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븝미쟝이 꽃을 따여!
나는 분명히 내가 처음, 특성창에 적힌 문구에 대해 인식을 하게 된 날을 기억한다. 그것은 내가 각성 판정을 받던 날. 당장에 성장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던 때.
그때 나는 스틸 하트에 갔다가, 여러 우여곡절 끝에 김수혁을 만났다. 그리고…… 충격을 받았지.
그때 김수혁이 내게 보여 준 추태와, 이후 제작한 방어구들의 모양 때문에 나는 문제가, 이 특성에 있다고 생각하고 잠가 버렸다.
솔직히 지금 생각하면 딱히 특성 때문은 아닌 것도 같았지만, 당시의 임팩트가 너무 컸던지라 난 아직까지도 특성을 활성화하지 않고 있었다.
언젠가 정말 필요한 때가 되면 활성화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기는 했으나 이렇게 강제로 해금되었을 줄은 몰랐는데.
나는 세부 특성 항목, 그 ‘븝미쟝은 짱짱쎈 언냐야 옵바야들이 조와해여!’의 설명을 살폈다.
사용자 다나 크리스틴에 대해 ‘강자’들이 맹목적인 호감을 가진다. 특성의 숙련도가 높을수록, 대상의 능력과 가진 바 재능이 출중할수록 그 정도가 배가된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과거의 설명. 하지만, 특성이 성장했다고 하는 지금의 내용은 조금 괴리가 있었다.
사용자 다나 크리스틴에 대해 ‘대상으로 지정된 강자’들이 일정 수준까지 호감을 갖기 쉽도록 한다.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지정이 해제되고, 또한 그 이상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지정은 불가하다. 대상의 능력과 가진 바 재능이 출중할수록 속도는 빨라진다. 현재 지정자(1/1)
지정자
1. J
얼핏 보면 제한적인 문구만이 잔뜩 들러붙은, 되레 하향당한 듯한 설명.
하지만 나는 이러한 제한들이 붙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다. 히어로 판타지에서도 이렇게, 진화하는 형태의 특성들을 많이 봐 왔으니까.
제한적인 문구가 붙었다. 그것은 그에 대비하여 특성 자체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고, 또한 직관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특성의 효과는…… 이전보다 훨씬 강하다는 이야기가 되겠지.
잠깐만, 그렇게 생각하면 김수혁은 그 특성의 효과를 비교적 약하게 받고도 그랬다는 건가? 하기야, 그 사람은 특성을 끄고 나서도 비슷했으니…… 그냥 변태인 게 아닌가 싶다.
“왜 싫은 거야. 띨빵이 너도 우리 조직을 아는 것 같아서 하는 얘기지만, 우리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여기 입단 제의를 하면 오지 않을 사람들이 더 드물어. 진짜 좋다니까? 내가 이걸 왜 설명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지금, J가 저렇게 입단하라고 난리를 치는 것도 특성의 힘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하필 쟤가 지정된 거야? 나는 그것이 의문이었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하다 싶었다.
애초에 사고가 난 이후, 아카데미로 돌아오기 이전까지 접촉한 강자는, 일리아와 그녀의 고모뿐이었다. 리아 메이슨. 하지만 그녀와는 그렇게 장기간 같이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일리아는…… 아마 호감도가 이미 그 이상으로 올라가 있었겠지.
그 이후, 내가 아카데미로 돌아온 시점. 그때 가장 처음으로 오랜 시간 동안 접촉한 ‘강자’.
그것이 바로 J였다.
그러면 그때 거기서 대화를 나눌 때 지정된 건가.
어쩐지 중간에 태도가 싹 변한다 싶더라니! 나는 이제서야 모든 일들이 왜 그렇게 돌아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럼 아카데미에서 나한테 한 행동들도 호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소린가. 그렇게 생각하니 또 들어맞기도 하나, 역시나 어딘가 뒤틀린 부분이 있기는 했다.
“혹시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그래서 안 들어온다는 거면…….”
J는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얘기를 해 댔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살펴봤다.
내게 분명한 호감을 품고 있는 대상, 일리아와 비교한다면 그녀의 호감은 그것과는 차이가 분명히 있었다.
일리아 같은 경우에는 나를 보호의 대상, 동생 내지는 딸 같은 존재로서 바라보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느꼈다.
하지만 J는 조금 다르다. 나는 그녀의 성정을 잘 알고 있다. 친하게 지내는 몇 안 되는 인물들. 엄마라고 부르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장을 제외하면, 동료들조차 진정으로 인간적인 정을 주고받지 않는다.
그녀가 호감을 가지는 것은 오로지 물건. 불행했던 유년 시절에 대한 보상이라도 찾으려는 것인지, 그녀는 아름답거나 비싼 물건에 대해서 집착증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나는 지금 그녀가 내게 보이는 태도가,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고 느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게 뭐 딱히 싫다는 것도 아니고, 딱 그 정도의 호감만 있다면 나는 충분했다.
후으읍.
나는 심호흡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바에야 내가 조금 당당하게 나가도 상관없지 않겠나 싶어서.
“언냐야.”
“왜? 왜 싫은 건데? 아, 진짜 띨빵아!”
“호에에엥.”
하지만 이내 J가 조금 히스테릭한 모습을 보이자마자, 다시 쭈그러들었다. 이런 시발, 애초에 이 몸하고 당당함 따위의 단어는 완전히 미스 매치였다.
나는 쭈그러졌다가 눈치를 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으, 막 시른 건 아닌 거애오…… 고런데, 고민이 되는 고시애오…… 븝미쟝은 아가라 나쁜 짓도 잘 못하고여…….”
“우리 나쁜 일 하는 곳 아니거든? 일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나쁜…… 짓을 할 때도 있는 것뿐이야!”
그게 그거 아니냐.
그 기적의 논리에, 나는 잠시 벙쪄 있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그건 그런데여…… 생각해 보고 말할 게여 언냐야.”
“……혹시 내가 진짜 뭐 장난 좀 쳤다고, 삐지거나 그런 건 아니지? 그런 거면 내가 앞으로 안 그럴게. 걔, 누구였지? 그 금발. 걔한테도 잘해 줄 테니까.”
그 금발이라면 일리아를 말하는 것이겠지. 안 그래도 말하려던 거였는데.
나는 나름대로 단호한 표정을 지어 보이려고 노력했다. 어쨌든 이런 말은 그렇게 해야 효과가 올라가는 법이니까. 하지만 표정이 자동으로 풀어지기 시작하며 굳은 입술만이 파들거렸다.
“그, 그그. 다른 생도 옵바 언냐야들이랑도 잘 지내 주는 거애오! 븝미쟝은 그런 언냐아가 좋담미다…….”
“그것만 하면 들어오는 거야?”
“그리고 조금…… 너무 계속 달라붙지 마라 주새여…….”
나는 마지막으로 소심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하도 일리아가 내 옆에 따라붙는 J에게 신경을 쓰길래 하는 얘기였다.
J는 그걸 알고 더 그러는 듯한 느낌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녀는 조금 다르게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의외로 고개를 흔쾌하게 끄덕인 그녀는 이내 말했다.
“알았어, 지금부터. 그럼 나중에 우리 쪽에 들어오는 거지?”
“조, 조럽은 하고여!”
“좋아. 그러면…… 졸업 이후에. 엄마한테 미리 말해 둬야겠다. 그럼.”
J는 마치 백화점에서, 마음에 드는 액세서리라도 하나 구한 듯한 얼굴로 씨익 웃었다. 그러고는, 순간 눈앞에서 사라졌다.
잠깐.
사라져?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나조차도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신을 집중하자 어딘가에서 그녀의 기척이 느껴졌다.
“호에엥…….”
하아…….
그것은 그녀와 내가 이야기를 나누던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가로수 사이였다. 내가 한숨을 쉬며 그쪽을 바라보자, J는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놀라면서도, 내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옆에 있지 말라니까, 멀리서 저렇게 지켜볼 생각인가.
정말, 대단한 발상이시네요.
* * *
J가 특성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내게 충격을 줬지만, 동시에 또 안도감이 들게 했다. 만약에 적절하게 특성이 발현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J한테 된통 찍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애초에 펜타곤에서 그녀의 장난에 곤혹을 치르던 주연 인물들도, 호의에서 비롯된 행동의 결과를 받은 것이었다.
그녀가 진심으로 증오하거나, 혹은 혐오하는 대상에게 하는 행동을 본다면 마치 애교로 보일 정도의 그런, 가벼운 장난들.
만약에 내가 그렇게 되었다면 딱히 저항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던전 사태 때도 느낀 것이지만, 나는 빨리 더 강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어디서 암기 하나만 퓩, 던져도 호에엥, 하며 죽어 버려야 하는 이 몸으로 살기엔 세계관이 너무 험난했다.
그렇다면 지금 가장 빨리 강해지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사실 내게는 그 수단이 워낙에 많았다. 의지만 있다면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들이.
다만 지금까지는 튀는 행동을 하면, 되레 빌런들의 이목을 끌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자중해 왔지만……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니 그렇지 않더라도 빌런들은 계속 꼬일 것만 같았다.
운이 좋다매. 시발.
나는 특성창의 그 븝미쟝은 운이 조와요~ 하는 문구에 대해 저주를 퍼부었다. 그놈의 필기시험 말고는 하나도 쓸데없는 게. 그게 운이 좋은 거냐?
“하와와와. 너모 힘든 고애오…….”
힘들어 죽겠네, 이럴 줄 알았으면 택시라도 타고 올걸.
나는 지금 집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산지에 있었다. 이쪽 세계관에서 상당수의 산지는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히어로가 아닌 일반인이 출입 가능한 산은 더더욱 드물었다.
그 이유는 산지에도 필드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 필드들은 대략 15~25등급으로 상당히 약한 축에 속하는 몬스터들이 많았지만, 매복이 쉬운 지형의 특성 때문에, 히어로들은 산지에서 사냥을 거의 하지 않았다.
대부분 이곳을 찾는 것은 약초꾼 내지는 직접 연구를 하러 온 마법사나 연금술사들.
초목이 무성한 곳에 마력이 깃들면 꽤나 여러 가지 신기한 것들이 많이 생겨나곤 했으니까.
나도 굳이 따지자면…… 약초꾼이라고 해야 하려나.
어쨌든 목적은 그거였으니까.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바로 약초를 따기 위해서였다. 다른 히어로들이 듣는다면 곧바로 코웃음을 칠 만한 이야기였다.
약초를 따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일단 기본적으로 채집 특성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오, 거기에 더해 여러 가지 탐색과 관련된 특성이 있어야 했다.
나는 두 가지 모두 없다. 거기에 더해 지금도, 별로 높지도 않은 산 중턱에 오르기까지 십수 번을 헤으응, 거리며 쉬었다 올라가기를 반복할 정도로 체력도 약했다.
“븝미쟝, 그래도 포기하지 않아여!”
하지만 나는 비교적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오늘 약초를 왕창 따 갈 수 있다는 근거를.
일전에 히어로 판타지에서 한 이벤트. 숨겨져 있는 한 산속 들판에 귀중한 약초가 잔뜩 나 있다는 설정으로, 유저들에게 채집 특성이 없는 이들도 약초를 구할 수 있도록 해 준 일이 있었다.
그때 컴퓨터 앞에서 밤을 새워서, 대략 현금 7만 원치의 약초를 캐낸 경험이 있다. 게임에 돈을 아끼려는 마음보다는 성취감 때문에 그랬었지.
아무튼 그 벌판의 위치를 나는 기억했다. 그런고로 이곳을 찾아온 것이었다.
“호에에, 역시나인 고애오!”
이쯤 되면 나타날 법한데 생각하던 와중, 나는 그 벌판의 입구임을 알려 주는 표식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노란색과 흰색의 꽃.
나는 거기에 대고 말했다.
“흰 꽃 씨~ 노란 꽃 씨~ 일어나는 고애오~”
그러자 뿌드득하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꽃들. 녀석들은 도대체 발음 기관이 어디에 달려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꽃밭에 들어가려는 건가?”
“그렇다면, 우리의 문제를 맞춰라!”
게임 속 대사와 완전히 똑같은 문구. 그를 내뱉으며 줄기를 마구 흔드는 녀석들.
솔직히 그게 조금 그로테스크했던지라, 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순간 고개를 흔들고는 이내 바닥을 쳐다봤다.
“아가야는 조은 것만 봐야 해여…….”
혹여 정신력이 바닥나면 또 괜히 모아 둔, 그 불사신선 폼의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것이었으니까.
다행스럽게도 이내 녀석들은 그 발광을 멈추었다.
이윽고 흰색 꽃이 음산하게 웃으며, 문제를 내었다.
“킬킬, 우리 꽃밭에는 7121송이의 꽃이 있다. 그렇다면 그중 흰색 꽃의 숫자는 몇 개일까아~요? 몇 송이라고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얼핏 들으면 당황스러운 문제. 도대체 그걸 어떻게 아냐고 분통을 터뜨릴 만한 것이었으나, 나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한 송이애오!”
저 녀석들의 꽃밭에는 여러 송이의 꽃이 있지만, 그중 흰색 꽃은 여기 있는 이놈밖에는 없다. 이내 나는 녀석의 반응을 기다렸다.
“호오…….”
아무래도 녀석은 내가 어떻게 맞춘 것인지 모르겠다는 듯 침음을 흘렸다.
나는 웃었다. 이게 바로 게이머의 힘이지. 이제, 아홉 문제만 더 맞추면 되나? 두 문제 틀리면 끝이니까…… 정확히는 여덟 문제만…….
“땡땡땡땡땡땡! 틀렸다! 틀렸어!”
“호에에에! 한 송이 맞자나여!”
“너는 한 송이, 가 아니라 ‘한 송이애오!’라고 말했다. 틀렸지롱~ 틀렸지롱~ 난 정확히 말하라고 했다!”
아니 이게 뭔…… 씨벌.
그건 그냥 말투라고 이 정신 나간 꽃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