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공기 중에 흩뿌려진 노란색 가루. 나는 처음에 그것이 독이 아닌가 의심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사람들의 반응은 중독된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고통스러워하거나, 안색이 새파랗게 변하는 등의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 되레, 굉장히 편안하고 나른해 보이는 모습. 그러니까 잠에 들기 직전의 그런…….
“씨버럴 정신 차려 이놈들아!”
당황했는지 구수한 발음을 드러낸 한 길드원의 말. 그 또한 상태가 멀쩡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주위의 이들은 이미 당해 버린 상태였다.
비틀비틀거리다가 픽픽 쓰러져 버리는 이들. 그들은 명백하게 잠들어 있었다.
아마도 저 노란 가루의 정체는 수면제일 것이었다. 이쪽 세계관에서 실상 독보다 더 많이 쓰이는 것이기도 했다.
생물 독에 대해서 대부분의 히어로는 어느 정도 내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이 약성으로 기른 것이건, 장비의 옵션이건, 아니면 중독 내성 관련 특성을 보유하고 있건.
하지만 수면제는 ‘독’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로 관련 내성이 있긴 했지만 상당히 보유자가 드물기도 하다.
그렇기에 되레 독보다 쉬이 쓰기 편하다는 게 장점이었다. 물론 히어로들에게 통할 만큼 강한 수면제도 드물기는 하지만…… 당장 저들이 사용한 시점에서야 그런 이야기는 의미가 없었다.
총원 30명 중 가루를 뿌린 6명. 그들은 당연하지만 멀쩡한 모습이었다. 딱히 무언가 방독면 따위를 쓰거나 하진 않은 것 같은데. 어쨌건 대비책이 있었겠지.
아마 저들은 빌런일 것이었다. 던전에 들어오기 직전에 따로 길드원 6명을 제압하고, 인면 가죽을 뒤집어썼는지. 혹은 이날만을 위해 길드에 위장 가입을 하고 때를 기다려 왔던지. 어느 쪽이건 내게는 상관이 없었다. 문제는 내가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 하나였다.
나는 최대한 숨을 죽였다. 절대로 저쪽의 시선을 끌어서는 안 되었다. 그러면서 내 말에 따라 호흡기를 막았던 수 명의 길드원들. 그 정확한 세를 파악했다.
하나 둘…… 다시금 카운터를 시작한 나는 이내 한숨을 내쉴 수밖에는 없었다. 여덟 명. 거기에 나와 일리아까지 포함하면 10명까지 늘어났다. 분명히 저쪽보다 숫자는 많다. 하지만 절망적이었다.
“이…… 개새끼들. 언제부터냐?”
숨을 헐떡이며 중얼거리는 공략조장. 그는 영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당장에 호흡기를 통한 침투를 마나로 완전 차단한 나조차 눈이 가물가물하는 지경이다. 아무리 자기 나름대로 가루를 들이마시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해도, 어느 정도 흡입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공략조원이 그런 상태였다. 당장 몇 분만 내버려 두더라도, 알아서 쓰러질 것 같아 보였다.
빌런들도 그것을 눈치챈 듯, 공략조장의 분노에 그저 비웃음으로 답했다.
그러고는 이내 각자 무기를 꺼내 들었다. 궁수 하나에 마법사 하나, 근접 계열 4명. 작정하고 스쿼드를 짜 온 모양이었다.
반면 이쪽은 전원이 근접 계열 히어로였다. 마법사들이라도 멀쩡했으면 수면에 대한 내성을 줄 수 있는 보조 마법을 바랐을 터지만, 그들은 제일 먼저 쓰러졌다.
그리고 나는 그런 마법 따윈 배운 적이 없다. 애초에 진정 마법이라던가, 공격계 마법 두세 개를 야매로 익힌 것만 해도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습득 능력이었다.
나는 그저 비는 수밖에 없었다. 제발, 이거 어떻게 이겨 주면 안 될까.
그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했다. 일단 빌런들의 시선은 대부분 공략조원들에게 쏠려 있는 상태였으니까. 저기, 내 쪽을 바라보는 한 놈을 제외하고는 말이지.
“마나 씨! 마나 씨! 마나 씨는 잠들면 안 되는 거애오…….”
나는 마력을 끌어 올렸다. 내가 지금 해야 할 것은, 앞선 전투 때처럼 수십 초간 마력을 응축시켜, 한 번에 뿜어내는 그런 무식한 짓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짓을 하려다간 곧바로 시선이 쏠리게 되고, 저들이 한꺼번에 달라붙어 공격하면 나는 수 초 내로 박살이 날 터였다.
그러니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은 전투의 보조. 긴장하고 있던 때, 드디어 일리아가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 듯 내 앞으로 나선다.
“이거, 꿈 아니지 다나?”
“언냐야가 여기서 잠들면 꿈꾸는 거야요…… 이번에는 븝미쟝 물도 못 뿌려 주는 고애오.”
“곧 잠들 것 같은데. 흐으으으…….”
일리아 또한 영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어떻게든 날 지켜 보겠다고,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는 것 같은데, 조금 있으면 그대로 픽 쓰러질 것 같았다.
나는 그녀와 빌런이 대치를 하고 있는 사이, 전황을 살펴봤다.
카가가가각!
몸에 힘이 풀린 채 흐느적거리고 있는 공략조원들과 빌런들의 맞대결. 실상 빌런들의 수준은 공략조원들 개개인들보다 조금 높거나, 비슷한 정도였다.
하지만 그 컨디션의 차이도 있고, 저쪽은 잘 짜여진 팀인지라 공략조원들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거 븅신들. 치졸하게 수면제까지 써 놓고 다구리냐?”
개중 그나마 호각으로 싸우고 있는 것이 조장이었는데 다른 조원을 밀어붙인 다른 빌런 하나가 달라붙자, 그마저도 밀리고 있었다.
이거, 빨리 저 녀석이라도 처리하고 합류해야겠는데.
나는 일리아의 뒤에서 속삭였다.
“언냐야, 저번에 그거 기억나져? 한번 해 봐여.”
“흠냐…… 그, 래…… 기억…….”
“정신 차리는 거애오!”
“아랐……서…….”
일리아는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조카뻘인 여자애를 앞세우는 게 조금 양심에 찔리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시발. 나는 수면제는 고사하고 멀쩡한 상태로 싸워도 저놈들한테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와와와…… 마나 씨. 저 나쁜 옵바야를 묶어 버리는 거애오…….”
일리아는 절대로 일대일로는 저 빌런을 쓰러뜨리지 못한다. 아무리 펜타곤 생도고 나발이고 해도, 각성한 지 겨우 2달도 되지 않은 초짜들이었다.
현역 중위권 히어로들과 맞먹는 놈들과 대적은 불가했다. 그렇기에 내가 중요했다. 어떻게든 저쪽의 방심을 이용해야만 했다.
“그런 상태로 내 상대를 한다…… 가능할 것 같아? 그냥 편하게 잠이나 자고 있으라고. 적당히 맛이나 본 뒤에 죽여 줄 테니까.”
“닥……쳐……!”
딱 그냥 삼류 양아치 빌런이나 내뱉을 법한 대사. 일리아는 가물가물한 눈을 겨우 부릅뜨며, 대꾸했다.
나는 그사이에 마법을 완성했다. 저번에 만들어 낸 마력의 끈보다 훨씬 견고하고 또한 상대를 묶어 내기에 적절한 것이었다.
이내 빌런 쪽의 선공과 함께 일리아와 녀석이 얽히려는 순간.
나는 그것을 상대에게 던져 내었다. 그러나 놈은 그를 예상한 듯 몸을 비틀어 내며 피했다.
“이딴 거로…….”
피식, 웃으며 여유롭게 말하는 빌런.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마력을 조종했다.
내 의지는 진행 방향의 반전. 마력으로 이루어진 밧줄은 이내 되돌아와 빌런의 허리를 감쌌다.
“하와와와와와!”
그리고 내 마력과. 얼마 되지 않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낫겠지 싶어 사용한 내 완력. 그로 인해 녀석은 앞으로 당겨져 왔다.
당황감으로 인해 커지는 빌런의 동공. 일리아가 아무리 졸린 상태라고 해도, 그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푸욱!
그와 반대의 진행 방향으로 힘껏 찔러 낸 검.
그에 빌런이 복강에 큰 상처를 입은 채 쓰러졌다.
나는 그와 동시에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소리쳤다.
“븝미쟝은 아가애오! 븝미쟝은 이런 거 못 봐여!”
마치 아까의 일리아처럼.
이건 어쩔 수가 없었다. 또 피가 콸콸 솟아 나오는 광경을 보다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보단 나았으니까.
푸욱! 푸욱!
섬뜩한 파육음이 들리는 가운데 나는 조심스레 눈을 뜨고, 시선을 그쪽과 반대로 돌렸다.
아무래도 상황이 모두 끝난 모양이었으니까.
“하와와와, 언냐야! 최고였어여!”
일리아는 이 불리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저쪽에 있는 빌런들도 당황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제, 전황이 확 바뀌었다.
5대 10. 그렇다면 이쪽에 충분히 승산이 생긴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일리아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외쳤다.
“언냐야! 옵바 언냐야들 도와주러 가는 거애오!”
하지만, 그 외침의 답은 시간이 꽤나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뭐지? 무슨 일이지? 저쪽 상황을 볼 수가 없으니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 또한 알 수 없었다.
“언냐야……?”
내 의문. 그것을 해결해 준 건 빌런들의 말이었다.
“곧 졸려서 쓰러질 년한테 당하고…… 저거 언젠가 저렇게 나자빠질 줄 알았지.”
“크큭, 그렇게 여자 밝히던 놈이라 그런가 뒤져서까지 여자랑 같이 누워 있구만.”
뭐?
나는 순간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쪽 방향을 쳐다봤다.
그러자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피를 질질 흘리며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빌런의 시체와, 그 위에 뻗어 있는 일리아의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일리아에게 상처가 없는 것으로 보아, 동귀어진은 아닌 것 같았고. 일리아가 그저 때맞춰 잠든 모양이었다.
나는, 안심했으나 동시에 자책했다. 이거, 보면 안 됐는데.
[븝미쟝은 아가라 피 같은 거 못 보는 거애오…….]
역시나, 개 같은 문구가 떠올랐다. 나는 흐려지는 의식을 간신히 붙잡았다.
“호에에에, 마나 씨!”
저번의 경험대로라면 나는 이대로 쓰러질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전에 최대한 꼬장을 부리고 가는 편이 옳았다.
급격하게 끓어오르는 마력. 나는 그에 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이 육체로 이딴 짓거리를 했다간 내상을 심하게 입겠지만, 어쩔 수 있나. 어차피 저놈들한테 패배하면 끝은 죽음뿐이었다.
“터뜨려 버리는 거애오오오!”
겨우, 야매로나마 습득한 마법 중 하나.
쇼크웨이브(shockwave). 나는 순간적으로 끓어오른 마력을 그와 비슷한 형태로 터뜨렸다.
삐이.
퍼엉, 하는 소리와 함께 몇몇 빌런들에게 내 마법이 적중한 것도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뭔가 문자들이 떠오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그런 생각을 채 하기도 전에, 의식의 끈을 놓쳐 버렸기에.
* * *
“끄아으윽…… 아오, 그 씨벌 미친년…….”
“내가 그 개년부터 보라고 그랬잖아! 아까부터 몬스터들 한 방에 터뜨리는 거 보면 몰라?”
순식간에 덮쳐 온 마력의 파도. 그에 빌런들은 큰 상처를 입었다.
공략조원들은 그를 틈타 빌런들에게 달려들었으나, 결과적으로 승리한 쪽은 빌런들 쪽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약성이 강해지는 수면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빌런들의 상태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마력을 얻어맞아 입은 타격에 더해, 마지막 힘을 짜내 발악하던 공략조원들에게 입은 상처 또한 컸다.
그에, 빌런들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서로에게 악담을 퍼붓고 있었다. 다들 남 탓을 하기에 바빴다.
“거, 그 얘기는 나중으로 하고. 이놈들 목부터 확실하게 따야지. 아, 거 존나게 아프네 진짜.”
하지만 개중 한 명의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공략조원들 중 대부분의 이들은 아직 살아 있는 참이었다. 그들을 확실히 사살하는 것이 사사로운 다툼보다 먼저였다.
그에 삐거덕대는 몸을 가누며 일어선 빌런들. 그들은 각자 가까운 위치의 히어로들을 사살하기 위해 움직였다.
“야, 저거 한 놈 움직이는 것 같은데. 저거 누구냐?”
그때였다. 빌런 중 한 명이 자욱한 모래 먼지 사이에서, 멀쩡히 서 있는 사람의 실루엣을 발견한 것은.
빌런들은 당황한 듯 그쪽을 바라보며 제각기 경계했다. 혹시 수면제에 내성이 있어 금방 깨어난 놈인가? 그렇다면 이렇게 상처 입은 상태에서는 상대하기 버거울 수도 있었다.
긴장감이 흐르는 장내.
이내 모래 먼지 사이에서, 실루엣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놔~~~ 쓰. 발……당췌 이……머선……일이고? 불사.신선. 이 개가튼~~!”
“허어?”
그곳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중저음을 가진 젊은 남성의 목소리, 허나 그 말투가 굉장히 이상했다.
“어이, 거……새끼덜……일루 텨 와! 어린 노무……새끼덜이……벌써. 이런 짓이나……십……색기들…… 아프니까 청춘, 이여! 내가 그거 보여 줄랑게.”
난감한 말투를 내뱉으며 빌런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붉은 머리의 남자.
그는 살벌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내뱉었으나, 빌런들은 아무도 긴장하지 않았다.
“뭐야, 저 정신 나간 새끼는.”
그저 헛웃음을 터뜨리며 전투 태세를 갖출 뿐이었다.
남자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씨부럴 것들…… 따악 곤죽으루다가…… 맹글 테니…… 기달리구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