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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35화 (35/172)

#35화. J 언냐야가 이상해여……

현재 펜타곤 아카데미에서 재스민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J. 코드명과 예명으로만 보자면 나츠키나 일리아, 혹은 나. 그러니까 다나 크리스틴처럼 한민족 출신이 아닌 것 같았지만, 의외로 그녀는 순수 한민족이다. 혼혈조차 아니었다.

심지어 그녀의 부모는 한민족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며 헛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단군조선회의 간부이기까지 했다. J는 그 꼴이 보기가 싫다며 지금은 인연을 끊은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J 쪽이 그 부모보다 낫다고 평가할 수는 없었다.

단군조선회가 실존하는 신격을 떠받들고 모심에도 그 신도들이 축복 하나 받지 못하는, 사이비 종교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히어로’의 범주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다.

반면 그 반발심일지, 아니면 자신의 특별한 의지 때문인지는 몰라도 J는 빌런이다. 작중에서, 그녀의 단체는 비교적 온건한 편이라는 묘사가 있기는 했지만…… 글쎄. 애초에 빌런들이 모인 집단이 온건할 수가 없는 구조라.

한 서너 명이 뭉쳐 그 본신의 강함과 자유를 즐기고 싶은, 그런 작은 모임들. 그 정도라면 ‘온건한’ 빌런들의 집단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면 절대 그렇게 될 수가 없었다. 일단 어느 나라건, 빌런들은 보이는 대로 잡아 족치는 게 기본 스탠스인지라, 상당수의 빌런들이 과격파였다.

그리고 결국 한 집단의 성향은 다수를 차지한 이들의 의견대로 따라가게 된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그런 빌런들의 단체에, 각성하자마자 바로 가입한 위험 인물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이 여자는 이번 기수에서 사실상 최강이었다. 혹시나 위험한 일이 벌어졌을 때, 내가 저항할 방법은 없었다.

내가 그나마 믿을 만한 구석은, J가 속해 있는 단체가 개짓거리는 많이 하고 다녀도, 자신들의 일을 방해하지 않는 바에야 살인은 지양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J 자체도 그리 악한 인물상은 아니었다. 약간…… 소시오패스? 아니 그거랑은 조금 다르긴 한데. 아무튼 공감 능력이 살짝 떨어진다는 것 빼고는 나름 정상적…….

“이쯤이면 되려나…….”

그 때, 앞서가던 J가 중얼거리더니 내 어깨를 잡는다. 이곳은 아카데미 외부의 한 구석. CCTV가 천지에 있는 아카데미에서 몇 없는 사각지대였다.

이 사각지대는 아카데미에서 일부러 방치해 놓고 있는 곳이었다. 입학할 때 봤던 그 교장 할머니. 그 할머니의 교육 방침이 이런 느낌이다.

나는 지금 그 교육 방침에 대해 심각한 반발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나름 히어로라는 놈들이 교칙을 다 지켜야지 그럼. 이런 식으로 운영하니까 이렇게 내가 위험한 상황에…….

“다나 크리스틴.”

“호에에!”

네.라는 대답 대신에 입에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감탄사.

그게 황당했던지, J는 입술 주변을 움찔거리다 표정을 고쳤다.

“이번에, 메이슨 길드 공략 때 참여했지?”

“하와와…… 그런 고애오.”

“말투. 그렇게 안 할 수는 없나? 듣기가 불편한데.”

“븝미쟝은 아가라서 이러케밖에 못 말하는 거애오…… 언냐야가 이해해 주는 거야요…….”

J는 영 불만이라는 듯한 표정이었으나, 체념한 듯한 얼굴로 어깨를 한 차례 으쓱, 해 보였다.

“뭐, 미친연놈들 한둘도 아니고…… 그건 됐고. 너, 그 안에서 빌런들을 봤겠지?”

“마자여! 나쁜 언냐 옵바야 들 본 거애오…… 무서웠던 고애오…….”

“무섭기는, 씨벌. 킥…….”

J는 한 차례 웃음을 흘리더니 나를 향해 다가왔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나는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가, 가까이 오지 마라여!”

“안 그러면 쏘게?”

그녀는 내 모습을 비웃더니, 쭉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공포심에 마력을 끌어 올렸다. 마나 씨고 나발이고 찾을 새도 없이, 그냥 전방에 마력을 방사해 버렸다.

콰아아악!

그 속도가, 워낙에 빨랐던 데다가 생각보다 위력이 뛰어나서, 어쩌면 이대로 J가 상처를 어느 정도 입고, 내가 달아날 만한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 보았다.

자욱하게 올라온 먼지구름.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그 속에서 인영이 일렁이며, 내 기대는 사라졌다.

“아, 이런 앙큼한 년은 내 생에 두 번째네. 쥐방울만 한 게.”

그녀는 안광을 번뜩이고 있었다. 검은색 머리에, 갈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그녀였지만, 능력을 사용할 때는 이렇게 금색의 안광이 번뜩인다.

아무래도 방금 공격으로 아무 피해도 입지 않은 것 같았는데, 그에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였다. 오늘이 생을 마감하는 날이구나.

뭔가 억울함이 북받쳐 올랐다. 내가 뭔 잘못을 했는데 이렇게 갈구는데. 명백히 따지자면 난 그냥 피해자일 뿐이었다.

이내 억하심정에, 울음이 나오려고 했다. 그 때, J가 다가와 내 볼을 잡아당겼다.

“후에에에에에!”

“진짜 콩알만 한 게. 겁도 없이 말이야. 하기야, 그러니까 그 새끼들을 족쳐 놓긴 했겠지.”

나는 불이 주욱 늘어나는 고통에 버둥거리면서도,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 새끼들’이란 정황상, 아무래도 이번에 던전에서 나한테 죽은 빌런들을 의미하는 것일 터였다.

그리고 어떻게 안 것인지는 몰라도 내가 그들을 죽인 것을, J는 알고 있는 상태였다.

설마, J가 속한 단체에서 이번 일을 사주한 것인가? 생각을 해 봤지만 고개를 저었다. 거기는 굳이 메이슨 길드에 손을 댈 이유가 없는 곳이었다.

또한 말투만 보더라도 그 빌런들에 대해 그렇게 좋은 감정을 품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무슨 소리인 거에양 언냐야…….”

“시치미 떼지 말고. 내가 너같이 좀 앞에서 살랑거리고, 속은 시커먼 썅년들을 아주 좋아하긴 하는데…… 자꾸 그렇게 나 속여 먹으려고 들면 진짜 화나는 수가 있어.”

그, 살벌도 하셔라. 취향도 무슨 앞에서는 살랑거리고, 속은 시커먼 썅년? 작중에 그런 것까지 언급되지는 않았던지라 잘 모르긴 했는데. 역시나 정상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저 표현이 나한테 딱 들어맞긴 하네.

“아, 아랐서여 J 언냐야…… 제가 그런 거 마자여…….”

“호오…….”

그녀는 감탄했다. 내가 바로 시인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던 건가?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잠시 뒤 내 실수 하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잠깐만, 나 방금 뭐라고 했지? J……라고 했나?

“너, 진짜 웃기는 년이구나. 야, 존나 맘에 든다. 언제부터 알았어? 근데 아직까지 아카데미에 안 꼰지른 거야?”

“호에에에에…….”

나는 신음성을 내뱉으며 주저앉고는, 스스로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진짜, 병신이 따로 없었다. 맨날 애기애기거렸더니 진짜 머리가 애처럼 변해 가는 건가.

그냥 머릿속에서 J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순간 재스민이라는 가명이 따로 있다는 걸 까먹고 있었다.

“누가 알려 준 거야? 아카데미 내부에 누군가가 있나? 혹시 내가 뒷조사라도 당했어? 졸업할 때까지 아무도 눈치 못 챌 줄 알았는데.”

“븝미쟝은 아무것도 몰라여…… 진짜예여.”

빙글빙글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J, 하지만 나는 그녀의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이건 지금 당장에 단칼에 썰려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냥 내 멍청한 대가리나 탓하며 죽어야지.

하지만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나를, 그저 우습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던 J는 이내 내 턱을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쪽.

“모, 모애오…….”

내 볼에 입을 맞췄다.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이래. 어이없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보자, J는 입술을 슥 핥으며 나를 바라봤다.

“안 잡아먹으니까 고만 지랄 떨라고. 하, 입학식 때부터 봤을 땐 별 정박아 년이 다 있구나, 했는데. 볼수록 마음에 드네. 너 이번 주 주말 비지? 부모도 없는데 뭐 따로 일정이 있을 리가 있나. 있으면 취소하고.”

“그건…… 왜 물어보는 건데여? 그리구…… 부모님 얘기는 왜 하는 거애오.”

“왜 물어보긴, 데이트 한 번 조지려고 그런다. 부모는, 씨벌. 나도 실질적으로는 고아야 개 다리 같은 년아. 없는 걸 없다고 하지.”

갑자기 뜬금없이 패드립을 해 버리는 J에게, 뭔가 억하심정이 들어 반박했더니 되레 당당하게 받아친다.

하지만 그 모습에 딱히 반발감은 들지 않았다. 뭐, 고아 소리야 옛날부터 하도 딱지가 앉게 들어 대서 기분도 별로 나쁘지 않았고. 자기도 실질적 고아라는 말을, 그녀의 사정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인정할 수밖에는 없었으니까.

물론 그런 내 이해와 이 몸은 괴리가 있었기에 눈물샘이 촉촉해진다. 그러자 J는 내 이마에다가 딱밤을 때려 넣었다.

따악!

“후갹!”

나는 단발의 신음성을 내며, 이마를 붙잡았다. 이내 골이 띵하게 울리며 몸이 저릿저릿해졌다. 고통 때문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가 이내 다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왜, 왜 이러는 거예여…….”

“눈물은 아플 때만 흘리는 거야 개년아.”

J는 그러고는 씨익 웃으면서 뒤돌아섰다. 그러고는 이내 걸어가며 내게 당부했다.

“양호실, 데려다준 거다. 헛소리 지껄이면 죽여 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고. 주말에 안 나와도 죽는다. 알간?”

“네, 네…… 언냐야.”

솔직히, 반발심이 들어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죽인다는 말에 그 감정도 쏙 들어갔다. 저 여자는, 죽인다면 진짜 죽이는 부류의 사람이었으니까.

*    *    *

J와 황당한 대화를 한 직후, 나는 곧바로 양호실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뭔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눈에서는 자꾸 눈물이 주륵주륵 흘러나오는데, 나는 그걸 통제할 힘도 없었다. 그냥 기운이 쪽 빨린 듯한 기분이었다.

“어머, 왜 이러니.”

양호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보건 교사는 내 몰골을 보더니 부산을 떨며 한구석에 나를 앉혔다.

그러고는 새빨갛게 부어오른 이마에다가 뭔가 연고 같은 걸 발랐는데, 이게 또 현실이랑 다르게 약발은 잘 듣는지라 혹이 금세 가라앉았다.

그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다나였나? 1학년 1위지? 혹시 다른 생도들이 막 괴롭히고 그래? 안 그래도 정신적으로 힘들 시기에…… 이놈들을 그냥.”

아무래도 보건 선생 또한 이번 길드 건에 대한 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 때문은 아닌데, 내가 고개를 젓자 그녀는 안쓰럽다는 듯이 얼굴을 굳혔다.

“에휴, 그래.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후에에에엥!”

타이르듯 말하는 그 어투에, 육체가 저절로 반응하며 눈물을 주륵주륵 흘려 댔다. 보건 선생은 나를 안으며 이내 등을 토닥거렸다.

솔직히 좀 쪽팔렸는데, 그나마 양호실에 나와 그 선생 둘뿐이라 다행이었다.

그래도…… 싫지는 않았다. 그 품이 꽤나 푸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일리아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녀보다 조금 더, 푸근했다.

“헤으으응…….”

나는 그렇게 잠시간 쉬다가. 이내 교실로 복귀했다.

“어, 다시 왔구나. 괜찮니?”

“븝미쟝 언제나 괜찮은 고애오!”

생도와 교관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쏠렸다. 나는 괜찮다는 듯이 밝게 말했지만 그도 별로 오래가지 않았다.

J가, 저 멀리서 내게 눈을 찡긋거리고 있었으니까.

“호에에에…….”

역시나 굳어지는 내 표정을, 사람들은 다르게 해석했는지 분위기가 싸해진다.

……그게 마치 낄 데 안 낄 데 구분 못 하는 복학생이 된 느낌이라, 좀 기분이 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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