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리아 언냐야 왜 그러는 고애오?
일리아 메이슨. 나름 국내에서 꽤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메이슨 길드의 외동딸이나, 대중들에게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었으나 최근 신하연과의 대련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어느 정도 인지도가 올라간 그녀.
대부분의 이들은 일리아의 첫인상을, 별로 좋게 보지 않았다. 얼굴 자체가 날카로운 인상이지는 않았으나, 평소에는 거의 무표정으로 다니는데다가 인터넷상에 누가 퍼뜨렸는지 모를 그녀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들이 많이 퍼져 있었기에.
일부 사람들은 가끔, 요즘 또 한 명의 화젯거리인 그 다나 크리스틴과 함께 있을 때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고는 했으나…… 이 모든 이야기들을 당사자는 정작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흐으으음…….”
주말, 그녀는 자신의 집이 아닌 한 호텔에서 머물고 있었다. 굳이 집을 놔두고 이런 곳까니 나온 것에는 그녀의 부모님의 특이한 교육 철학 내지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굳이 이렇게 해야 하나.”
그것은 아카데미까지 들어간 바에야, 집에서 주는 도움 없이 한번 살아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 일견 보는 관점에 있어서야 타당할 수도 있겠지만, 일리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직접적으로 도움받는 부분들만 제한하고, 몰래몰래 길드 내의 친한 중진들이나 혹은 친척들이 주는 도움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굳이 이렇게 집 놔두고 밖에서 거주할 필요가 있을까. 그것이 일리아의 의문이었다. 실상 달라진 점이란 그거 하나밖엔 없었다.
“하아, 다나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일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겨우 2주밖에 생활하지 않았는데,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하는 펜타곤보단 밖이 나을 것 같아 나오긴 했는데…… 영 할 일이 없었다.
무료함, 그 감정은 꽤나 오랜만에 느껴 보는 것이었다. 펜타곤에 입학하고 난 뒤, 다나와 함께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는 매일매일이 즐거웠던 터였다.
하지만 이번 주 주말은, 다나가 먼저 일이 있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퇴짜를 놨다. 일리아는 그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고 보니 뭘 했는데 그렇게 즐거웠을까. 일리아는 생각을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뭔가 딱 하고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냥 별것 없이 같이 수업이나 듣고 있어도 재밌었으니까.
물론 큰 사건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오랜 기간 악연을 쌓아 온, 신하연과의 트러블이 있기도 했고, 안타까운 사고였던 던전 견학 사건도 있었고, 또 가장 최근에는 그 조별 과제가…….
“아. 짜증 나.”
생각을 연이어 떠올리던 그녀는 이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최근에 있었던 그 조별 과제. 거기서 겪은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재스민이라고 했었나, 그 묘하게 사람을 바보처럼 만드는 기운을 뿜어내는 여자.
어떻게 보면 다나 또한 그런 기운을 뿜어내긴 했지만, 분명히 종류가 다른 것이었다.
애초에 첫인상부터 별로 좋지 않았던 그 여자는, 아무래도 다나에게 호감이 있는지 여러 가지로 환심을 사려는 듯한 행동을 했다.
처음에는 그에 대해서 별생각이 없었으나 다나가 자신이 아닌 재스민의 등에 업혔을 때, 일리아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나중에 해명하기로는 힘들까 봐 일부러 그쪽에 탔다고는 하는데,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 소리였다.
“뭐지? 도대체 뭐가…….”
일리아는 잠시간 고심했다. 과연 다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 재수 없는 여자만이 가진 매력이란 게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특징이란 하나뿐이었다.
“띠, 띨빵아! 멍청아!”
일리아는, 조심스럽게 J의 말투를 따라 해 보려 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잘되지가 않았다.
평소에는 쓸데없는 말 자체를 잘 하지 않고, 다나와 있을 때는 완전히 반대의 말투로 이야기했으니.
“아, 잘만 하던데…… 띨빵아!”
일리아는, 아예 거울 앞에 서서 그 말투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혹시 이렇게 말하면 다나가 좋아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하지만 진짜로 월요일이 되고, 진짜로 그 말투를 따라 했을 때.
“띨빵아!”
“호에에…… 일리아 언냐야…… 갑자기 왜 그러는 고애오.”
“어…….”
꽤나 유사하게 따라 했다고 생각했음에도, 좋아하기는커녕 되레 무서워하는 다나를 보고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는 없었다.
* * *
“띨빵아!”
나는, 이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J를 떠올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딴 별명으로 날 부르는 사람이 그녀 한 명밖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호엥……?”
하지만 나는 순간 이상함을 느꼈다. 방금 들려온 목소리는 분명 J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물론, 그녀 같은 경우에는 목소리 정도야 얼마든지 변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보다는 다른 사람이 말한 듯한 느낌인데.
이내 그 목소리의 진원지로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곳에는 마치 J를 따라 하는 듯 아예 평소의 자세까지 똑같이 한 일리아가, 당당히 서 있었다.
“띨빵아!”
얘는, 또 왜 이래?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J 하나로도 힘든데 왜 얘까지 이러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런 내 생각과 감정은 육체에는 굉장히 큰 반응으로 다가왔다. 몸이 부들부들 떨림과 동시에 이내 눈가가 촉촉해졌다.
“호에에…… 일리아 언냐야…… 갑자기 왜 그러는 고애오.”
“어…….”
그녀는 잠시 이런 내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듯, 그저 멍하니 굳어 있었다. 하지만 이내 덩달아 본인까지 눈가가 촉촉해지더니 나를 와락 껴안았다.
“어허어어…… 내가 미안해…….”
그러고는 아예 반쯤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러는 건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기에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으나.
“후에, 후에에…….”
아무래도 이 몸은 그 이유를 따지기보단, 그저 상황에 휩쓸려 가기를 선택한 모양이었다.
“호에에에에에에에엥!”
“허어어어어엉!”
그렇게, 펜타곤 아카데미, 그중 기숙사 별관에 있는 내 방에서, 일리아와 나는 한참 동안 그렇게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 이유는, 시발 내가 어떻게 알아.
일리아는 이내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난 뒤, 진정을 한 듯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이내 손수건을 하나 꺼내었다.
그러고는 내 눈가를 닦아 주며, 머쓱하다는 듯이 말했다.
“미안, 나도 모르게 막 괜히 기분이 이상해서.”
“호에…… 언냐야,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고시애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갑자기 J의 말투를 따라 한 이유에 대해서. 괜히 그 이후로 이어진 상황 때문에 아침 댓바람부터 부둥켜안고 울고 난리를 떨었으니.
“뭐? 말투? 어…….”
일리아는 내 질문에 상당히 당황한 모양이었다. 뭔가 말해선 안 될 만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그것까지는……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그렇게 잠시간 딴청을 피우던 일리아는,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자 이내 화제를 전환해 버렸다.
“아 참, 그러고 보니까 오늘…….”
너무 의도가 다분히 느껴지는 화제 전환이었지만, 나는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 주기로 했다. 여기서 굳이 이러쿵저러쿵 걸고넘어질 이유가 없었으니까.
* * *
띠링!
수업 도중,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 나는 순간 깜짝 놀라서 그를 살펴봤다. 다행스럽게도 아무도 듣지 못했는지, 아니면 듣고도 그냥 무시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다들 내게 관심이 없었다.
“하와와…….”
나는 한숨을 쉬며 이내 몰래 그 내용을 살펴봤다. 알림의 정체는 문자. 발신인은 ‘연금술의 집 관리자’였다.
[주문하신 약의 제조가 완료되었습니다.]
오, 벌써 완성된 건가. 나는 메시지의 내용을 보고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나는 꽃밭에서 따 온 꽃들과 약초들 중 일부를, 연금술사들이 모여 있는 연금술의 집이라는 단체에 맡겼다.
실상 이곳이 가장 양심적이고, 또 믿을 만한 실력자가 많은 곳이었으니까. 적어도 게임 설정상으로 그랬다.
하지만 현재 연금술의 집은 그리 규모가 크지 않은데, 그건 이곳이 스토리가 진행되는 시점에 발맞춰 함께 규모가 커지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사업적인 안목이 하나도 없는 연금술사들이 모여 만든 단체. 그러다 보니 비교적 싼 약품 제조 단가와 뛰어난 실력, 그 두 가지로만 자신들을 증명해야만 했다.
결국 국내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 연금술계의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그 시기가 조금 늦달까.
시간이 지날수록 실력이 늘어나는 김수혁과는 다르게, 이쪽은 시작부터 거의 완성형이다. 나중에 갈수록 더 실력이 좋아지는 것도 맞지만, 지금만 하더라도 충분히 차고 넘칠 정도로 실력이 좋다는 뜻이었다.
지금으로서는 나만 아는 연금술 맛집! 이런 느낌의 집단. 하지만 나는 그들을 이대로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던 내가 거기에 밥숟가락 하나 얹어야 마음이 든든하지 않겠는가. 혼자서 자기들끼리 정해진 운명대로, 잘되는 것을 보면 뭔가 배가 살살 아플 것 같다.
“븝미쟝도 도움이 되는 거애오…….”
그리고 사실, 여기까지 내 생각만 보자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될 사람들, 괜히 건드려서 단물이나 쪽쪽 빨아먹으려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간섭하는 것은 그들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 ‘연금술의 집’의 구성원들. 그들은 사업적으로 무언가를 볼 수 있는 눈이란 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이들은 초반부에 한 ‘히어로’에게 제대로 물린다.
빌런이 아니라 히어로에게 물린다는 표현이 언뜻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었지만, 분명 빌런 중에서 중립에 가까운 성향을 띠는 사람이 있다면, 히어로 중에서 못돼 처먹은 놈들도 있었다.
바로 그 못돼 처먹은 부류에 속하는 사기꾼 한 놈. 그놈에게 속아 넘어가는 바람에 연금술의 집은 작중 중반쯤에 아예 그 시설과, 연금술사들이 통째로 마치 노예처럼 넘어가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때 나타난 것이 우리의 금수저들…… 아니 주연 히어로들이고. 그때의 도움 이후로 좋은 관계를 쭉 유지해 나간다 이건데.
굳이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그냥 애초에 그 나쁜 놈을 치워 버리고 내가 대신 그들의 경영에 참가하면 되지 않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 생각은 실제로 조만간 실행으로 옮길 것 같았다.
애초에 연금술의 집 자체에서 필요로 하는 연구비란 게, 어느 정도의 장사에 대한 개념만 있더라도 충분히 자기들 자력으로 마련할 수 있는 금액 수준이었으니까. 금액 면에서도 부담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이제 나는 배당금을 지속해서 챙김과 동시에 유능한 연금술사들을 부려 먹을 수 있게 되는 거지.
“히흐흐. 너모 하와와한 고애오.”
저절로 떠오르는 아름다운 미래와 함께, 웃음이 새어 나왔을 때. 갑자기 내 정신을 깨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다나? 다나가 이번에 해 보겠다고요?”
“호엥?”
나는 순간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뭘 한다는 거야?
생도들과 교관은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갑자기 뭘 시키려는 건데. 나는, 잠시 이 수업이 무슨 시간인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리고.
“브, 븝미쟝 안 되는 거야요!”
이내 마구 손사래를 쳤다.
이날, 오전 시간대에 잡힌 수업에는 성적에 반영되지 않는 교과목들도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수업이었다.
다름 아닌, 음악 수업.
그리고 내가 앉아 있는 이 교실에는 덩그러니 스탠딩 마이크 하나가 놓여져 있다.
이게 뭘 뜻하는 것인지는 아마 서너 살 먹은 어린애도 알 수 있으리라.
“븝미쟝…… 노래 못 부르는 고애오…….”
나보고 노래를 부르란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