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불꽃 씨가 되고 시픈 고애오?
“틀렸다! 틀렸어! 우헤헤헤헤!”
흰 꽃 녀석은 그렇게 계속해서 나를 조롱해 대었다. 처음에는 그냥 황당함에 얼이 빠져 있었던 나도, 슬슬 열이 받을 정도로.
어, 진짜 열받네.
저런 식으로 하면 내가 진짜 멍청해서 틀린 것 같잖아, 억지로 틀렸다고 한 주제에.
원래 게임에서도 녀석은 문제를 틀리면 이런 식으로 조롱을 했었다고 한다. 나야, 이미 정답을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진입을 했으니 겪은 적은 없지만, 게임에서 이런 식으로 조롱을 받았다고 해도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좀 열받는다. 저 촐랑거리는 줄기의 움직임이 아주…… 뭣같다. 잡아서 비틀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솟아오른다. 물론, 완력이 부족해서 상상일 뿐이지만…….
나는 녀석에게 다가가 그 줄기를 쿡쿡 찔렀다. 그러자 흰 꽃은 우뚝 멎으며 이내 내게 험악한 목소리로 말했다.
“앙? 뭐야! 뭐야뭐야뭐야! 왜 갑자기 건드리고 난리야! 앙!”
몸을 파닥파닥거리며 내게 반항하는 녀석. 그 과정에서 꽃가루 비슷한 것이 튀었는지 저절로 재채기가 나온다.
“에흥!”
그 재채기인지 뭔지 모를 소리를 내며, 꽃가루를 뿜어낸 나는 이내 녀석을 노려봤다.
코가 시큰시큰한 것이, 아무래도 알레르기가 있는 모양인데.
나는 그 때문에 더 열이 올랐다. 코를 슥슥 문지르며, 나는 이내 손에 마나 스폿을 띄웠다. 그러고는 이내 말했다.
“저기…… 흰 꽃 씨.”
“뭐야! 첫 문제부터 틀려 버린 패배자한테는 들을 말 없거든! 어차피 멍청한 네년은 다음 문제도 틀릴…….”
녀석은 그러면서 나를 쳐다봤는데 내 손에 떠올라 있는 것을 보고는 줄기를 파들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손 위에 떠올린 것은 새빨갛게 불타고 있는 화염구.
일렁임과 동시에 열기를 뿜어내고 있는 녀석을 보더니, 놈은 말을 멈췄다.
“불꽃 씨가 되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하는 거애오…… 아직 안 끝난 고시애오!”
“아, 알았다. 그러니까 그거 좀 치워!”
나는 그제서야 화염구를 소멸시켰다. 흰 꽃은 내가 이런 식으로 나올 줄 몰랐던지 꽤나 당황한 듯한 모습이었다. 한 차례, 한숨을 내쉰 녀석은 몸을 부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별 미친년이 다 있네. 불꽃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띨빵이에서 미친년까지, 최근 들어 참 별 이상한 호칭들을 많이 듣는다 싶었다. 애초에 안 빡치게 하면 되잖아.
“흰 꽃 씨~ 입을 조심하는 거애오?”
“아, 알았다니까!”
그 아가리 좀 닥치면 좋을 텐데. 원래 내가 하려던 말투가 더 험악하긴 했으나, 결국에 녀석이 이해한 느낌은 별로 달라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가 성질이 많이 죽어 망정이지 다른 생도들…… 예를 들자면 뭐 나츠키 같았으면 당장에 그 카타나를 뽑아 들고, 줄기 부근을 일도양단해 버렸을 것이 분명하다.
“하와와, 다음 문제 내주는 거애오…….”
“말투랑 하나도 안 어울리는 행동거지구만…… 아무튼 다음 문제.”
녀석은 아무래도 이 이후 조금씩 자중하려는 듯, 까불거리기를 멈추고 문제를 내기 시작했다. 그놈의 정확하게 말해라, 하는 소리도 이젠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아무런 장애도 없었다.
녀석들이 내는 것은 내가 다 아는 문제. 실상 미리 정답을 알고 있지 않다면, 처음의 그 흰 꽃의 개수를 말하라는 것만큼이나 어이없는 문제들이었다.
예를 들어 이 산에 있는 흰 점박이 코볼트의 털의 개수를 말하라든가(녀석은 탈모라서 수염 일곱 가닥밖에는 없다), 혹은 이 산의 정상에 있는 제일 큰 나무의 수명이 얼마가 되었느냐, 하는 얼토당토않은 문제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모두 답했다. 원래는 게임사에서 이벤트를 발표하자마자, 수십만 명의 유저들이 모두 달려들어 알아낸 답들이지만, 지금은 그러한 환경이 아니니 꽃들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 어떻게? 어떻게 다 아는 거야! 아는 거냐고!”
흰 꽃은 내가 결국 10번째 질문마저 대답하자, 아예 통곡을 했다. 그때까지 그냥 놀란 듯이 가만히 있던 노란색 꽃은 땅에서 뿌리를 불쑥 꺼내었다.
그러고는 그 뿌리로 흰 꽃을 토닥거려 주는데, 그 꼴이 상당히 기괴했다. 그러고 보니, 문제를 다 맞추지 못하면 저 노란 꽃이랑 싸워서 이겨야만 들어갈 수 있었나. 내 기억상 당시 나와 같이 랭커였던 길드원이, 노란 꽃과 비등비등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들어가 버려! 이 악한! 이 치한! 우리 꽃밭을 엉망으로 범하라고!”
“호에에에에! 그런 나쁜 말은 안 되는 거야요. 불꽃이 되고 시픈 건가여?”
“……들어가세요.”
나는 정중하게 변모한 녀석이, 몸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볼 수 있었다.
“호에에에!”
드넓게 펼쳐진 형형색색의 꽃들과, 중간중간 돋아나 있는 약초들을. 와, 진짜 오지게 많네. 당시에는 유저 수십만 명이 리젠 타이밍만 기다리며 순식간에 따 가곤 했으니, 그 양이 실감이 나질 않았는데…… 이건 진짜로 엄청난 양이었다.
내가 이쪽에 오기 전에, 여기서 가장 흔한 약초 하나의 가격을 봤는데, 한 뿌리에 25만 원을 호가했다.
물론 나는 채집 스킬 따위도 없으니, 채집해 내는 과정에서 상당히 약초가 손상되거나 할 가능성이 있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거의 노다지 수준이었다.
나는 곧바로 꽃밭 정중앙으로 달려가 내가 수첩에 기억나는 대로 적어 온, 쓸 만한 약초들과 꽃을 하나씩 캐내기 시작했다.
뭔가 꽃을 캘 때는 말하는 흰 꽃과 노란 꽃이 생각나 조금 이상한 기분이긴 했지만…….
“미안해오! 미안한 고애오!”
나는 연달아 소리치며 마구 뽑아냈다. 저질 체력이라, 그 마구 뽑아낸 것들의 양도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이 정도면 얼마 정도는 팔고, 나머지는 그냥 연금술사들한테 맡기면 괜찮은 약을 만들어 줄 것이었다.
“대따! 꽃 씨들~ 풀 씨들~ 다음에 또 보는 거와요…….”
대략 40뿌리가량을 캐낸 나는, 아직도 하나도 줄어들지 않은 꽃밭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 미친 폐인들 수십만 명을 이곳 세계에 떨궈 놓지 않는 이상에야, 이곳 꽃밭은 아마 영원히 내 독점 소유일 것이다.
나는 이내 공간 압축 자루에 그것들을 넣고, 밖을 나섰다.
“뭐야, 벌써 가는 거야?”
여전히 입구에 있던 흰 꽃은 내가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오는 것에 의문이 들었던지 내게 물었다. 아무래도 더 많이 캘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너모 마니 캐 가면 꽃밭 씨, 아야 하는 고애오…… 븝미쟝 배려할 줄 아는 아가야람니다.”
“너…… 생각보다는 좋은 녀석이었구나!”
흰 꽃은 내 말에 감동이라도 받은 듯이 울먹거렸다. 실상을 말하자면, 그냥 체력이 딸리기도 하고, 이 이상으로 뽑아 가면 자루가 무거워서 들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오해는 놔두는 편이 더 좋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쁜 아조시들은 들어가게 하면 안 되는 거야요! 븝미쟝만 가끔 올게여…….”
“당연하지! 우리 꽃밭인데 당연히, 그런 놈들한테서는 지켜야지!”
어느새 우리의 범주 안에 나를 넣은 모습.
요새 나도 좀 멍청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우울했었는데 이 녀석을 보니 좀 위안이 된다.
든든하다, 븝갈통을 뛰어넘는 꽃갈통!
* * *
히어로 판타지 내의 시스템에는 경매장이란 것이 있다. 물론 그것은 유저들끼리 물건을 교환하는, 타 RPG게임의 경매장 내지는 교환소와 크게 차이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이 실제 세계가 된 이후, 내가 찾는 경매장은 그것과는 달랐다. 작중에서 몇 번씩이나 언급이 되고, 또 사건의 배경이 되기도 한 곳.
나는 국내에서 가장 큰 경매장을 찾았다. 원래는 그냥, 온라인 마켓을 통해 약초 몇 개를 팔려는 생각이었는데, 내가 무의식적으로 캐 온 약초 중 꽤나 비싼 녀석이 하나 섞여 들어온 모양이었다.
게임 기준 현금가 70만 원짜리 재료템. 흔히 보라색 나팔꽃과 닮아 그런 식으로 부르는 녀석인데, 이곳에서는 70만 원은 고사하고 7000만 원은 거뜬히 넘는다고 한다.
그걸 두 뿌리를 캐 왔으니, 실상 중급(10~15등급)필드에서 한 달 내내 사냥해야 얻을 수 있는 금액을 벌어 버린 것이다.
이게…… 운빨인가?
나는 잠시 내 능력적인 부분에 대해서 감탄했다. 하지만 이어진 문제들 때문에 그 생각을 철회할 수밖엔 없었다.
일단 이번에 판매하게 될 꽃 같은 경우에는, 기존 경매장 수수료의 2배를 떼고 팔아야만 했다.
정상적인 수수료로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회원증이 있어야 하는데, 그 회원증을 받기 위해서는 기존 시중 판매 최저가가 1억이 넘어가는 물건을 1회 이상 판매하거나, 혹은 3억원 이상의 물품을 구매해야만 했다.
당연히 시발, 후자는 불가능했다. 3억은 개뿔, 호에에 소리가 절로 나왔다.
기존 시중 판매 최저가가 1억이 넘어가는 물건을 1회 이상 판매. 나는 그것으로 회원증을 얻어야만 했는데, 그게 이번인 것이다.
당장에 1억이 넘는 거액이 손에 들어오면, 뭐부터 살까 고민하던 내게 짜증을 유발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뭐 여기까진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생도 신분이시군요. 생도 신분으로 판매자 등록을 하려면 해당 아카데미 관계자분들께 미리 통지를 하셔야 합니다.”
“호에에에에? 그런 게 있는 거애오?”
“네, 그것이 규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건 무슨 개념 팔아먹은 규정인지. 아니, 그러면 생도는 뭐 하나 팔고 사고 할 때마다 아카데미 감시를 받아야 하나?
아예 납득이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너무한다 싶었다.
아카데미 생도로서 받는 혜택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마이너스적인 요소도 있다는 건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며는…… 옵바야가 말해 주는 거애오…… 븝미쟝은 아가라 고런 고 못 하는 고애오…….”
“오빠…… 크흠. 알겠습니다.”
경매장 관계자는 입술을 한 차례 씰룩거리더니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곤 사라졌다.
뭐 이렇게 안 되는 게 많아.
나는 한숨을 쉬며 대기실의 구석 의자에 앉았다.
“호에, 이거 초콜릿인가여…….”
그때,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탁자 위에 놓여진 금박 초콜릿 몇 개.
아무래도 판매자들이 대기하는 동안 먹으라고 놔둔 모양이었다.
나는 원래 단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 헛소리. 내가 게임에서 해 댄 헛소리 때문인지 자꾸 달달한 게 먹고 싶었다.
바스락.
금박이 벗겨지는 소리가 경쾌하다.
나는 보기만 해도 달콤한, 그 초콜릿의 자태를 감상하다가 이내 입으로 한 알, 집어넣었다.
“으응…… 헤으응…….”
입 안에 사르르 퍼지는 달콤한 맛. 나는 말 없이 초콜릿 하나를 더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다 먹고 난 뒤.
“……이거느은~ 어차피…… 먹으라고 놔둔 거니까여.”
자기변명을 하며, 주머니 속에 초콜릿 몇 개를 쑤셔 넣었다.
집으로 돌아간 뒤, 다 녹아 버린 초콜릿 탓에 머리통을 쥐어박게 될 미래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