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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33화 (33/172)

#33화. 븝미는 아가야

“아으으…….”

일리아는 아픈 머리를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가 어디지? 잠시간 그러고 있던 끝에, 그녀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병원이구나.”

그 간단한 답이 나오기까지 한참이 걸린 것은, 아직 영 정신이 몽롱했기 때문이었다. 그놈들, 길드원인 척 위장했던 그 이상한 빌런들이 뿌린 가루 때문에…….

“어……어떻게 살았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일리아는 의문을 떠올렸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 나올 수가 있었느냐 하는 것이었다.

딱 봐도 전황은 좋지 않았고, 다나의 도움으로 한 녀석은 제압했지만, 다른 놈들이 멀쩡하게 살아 있던 바에야…… 잠깐만.

일리아는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 와중에 몸에 붙어 있던 것들이 떨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큰 부상 따위는 입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우리 공략조원들. 그리고 다나. 다나는 멀쩡한가?

일리아는 혹여 자신만이 멀쩡한 것이 아닐까, 걱정하며 병상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내 1인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어, 환자분!”

그때, 마침 그녀의 상태를 체크하러 오던 담당 의사와 마주쳤다. 일리아는 마주 오는 의사에게 달려가 다짜고짜 물었다.

“저랑, 같이 입원하신 분들 있나요? 있으면 다들 상태가 어떤지 말해 주세요.”

“환자분, 일단 진정하세요.”

의사는 차분한 어투로 일리아에게 말했다. 그러자, 요상하게도 그녀는 마음이 차분해지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한 이능.

이 사람도 각성한 사람이구나. 각성을 했으나, 히어로의 길을 걷지 않은 이들 중 한 명인 모양이었다.

“같이 입원하신 분들 전원 치료 잘 받고 있는 중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입원한 사람들이 몇 명인데요?”

“환자분 포함해서 스물셋입니다.”

스물셋. 그렇다면 한 명이 빈다. 그 개 같은, 여섯 놈. 그놈들을 제외하고서도. 일리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나름 이번 공략조에는 아는 얼굴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더 그랬다.

“아마 조금 있다가 보호자분들께서 오실 겁니다. 개인실에 들어가 계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렇게 멋대로 나오시면 진료에 차질이 생깁니다.”

“아, 네. 죄송합니다…….”

서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담당의. 일리아는 머쓱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내 그녀는 얌전히 개인실로 돌아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길드 관계자 중 한 명이 왔다.

“일리아! 어디 다친 데 없어? 의사놈은 멀쩡하다고 했는데. 우리 조카 다치면 나 어떻게 해. 괜찮은 거 맞지?”

“……고모.”

“아, 나 진짜 애가 타서 막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하아, 안 다쳤으니까 상황 설명이나 해 줘.”

그 관계자란 바로 일리아의 고모였다. 일리아는 그녀를 보며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 어렸을 적부터 그녀는 조카에 대해 상당한 애정을 보여 왔다. 그게 종종 집착증 비슷한 것으로까지 이어져 오기도 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한숨이 새어 나왔다.

물론 일리아 또한 그것을 온전히 싫어하고 있지만은 않았지만, 그 표현 방식에 있어서 분명히 과한 점이 존재하지 않느냐 정도의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표현 방식과, 자신이 다나에게 하는 행동 양식이 유사하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했다. 만약에 그것을 스스로 깨달았으면, 꽤나 충격을 받았을 터였다.

“……우리 조카 너무 싸늘해졌어. 예전에는 고모~ 이러면서 자주 안기던 애가. 이제는 그냥 뻣뻣해져서는 그냥.”

그녀는, 잠시간 표정을 일리아처럼 바꾸더니 이내 목소리를 흉내 냈다.

“상황 설명이나 해 줘. 이게 뭐야? 이러고나 있고 아주 그냥…….”

“아, 진짜!”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짓누르던 일리아가 이내 폭발하자, 그녀의 고모는 그제서야 본론을 꺼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기 조카에게는 꼼짝도 못 하는 그녀였다.

“알았어, 알았어. 진짜 사춘기인가…… 그러니까 이번 던전에 들어갔던 길드원들 중에 김창식이라는 길드원 하나. 중위권 검사인가? 최근에 입단한 애가 하나 있는데…… 일단 걔가 죽었더라고.”

김창식. 일리아는 그 이름을 되뇌어 보았다.

김창식, 김창식. 하지만 떠오르는 기억은 없었다. 아마 최근에 입단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 사람 빼고는 전원 생존. 우리 길드원인 척 잠입했던 그놈들은 전원 사망했고. 아마 빌런들이겠지만, 녀석들이 어디 소속인지는 모르겠어. 뭐 몸에 자기 단체명을 적어 놓고 다니는 것도 아니라서.”

“그럼 살아남은 길드원들은, 다들 멀쩡해? 나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은 꽤 격렬하게 싸웠어서.”

일리아는 정신을 잃기 전 떠오르던 창칼의 소리를 떠올렸다. 잠결에 들리던 소리. 그리고 거기에 섞여 드는 비명. 그것은 대부분 길드원들의 소리였다. 또, 뭐가 있었지? 일리아는 이내 한 가지 장면을 더 떠올렸다.

하와와와와!

그건 바로 다나의 외침. 그와 동시에 무언가 부웅, 하는 느낌이 들더니 옅게 남아 있던 정신 줄이 뚝 하고 끊어졌었다.

“그래, 그 우리 길드에 견학 온 생도. 괜찮아?”

“아, 그 펜타곤 수석이라고 했나? 네 친구랬지?”

“어, 고모. 걔는 멀쩡해? 만약에 많이 다쳤으면 얼굴 볼 면목도 없을 것 같은데.”

“멀쩡해. 안 그래도 그 얘기 할랬는데. 일어나자마자 너 보러 온다고 해서, 지금 막 올라오고 있던 참일…….”

딸깍.

“븝……하아아아…….”

그 때, 개인실의 문이 열리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한 소녀.

일리아는 그녀를 확인하고는 아까 자신의 고모가 했던 행동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다나아아아아!”

순식간에 몸을 일으켜, 병상에서 뛰어내린 뒤 튀어 나가는 일리아를, 그녀의 고모, 리아 메이슨이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유전인가.”

*    *    *

“하와와와, 몸이 가뿐한 고애오.”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병원의 천장. 아, 벌써 이송까지 완료했구나.

나는, 깨어나자마자 내 몸 상태부터 확인했다. 마치 긴 잠이라도 잔 듯이 몸은 개운했고, 머리는 상쾌했다. 그 이유는 시스템 메시지에서 알 수 있었다.

결속을 통해 얻은 정보를 육체가 기억합니다!

결속 대상 ‘일리아 메이슨’의 특성 강자멸시(B)로 인해 스탯이 증가합니다! 힘+1 체력+1

“하와와와와…….”

일리아와 맺어진 결속. 그를 이용해 전투를 펼쳐서 그런지, 그녀의 특성 중 하나인 강자멸시로 인해 스탯이 상승했다.

사실 강자멸시라는 특성은 그 거창한 이름에 비해 그리 좋은 특성이 아니다. 강자와 상대할 때 스탯이 증가한다거나, 그런 거라면 좋을 수야 있겠지만. 자신보다 명백히 강자와 전투를 벌였을 때, 그를 이겨 내야만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스킬이었다.

물론 나 같은 경우에야 이미 오지게 처맞아서, 걸레짝이 된 놈들을 대충 닦아 패 버렸을 뿐이지만…… 어쨌든 이것도 인정해 주는 모양이었다.

“븝미쟝, 너모너모 튼튼해진 거애오!”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더니 무슨 보디빌더처럼 자세를 취한다. 물론 근육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몸이었으니 그저 애들 재롱으로밖에는 안 보이겠지만. 뭐 이 병실에 깨어난 사람은 나뿐인 것 같으니 상관없…….

“푸흐흐흑…….”

내가 있는 4인 병실, 완전히 대각선 반대 방향 침상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오며 이불이 들썩거린다. 젠장, 아무래도 내가 이러는 걸 본 모양이었다.

명성도가 상승했습니다!

그래, 그랬으면 된 거지.

나는 체념하고는 이내 병상 근처에서 내 소지품을 발견해 내었다. 던전에 들어가기 이전,

길드 직원들에게 맡겨 두었던 것들이었다.

개중 핸드폰을 집어 들고는 이내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 봤다. 검색하는 것은 일리아의 길드 ‘메이슨’.

곧바로 속보 기사가 뜬다. 빌런들에 의해 습격을 받은 메이슨 길드…… 사망자 1명.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잠시 무기를 빌린 그 사망자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기사가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그리 화젯거리가 되진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있으면 포털 메인이고 뭐고 온 곳에 다 올라가겠지.

일리아네 길드 정도면 사실 대형 길드들의 세가 너무 강해서 그렇지, 중견 길드라고 부를 짬밥은 아니니까. 거기에 오랜만에 빌런들에 의한 사고가 터진 데다 그 사고에 휘말린 게 길드 외동딸과 다른 아카데미 생도 하나다.

아마 이 주의 가장 핫한 사건 사고는 이게 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폰을 집어넣었다.

잠시 뒤, 내가 깨어났다는 것을 확인한 간호사는 이내 누군가에게 연락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여자가 들어왔다.

누구지, 싶어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일리아의 고모였다. 메이슨 길드의 간부이자, 그 팔불출 같은 성격을 일리아에게 전수해 준 장본인. 리아 메이슨이었다.

“어머, 귀여워라.”

역시나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처음 한다는 소리가 그것이었다. 나는 역겨움을 참으려,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이내 약간의 아양을 부렸고, 그녀는 기꺼이 일리아가 깨어나면 나를 불러 주겠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리아가 깨어났고, 나는 그녀가 있는 개인 병실로 향할 수 있었다.

“다나아아아~”

날 보자마자 뛰어와서 껴안은 일리아는 상처 하나 없는 내 몸을 구석구석 뒤져 가며 상처를 찾았다.

“븝미쟝 건강해오! 다치지 않은 고야요…….”

“다행이다. 너 다쳤으면 내가 미안해서 얼굴을 어떻게 봐.”

한참을 그렇게 난리를 피우던 일리아는 자신의 고모가 다가오자 안색을 싹 바꾸고는 사무적인 이야기부터 꺼냈다.

리아는 영 불만이라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길드에 관련된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래, 일리아. 몸조리 잘하고. 당장 내일 아카데미 복귀하기 힘들 테니까 말해. 펜타곤 쪽에서도 아마 이건 인정해 줄 테니까.”

“알겠어요. 고마워요, 고모.”

“칫, 별로 고마워하지도 않으면서.”

이내 리아가 툴툴거리며 밖으로 나간 뒤에, 일리아는 나를 바라봤다.

그 표정은 점점 음흉해져 갔는데, 왠지 모를 한기에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언냐야?”

“다나, 쓰읍…… 그러니까 괜찮은 건 알겠는데. 혹시나 뭐 어디에 상처가 남아 있을 수도 있고…… 그러니까 귀여운 몸에 흉터 남으면 안 되잖아? 그래서 좀…….”

일리아는 별 이상한 핑계를 대며 내게 다가왔고, 대략 몇 분간 나는 그녀와 노닥거렸다.

그 와중에 마치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아저씨 같은 손길이 뻗쳐 왔는데, 별 상관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흠칫흠칫 놀랄 수밖에는 없었다.

“어, 언냐야! 그…… 븝미쟝 물 마시고 오는 거애오!”

“목말라서 그래? 물이라면 여기도…….”

“갔다 올게여!”

내가 잠시 자리를 피하고 난 뒤에서야 그 행동은 멎었고, 그녀는 부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뭔가 자꾸 되뇌었는데, 그게 내 귀에 다 들렸다.

“븝미는 아가야…… 아가니까 지켜 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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