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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30화 (30/172)

#30화. 븝미쟝은 ■■■가 될 수 있어여!

실상 이 던전에서 일리아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귀여운 대상에게 호감을 가지는 만큼, 그녀는 태생적으로 징그러운 것을 싫어했다.

그나마 지금 해치우는 ‘거미’의 경우에는 나중에 등장하게 되는 아라크네의 던전에서 그 트라우마가 어느 정도 해소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다.

그와 반대로, 나는 물 만난 고기처럼 활동했다.

마나 친화력이 거의 최대에 가까운 육체였기에, 마력 전부를 소진하더라도, 전투 이후 휴식과 이동 시간 동안 마력이 전부 회복되었다.

그냥 매 전투 때마다 에너지볼트 한 방씩만 먹여 주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자 길드원들은 우스갯소리로 내가 공략조 마법사보다 낫다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아카데미 길드원한테 밀려서 되겠냐? 큭큭, 얼마 안 있으면 퇴물 되겠다, 너네.”

“마법사 지망생이 견학 온다니까 뭐? 멋진 모습을 보여 줘? 웃기고 있네!”

물론 마법사들 입장에서야 억울한 일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 해 봤자 이미 난전 중인 전장에, 체력이 소모된 몬스터 막타를 치는 것 정도. 실상 전장에는 여러 가지 마법을 유기적으로 운용하는 현역 히어로 마법사들이 훨씬 도움이 많이 되었다.

“……할 말이 없긴 하네.”

“야, 얘 펜타곤 랭킹 1위라잖아. 나도 그렇겠지만, 얘 졸업하고 나면 너네랑 얼굴 볼 일도 없어. 그렇지?”

다만 공격 마법의 파괴력 자체에서, 내 한 방보다 그들의 한 방이 밀리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그들은 그저 못마땅하다는 듯 내게 동의를 구해 왔다.

“하와와와…… 옵바 언냐야들은 계속 볼 수 있을 거애오…… 븝미쟝은 모두의 거시애오…….”

다만 나는 마지막 물음에 부정했다. 그것은 육신이 자동으로 내뱉는 말이 아닌, 내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히어로들이라고 무조건 선한 게 아닌 것은 당연한 사실이고, 스토리가 중반을 넘어가며 실제로 빌런이 되는 히어로들도 있었다.

일리아네 길드 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나름 선한 쪽으로 크게 치우친 경우였다. 내가 그리는 앞으로의 계획에서 끝까지 우군이 되어 줄 확률이 높은 이들이란 것이다.

다만 공략조 전원은 그저 예의상 하는 말이라고 느꼈는지 쓴웃음을 지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펜타곤 출신이겠지만, 최상위권 성적이랑은 거리가 먼 이들일 것이었다. 그랬으면 여기보다 더 상위 길드에 들어갔겠지.

어쨌든 그런 모습을 좋게 본 것인지, 나는 사람들 사이에 잘 녹아들었다.

안색이 쭉 좋지 못했던 일리아 또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그녀는 잠시 휴식 시간 때마다 그나마 정신을 되찾고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므르르릅…….”

“언냐야…… 물 새는 거애오.”

입 오른쪽으로 물을 마시고, 왼쪽으로 흘리는 새로운 방법의 물 낭비를 보다못해 한마디 했다.

아무래도 진짜 정신이 나가 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나름대로 스스로의 기준선을 지켜 가며, 일리아를 북돋아 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쯧쯧.

얼마의 시도 끝에,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포기했다.

이 상태가 호전되려면 그냥 저 거미 몹이 나오지 않아야 했다.

“자, 다시 공략 시작합니다. 다들 대열 지키고, 아마 지금 공략 시간이랑 외부에서 측정한 규모를 비교해 보면…… 이미 보스룸 바로 앞일 거예요.”

“금방 도달했네요. 일반 던전 치고는 되게 무난한 건가…….”

이내 재개되는 던전 공략. 이미 상당 부분 안쪽까지 공략을 완료한 상태였기에, 다들 분위기가 풀어져 있는 모양이었다.

나 또한 그리 다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기도 했으니까.

다만 마음을 푹 놓지는 않았다. 이놈의 세계관에서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자주 일어나기도 하고, 나는 자칫 실수로 한 대 맞았다간 그대로 골로 가는 유리 몸의 소유자니까.

원래라면 일리아가 날 지켜 줄 거란 믿음이 있었겠지만…… 글쎄 지금 그녀는 딱히 누군가를 지켜 줄 만한 여유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되레, 내가 지켜 줘야 할 판이었다.

키리리리릭!

“히이이익! 다나아아아…….”

“하와와와와…….”

역시나, 조금 뒤.

다시금 나타난 예의 거미들에 내게 안겨 드는 일리아였다.

나는 여느 때처럼 마법을 사용해 공략조를 도와주려 했으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내가 도와주지 않더라도, 충분한 전력인 바에야. 사고에 대비해서 마력을 아껴 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

“새삼스럽긴 한 거시애얌…….”

그건 앞선 전투 때도 통용되는 생각이었지만, 계속해서 추가로 늘어나는 명성에 신이 나서 계속 마법을 사용해 대었다.

또 이게 나도 사람인지라 칭찬을 받으면 어쩔 수가 없기도 했고.

어쨌든 내 생각대로, 전투는 도움을 주지 않았음에도 비슷한 시간대에 끝났다.

중위권이 넘는 히어로가 스물여덟인데, 아무리 12등급이라고 해도 일반 몬스터에 불과한 놈들이 버텨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근데, 이렇게 쉽게 끝나니까 뭔가 섭섭하네.

너 없으면 전투가 진행이 안 돼, 같은 상황을 바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조금은 버거워해 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뇌까리던 나는 일리아를 돌아봤다.

“언냐야, 보스룸 앞이에여.”

그래도, 보스룸 앞까지 도달했는데 멍을 때리고 있어서야 안 되는 일이었으니.

나는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겨 정신을 일깨웠다.

“어, 어? 어…… 어……? 어!”

일리아는 ‘어’라는 단 한 음절을 다채롭게도 발음해 댔다. 저 정도 음감이면 그냥 음악인을 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다나, 미안한데, 나 물 좀.”

“물이여? 마나 씨!”

일리아는 얼이 빠진 채로 내게 물을 부탁했다. 냉수 마시고 정신이라도 차리려는 것 같은데, 그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나는 마나를 불러일으켜 속성을 부여했다. 야매로 익혀 놔서 그런가, 마력 소모가 꽤 되긴 했으나 그 양이 절대적으로 적은지라 내게는 기별도 가지 않는 수준이었다.

손 위로 떠오른 물. 아마 이 정도면 정신을 차리기엔 충분하겠지.

나는 그 물을 이내 일리아에게 뿌렸다.

촤악!

“으웁, 푸하! 뭐 하는 거야 다나!”

“언냐야 너모 더워 보여서 물 준 거애얌…….”

“아니, 이 물 말고 먹는 물을 달라…… 푸흐, 그래, 고마워.”

갑작스레 물벼락을 맞은 일리아는, 정신이 번쩍 든 듯이 내게 따졌으나 이내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고는 그저 웃었다.

사실 던전에서 일리아처럼 정신을 빼놓고 있는 건, 말도 안 되게 위험한 일이었다.

이번 던전 같은 경우에는 그녀를 따로 케어해 줄 공략조원들도 많고, 따로 함정 따위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던지라 괜찮았던 거지.

그녀는 면면에 흠뻑 묻어 있는 물기를 슥 훔치더니, 헤어밴드를 꺼내 머리를 뒤로 넘겼다.

그 과정에서 비치는 재질의 면 장비를 입은 일리아의 몸매가 드러난다. 물에 젖어서 딱 달라붙은 천이…….

“헤으응…… 언냐야…….”

나는 굳이 생수를 넘겨주지 않고, 물을 뿌린 선택에 대해 가히 이달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평할 수 있었다.

*    *    *

보스룸은 던전 내에서 등장하는 일반 몬스터보다 수 배 이상이 강한 몬스터가 단일 객체, 혹은 집단으로 등장한다.

일반적인 공식대로면, 던전 내 일반 몬스터를 무난히 상대 가능한 파티의 경우 보스 몬스터 또한 별 탈 없이 클리어할 수 있었다.

“이거는…… 말이 안 대는 거애오…….”

하지만 나는 그 공식이 지금에서 빗나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건 말도 되지 않았다. 보스몬스터가…… 이런 무력을 가졌을 줄이야.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이대로는 전혀 승산이 없었다. 내가 나서야 할까?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정말이지…….

끼리리리릭! 케에에엑!

절망적일 정도로 집단 구타를 당하고 있는 여왕 거미의 모습이었다.

이거, 몬스터 학대 아니야? 아무리 몬스터라도, 던전 보스이니만큼 어느 정도 예우를 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기야 게임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거보다 더 무자비하게 패긴 했다. 행동저지 마법이나 기술 따위를 난사하고 딜링을 퍼부어 산화시키는 방식. 패턴이고 나발이고 보여 줄 새도 없이…….

“죽었다. 클리어했네.”

“아, 금방 끝나서 다행이에요~”

잠시 상념에 빠져 있다가, 깨어나니 거대한 여왕 거미는 배를 위로 한 채 나자빠져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충격을 느끼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몸은 몬스터의 이런 모습에는 그리 충격을 느끼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보다 그저 담담하게 클리어 사실을 알리는 공략조원들의 모습이 무서웠다. 저게 프로라는 건가. 나는 새삼 그들에게서 거리감을 느꼈다.

하기야 결국에는 나도 저렇게 되야 하겠지. 고블린을 죽이면서 ‘호에에에, 고블린 씨 미아내요!’ 따위의 말을 내뱉는 애기븝미는 없어져야 했다.

“금방금방 커서 언냐야가 되어야 하는 거애오…… 애기 아니게 되는 거시야요.”

몬스터나 빌런은 악으로 규정하고, 무자비하게 때려잡을 수 있는 철혈의 마법사…… 그런 게 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얼마간은 자기 코피를 보고도 정신을 잃어버리는 애기븝미인 채, 살아가야 할 것 같았다. 이걸 극복하는 방법은…… 모르겠다. 퀘스트를 어느 정도 해결하면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그렇게 추측할 뿐이었다.

“호에에, 그러고 보니 븝미쟝. 옵바 언냐야들한테 인기 많아진 거애오…….”

생각해 보니 던전 들어오고서부터 명성도가 꽤 올랐었지. 퀘스트 완료 창은 뜨지 않았으니 아무래도 클리어할 만큼 명성을 쌓은 건 아닌 것 같지만, 거의 완료 직전의 수준일 것 같았다.

그럼, 여기서 그냥 퀘스트 깨고 갈까.

나는 잠시간 공략조원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짓거리가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마력 조형으로 하늘에 폭죽이라도 띄워서 터뜨리고, ‘븝축폭이에양 옵바 언냐야들.’ 같은 헛짓거리나 한번 해 볼까.

스윽.

“호에……?”

그렇게 내가 당장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보려던 때, 문득 어디선가 쎄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쪽은 나와는 다르게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아 하는 듯한 모양이었는데, 그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 한 곳이 아니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나는 순식간에 그 숫자를 파악했다. 무려 공략조 중 6명이 품속에서 이상한 주머니를 꺼내고 있었다.

그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은 이상한 노란색 가루. 혹시 그걸로 던전 클리어 축하를 나보다 먼저 하려는 걸까? 하는 띨빵한 생각은 븝갈통이라도 하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일리아부터 찾았다. 이런 행동들에 기민하게 대비하는 것은 나보다 그녀가 더 뛰어났으니까.

“아무것도 안 봐, 아무것도 안 들려.”

하지만 그녀는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있었다.

……보스룸에 들어올 때부터 저 모양이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저놈들은 저 분말을 공략조원들에게 각자 뿌리려고 하고 있었다. 저런 형태라면 딱 봐도 호흡기로 흡입하라고 만든 것일 터였다.

그렇다면 잠시간 숨을 참아야만 했다. 나는 최대한 빠르게, 입을 열었다.

“옵바 언냐야들! 숨 참는 거애오! 흡!”

“어……?”

내 경고에, 눈치 빠른 몇몇은 본능적으로 호흡기를 막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들은 뜬금없는 소리에 되레 입을 헤, 하고 벌렸다.

촤악!

그에, 그들의 입으로 그 노란색 가루가 들어가게 되었다.

시발. 이 그지 같은 컨셉. 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아직도 고개를 도리질하고 있는 일리아에게 달려갔다.

텁!

그러고는 코와 입을 막았다.

일리아는 당황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버둥거렸다.

“으부우브브븝!”

하지만 마냥 그 상황이 싫지만은 않은지 날 떨쳐 내진 않았다.

예상대로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이내 코와 입에 마력을 흩뿌려 입자를 차단했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일리아도 이렇게 해 줬으면 된 거 아닌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무시했다.

의도만 통했으면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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