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J 언냐야 왜 이러는 거애오……
사태가 수습되고 난 뒤 이번 사건은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요 근래 일어난 사건 중 가장 큰 사건이기는 했으니까. 비록 피해 대상에 상위 히어로는 섞여 있지 않았지만……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당사자가 피해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슈가 되고 있는 당사자란, 어이없게도 나였다.
“호에에에…… 옵바 언냐야들 다들 이상해진 고애오…….”
사람들이, 단체로 정신이 나간 건가.
한 주간 펜타곤 안에서만 있었던데다가, 주말에도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장소만 골라 다녀서 잘 몰랐는데, 이미 나는 상당히 유명 인사인 모양이었다.
일단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지금 펜타곤 1위 생도라는 것.
이제 겨우 첫 주가 지났고, 당장에 1학년 때 잘나가던 생도가 2학년, 3학년 때가 되면 박살이 나는 경우도 빈번했지만…….
어쨌건 요 몇 년 새에 가장 뛰어난 기수라고 평가받는 이번 기수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이슈가 될 만했다.
거기에 더해, 이 외양과 말투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밖에는 없었다. 가식적이다 내지는 벌써부터 히어로도 되기 이전에 기믹질을 하는 게 꼴 보기 싫다…… 등등의 의견도 많았지만, 대부분 나름 좋아해 주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나도 일반 대중의 입장이었다면, 그쪽 입장이었을 것 같긴 하다. 애초에 그렇지 않았다면 컨셉질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막상 이렇게까지 주목을 받으니, 굉장히…… 부담스럽다. 어차피 차차 순위가 하락할 테니, 조금만 기다리면 이 관심도 어느 정도 식겠지만.
“고때까지 못 기다리는 고애오…….”
일단, 그렇게 되기 이전까지 당분간 인터넷이랑은 연을 끊고 살아야겠다.
방금 전에 븝미쟝이 어쩌고~ 하는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다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호에에…….”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폰을 내려놨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 대한 생각을 곰곰이 정리했다.
“하와와, 어떤 나쁜 사람들이 그랫슬까여? 븜미쟝은 모르갯담니다…….”
이번 사건의 배후. 그건 지금 경찰들이 추적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원래라면 그럴 필요도 없이 내가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일에 투입된 빌런들. 그들은 아무래도 길드에 잠입하는 과정에서 의심받지 않도록, 일부러 약한 이들만 골라 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이들도 임무에 성공할 수 있도록, 강한 수면제를 지급할 만한 단체. 그리고 메이슨 가문 길드와 원한이 있을 만한 단체.
“없는 거 와요…….”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곳이 떠오르질 않았다. 전자의 조건을 충족하는 곳은 많았지만, 딱히 메이슨 길드를 특정하고 테러를 저지를 만한 곳은 없는데.
그렇기에, 결국에 이번 일로 내가 확신한 사실 하나. 지금 이곳은 원작 게임과 완전히 같은 스토리로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애초에 그 흑사회의 인공 던전에 내가 휘말려 들 때부터,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하와와와…… 븝미쟝 더 빨리 튼튼해져야 하는 거애오…….”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그냥 주연 주인공들이 알아서 대강 일들을 해결해 주면, 그 옆에서 약간의 도움 내지는 어드바이스. 그 정도만 해 주면서 빌붙어 먹으려고 했는데.
실제로 일리아와 가까워지면서 그 계획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지금 이 세계는 원작 게임보다 조금 더 빡센 듯한 느낌이 든다. 사실, 원작에 있던 빌런들이 초반에 너무 수동적인 면이 있기도 했고.
앞으로도 주연들 근처에서는 계속해서 사건이 발생할 것이었다. 나는 당장 그들과 가까운 입장이고, 또한 그만큼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괜히 어정쩡하게 휘말렸다가 비명횡사 당하지 않게, 계속해서 강해져야만 했다.
“이게 중요한 거애얌…….”
나는 눈앞에 띄워 놓는 세부 특성창을 보며 말했다. 그 특성은 바로 내가 이번 던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 준 것들. 결속과 빙의(풀 네임은 너무 길어서 임의로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였다.
결속 같은 경우에는 딱히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이건 계속해서 유용할 스킬이겠지. 이번에 슬롯도 하나 더 늘었으니, 주연 인물들과 친분을 쌓을 만한 동기가 하나 늘었다.
그리고 빙의. 이건 조금 애매하다. 그냥 개인적으로 이 불사신선 컨셉 자체가 나랑 안 맞는 부분도 있었지만, 시간이 너무 짧다. 짧아도 너무 짧다.
기본 지속 시간이 10분. 거기에 지금 사용한 지 이틀하고 수 시간이 지났다. 현재 내가 빙의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12분이다. 오늘 자정이 지나면 13분이 될 거고.
처음에 떠올린 발상은, 아예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스킬이니 제 2의 신분으로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용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한 달 꼬박을 안 써도 40분밖에 변신하지 못하니, 정말 위급할 때나 쓸 만한 비장의 카드 같은 것이었다.
“븝미쟝은 아가라 자닌한 거 못 보는 거애오…… 그게 시러요…….”
물론 그렇다고 이 특성이 구리다는 건 아니다. 아니, 내게 너무나 필요했던 특성이다.
다나 크리스틴의 육체로는 사람을 죽일 수 없다. 그걸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다. 몬스터한테는 이상하게도 반응하지 않았지만, 사람이 상해를 입는 걸 목격하면 정신력이 남아나질 않는다.
그러니까 뭐, 장거리 포격 따위를 제외하곤, 이 몸으론 대인전을 펼칠 수 없다.
반면 불사신선의 컨셉 모드. 그 상태가 되면 상해는 고사하고 당장에 살인을 저질러도, 정신력 보정을 받는다.
지금, 내 온전한 정신으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헛구역질이 난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살인을 했지? 하는 생각에.
하지만 이내 불사신선일 때 했던 생각과, 감정들이 기억에 떠오르며 그 생각이 사라진다. 이건…… 상당히 고마운 효능이었다.
“호에에…….”
이곳 세계에서 살아가자면 몬스터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죽일 일이 많을 것이다. 혹자는 어차피 날 먼저 죽이려 한 놈들인데? 하며 별생각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인물이 되질 못한다.
이번 일 이후에도, 아마. 그런 방향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니 몸에 소름이 돋는다. 뭔가, 다시 쓰기가 꺼려진다.
쩝.
나는 입맛을 다시며 방 밖으로 나갔다.
이런 생각들에 회의감이 들어서?
물론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븝미쟝은 생도애오…… 생도는 수업을 들어야 하는 거애오…….”
그냥 수업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빌런들이고 뭐고 그건 나중의 일이다. 지금은 생도답게 수업을 들어야 할 시간이었다.
* * *
드르륵.
문이 열자, 이미 3반 생도들 거의 전원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호에에 하는 소리를 내며 재빨리 비어 있는 자리 중 하나를 골라 앉았다.
원래라면 일리아가 먼저 와 있었겠지만, 그녀는 지금 던전에서 죽은 메이슨 길드 소속 히어로인 김창식의 장례식에 가 있었다.
그녀는 아무래도 그가 죽은 것에 대해서 상당한 죄책감을 가진 모양이었다. 사실로 말하자면 그녀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이번 공략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곤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고, 굳이 따지자면 공략 일체를 책임지는 조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었다. 그것도 부당하긴 하지만.
일리아가 그런 죄책감을 가지고, 첫날에 이어 오늘까지 장례식장에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그가 공략조원 모두를 살렸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상 그 김창식이라는 사람은 운 나쁘게 빌런들의 손에 가장 먼저 죽었을 뿐이지만, 내가 그의 무기를 사용한 탓에 어느새 반쯤 영웅이 되어 있었다.
만약에 지문 감식 같은 걸 했다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겠지만…… 이번 사건의 최대 희생자이자 영웅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검을, 검식까지 할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그는 언론에 의해 수많은 찬사를 받고 있었다. 물론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어쨌든 그가 이번 사건의 유일한 희생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 또한 전날에 그곳에 갔다 왔다. 딱히 말 한번 섞어 보지 않았던 사람임에도 뭔가 감정이 복받쳐서는 대성통곡을 했다……라는 사실은 굳이 떠올릴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자!”
“호엑! 흐끅!”
갑자기, 박수를 짝 하고 치며 소리를 지르는 교관. 나는 그 때문에 순간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딸꾹, 하고 딸꾹질까지 시작했다.
이건 순전히 약해 빠진 이 몸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하지만, 내 소리에 이쪽을 바라보던 교관과 생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다나……미안합니다.”
그는 안 그래도 나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는, 그 마법 이론 교관이었다.
아무래도 교관은 내가 지금 그 사건에 대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괴로워하고 있는, 뭐 그런 상태라고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전혀 아닌데.
교관의 말과 동시에, 숙연해진 분위기.
지금 별로 나를 호의롭게 보지 않을 법한 이들, 신하연과 나츠키마저 나를 동정하는 눈길로 쳐다봤다.
“큭…….”
……저기, 장선우는 아예 비통해하고 있었다. 과몰입도 정도껏 해야지.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주연 인물 중에는 쟤가 제일 친해지기 힘들 것 같았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고개를 숙였다. 뭐 다른 이유는 아니고 그냥 부끄러워서. 육체가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내 등 뒤에 서늘한 감각이 찾아왔다.
당장 부끄러움보다 더 강하게 느껴진 감각. 나는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매시간마다 책상에 엎어져선 잠을 자던 J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호에……?”
그런데 그 눈길이 예사롭지가 않다. 당연히 J 같은 경우에는 남을 동정하거나, 그런 성격이 되지 못하는지라 나를 불쌍하게 쳐다본다거나 하지 않았다. 바라지도 않았고.
하지만 내가 지금 당황스러워하는 것은, 그 눈빛에 담긴 감정이 언뜻 호기심 내지는 적의 따위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순간 찾아오는 한기에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그리고 입술이 파랗게 질려 갔다.
앞발을 벌리고 있는 곰을 보는, 연어의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일까. 실제로 그 정도의 관계밖에 되지 못할 것이었다. J는 지금도 중위권 영웅들 정도는 처치할 수 있을 만한 무력을 가지고 있다. 같은 17살, 각성 3개월 차인데도.
내 그런 반응을, 아마 교관은 다르게 해석한 모양이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내게 말했다.
“그냥 더 쉬고 와도 됐는데. 다나 양의 학습에 대한 의지는 물론 칭찬할 만 하지만, 지금은 수업을 제대로 듣기가 조금 어려울 것 같군요…… 혹시 미안하지만, 잠시 양호실에 데려다줄 생도가 있을까요?”
“그, 그럼 제가!”
교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왠지 기분 나쁘게 생긴…… 남자 생도가 벌떡 일어서며 말한다.
“음…….”
그에 대한 반응은 굉장히 싸늘했다. 생도고 교관이고 모두들. 뭔가, 외모로 판단하는 건 나쁘긴 한데…… 느낌 자체가 굉장히 불순해 보였다.
“제가, 다녀오죠.”
“아, 그래 주겠니?”
그다음으로 손을 든 건, 바로 재스민. 그러니까 J였다.
교관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부탁을 했다.
아니, 잠깐만. 지금 저 여자 때문에 몸이 이러고 있는 건데, 저 여자랑 단둘이 보내겠다고?
나는 도리질을 하며 차라리 남자 생도 쪽이랑 같이 가겠다고 하려 했으나, 입술이 덜덜 떨려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호, 호에에에…….”
살려 줘!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구조 요청을 해 보았다.
물론, 그것이 구조 요청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사람은 없었고. 나는 그대로 J의 손에 이끌려 교실 밖으로 끌려 나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