지 아는 거야요?”
“알긴 알지만…… 그걸 내가 왜 너한테 알려 줘야 하는데?”
“하와와, 그러지 말고 알려 주는 거야요.”
정말 궁금한 것이었다. 어떻게 나도 모르는 사실을 나츠키가 알고 있는지. 애초에 나츠키와 일리아는 별로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렇다면, 일리아가 나츠키에게 어떤 사실을 알려 줬다기보단 다른 연유로 일리아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 확률이 높다.
내가 계속 귀찮게 굴자, 나츠키는 질린 듯한 표정을 짓고는 내게 말했다.
“2층 무술 연습실. 쟤 하루 종일 거기 있더라고. 거기서 신하연이랑 자기 대련 영상 계속 복기했어. 내가 가는 시간이랑 겹치는지, 아니면 하루 종일 있는 건지 갈 때마다 있더라고.”
“아……하?”
나는 작금의 상황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랬구나, 그랬던 거였구나.
일리아는 신하연에게 패배한 이후 아마 계속해서 영상을 복기한 모양이었다. 자신이 이기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일리아의 재능은 ‘노력’이었다. 특성 그 자체가 노력을 하면 할수록, 그 성취가 급격히 올라가는 것이었으니까.
아마 요 며칠 보이지 않을 때, 신하연과의 대련을 계속해서 떠올려 가며 이 한순간만을 기다려 왔겠지. 제대로 복수할 수 있는 순간만을.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었다.
따악!
원래 신하연의 무기였다면. 최소 수십억은 넘어가는 그 망치였다면 절대로 부러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련용으로 지급된 무기는 일리아의 일격을 견디지 못하고, 그 지지대가 부러져 버렸다.
무기를 잃고 그저 황망하게 쓰러져 있는 신하연에게 일리아가 검을 겨누었다.
저번 무기술 대련 때 신하연은 그렇게 쓰러져 있는 일리아를 흠씬 두들겨 팼다.
혹시, 일리아 또한 그렇게 하지 않을까?
신하연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듯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일리아는 그저 피식, 웃더니 신하연의 곁으로 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러고는 무언가 속삭였는데, 아마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난, 너 같은 짓 안 해. 친한 친구 뒤통수 치는 것도 마찬가지고.”
신하연은 그 소리에, 분한 듯 주먹을 쥐었으나, 그녀가 배운 건 무투술이 아니었다.
언뜻 방심한 것처럼 보이지만, 당장에라도 검을 뽑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일리아. 그녀가 대련장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보며, 신하연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항복.”
대련이 끝났다.
* * *
“아이, 뭐야. 어떻게 신하연이 지는데?”
“응, 배당률 4배야.”
내 옆으로 지나가는 생도들, 그들은 각자 포인트를 잃었다며 혹은 얻었다며 희비가 교차되고 있었다.
아카데미 내에서는 알게 모르게 이런 식으로 대련 때마다 도박 비슷한 걸 하기도 했다. 물론 거는 것은 현물이나 현찰이 아닌 아카데미 내에서의 포인트.
그러고 보니까 그 도박 사이트 등을 만든 녀석. 그 녀석과도 접점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상급생이라, 만날 기회가 잘 없었다. 아무래도 기회를 잡으려면 같은 동아리에 들어간다거나 해야 할 것 같은데…….
“다나아아아.”
그때, 대기실에서 빠져나온 일리아가 내게 달려왔다.
그녀는 들뜬 얼굴로 다가와서는 내게 질문을 퍼부었다.
“어땠어? 다 본 거지? 나 잘했지? 언니만 믿어. 이번처럼 막 너 괴롭히고 그러는 애들은 전부 언니가…….”
일리아는 재잘거리면서 자신의 감정을 발산해 내기 시작했다. 하기야, 어떻게 보면 자기 숙적을 물리친 순간이었으니.
사실, 이 순간은 원래 지금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2학기가 되고 나서, 일리아가 어느 정도 성장을 이룩했을 때 여러 가지 우연이 겹쳐 신하연에게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그 이후, 또 몇 번의 사건이 겹쳐 신하연과 일리아가 서로 화해를 하게 된다는 스토리. 하지만 지금 이렇게 사건이 바뀌었다.
물론 당장에야 나도 일리아가 이긴 것이 기쁘긴 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신하연과 일리아는 친해져야만 했다. 그리고 히어로 판타지를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신하연도 꽤나 정이 갔던 등장인물이라.
뭐, 그래도…… 이렇게까지 기뻐하는데 조금 장단이나 맞춰 줄까.
나는 그녀와 같이 손을 붙잡고 대화를 나눴다.
“어린애들도 아니고…… 뭐 하는 거야?”
그 때, 옆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나츠키가 한마디를 내뱉었다.
내가 일리아에게 가려고 대기실 근처로 가자, 그녀도 따라온 것이었다.
일리아는 잠시 흘끔, 나츠키를 쳐다보더니, 마치 없는 사람처럼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여서, 나츠키는 몇 번 더 혼자 중얼거리더니, 얼굴이 새빨개져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쪽팔렸던 모양이다.
일리아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내게 웃는 낯으로 속삭였다.
“쟤, 은근히 놀려 먹고 싶은 그런 게 있어.”
“하와와…… 븝미쟝도 고런 고애얌…….”
동감이었다.
그렇게 일리아와 나는 숙소로 돌아가기 위한 채비를 했다.
“잠깐만, 다나. 나 대기실에 놔두고 온 게 있어서.”
“갔다 오는 거예여, 언냐야. 기다리고 있어여!”
그리고 일리아가 놔둔 물건이 있다며 대기실로 돌아갔을 때.
내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대상, 일리아와의 결속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일부 능력을 사용 가능합니다!
“호에엥?”
전혀 예상치도 못한 문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