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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36화 (36/172)

#36화. 븝미쟝은 조별 과제가 시러여!

저번 무기술 수업 이후로, 나는 교관인 이한울에게 집중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가 내게 딱 붙어서, 지도를 하며 매번 하는 말이 있었다.

“널 사람 새끼로 만들어 주지.”

“호에에…… 븝미쟝 이미 사람인 고애오…….”

“아니, 넌 그냥…… 지렁이, 민달팽이, 누에, 구더기. 뭐 그런 거야. 내가 보기에는 사람이 아니다.”

“말 넘 심한 거야요!”

이한울은 그렇게 내 귓전에, 온갖 비하 발언들을 때려 박았다. 사실 그의 입장으로서는 동일한 나이대 일반인보다 훨씬 못한, 말 그대로 인간 이하의 체력을 가진 히어로를 처음 봤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뭔가 오기 비슷한 것이 생긴 모양이겠지.

물론 그것뿐만이라면 내게 이렇게 시간을 쏟지 않았을 것이다. 뭣보다 내가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그는 다른 근접계 히어로들보다 되레 내게 더 많은 시간을 썼다.

그리고 오늘, 이한울은 감동했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는 내게 말했다.

“그래, 이게 사람이지. 다들, 봤지? 노력하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거다. 단 몇 차시 만에 이렇게 향상된 모습을 보여 주잖냐.”

이한울은 그동안 날 갈궜던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이, 칭찬을 퍼부었다. 나는 그 옆에서 그저 머쓱한 얼굴로 호에에거리며 가만히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솔직히 조금 쪽팔렸다.

그가 이렇게까지 하는 데에는, 방금 내가 펼친 검술 때문이었는데 기존에 연검을 들고도 흐느적거리던 내가 상당히 정형화된 검술을 선보였기 때문이었다.

이한울은 자신의 가르침이 효과를 발휘했다고 생각했는지 저렇게 신이 난 것이었다. 그게, 꼭 틀린 말은 아니지만서도…… 큰 요인은 사실 따로 있었다.

대상 ‘일리아 메이슨’과의 결속이 해제되었습니다.

지속 시간이 끝나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나는 방금 결속 스킬을 사용해 일리아의 검술에 대한 이해도를 빌려 왔다. 이 하찮은 몸이라고 할지라도, 그 정수를 이용해 검을 펼쳐 낸다면, 그래도 봐 줄 만한 수준으로 내 실력을 끌어 올릴 수 있었다.

또한 최근에 힘, 민첩, 체력이 모두 5스탯에 도달하기도 했으니…….

“자, 다들. 이제 각자 시연을 펼쳐 봐라. 얘보다 안 늘었다고 생각되는 놈들은 죄다 머리 쪼개 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고.”

이한울의 청천벽력과 같은 발언에 내게 시선이 쏟아진다. 원래라면, 이럴 때 그저 고개를 숙이고 예의 소리를 내뱉었겠지만, 이제 대처법을 알아낸 것 같다.

“하와왕, 옵바 언냐야들 그렇게 쳐다보면 부끄러운 거와요…….”

그러자 다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리 돌린다. 특히 나츠키는 골이 땡긴다는 듯 뒷목을 주물렀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우오오오! 븝미쟝!”

몇몇, 진심으로 좋아하는 또라이들도 있긴 했다.

*    *    *

일리아가 아카데미에 복귀하기까지 꽤나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결국 그녀는 목요일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복귀를 했는데, 그동안 생각이 많았는지 내 앞에서도 영판 이전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의기소침해진 것은 아니었다. 되레 이전보다 확실한 의지가 하나 생긴 모양이었다. 그녀는 밥을 먹다 말고 내게 갑자기 말했다.

“다나, 넌 졸업하고 나서 어디 쪽 진로를 선택할 거야? 아마…… 마탑 쪽이겠지만.”

“호에에에…… 생각해 본 적 없는 거애오…… 그냥 언냐야 따라 들어갈까여?”

“큭, 그럼 나야 좋지. 근데 그렇게 가볍게 결정하지는 말고.”

그녀는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더니 결연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결정을 내게 말했다.

“나, 성휘의 기사단에 들어가려고.”

“하와와, 그 착한 옵바 언냐야들 있는 곳이여?”

“착한 언니 오빠……? 그래. 뭐, 맞는 말이긴 하지.”

일리아는 고개를 갸웃, 하더니 이내 긍정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휘의 기사단. 무언가 바뀌나 했는데, 결국에 그녀가 진로를 확실하게 선택하는 데에 시간이 짧아졌을 뿐이었다.

성휘의 기사단은 기본적으로 몬스터를 퇴치하는 것보다, 빌런들을 잡는 데에 주력하는 곳이었다. 이는 꽤나 많은 히어로들에게 기피가 되는 사항이었는데, 어쨌든 돈을 벌기 위해서는 몬스터를 잡는 게 최선이었기 때문이었다.

빌런 사냥은 돈도 되지 않고, 어렵고, 또한 전투 중 사망할 확률도 극도로 높은 행위인지라, 그것을 주력으로 삼는 단체에 대해 대부분의 이들은 꺼릴 수밖에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곳에 들어가는 이들은…… 대부분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바보들이었다. 일리아는 기본적으로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순수히 선(善) 성향을 가진 인물이었으니 꽤나 잘 맞았다. 실제로 그녀는 원작에서도 이곳에 입단했다.

그렇다면 나는 여기에 갈 생각이 있는가. 그렇게 물어본다면…… 결단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내 지향점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으니까.

차라리 빌런이 되고 말지. 그게 내 생각이었다. 물론 막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잡아다 죽이고, 함정에 빠트리고 국가를 붕괴시키려는. 그런 테러리즘을 기조로 두고 있는 빌런이 아니라 그냥 불법적인 일도 근근이 해 가면서 편하게 살고 싶은 쪽이란 것이다.

어쩌면, 나중에 내가 일리아에게 체포당하는 일도 있지 않을까. 나는 잠시 그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일리아가, 제복을 입은 채로 나를 체포하고는 올라타서…….

“나쁜 생각 안 되는 거애오!”

“응? 무슨 나쁜 생각?”

“아, 아무것도 아닌 거에얌! 븝미쟝 아가라 나쁜 생각 못 해여…….”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상당히 불건전한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바로 몸이 반응했다. 제기랄, 이제 뭔 생각도 못 하겠네.

점심시간, 밥을 먹으며 일리아는 내게 말을 계속해서 걸어왔다.

일리아는 그동안 아카데미 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카데미 안에서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했다.

그녀는 한창 이야기하다가 얼굴을 굳히며 내게 물었다.

“다나, 그나저나 나 없는 동안 무슨 일 없었어? 누가 막 괴롭힌다거나. 그 은발 머리에 싹퉁바가지 없는 꼬맹이가 막 함부로 대하거나 하진 않았고?”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참아 냈다. 저번에 일리아와 신하연의 대결 때. 나츠키가 하도 아는 척을 해 대길래 좀 친해졌나 싶었더니, 아닌 모양이었다.

“그런 일 없었어여~ 글구 나츠키 언냐야 넘 시러하지 마라여…… 나츠키 언냐야도 나름 귀엽지 않은 거야요?”

나는, 분위기를 조금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나츠키의 편을 조금 들어 주었다. 나중으로 가면 둘은 어쨌건 친해지게 되니, 그 시기를 조금 앞당겨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사실 원작에서 일리아한테 귀여움을 받는 포지션이, 원래는 나츠키였다. 그럴 만도 한 게, 나츠키도 상당히 귀엽게 생겼으니까. 하는 짓은 그렇지 않지만.

특성 때문에 얻어졌다는 특이한 은발 머리와 적안. 거기에 아기자기한 얼굴과 몸은 드물게 내 면식과 또래로 보일 정도로 어려 보였다.

본인은 그걸 되게 싫어하는 모양이었지만, 일리아에게 있어서 그런 외모는 최대 장점이었기에. 둘이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 잘 지내는 게 웃음 포인트였는데…….

“하는 짓이 싸가지가 없잖아! 내숭 없는 신하연 보는 느낌이라 열받는다고. 나는 걔가 왜 내숭을 떨까, 생각했는데 안 그러면 저렇게 되는구나를 깨닫고 어느 정도 이해를 했어. 그냥 볼 때마다 짜증이 확확 나 그냥!”

하지만, 지금 모습을 보자면 아무래도 일리아와 나츠키가 가까워지기까진 꽤나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나는 괜히 이야기하다 열이 받는다는 듯, 메밀국수를 들이켜는 일리아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의식 안 하고 있었는데. 벌써 네 그릇째였나.

“아, 잠깐만. 다나. 나 추가 주문 좀.”

일리아는 그 한 그릇을 기어코 액체 마시듯 들이켜고 나서 다시금 주문을 했다. 사실 이게 그리 놀라운 광경은 아니었다. 생도들의 경우에는 일반인들보다 보통 서너 배 이상 많이 먹는 게 일반적이긴 했으니까. 다만 조금 괴리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애초에 저번 주에, 일리아는 그리 많이 먹는 편이 아니었다. 포인트가 없는 게 가장 큰 이유였겠지. 하지만 이번 주, 그녀에게는 상당한 양의 포인트와 함께 엄청난 순위 변동이 있었다. 무려 100등 이상 올라서 157위에 랭크된 것이다.

숙소도 살 만하게 바뀌었다고 한다. 물론, 여전히 잠은 내 숙소에서 같이 잘 모양이지만.

이내 2인용 메밀국수가 한 그릇 더 왔다. 내가 그것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 일리아는 내가 먹고 싶어 하는 모양인 줄로 착각한 듯했다.

잠시간 그릇과, 나를 번갈아 보던 그녀는 이내 입술을 파들거리며 내게 말했다.

“가, 같이 먹을래?”

그녀가 귀여운 것 다음으로 좋아하는 게, 바로 맛있는 음식이었다. 펜타곤 내에서 음식을 조리해 주는 이들은 모두 바깥에 나가서 음식 장사를 하면 떼돈을 번 장인들이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 그나마 나니까 나눠 먹지 않겠냐고 제안하는 것이었다.

“아니에여 언냐야…… 븝미쟝 아가라 벌써 배불러여…….”

“그래? 에이, 같이 먹으면 맛있는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그녀는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아주 그릇까지 씹어 삼킬 기세였다. 저렇게 먹는데도 망가짐 하나 없다는 게 참 아이러니한 광경이었다.

나는, 내 앞에 놓여진 그릇을 쳐다봤다. 어린이용 일식 세트. 이번 기수, 제일 어린 생도가 15살인 펜타곤에서 왜 어린이용 세트를 파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게 내게는 딱 맞았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물론 이게 양이 적어서 그렇지, 맛이 없는 건 아니긴 한데…… 아니 되레 내가 살면서 먹어 본 음식 중에,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맛있긴 한데. 이것마저 반 정도 깨작거리니 배가 빵빵해졌다. 여러모로 참 거지 같은 몸이었다.

“나, 하나 더 시켜야겠어. 안 되겠어.”

일리아는 그렇게, 2인용 메밀국수 6그릇, 규카츠 2접시, 모듬튀김 대자를 혼자 먹는 기염을 토했다.

아, 거기에 더해 내가 먹고 남긴 어린이 세트 반절까지…….

*    *    *

조별 과제.

그건 딱 듣기만 해도 뒷골이 존나게 아려 오는 단어였다.

PTSD가 온다. 물론 중퇴를 했지만, 나는 대학에 다니던 시절 그놈의 장학금을 받겠다고 오지게 성적에 집착을 했다. 조별 과제는, 실상 조별 과제가 아니었다. 나 같은 놈들이 혼자 독박을 쓰는 개인 과제였다. 4명, 5명분의 과제를 혼자 하는 것만이 개인 과제와 다른 점이었다.

난 아직도 기억이 난다. 뭐라더라? 자기 이모부가 돌아가셨다면서 사흘 동안 잠수를 탄 녀석. 그래, 사람이 죽었는데 어쩌겠냐…… 하고 놔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모도 없던 그 개새끼.

아무튼 나는 별로 그에 좋은 추억이 없었다.

그런데, 펜타곤에 들어와서 처음 하는 ‘실전’ 수업이 바로 이 조별 과제란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일이었다. 나는 3반의 학생들 명단을 하나씩 살펴봤다. 어차피, 일리아는 나랑 할 거고…… 그러면 또 구할 수 있는 인원이.

띠링.

그 때, 내 전화에 알림음이 울렸다.

이렇게 어디에 집중하고 있을 때, 확인하기 조금 귀찮은데.

그럼에도 혹시나 중요한 연락인가 싶어 곧바로 확인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얼굴을 기괴하게 일그러뜨렸다.

“이 언냐야는 왜 그러는 거애여…….”

[재스민: 야, 이 시빵년아. 니 조에 나 넣어 놔라.]

안 그래도 개 같은 조별 과제에, 폭탄이 하나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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