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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39화 (39/172)

#39화. 점수는 우리 거시애오……

일리아는 내 쪽을 힐끔거리며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자기를 선택하지 않은 게 꽤나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아니, 근데 그게 그렇게 충격받을 만한 일인가?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저러고 있었으니 미안하기는 했다.

“킥킥.”

J는 그 모습에 킥킥거리며 웃고 있었다. 얘는 그냥…… 내게 호감이 있어서 이런 짓을 하는 게 아니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악질. 얘는 성격이 원래 이렇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사람. 가학적, 이라고까지 표현하기에는 그 정도가 심하지는 않지만. 일단 다른 사람들을 놀리고 괴롭히는 걸 좋아하기는 한다.

그래서 펜타곤에 ‘위장’해서 들어와 있던 시절, 주연 등장인물들은 J의 장난에 꽤나 곤혹을 많이 치러야만 했다.

심지어는 나중에 그녀가 자신이 빌런이라는 사실을 밝힐 때마저, 주연 인물들은 그게 장난인 줄 알 정도로 심했다.

“다나가 날 버렸어…….”

반쯤 얼빠진 얼굴로 중얼거리는 일리아를 보니 저거 중증이다 싶다. 나중에, 뭐 맛있는 거라도 같이 먹으면서 회포를 풀어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그리고……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그렇게 하면 금방 풀릴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나는 일리아의 등이건, J의 등이건 일단 엎힌 상태였으니. 몸 하나는 편했다. 이게 평가 과정이 모두 녹화 송출되는지라 내 개인 평가는 내려갈 거라고는 하는데, 솔직히 나는 조금 내려가도 상관이 없다.

운빨이 언제까지 따라 줄지는 모르겠지만 난 일단 필기 쪽에서나 실기 쪽에서나 최고점을 계속해서 받고 있다. 이번 평가에서 조금 감점된다고 해도 문제는 없단 이야기다.

그렇게 확연히 빨라진 진행 속도. 다들 내 페이스에 맞춘다고 설렁설렁 걸어갔었는데, 이제는 그 이전보다 서너 배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100M 단거리 주자가 전력 질주하는 속도를, 조깅하듯 가볍게 달리고 있는 이들을 보니 진짜 ‘초인’이라는 말이 실감되었다.

하지만, 마치 이 놀라움은 별것 아니라는 듯 이들은 점점 더 속도를 높히기 시작했다.

“호에에에!”

나는 마주 부딪혀 오는 바람에 비명을 질렀다. 아니, 나 무슨 오토바이라도 타고 있는 건가? 업혀 있는 바람에 상하 움직임이 리얼리티한 게, 되레 그것보다 더 심한 것 같았다!

당장에라도 떨어질 것 같은 느낌에, 본능적으로 몸을 오들오들 떨며 J를 꽉 잡자 이내 서늘한 목소리가 귓전에 울린다.

“목…… 졸라서 죽이려고?”

“호에엥, 아니애오!”

당장 잡을 만한 게 목 부근이었으니, 나도 모르게 그쪽을 꽉 잡아 버린 것이다. 나는 슬그머니 깍지를 풀었다.

*    *    *

업혀 있으면서 느낀 것. 그중 하나는 겁나게 쪽팔린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저기 강연준이랑 이안이 나를 계속 쳐다보는 게 되게 거슬렸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답이 이거밖에 없는 것을. 덕분에 일단 몬스터들이 있는 곳까지 빠르게 도달했다.

“저기, 몬스터들 있네요. 다행히도 주변에 아무도 없는 모양이에요.”

“이렇게 굼뜨게 왔는데…… 어지간히도 띨빵한 연놈들 천지인가 보네. 그지, 띨빵아?”

J의 질문에, 긍정을 해야 할지 어떨지 잠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이미 그녀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딱히 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다들 전열 정비하고. 성기사, 앞장서고. 거기 망치쟁이랑 금발이 뒤에 따라붙어.”

“아니, 근데 너 조장도 아니고 그냥 조원이잖…….”

“넵!”

“……하아.”

일리아는 J의 지시에 불만이라는 듯 따지려 했으나, 군말 없이 그에 따르는 강연준과 이안을 보고는 포기한 모양이었다.

이내 그렇게 세 명이 전열에서 몬스터를 향해 달렸고, 나는 J에게 물었다.

“저기…… 그런데 J, 아니 재스민 언냐. 그럼 우리는…… 머 해여?”

이렇게 아예 동떨어진 포지션이면, 나는 고사하고 그녀는 공략에 무슨 도움을 준다는 것일까. 애초에 J도 암살자이니만큼 근접 계열 능력자인데.

“뭘 뭐 해. 그건 우리 띨빵이 조장님께서 정하셔야지. 나는 일개 조원이잖아?”

“아니이…… 그러며는 아까는…….”

“불만 있어?”

J는,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슬쩍 바라봤다.

내가 거기다 대고 어떻게 불만 있다고 말하겠나. 그냥,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니여. 그러며는 그냥 저쪽으로 가 주는 거애오…….”

J는 씨익 웃으며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곳은 몬스터들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으면서도 내가 녀석들을 타격할 수 있는 지점.

“호에에에…….”

아무래도, J는 직접 나설 생각이 아예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이번에는 나를 업고 다니는 걸 자기 역할로 삼은 모양. 솔직히 그 정도라도 해 주는 게 고마운 것이긴 했으니까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사실은 그녀가 어떤 짓을 하더라도 문제 삼을 만한 입장이 못 되긴 했다.

“마나 씨, 모여 주는 거야요…….”

나는 예의 마나 스폿을 손 위에 띄웠다. 지금 저기 보이는 몬스터는, 마치 닭을 닮은 몬스터. 하지만 그 크기가 대략 4M쯤 되는지라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파다다다닥!

꼬댁!

날개를 파닥거리면서, 예의 그 울음소리를 흘리는 녀석. 일견 코믹해 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그 발톱과 부리의 공격에 지면이 푹푹 패여 나가는 모습을 본다면 절대로 그냥 웃으면서 볼 수는 없었다.

일리아와 강연준, 이안은 각자 분투를 펼치고 있었다. 저 셋이라면 분명 현역 히어로들 중에서 하위권 수준인 이들의 파티 정도는 될 터. 하지만 쉽사리 제압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저 닭이 저래 보여도, 꽤나 강한 몬스터였으니까. 등급으로만 따지면 저번 던전에서 나왔던 그 거미 몬스터보다 낮긴 한데, 그놈들은 여러 마리가 몰려다니는 특성과 어두운 곳에서만 살고 암습에 능하다는 점 때문에 등급이 올라간 것이다.

“마나 씨, 뜨거워지는 거애오!”

나는 이내 마력에 속성을 부여했다. 이것은 마법 이론 수업에서 배운 것. 독학으로는 속성 부여에 대한 묘리를 깨닫지 못했는데, 몇 마디 조언을 듣자마자 바로 깨우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고, 마법 이론 교관은 또 한 번 내게 천재라며 극찬을 퍼부었다.

화르륵.

이내 점점 온도가 오르더니, 완연한 불꽃의 형태를 띠게 되는 마나 스폿. 그것은 점점 그 덩치를 불려 갔다. 일전에 그 던전에서 에너지 볼트를 무식하게 크게 만들던, 그 행위와 똑같은 것이었다.

모든 게임과, 소설과, 영화 따위에서. 마법의 기본이자 정수. 가장 유명한 마법으로 꼽히는 그 마법.

나는 그를 지금 펼쳐 냈다.

“구워 버리는 거애오! 븝미 파이어!”

그 얼탱이 없는 시전 주문과는 별개로, 내가 만들어 낸 파이어볼은 도저히 파이어볼이라고는 볼 수 없을 만한 위세를 뽐내며, 당당히 거대 닭을 향해 날아갔다.

“우와아악!”

이안의 비명, 이미 강연준과 일리아는 눈치를 채고 뒤로 빠지고 있었으나, 그는 자신의 신의 이름을 부르며 검을 휘둘러 대느라 조금 늦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항마가 높은 성기사이니만큼 무사하겠지.

퍼엉!

화르르륵!

“끼에에에에엑!”

이내 닭의 몸통에 부딪히며 폭발하는 파이어볼. 그것은 이내 녀석의 몸 전체에 불을 붙혔고, 그 때를 틈타 방패로 몸을 지키고 있던 이안, 강연준, 일리아가 달려들어 아예 도륙을 내 버렸다.

이내 그대로 모가지를 꺾으며 그대로 쓰러지는 닭. 모두들 그에 환호했다.

“다나아아아! 너무 멋졌어!”

특히나 감격한 일리아는 내게 달려와서는, J에게서 나를 떼어 놓고는 꽉 껴안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평소와는 조금 다른 게, J 쪽을 눈에 띄게 의식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으르렁, 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흐응.”

J는, 그저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    *    *

그 거대한 닭의 정식 명칭은 리틀 코카트리스(little cockatrice). 본래 이 세계에 몬스터가 처음 나타나던 시절, 이 몬스터를 보고 코카트리스라고 불렀다가 나중에 진짜 코카트리스가 나타나자 앞에 리틀이 붙어 버린 비운의 몬스터였다.

하지만 그래도 등급이 13등급. 사실 이쯤만 해도 사람들이 밀집된 도시에 나타난다면 그야말로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10점이나 주네. 이거 아홉 마리만 더 잡으면 끝인가?”

“이걸 아홉 마리 잡을 바에야, 2점짜리 고블린 마흔다섯 마리 잡고 만다. 무슨 닭이 이렇게 강하냐.”

일리아와 강연준의 말이었다. 이안은 아직도 자기 방패의 그을음과 피를 닦고 있는 중이었다. 성스러운 문장이 이런 오물에 뒤덮이면 안 된다나.

“90점 남은 거애오…… 옵바 언냐야들 다들 힘내는 거야요!”

이번 과제의 끝. 그것은 바로 몬스터를 잡아 그 몬스터에 배당된 점수를 획득하고, 그 점수가 일정량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더 빨리 점수를 채울수록 조별 점수가 올라가게 된다. 개인 평가도 있었지만 등수에 따라서 점수 차이가 꽤 되었으니, 다들 그렇게 경쟁의식을 불태운 것이었다.

우리 조 같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묵직하게, 10점짜리 몬스터를 만났지만 다른 조들 같은 경우에는 아마 변종이 안 된 고블린이나 오크 같은 놈들을 만났을 것이다.

초입에는 비교적 약한 몬스터들이 있다고 하니까.

그렇다면 우리 조가 앞서 나가고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때, 나를 포함한 각 생도들의 폰이 울렸다.

우우웅!

그리고 떠오르는 알림. 그것은 펜타곤 측에서 보낸 것이었다.

현재 각 조의 등수와 점수를 알려 드립니다.

3조: 18점 (1위)

5조: 14점 (2위)

1조: 10점 (3위)

6조: 4점 (4위)

4조: 4점 (4위)

2조: 0점 (6위)

점수를 봐도 그렇지만, 우리 조가 바로 1조였다. 우리 위에 있는 두 조, 어떻게 그렇게 빨리 점수를 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각각 우리 조보다 8점, 4점이 더 높았다.

아무래도 그 두 조는 나츠키와 장선우의 조겠지. 장선우는 몰라도, 나츠키 조한테는 질 수 없었다.

내가 결연하게 고개를 들었을 때, 아무래도 다들 같은 생각을 했는지 똑같은 표정들이었다. 이내 내가 말했다.

“옵바 언냐야들! 빨리 해야 할 것 가타요…….”

“그래, 이거 1등 못 하면 좀 억울할 것 같다. 이안 저놈이 책임진다고야 했지만.”

“흐흠! 친우여, 어찌 그렇게 말을 하는가! 1등을 하면 되는 것 아니겠나!”

“다나가 원한다면 힘 좀 써 줄게.”

말은 다들 달랐지만, 어쨌든 1위를 하고 싶은 생각들은 다들 충만한 모양이었다. 물론 J는 그저 하품을 하고 있었다.

“하암, 다 했으면 움직이든가.”

J는 다시 자기 등에 나를 업었다.

일리아는 아까와는 달리 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아까 하도 껴안고 난리법석을 떨었던지라, 그새 조금 기분이 풀린 모양이었다.

이내 우리 조는 더 안쪽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몬스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야! 저거 20점짜리야!”

그것은 아까 전 닭보다 더 강한 몬스터. 그에 걸맞게 점수도 무려 20점짜리였다. 하지만 다들 그리 위험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까 내 마법을 보고는, 나를 향한 신뢰도가 확 올라간 모습이었다.

뭐, 실제로도 셋이서 잘만 버텨 준다면 충분히 잡을 만할 것 같기는 했다. 그렇게, 우리 조원들이 모두 전투 준비를 하던 때였다.

“저거 20점짜…….”

그 때, 어딘가에서 강연준의 대사와 똑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그쪽을 쳐다봤고, 마찬가지로 그쪽도 우리 쪽을 쳐다봤다.

“호에에…… 이건 무슨 악연인 건가여…….”

마찬가지로 몬스터를 발견하고 의지를 불태우고 있던 다른 조. 그것은 나츠키가 이끌고 있는 5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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