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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44화 (44/172)

#44화. 븜븜븜

펜타곤 아카데미는 현실의 고등학교에 비해 상당히…… 힘들다. 속되게 말하면 빡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단지 빡세다고 비교할 만한 수준을 뛰어넘어, 그렇게 교육열이 뛰어나다는 한국의 고등학교가 비교적 천국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지금은 학기 초반이라서 그리 많이 하지 않았지만, 저번 조별 과제와 같은 실습들이 가득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카데미 내에서는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 생도들의 과도한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려 노력하고 있다.

일단 포인트만 있다면, 아카데미 내에서라도 뭐든 할 수 있는 각종 시설들. 실제로 웬만한 번화가 수준의 상권이 아카데미 내에 존재했다.

물론 이 같은 경우에는 되레 하위권 생도들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기도 하였으나, 그 이외의 여러 가지 방책들이 더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지금 하고 있는 음악 수업과 같은 것들.

그것은 흔히 현대에서 학창 시절 때 해 봤던 음악 수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라면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를 때 마나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운다는 것.

실제로 마나를 사용한다면, 비교적 소리가 예쁘게 나오기도 했고. 또한 음공(音功)과 같은 방법을 통해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기도 했다.

뭣보다 그냥 잠시 쉬어 가는 수업 시간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생도들이 꽤나 좋아했다.

“븝미쟝, 못하는 고애오…….”

그러나, 난 지금. 이 수업이 굉장히 싫었다.

방금 전의 상황. 나는 혼자서 망상을 하다가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런데 마침 그 때, 음악 수업 담당 교관이, 자원해서 노래를 불러 볼 사람을 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뭔가 타이밍이 오묘~하게 겹치는 바람에. 마치 교관의 그 물음에 내가 하겠다고 나선 꼴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전혀 아닌데 말이지.

나는 그에 대해 뭐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당연하지만 이 몸으로 그런 항변 따위는 불가한 것이었고.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게 ‘다나 화이팅!’ 하고 외치는 일리아의 응원까지 받으며 앞으로 나왔다.

나는 본래 현대에서, 그래도 노래를 어느 정도 잘 부르는 편이었다. 음감이나 박자감이 일반인 중에서는 꽤나 괜찮은 편이기도 했고. 음색도 나쁘지 않았었다.

이것은 내 주관적인 의견이 꽤나 많이 들어가 있는 이야기이기는 했으나, 객관적으로 봐도 내가 그리 못하는 편은 아니었던 듯. 종종 노래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그러면 무슨 걱정이냐,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원래의 몸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애초에 이 몸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몸이었다. 그런데, 노래? 그걸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있나.

예를 들면 소주 한 잔, 같은 노래를 부른다고 치면. 당장에 븝미쟝은 아가야라 그런 거 못 마시는 고애오~ 하는 말로 시작할 게 뻔했다.

“자, 다나 생도. 영 부를 노래가 없으면 동요라도 괜찮으니, 아무거나 불러 주세요.”

내가 그렇게 노래를 차마 부르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자 교관이 재촉을 했다. 아무래도 저 교관은 정말 선의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괜스레 그녀에게 짜증이 났다.

“하와와와…….”

하지만 막상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나니, 내가 안 하겠다고 빼 봤자 그리 의미가 없는 것도 같았다. 어쨌든 결국에 한 곡 듣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이 교실 안에 가득했으니까.

심지어 그건 나츠키와 신하연조차 마찬가지였는데, 그건 호의에서 우러나오는 시선이라기보단…… 어디 한번 얼마나 잘하나 보자. 그런 느낌의 시선이었다.

그걸 보니까 또 뭔가 오기가 생겼다. 그래, 까짓것 한 곡 하지 뭐.

나는 이내 노래 하나를 선택했다. 그건 내가 평소에 자주 부르던 애창곡 중 하나인,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 나는 그 노래를 부르겠다고 선언하려 했다.

븝미쟝은 이런 노래 모르는 고애오!

하지만 눈앞에 시스템창이 떠오르며, 그것을 저지했다. 아니, 내가 아는데 뭘 모르긴 몰라 미친.

나는 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조금 당황했다. 무슨 한 음절마다 욕이 쏟아져 나오는 노래를 부르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이게 안 된다고?

그렇다면, 도대체 되는 노래가 뭔데. 그렇게 생각하자, 친절하게도 시스템창은 이어 그 부를 수 있는 노래의 목록을 띄워 주었다.

― 꼬마자동차 붕붕

― 산중호걸

― 동물농장

― 악어 떼

…….

그건, 마치 ‘어린이 동요 전집’ 따위의 책에서나 쓰여 있을 법한 목록이었다.

분명히, 교관이 동요를 불러도 상관이 없다고 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진짜 동요를 부르기에는 쪽팔렸는데. 애초에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이거밖에 없단다.

이게 진짜 내 운명인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정말 금방 나왔다.

당연하지. 이게 내 운명이 아니었으면, 애초에 내가 지금 애기븝미이지도 않았겠지.

“호엥, 호엥.”

나는 이내 앞에 놓인 마이크를 쥐었다. 그에 사람들이 모두 숨을 죽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기대건, 그 반대건 간에 이건 꼭 들어야겠다는 의지는 다들 충만한 모양이었다.

최대한 짧고 빠르게, 동요 한 곡만 끝내고 바로 내려오자. 나는 그렇게 다짐한 뒤 입을 열었다.

성대에 힘을 주고 마력을 부여한다. 본래 신체에는 내 맘대로 마력을 부여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성대 근육은 무언가 마력을 잘 받는 느낌이었다.

혹시 이 정도 느낌이면, 딱히 흑역사가 아니게 끝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그 가능성에 희망을 가졌다.

그리고 이내 노래를 시작했다.

“븜븜븜~”

“……어?”

“……무슨.”

그때까지만 해도, 선곡을 몰랐던 생도들이 다들 당황하기 시작했다. 내가 임의로 틀어 낸 노래는 꼬마자동차 붕붕의 그것이었으니까.

또한 나름 마나가 가득 담겨서 청아한 목소리와 비교되게, 처음부터 음정도 엉망인 데다 노래를 뻔뻔스레 부르는 모습이 황당했던 모양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서 그만두고 싶었으나. 그렇게 한다면 결국 다시 한 곡을 불러야 할 가능성이 높았기에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아주 작은 븝미쟝~ 애기~ 븜미쟝이 나가양~ 븜븜븜~ 옵바야들 보며는 힘이 솟는 꼬마 븜미쟝~”

“목소리 뭐야…… 너무 귀여워!”

……참고로, 이 말도 안 되는 감탄은 일리아가 한 것이었다.

내 충격적인 노래 한 소절이 끝나고 난 뒤, 교실은 온통 적막으로 휩싸였다. 나를 깔 생각이 만연했을 것으로 예상되던 나츠키마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야말로 교실 전체를 뒤집어 놓은 노래, 이기는 하지만 그게 긍정적인 의미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가 없었다.

다들 충격을 받은 듯이 뭐라고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는데, 일리아는 그저 나에 대한 호평뿐이었다.

“우리 애기 노래는 이 맛이지. 다나 한 곡 더!”

심지어 앙코르까지 부르짖는 그녀를, 생도들이 일제히 쳐다봤다.

미쳤냐는 뜻이겠지. 아무래도 그들은 한 소절이라도 더 듣기 싫을 것이었다.

나 또한 같은 마음이었기에, 당장에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몸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내 뜻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호에에?”

순간 당황하며 마력까지 넣었음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러나 싶어, 멀뚱히 서 있는데 갑자기 그 경직이 풀리기 시작하더니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븝미쟝은 앙코르 요청을 무조건 받눈 고애오! 븝미쟝, 히어로 하길 잘한 거 가타여…… 아이돌이엇스면 앙코르 요청에 스러질지도 모르는 거애양…….

그리고 이내 떠오르는 시스템창.

그것은 상당히 장황하면서 동시에 주책맞은 내용을 담고 있었으나,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이어서 한 곡을 더 부르게 된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 끔찍한 시간을 한 번 더 보내야 한다는 건가?

차라리, 잠시 정신을 잃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내 생각과는 별개로 몸과 입은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재롱 잔치를 하는 것처럼 율동까지 곁들이며,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븝미는~ 춤추고~ 언냐야는~ 바이올린~”

“늪지대가 나타나며는…… 븝미 떼가 나와양, 하와와!”

“문간 옆에는 븝미가~ 호에엥! 배나무 밑에도 븝미가~ 하와왕!”

나는 그날, 총 네 개의 동요를 불렀고, 생도들은 시간으로 따지면 2분 남짓한 시간 만에, 내 노래를 듣고 다들 넉다운을 당했다.

심지어는 음악 담당 교관마저 같은 반응이었다.

“그……래. 다나 생도…… 정말 잘 불렀어요. 그러니까, 이제 자리로 가도…… 되겠네요.”

그녀는 이렇게까지 포장을 해 줘야 하나, 싶은지 ‘정말 잘 불렀다’라는 문구를 말할 때 입술을 굉장히 파들거렸다. 아무래도 자신의 직업에 회의감 내지는 자괴감이 든 것이 아닐까. 그나마 내 입장에선 그 편이 나았다. 무기술 담당 교관처럼 나를 개조시키겠다며 달려들었다면 굉장히, 곤란했을 것이다.

“호에에…….”

콩!

나 또한 마찬가지로, 자괴감에 그저 책상에 머리를 반복적으로 처박았다. 도대체가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실제로, 그날 이후 가끔씩 나를 마주치는 생도들이 수근거리는 이야기 중 하나에, 내 노래에 대한 것도 섞이게 되었다.

모두가 상처만 남은 음악 수업 시간.

그날, 그때의 승리자는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그리고 그 한 명은…….

“아, 다나 목소리 모야모야~ 너무 귀엽자나. 나중에 같이 노래방이나 가자~”

진짜 이쯤되면, 거의 부모 수준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팔불출인 일리아였다.

*    *    *

푸른 하늘,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따스한 봄바람. 거기에 친한 단짝 하나.

물론 그 친한 단짝이란 일리아를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 여러 가지 요소가 모여, 굉장히 청춘 드라마틱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나는 이 분위기와 상황이 썩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편안하고 안온한 삶을 즐기는 것이 내 최종적인 목표 중 하나였으니까.

바스락.

“어, 언냐야.”

“왜? 다나?”

“방금 저기서 사람 나오는 거 못 봤어양?”

“어…… 못 봤는데?”

내 말에 일리아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건지 이해가 안 가네.

내가 지금 신경 쓰고 있는 것의 정체. 그것은 바로 J였다. 그녀가 지금 계속해서 나와 일리아 뒤를 몰래 쫓고 있는 것이었다.

실상 몰래라고 하기도 좀 그런 게, 애초에 그녀는 내가 이미 눈치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해서 따라붙는다는 건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건 아니건 상관없다는 뜻이겠지.

사실로 말하자면, J는 지금 누구보다도 내 말을 잘 지켜 주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이전과는 다르게 원만하게 다른 생도들과 친해지기 시작했으며, 또한 주연 등장인물들에게 지속적으로 호의를 베풀었다.

그리고 옆에 너무 붙어 다니지 말아 달라는 내 부탁을…… 이런 방식으로라도 참 잘 지켜 주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시험 삼아 폰으로 J에게 문자를 하나 보내 보았다. 그러자 수풀에서 아주 잠시지만 우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와와와…….”

하아, 도대체 이놈의 주연들은 죄다 또라이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교내 산책로를 돌아다니는 생도들을 바라봤다.

“짐은 그대에게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 오라고 했건만…….”

그에, 곧바로 눈에 들어오는 생도 하나. 그건 주연 등장인물도, 조연도 아닌 그냥 이 세계에 있는 평범한 히어로 지망 생도 한 명.

하지만 그 모습이나 말투, 행동거지가 영판 일반 사람들과는 달랐다.

“다시 들고 오게!”

원래는 흰색인 생도복을, 마치 곤룡포처럼 붉은색과 황금색으로 꾸며 놓고는, 조선시대 왕처럼 호통을 치고 있는 생도.

그를 바라보던 나는,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는 없었다.

주연이 이상한 게 아니라, 그냥 이 세계 자체가 좀 잘못 생겨 먹은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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