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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40화 (40/172)

#40화. 상태창 씨 제멋대로인 고애오……

그 20포인트…… 몬스터는 이쪽을 아직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곧 눈치챌 것 같은데. 그런데 저쪽보다…… 이쪽이 더 급하다.

그 분위기가 꽤나 흉흉하다. 당장 저쪽도, 이쪽이 3등 조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었다.

당장 여기서 20점을 얻는 쪽이 상대 팀을 따돌릴 것이라는 걸 서로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 그 사실을 모두들 알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먼저 나서지는 못했다. 어쨌든 이 시험이 끝나면 다들 얼굴을 마주해야 할 같은 반 생도들이니까, 크게 마찰을 일으키기는 싫겠지.

말로야 시험은 시험이고, 거기에 사적인 이야기가 들어가서야 안 된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럴지는 당연히 의문이었다.

그 때, 가장 먼저 나선 것은 나츠키였다.

예상대로였다.

“비켜.”

그녀가 꺼낸 말은 단 한 마디. 굉장히 경우 없는 말이었으나, 애초에 나츠키 자체가 그냥 경우 없는 인물이라는 걸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도 그녀의 행동에 놀라움을 표하지 않았다. 만약에, 내가 저런 식으로 말하면 다들 기절초풍을 할 텐데.

나는, 해 봤자 이 정도밖에 못 한다.

“호에에에, 이거는…… 우리가 먼저 발견한 고애오…… 우리가 먼저 오기도 했서얌…….”

그나마 나츠키라서, 최대한 강경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게 이 정도였다. 나츠키는 짜증 난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아, 좀 꺼지라면 꺼져!”

“호에에엥.”

나는 곧바로 찌그러졌다. 희한하게 나츠키의 말에는 그다지 무섭다는 느낌 같은 게 없긴 했는데, 일단 나는 뭔가 말싸움이란 게 되질 않는다. 그냥, 다른 사람한테 맡기는 게 낫다.

“흠흠,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소. 이 마수는 우리가 먼저 발견한 것이 맞소!”

그렇게 내가 뒤로 물러서자마자 이안이 앞으로 튀어나온다. 역시 후일 정의의 집행자(씹덕)가 되는 남자답다.

“꺼져.”

“…….”

하지만, 내 감탄과 동시에, 나츠키의 싸늘한 눈빛과 함께하는 한 마디를 듣고는 크게 상처받았다는 듯이 그대로 침몰한다. 씹덕(정의의 집행자)1패.

그 옆에 있는 퇴마사, 강연준은 그냥 자기 친구 따라 같이 찌그러져 있다. 애초에 쟤는 나츠키에게 호감이 있는 모양이었으니.

정녕 저 조그만 은발 머리 폭군을 막을 사람은 없는 것인가. 나는 그렇게 개탄했다. 그나마 믿을 구석이었던 일리아는 저기 신하연이랑 아까부터 눈싸움만 오지게 하고 있다. 저 둘은, 아무래도 이미 다른 세계에 사는 모양이었다.

“와, 나츠키상~ 최고예요!”

“근데 우리가 늦게 발견하긴 했는데…… 좀 미안하다.”

나츠키를 제외한 다른 팀원들은 아무래도 저쪽도 이쪽만큼이나 심약한 모양이었다. 다들 그녀의 뒤에서 응원이나 하고 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J를 쳐다봤다. 그녀는, 내 시선을 느낀 듯 이내 이쪽을 쳐다본다.

“조오기…… 언냐야…….”

“뭐.”

돌아오는 대답은 퉁명스러운 말. 나는 그냥 체념했다. 얘가 도와줄 리가 없지.

나는 그렇게 툴툴거렸으나, 다시 이어진 J의 말은 뜻밖의 것이었다.

“도와줘?”

“호에엥?”

“도와줘, 말어 띨빵아. 딱 말해.”

“도와…… 주는 고애오…….”

나는 말하면서도 긴가민가했다. 그게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아닌지 헷갈렸으니까.

하지만 그런 걱정도 잠시 J가 나츠키의 앞으로 튀어 나갔다.

탁.

“어……?”

그 속도는, 순간 나츠키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할 만큼 빨랐다. 심지어 나름 감각적인 측면에서는 발군인 내 동체 시력으로도, 겨우 잡아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것은 분명 특성. J가 암살자 중에서는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강해지는 데에 일조한 특성의 효과였다.

“뭐야? 넌.”

강자는 강자를 알아보는 걸까. 나츠키는, 본능적으로 J가 강자임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아니 그것을 넘어서 작게 몸을 떨고 있었다.

J는 그저 평소처럼 장난스레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비되는,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나츠키의 귓가에 울렸다.

물론, 청력이 생도들에 비하더라도 배는 뛰어난 내 귀에도.

“뭣도 아니면 그냥 조용히 있어. 쟨 괴롭혀도 내가 괴롭히니까.”

“으…… 으…….”

나츠키는 그에 반박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눈물을 글썽였다. 쟤가, 저런 표정을 지을 줄은 몰랐는데.

그 모습은 지금까지 그녀에게 어느 정도 유감이 있기는 했던 나조차도 조금 머쓱해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뭐 해? 안 꺼지고.”

“익…….”

“왜, 한번 해 보게? 나야 좋지.”

나츠키는, 괜스레 어떻게 반항이라도 해 보려는 듯. J를 쳐다보다가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몰라도, 아마 J가 나츠키에게 자신에 대한 공포를 심어 놓은 모양이었다.

나츠키는 이내 내 쪽을 쳐다봤다.

갑자기 나는 왜?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입술을 뒤틀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소리쳤다.

“다, 다른 데로 가자!”

“에엑? 갑자기?”

그녀의 급작스러운 선회에, 다른 조원들은 다들 당황하는 모양이었지만, 나츠키는 아무 말 없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어어, 진짜 갔어?”

“야, 빨리 가 봐.”

얼떨결에 조장인 나츠키를 따라 물러서는 조원들. 그렇게, 싱겁게 분쟁이 끝나 버렸다.

“헤으응…… 언냐야.”

지금까지 그저 정신 나간 년으로 보이던 J가, 갑자기 천사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사정을 모르는 다른 팀원들, 특히 강연준과 이안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J를 바라봤다. 지금까지 나를 업고 다니던 모습밖에는 보질 못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하지만 그런 혼란도 잠시였다.

“꾸어어엉!”

이내 이쪽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몬스터가, 나츠키 조의 소란과 함께 이쪽을 바라봤기 때문이었다.

J는 이번에도 자기가 조장인 것처럼 나섰다.

“다들 아까 기억나지? 똑같이 하자고.”

이번에는, 그녀에게 따로 군말을 하는 조원이 없었다. 이거 조금 뭔가 기분 나쁘네. 조장은 난데. 그렇게 생각하며 J를 쳐다보니, 그녀는 이미 등을 내주고 있었다.

“호에에.”

그게 괜스레 또 부끄러워서, 나는 얼굴을 붉히며 그 등판에 올라탔다. 하지만 막상 올라타자, 점점 흥이 나기 시작했다.

“호에에에! 븝미 타격대 가는 고애오!”

마치 적토마를 만난 여포처럼 신이 나선 J의 등 위에서 마법을 날려 대었다. 중간에 J가 나를 쳐다보며, ‘이년이 아주 날 탈것처럼 생각하네’ 하며 한 소리를 하기는 했지만, 나는 잠시 조용했다가 이내 다시금 소리를 지르며 마법을 날려대었다.

“븝미 썬더! 븝미 윈드! 븝미 파이어!”

*    *    *

그놈의 지랄. 븝미 썬더, 븝미 윈드, 븝미 파이어의 결과는 중반부터의 급격한 체력 저하와 동시에 찾아온 마력 탈진이었다.

나는 막판에 가서는 그냥 축 처진 채로 J의 등 위에 시체처럼 업혀 다니기만 했다. 물론, 이미 우리 조의 점수 상황은 상당히 좋아진 상태였기에, 내 도움 없이도 금세 목표 점수를 모두 채울 수 있었다.

우우웅.

[1조, 목표 점수를 모두 달성했습니다! 1조, 목표 점수를 모두 달성했습니다! 1조, 목표 점수를 모두 달성했습니다!]

알림음이 울리며 폰 위에 문구가 흘러간다. 아까 떠오른 점수 및 순위표를 봤을 때, 3조랑 점수 차가 2점 정도였나. 확실히 1등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와, 우리가 1등을 하나? 솔직히 난 못 할 줄 알았는데.”

“허허, 친우여! 괜히 이 조로 데리고 온 게 아니지 않겠는가.”

강연준과 이안은 서로 손발이 잘 맞았다. 서로의 무위에 대한 칭송을 하며, 복귀 지역으로 걸어갔다.

“띨빵아. 내려.”

“네에엥…….”

J는 공략이 끝나자마자, 나를 등판에서 내렸다. 그녀의 등판은 내가 업혀 있던 모양 그대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는데, 별로 개의치 않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일리아는 내가 그녀에게서 내린 것을 확인하고는 내게 달려왔다.

“다나아아~”

난 그래도, 조금은 나한테 삐져 있을 줄 알았는데. 일리아는 전혀 그런 게 없는 모양이었다. 나름 독점욕도 강한 성격인데, J에게서 느껴지는 꺼림칙한 느낌을 느낀 건가.

일리아는 이내 다가와선 나를 꽉 껴안았다. 나는 그녀의 품에 안겨서 예의 그 포근함을 느꼈다.

“헤으으응…….”

잠시 그 푹신함에 안정감을 느끼고 있을 때쯤, 갑자기 일리아가 코를 킁킁거렸다.

“흐으으읍…….”

한 차례 호흡을 들이마시고, 다시 킁킁. 냄새를 맡는 모습에 나는 그녀를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내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 언냐야!”

뭔가 악취라도 나는 건가, 싶은 생각에 조금 머쓱해졌다. 물론 나는 딱 그 정도의 생각까지였지만 몸은 자연스럽게 ‘애기븝미’처럼 반응했다.

“호에에에엥, 맡지 마라여…….”

“왜, 다나. 부끄러워?”

일리아는 마치 사십 대 아저씨처럼 히죽거리면서 이내 내게 더 달라붙었다. 그렇게까지 하니까, 솔직히 나도 부끄러워졌다.

한참을 그렇게 킁킁거리던 그녀는 이내 이상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다나, 뭐 향수 쓰는 거 있어? 아니,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왜여, 언나야?”

“아니, 땀을 이렇게 흘렸는데…… 사과 향인가? 이게 뭐지.”

아예 땀이 많이 난 곳을 찾아 얼굴을 들이미는 바람에, 몸이 순간적으로 버둥거렸다.

“그런 곳 안 대여!”

“쩝…… 알았어.”

일리아는 입맛을 다시더니 내 손을 잡고 걸었다. 그런데, 입맛은 왜 다시는 건데.

도대체 왜 저러나 싶어, 나는 스스로 내 땀 냄새를 맡아 보려고 했다. 아까까지는 몬스터들의 혈향이 너무 강해서 제대로 느끼지 못했는데, 진짜로 뭔가 달큰한 냄새가 났다. 이게 진짜 땀 냄새인가?

나는 잠시간 생각했다. 혹시, 이런 것도 내가 예전에 설정을 넣었었나?

그렇게 대략 수십 초간 고민을 한 끝에 기억을 떠올려 내었다. 아, 했었구나.

[애기븝미짱: 하와와와, 오늘도 옵바야들 모두 븝하! 븝미쟝 오느른 주변 공원에서 운동을 하고 왔담니다…….]

[업스커트블랙니삭스: 그럼 땀 줄줄 흘리면서 컴 킨 거? 홀아비 냄새 오지겠네;]

[애기븝미짱: 호에에, 그런 거는 물어보는 거 아닌 거시애오…… 그리구 븝미쟝 땀은 달콤한 과일 냄새가 나는 고애오…… 맛은 새콤달콤해오…….]

[불사신선: 지럴랄…… 육갑을……! 떨거라[email protected]@@]

그 지랄 육갑이 만들어 낸 결과물인 모양이었다. 순간 맛까지 그대로 따라왔나 싶어, 혀를 갖다 대려던 나는 이내 일리아가 나를 쳐다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만두었다.

왠지 내가 하면 일리아도 하려고 들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저기 다나…… 혹시…….”

“아, 안 되는 거애오! 아무리 언냐야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에얌…….”

“칫.”

예상이 맞았던 모양이었다.

일리아가 질문할 때, 순간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    *    *

조별 과제의 결과, 결국에는 우리 조가 1등……을 할 줄 알았으나 안타깝게도 2등에 그쳤다. 1등은 장선우가 포함된 3조였다.

결국에 1등을 놓치긴 했지만 나츠키 조를 이겼다는 것만 하더라도 의미 있는 것이었다.

나는 직접적으로 J에게 당한 나츠키가 후유증이 클 줄 알았는데, 바로 다음 날부터 회복해선 똑같은 모습으로 교내를 누볐다. 다만, 신하연은 꽤나 시무룩해진 듯한 모습이었다. 의외로 멘탈이 약한 쪽은 신하연이다.

“J 언냐야…… 왜 부른 걸까여.”

뭐, 그쪽 걱정은 거기까지였고, 지금은 내 코가 석 자나 빠진 게 문제였다. 주말인 지금, 나는 지금 J가 말한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그곳은 나 또한 익히 아는 곳. J가 소속된 빌런 집단의 아지트 근처였다.

사실 언젠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 곳이기도 했다. 애초에 내가 빌런들의 집단에 들어간다면, 이쪽에 들어가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했으니까.

흑사회나 발할라의 집회 같은 심각하게 악(惡) 성향으로 치우친 곳은 내가 견디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애초에 빌런 집단에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나 싶었던지라, 생각에서 멀어져 있었는데…… 이렇게 강제로, 준비되지 않은 시기에 오게 되니 별로 썩 개운치는 않았다.

잠시간 기다리자 약속된 시간이 되었고 그녀가 나타났다.

“오, 띨빵이. 먼저 와 있었네.”

J는 착 달라붙는 검은색 가죽 슈트를 입고 있었는데, 탄탄한 몸매와 날카로운 인상에 잘 어울렸다. 아마도 저건 ‘작업’을 할 때 입는 복장. 아직 17살인 그녀라면 작업 경험 자체가 없겠지만, 후일엔 저 모습만 봐도 다들 도망가기에 바쁜, 그녀만의 심벌 중 하나가 되겠지.

그 모습은 상당히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 끌었다. 나만 해도 길거리에 지나다니면 사람들이 자주 쳐다보긴 하지만, 저쪽은…… 느낌이 달랐다.

특히 남자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막 쏠리자, J는 그들을 인지한 모양이었다. 순간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불안했는데, 다행히도 그냥 넘어갔다.

“호에에에, J 언냐야…… 딱 맞춰 오는 거애오…….”

“그래, 이 식빵년아 딱 맞춰 왔다. 그게 뭐 불만이라도…… 잠깐만, 이년 이거 옷은 왜 이렇게 입고 왔어.”

“오, 옷이여?”

J는 날 보자마자 뭔가 이상하다는 듯,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이내 뭔가를 알아낸 모양이었다. 그녀가 지적한 것은 바로 내 옷.

겉보기에, 나는 평범한 후드와 바지를 입고 있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분명 그 안에는 다른 옷을 입고 있기는 했다.

“그래…… 생긴 거랑 다르게 이런 거, 좋아하는 취향이었나? 이거 완전 변태…….”

“아, 아니거든여! 븝미쟝 그런 거 아니애오!”

“맞네, 야. 그거 별로 부끄러운 거 아니야. 좀 취향 타는 옷 좀 입을 수도 있지. 나만 해도…….”

J는 놀림거리 하나 찾았다는 듯 싱글거리며 말을 이어 갔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김수혁 이 개새끼.

지금 내가 후드 안에 입고 있는 건 김수혁의 그 취향이 가득 담긴 방어구였다. 이쪽 세계에서는 방어구 위에 다른 옷을 입으면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당장 싸울 일이 있을 때 벗으면 되었으니, 안 입는 것보단 낫겠다 싶어 외출 때 이렇게 입고 나온다.

J는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그 사실을 간파해 낸 것이었다. 내가 쪽팔림에 얼굴을 감싸 쥐자, 이쪽으로 다가와선 등을 팡팡 쳤다.

“이년아, 뭘 그런 거로 질질 짤라 그러냐. 우는 건 아플 때만 우는 거라니까.”

“언냐야가 등 때리는 게 아프거든여!”

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렇게 빼액,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눈치를 봤다. 시발, 내가 방금 무슨 말을 한 거지.

하지만 내 생각과 다르게 그녀는 담담했다.

“엄살이야. 알았어, 안 할게.”

뭐, 약이라도 먹었나?

평소와 다른 모습에 나는 의아해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별것 아니라는 듯 말을 이어 나갔다.

“됐고, 너 오늘 내가 왜 나오라고 한지 아냐?”

“호에…… 모, 모르는 고애오…….”

“내가 물어봤잖아. 그놈들 죽인 거 너 맞냐고. 던전에 있던 놈들.”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이 이야기를 굳이 자기네 아지트에서 꺼낸다? 혹시 정말로 J 쪽 세력에서 벌인 일이었나. 그래서 보복을 하려는 거고?

“야, 대충 다 알고 말하는 거니까 그냥 맞으면 맞다, 아니면 아니다 말해.”

“그, 그게…….”

나는 순간 사고 회전이 빨라졌다.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까. 사과라도 하고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그 생각이 들고 난 직후, 나는 곧바로 말했다.

“그, 일부러 그런 건 아니구여…… 그 아조시들이 너무 무서어서…… 미아내오!”

제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하필 그런 일이 있었던지라 자기 방어를 위해서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라는 말이 이따구로 나왔다.

그냥 망했다 싶어서, 눈치를 살피고 있는데 J는 그저 멀뚱거리고만 있었다.

“……미안할 건 또 뭐야. 그러니까 니가 맞다 이거지?”

J는 내 사과가 뜬금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품에서 뭔가를 꺼내었다.

단도, 폭탄, 총? 온갖 것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으나 정체를 드러낸 것은 그것들과는 거리가 꽤나 먼 것이었다.

“자, 이거 우리 엄마가 주는 선물이야.”

“엄마가…… 주는 선물이여?”

“어, 띨빵이 니가 처리한 애들이 옛날에 우리 엄마 등에 칼 꼽은 놈 부하거든. 고맙다고 전해 달래.”

갑자기 무슨 선물? 게다가 J의 친모는 이런 일에 선물을 줄 인물도 아니고, J가 그렇게 전달해 줄 만한 사이도 아닐 텐데.

“엄마…… 라며는…….”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엄마’라는 작자가 누군지 깨달을 수 있었다.

J가 소속된 빌런 집단. 그 수장을 소속원 전부가 엄마라는 호칭으로 불렀었지. 그러니까 내게 선물을 준 것은 바로 J가 속해 있는 집단의 수장이란 것이었다.

“그거 진짜 좋은 물건이야. 내가 빼먹으려고 하다가, 우리 엄마한테 머리 깨질까 봐 참았거든. 잘 써라.”

“오늘, 나오라고 한 게…… 이거 때문이애여?

“이게 첫 번째 이유. 두 번째 이유도 있어.”

아무래도 이게 본론인 듯,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녀는 이내 마치 내게 깜짝 선물이라도 주는 양 선포했다.

“두 번째 이유는. 이건 그냥 개인적으로 생각한 건데, 일단 허락은 받았거든? 너, 내가 어디 속해 있는지 알지? 내숭 떨지 말고 말해 봐 띨빵아.”

“알기는…… 해여.”

이젠 딱히 뭐 숨길 것도 없었기에, 솔직히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이내 씨익 웃었다.

“우리 쪽에 입단하는 연놈들은 다 엄마가 데려오는 애들이거든? 그런데 나를 포함해서 몇몇, 그 애들은 한 명씩 추천해서 입단시킬 수가 있어.”

잠깐만, 설마.

내가 지금 생각하는 그 얘기는 아니지?

나는 J가 나보고 마음에 든다고 한 게 비꼬는 소리인 줄로 알았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이나 이야기가 돌아가는 꼴로 봤을 때는…….

“너, 우리 쪽으로 들어와라. 니가 좀 띨빵이어도, 내가 잘 가르친다고 했으니까. 엄마도 아마 받아 줄 거야.”

“호에에에.”

아무래도, J는 진짜 내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가득 차 있는 J의 얼굴을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언냐야…….”

“어, 왜?”

“그건 좀, 힘들 것 같은 고애오.”

“어?”

나는 당장에라도 그녀가 돌변할까 봐, 옷을 찢고 마법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그래도 이기진 못하겠지만, 어떻게 최대한 저항은 해 봐야지.

하지만 그녀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굉장히 시무룩한 얼굴로 변하더니 말했다.

“왜……? 왜 싫은데?”

그 반응은, 꽤나 의외였던지라 나조차 황당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J가, 원래 이런 캐릭터가 아닌데.

내가 의아해하던 때, 그에 답을 해 주듯 갑작스레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던전에서 빌런들을 모두 잡은 이후, 눈앞에 떠오른 여러 메시지 중 하나.

특성이 진화하며, 세부 특성 중 하나의 잠금이 해제되었습니다.

세부 특성…… 잠금?

그것이 기억난 순간, 나는 작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상태창 씨 제멋대로인 고애오…….”

시발 뭔데 그걸 니 맘대로 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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